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자보다는 함께를 말하는 아파트

[Journey] 대신아파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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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사진. 윤현기

 

한국의 아파트 역사는 1960년대 가파른 경제 성장과 더불어 서울의 인구 과밀화 문제를 위한 해결책으로 시작됐다. 급격히 늘어나는 인구를 수용하기 위해 아파트는 콘크리트를 쏟아부어 가며 빠른 속도로 지어졌다. 시대의 요구가 빚어낸 아파트의 형태는 지금까지 크게 변하지 않은 채로 한국의 도시 풍경에 큰 영향을 미쳤다. 그런 아파트 중 하나였던 영등포구 신길동 ‘대신아파트’는 1971년 완공됐다.

당시로서는 흔치 않은 적벽돌로 마감한 고급 아파트로서 지하 1층과 지상 1층에는 시장이, 2층부터는 주거 세대로 구성된 주상복합단지다. 하늘에서 내려다보면 Y자 형상이 특징적인데 그래서인지 인근 주민들도 ‘Y 아파트’로 일컫는다. 타워형이 주를 이루는 오늘의 아파트 풍경과 비교해보면 다소 이질적인 모습이지만 오랜 시간 한자리에서 세월의 풍파를 맞아온 오래됨이 자연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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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신아파트를 형태로만 이야기 한다면 그저 특이한 건축물에 그칠 수 있다. 그러나 눈여겨봐야 할 점은 1960~70년대 당시 한국 사회의 공동체 의식을 반영한 건축이라는 것이다. 밖에서 볼 때보다 훨씬 큰 규모를 자랑하는 1층 시장은 여러 방향으로 입구가 나 있어 출입에 제한이 없다. 현재는 빈자리가 더 많지만 이곳에서 잠시 주변을 둘러보면 과거 입주민과 상인 그리고 외부인이 어우러져 시끌벅적하게 교류하던 모습을 상상할 수 있다. 시장을 품은 아파트가 하나의 생태계를 이룬 셈이다. 자리를 지키고 있는 상인들은 오가는 사람들에게 여전히 “찾는 거 있어요?”라며 말을 건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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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층부터는 층마다 중앙 계단으로 이어지는 넓은 로비가 있다. 입주민들은 매일 이곳을 오가며 자연스럽게 이야기를 나누었을 것이고, 아이들은 각 층을 자신의 영역 삼아 뛰어놀았을지도 모른다. 중앙 로비는 서로가 서로에게 관심을 기울일 수밖에 없는 하나의 공동체 공간으로 기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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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양이 제각각인 화분이 모여 만들어진 작은 숲은 이를 단적으로 말해주는 듯하다. 입주민들이 함께 가꿔나간 이 숲은 오후의 따뜻한 빛이 들어오면 노쇠한 아파트에 생명력을 불어넣는다. 함께 공간을 일궈나가는 모습은 개인주의가 선호되는 오늘날 쉽게 볼 수 없는 풍경이라 오히려 생경하게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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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축으로도 유명하더라고. Y 아파트인가. 이것도 내년 초에 없어지고 상가가 들어설 거야.” 어느덧 51년이 된 대신아파트는 1996년 재난위험시설 D등급 판정을 받았고 2022년을 끝으로 이곳에는 새로운 주상복합단지가 들어설 예정이다. 대신아파트 건설 당시의 시대상, 사람과 지역의 공동체 의식을 반영한 설계는 재편된 시대적 요구와 개발에 익숙한 우리에게 많은 질문을 던진다. 건축물의 개성과 가치와는 달리 건축가는 아직까지도 알려지지 않았다. 만약 그가 지금의 대신아파트를 본다면 우리에게 어떤 말을 해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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