꺾이지 않는 베트남의 자존심

[Archur의 낯선 여행] ⑩ 마을 공동체의 역사가 남아 있는 도시 '하노이'
글 & 사진. 스페이스 도슨트 방승환

 

‘Archur’ 라는 필명으로 온·오프라인에서 도시와 공간을 안내하는 방승환 작가가 <브리크brique> 독자들을 위해 새로운 연재를 시작합니다.
많은 사람들이 알고 있는 도시지만 그 안에 낯선 장소, 유명한 건축가가 설계했지만 알려지지 않은 낯선 작업들을 소개해 새로운 영감을 드리려 합니다.
다양한 스케일의 장소와 공간에 대한 소개와, 현재에 이르게 된 이야기, 그리고 환경적 맥락을 알기 쉽게 설명하는 Archur와 함께 이색적인 세계 여행을 떠나보시죠.

 

34층에서 내려다본 하노이Hanoi의 모습은 흐릿했다. 여름의 습기 때문인지 도시 곳곳에 있는 호수 때문인지 잘 모르겠지만 왠지 도시 전체가 물에 젖어 있는 듯했다. 안개가 걷히고 드러난 도시의 풍경은 마치 정리되지 않은 소년의 마음 같았다. 제각각의 크기와 들쑥날쑥한 높이의 건물들에서 질서를 찾기란 쉽지 않았다. 하노이에는 도시계획이 존재하지 않는 것 같았다.
기능에 따라 도시의 조직을 구분하고 건물의 높이와 크기를 맞추며, 길을 반듯하게 정리하는 데 익숙한 도시계획가에게 하노이는 도전정신을 불러일으키지만, 정작 하노이 시민들은 그런 필요를 느끼지 못하는 듯하다. 실제 도시의 미래 발전 방향을 담은 도시기본계획이나 마스터플랜이 하노이에서 작동하기 시작한 건 도이 머이(Đổi mới) 정책이 본격화된 1990년대 이후다.

 

하나의 덩어리처럼 뭉쳐 있는 하노이 호안끼엠군의 원도심 ⓒarchur
베트남을 대표하는 풍경이 된 오토바이의 물결 ⓒarchur

 

그렇다고 장기적인 도시계획이 수립되지 않았던 것도 아니다. 1926년 어니스트 헤브라드Ernest Hébrard가 하노이 개발 종합 계획을 처음 수립했었다. 하지만 부분적으로만 실행된 후 폐기됐다. 계획을 수립한 헤브라드도 사이공Saigon과 달리 하노이에서는 자신의 계획이 실현되지 못할 거란 걸 예상했을지도 모른다. 개방적인 사이공 사람들과 달리 하노이 사람들은 중국이라는 강대국의 지배에 저항했고 끝까지 굴복하지 않았다는 자부심으로 완고했기 때문이다.

비록 일부이기는 하지만 헤브라드의 계획이 실현된 곳은 쭉박호(Trúc Bạch Lake)와 가까운 바딘군(Ba Đình district)이다. 이곳에서 그가 계획했던 방사상 도로를 확인할 수 있는데, 헤브라드는 세 도로가 갈라지는 지점에 새로운 정부 건물을 두었다. 현재 호치민 박물관 인근이다. 방사상 도로는 하노이의 새로운 모습이 파리Paris를 닮기 원했던 식민국 프랑스인들의 바람이 반영된 결과였다.

방사상 도로는 온전히 조성되지 못했다. 그래서 바딘군의 구심점은 근처의 바딘 광장이다. 1960년대 하노이는 소련과 밀착돼 있었다. 당연히 도시계획에서도 영향을 받았다. 당시 소련의 도시계획가들은 모스크바의 붉은 광장과 북경의 천안문 광장을 닮은 모습으로 바딘 광장을 바꾸었다. 현재 호치민 영묘(Ho Chi Minh Mausoleum)와 베트남 국회가 바딘 광장을 가운데 두고 마주 보고 있다. 1980년대 초에는 소련 도시계획가들의 도움으로 하노이 기본계획이 수립됐는데, 현재 도시구조의 바탕이 되었다.

 

바딘 광장을 가운데 두고 마주보고 있는 호치민 영묘와 국회 ⓒarchur
호치민 영묘 ⓒarchur

 

헤브라드가 계획한 방사상 도로 중 그나마 실현된 디엔비엔푸Dien Bien Phu 도로는 호안끼엠 호수가 있는 호안끼엠군(Hoàn Kiếm district)으로 향한다. 폭이 넓고 녹음이 짙은 이 도로는 프랑스 도시에서 볼 수 있는 전형적인 불바르boulevard의 모습이다.

