품질 높은 집 짓기의 6가지 비밀

[QnA] 피그건축의 '밝은 다세대주택' ② 키워드6
ⓒKyung Roh
글. 김윤선  자료. 피그건축사사무소

 

‘밝은 다세대주택’은 경기도 안산의 주택가에 위치한 10세대의 원룸과 1세대의 주인집으로 구성된 다세대주택이다. 지극히 평범해 보이는 이 빨간 벽돌집에는, 건축가의 경험에서 비롯한 집에 관한 고민이 고스란히 녹아 있다. 거주자의 삶의 질과 공간의 품질을 높이기 위한 6가지의 설계 키워드는 다세대주택이 가진 불리한 환경을 극복하며 집을 환하게 밝히고 있다. 1편에서는 집의 시작과 목적, 고민에 관한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2편에서는 집의 품질을 높이기 위한 6개의 특별한 설계 키워드에 관해 들어본다.

 

ⓒKyung Roh

 

집의 품질을 높이기 위해 6개의 키워드로 설계를 진행하셨다고요.

집의 목적과 고민을 바탕으로 설계를 시작했고, 6가지 중요한 이슈가 설계의 키워드가 되었습니다. 이 키워드들을 관통하는 이야기는 ‘밝게 만들자’라는 거였고, 그게 바로 ‘밝은 다세대주택’이라고 붙인 집의 이름에 잘 나타나 있죠. 집을 크게 두 부분으로 나누면 공용 부분과 전용 부분으로 나눌 수 있는데요. 공용 부분은 거주자 모두가 ‘함께 쓰는 공간’으로 주 출입구와 주차장, 계단실이 있고요. ‘따로 쓰는 공간’인 전용 부분은 각 세대를 말하는데, 동쪽과 남쪽에 면한 4-bay 세대, 북향 세대, 주인 세대로 3가지로 나눌 수 있어요. 지금부터 ‘밝은’ 집을 짓기 위해 저희가 설계한 이 6가지 키워드에 관해 조금 더 깊게 이야기해볼게요.

 

1  문다운 문(門), 번듯한 대문을 만들자

 

ⓒfig. architects

 

첫 번째로 건물의 주 출입구입니다. 바깥에서 우리 집으로 들어가는 입구가 번듯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있었어요. 문다운 문(門)을 만들려고 했죠. 최근 지어지는 다세대주택의 대부분은 주차공간을 확보하기 위해 1층이 필로티로 들어 올려져 있어요. 이 집도 마찬가지고요. 그래서 출입구로 가려면 어두컴컴한 주차장에서 자동차들 사이를 비집고 들어가야 해요. 하지만 이 집에서는 건물이 보이는 순간 제대로 된 입구가 보이고, 내가 사는 집은 작지만, 이 건물 자체가 내 집이라는 느낌이 들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길에 개방되어 있고 바로 들어갈 수 있어서 안전하다는 느낌도 들어요. 범죄예방 환경설계*가 따로 없네요.

길이 어떻게 보면 도시의 얼굴이라고 할 수 있는데, 필로티의 그늘진 느낌보다는 이렇게 환영하는 제스처의 건물 입구가 도시적인 측면에서 봐도 중요한 이슈가 될 수 있을 것 같아요. 안전 면에서도 당연히 유리하고요. 공용 부분 중에서는 입구가 제일 중요하다고 봤는데, 사실 이렇게 하면서 희생한 부분도 많아요. 평면 계획을 하다 보면 계단이 가운데에 있을 수밖에 없거든요. 집이 외부와 맞닿아야 하니까요. 그래서 1층이 필로티인 집 대부분이 가운데에 출입구가 있는 이유이기도 하고요. 하지만 이 집은 2층에서 계단을 한번 꺾었어요. 즉, 꺾은 부분부터 진짜 계단실이 시작되는 거예요. 그래서 2층 세대 일부에 면적이 줄어들 수 밖에 없었죠. 하지만 덕분에 그 세대는 가로에 면한 비워진 공간이자, 테라스를 확보할 수 있었어요. 면적에서 손해를 본 대신 매력 있는 공간이 탄생할 수 있었죠.