호안끼엠군은 베트남의 전통적인 도시조직과 프랑스식 도시의 특징이 섞여 있는 동네다. 호수에는 이곳에 사는 대형 거북이와 후 레 왕조(Later Lê dynasty)를 세운 레러이(Lê Lợi) 황제의 검과 관련된 전설이 내려오는데, 전설은 하노이라는 땅(거북이)을 기반으로 시작된 새로운 권력(검)에 신성함을 부여한다. 호수에 사는 거북이는 지금도 아주 가끔 나타나는데 대부분 수질 오염으로 인해 병든 모습이라고 한다.

호안끼엠 호수 주변은 불바르와 프랑스 식민시대 건물이 남아 있는 프렌치 쿼터French Quarter다. 이곳에서 특히 눈여겨볼 건물은 프랑스인들의 종교 중심이었던 성 요셉 성당St.Joseph’s Cathedral과 여가의 중심이었던 하노이 오페라 하우스Hanoi Opera House다. 두 건물은 호수를 가운데 두고 서쪽과 동쪽으로 떨어져 있지만 식민지에 정착한 프랑스인들의 향수를 달래고 낯선 땅을 친숙하게 느낄 수 있도록 본국에 있는 건물과 비슷한 모습으로 지어졌다. 성 요셉 성당은 (당연히) 파리의 노트르담 성당을, 오페라 하우스는 오페라 가르니에Palais Garnier를 각각 닮았다.

 

불바르와 프랑스 식민시대 건물이 남아 있는 호안끼엠군 프렌치 쿼터 ⓒarchur
파리 오페라 가르니에를 모델로 설계된 하노이 오페라 하우스 ⓒarchur
파리 노트르담 성당을 모델로 설계된 성 요셉 성당 ⓒarchur

 

베트남의 전통적인 도시조직이 남아 있는 원도심은 호안끼엠 호수 북쪽에 있다. 아시아 도시들의 다른 원도심과 마찬가지로 이곳에 건물들도 대부분 낮고 작다. 그리고 길은 좁고 구불구불하며 복잡해서 마치 원도심 전체가 하나로 뭉쳐 있는 듯하다. 특이한 건 길 이름이다. 대부분 길 이름이 ‘Hàng~’으로 시작하는데, ‘Hàng~’은 ‘상품’, ‘제품’을 의미한다. 호안끼엠 호수에서 북쪽으로 향하는 도로 중 동쪽에 있는 ‘Hàng Đào’는 은제품을, ‘Hàng Ngang’은 옷과 차를 파는 상점들이 많았다고 한다. 최근에는 이런 구분이 거의 흐릿해졌지만 대신 세계화의 시대에 태어난 젊은 베트남 디자이너들이 설계한 트렌디한 건물과 상점들을 만날 수 있다.

호안끼엠군의 원도심은 ‘랑(làng)’이라는 베트남 북부 지역 촌락의 전통적인 특징을 떠오르게 한다. 대나무성(Thành lũy tre)으로 둘러싸여 있었던 랑은 구성원끼리는 친밀하지만 외부인들에게는 폐쇄적이었다. 그러다 보니 행정, 생활, 신앙, 문화 등 모든 측면에서 자치적이었고 심지어 마을을 지키는 방식도 자기방어적이어서 마을마다 민군 자위대가 있었다. 이러한 독립적인 특징은 하노이가 도시화 되어갈 때도 유지됐는데, 그렇다 보니 대량생산, 대량소비에 적합하고 외부에 개방적인 현대적인 도시를 만들어 가는데 걸림돌로 작용했다.

하지만 ‘랑’이라는 폐쇄적인 공동사회가 국가적인 어려움에 직면하면 믿을 수 없을 만큼 유연한 결속력을 이루기도 했다. 특히 외국과의 전쟁이 일어나면 마을 단위의 민군 자위대는 베트남 전역을 전장으로 만들었다. 상대국은 누가 군인이고 누가 민간인인지 구분하기 힘든 상황에서 전쟁을 치루어야 했다. 실제 월남전에서 미국은 베트남이라는 한 국가와 전쟁을 한 것이 아니라 수천의 작은 마을 국가와 전쟁을 해야 했고 이 지점에서 패배할 수밖에 없었다고 분석하는 사람들도 있다.

이러한 특성을 지닌 하노이 사람들에게 어쩌면 장기적이고 큰 그림을 제시하는 현대적인 도시계획은 처음부터 맞지 않는 옷이었는지도 모른다. 그보다는 상황에 따라 전술적(tactical)이고 변통성 있는 도시계획이 하노이인들에게 더 적합할 수 있다.


(이 글을 마지막으로 방승환 작가의 [Archur의 낯선 여행] 연재는 마무리합니다. 애독해주신 독자와 애써주신 방 작가께 감사의 말씀 전합니다. – 브리크 편집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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