*범죄예방환경설계(CPTED: crime prevention through environmental design)란? 범죄 예방 환경 설계는 건축 환경 설계를 이용해 범죄를 예방하려는 연구 분야로서 아파트, 학교, 공원 등 도시생활공간의 도시생활공간의 설계 단계부터 범죄를 예방할 수 있도록 다양한 안전시설 및 수단을 적용한 도시계획 및 건축설계를 말한다. 셉테드CPTED라고도 한다.


 

2층 평면도 ⓒfig. architects
2층 4-bay 세대의 테라스 ⓒKyung Roh
거리에서 명확하게 보이는 주 출입구 ⓒKyung Roh

 

2  어두컴컴한 계단실을 밝고 환하게

 

ⓒfig. architects

 

두 번째는 계단실이에요. 출입구를 통해 건물로 들어온 다음 집으로 가는 과정에서 꼭 거치는 공간이 계단을 포함한 복도라서 그곳을 어떻게 기분 좋게 만들까 고민했어요. 우선 계단실이 밝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있었고, 계단실에서 바깥의 날씨나 상황을 알 수 있도록 창을 크게 두었어요. 주 출입구 부분에 조성된 푸른 조경 공간을 창 너머로 감상할 수 있기도 하고요. 내부에 불을 켜놓고 사람들이 오르락 내리락 하면 늦은 밤 건물로 돌아오는 입주민들이 빛과 인기척 때문에 시각적인 안정감을 느끼는 효과도 있답니다.

 

계단실 내부에 커다란 전창을 두었다. ⓒKyung Roh
풍부한 채광으로 밝은 느낌의 계단실 ⓒKyung Roh

 

3  새벽에 차 빼줄 필요 없는 자주식 주차장

 

ⓒfig. architects

 

주차장은 입구에서 차량과 사람의 동선을 분리하는 게 가장 큰 이슈였어요. 도로변에 면한 세대는 반층 높여서 주차장 입구가 시원하게 뚫려 있고요. 주차 8대 모두 연접 주차가 아닌 자주식 주차를 할 수 있도록 독립적인 주차공간을 확보했죠. 자주식으로 주차장을 구획하다 보니까 벽과 기둥이 들어설 자리가 부족하더라고요. 주차 구획에는 기둥을 못 세우니까요. 지진에 견디기 위해서는 벽이 양쪽으로 다 있어야 하는데 그걸 확보하는데 저희와 협업한 구조사무소가 꽤 애를 먹었죠. (웃음) 연접 주차로 했다면 건물 구조가 훨씬 쉽게 풀렸을 거예요.

 

자주식 주차를 적용해 거주자의 편의성을 높였다. ⓒfig. architects
차량 출입구와 세대 출입구를 명확하게 분리했다. ⓒKyung Roh

 

4  창이 4개나 있는 원룸, 4-bay 세대

 

남쪽과 동쪽에 면한 4-bay 세대 ⓒfig. architects

 

층마다 총 3세대가 들어가는데, 대지의 특징과 장점을 활용해 모든 세대의 삶이 풍요로워지려면 어떻게 할까 고민을 많이 했어요. 이 집이 가진 환경적인 장점이 동쪽으로 11m라는 여유 공간이 있다는 것, 그리고 정남향의 땅을 길게 면하고 있다는 거였죠. 그래서 동쪽과 남쪽으로는 최대한 외기에 많이 접하도록 평면을 길쭉한 형태로 설계했습니다. 그래서 평면상으로는 원룸이지만 한 세대당 창문을 4개나 넣을 수 있었고, 그에 따라 공간도 4-bay*로 구획할 수 있었어요. 평면의 형태가 반듯한 사각형이 아닌 것은 건폐율을 지키는 선에서 최대한 길게 만들기 위해서였고요. 남향 세대는 앞 건물이 개발되는 경우를 고려해 최대한 뒤로 물러나게 배치했어요. 앞집도 학교에 면해 있어 일조 사선제한을 적용받지 않는 집이니 미리 준비를 해둔 거죠. 원룸에 창이 4개나 있는 집은 별로 없을 거예요. 보통은 많아봐야 2개죠. 창을 많이 내니까 밝고, 환기도 잘되고, 개방적인 느낌이 극대화되었습니다.


*베이(Bay)란? 발코니를 기준으로 건물의 기둥과 기둥 사이 공간 중 햇빛이 들어오는 공간을 말한다.


 

3, 4층 평면도 ⓒfig. architects
풍부한 채광이 가능한 창문 4개를 가진 남향  4-bay 세대 ⓒKyung Roh
옆 집이 개발될 경우를 대비해 최대한 거리를 두어 배치했다. ⓒKyung Roh
창문이 많아 개방감을 느낄 수 있다. ⓒKyung Roh
거주자의 삶을 고려한 평면 계획 ⓒKyung Roh

 

5  빛이 잘 드는 북향 세대

 

전용마당과 중정을 가지는 북향 세대 ⓒfig. architects

 

앞서 4-bay 세대는 대지의 장점을 극대화해서 설계했는데, 나머지 한 세대는 북향이라서 전혀 장점이 없었어요. 그래서 스킵 플로어(skip floor)*를 활용해서 계단실에서 최대한 공간을 아끼는 대신 북향 세대만을 위한 외부공간을 만들기로 했습니다. 그래서 이 북향 세대는 4-bay 세대와 달리 계단참(계단 중간에 쉬는 부분)에서 출입하는 구조이고, 외부공간을 통해 집으로 들어가기 때문에 마치 마당을 거쳐 집으로 들어가는 단독주택 같은 느낌이 들어요. 그리고 건물 한 가운데에 중정을 뚫어 북향의 부족한 채광과 환기 문제를 해결했습니다. 결과적으로 중정과 외부 공간 덕분에 3면이 외부에 개방되어 북향 세대의 불리한 점을 완전히 극복했어요. 전용 마당을 가진다는 건 정말 큰 장점이죠. 게다가 거실 창이 중정을 향해 나 있어서 집 안에 앉아있으면 비가 눈이 오는 걸 바라볼 수 있는 묘미도 있답니다.


*스킵 플로어(skip floor)란? 건물 각 층의 바닥 높이를 일반적인 건물과 같이 1층분의 높이만큼씩 높이지 않고, 층계참마다 반층차(半層差) 높이로 설계하는 방식을 말한다.


스킵 플로어 구조로, 북향 세대는 4-bay 세대보다 반층 아래에 있다. ⓒfig. architects
계단참에서 진입해 마당같은 외부공간을 통해 출입구로 들어 간다. ⓒKyung Roh
중정을 통해 들어온 빛이 출입구에 닿는다. ⓒKyung Roh
최상층부터 최하층까지 뚫려 있는 중정 ⓒKyung Roh

 

6  단독주택처럼 마당을 즐길 수 있는 주인 세대

 

최상층의 주인 세대 ⓒfig. architects

 

최상층에는 주인 세대가 있어요. 주인 세대는 아래층부터 올라온 스킵 플로어로 내부에서 단 차이가 생기는데요. 이것을 그대로 받아들이자 공간이 더 풍요로워졌어요. 북향 세대와 마찬가지로 외부 공간을 거쳐 출입구로 들어오면, 처음에 공적 공간인 거실과 주방이 있고 반층 내려가면 사적 공간인 방들이 있는 구성입니다. 주인 세대는 층고를 더 높게 계획해서 주방 위쪽에 다락이 생겼고 이를 다용도 공간으로 활용할 수 있어요. 주인 세대의 마당에 면한 중정의 난간은 메시 소재로 만들어서 남쪽에서 들어온 빛이 중정으로 잘 퍼질 수 있게 했고요. 박공 지붕 형태를 취해 단독주택의 느낌을 강조했어요.

 

5층 평면도 ⓒfig. architects
ⓒKyung Roh
주방 위에 다락이 있다. ⓒKyung Roh
다락 내부의 모습 ⓒKyung Roh
ⓒfig. architects
박공지붕으로 단독주택 느낌을 강조한 주인 세대 ⓒKyung Roh
메시로 만든 난간 ⓒKyung Roh
ⓒKyung Ro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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