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시에 담긴 건축

[정해욱의 건축잡담] ② 2023 베니스 비엔날레 건축전 + 젊은 모색 2023
젊은 모색 2023 ⓒHaewook Jeong
글. 정해욱 미드데이 공동 대표 · 데이비드 치퍼필드 아키텍츠 콜라보레이터

 

건축이 주도하는 전시는 언제나 흥미롭다. 때로는 유명 건축물을 실제로 보는 것보다도 즐겁다. 그 전시가 그저 지어진 혹은, 지어질 도면과 모형을 늘어놓는 전시가 아니라면 더욱 재미있다. 왜냐하면 건축적 생각과 관점에서 비롯되는 가능성을 훨씬 더 자유롭게 상상할 수 있기 때문이다. 특히 당장의 설계 업무가 따분하고 지칠 때면 더욱 그러하다. 배고플 때 먹는 라면과 비슷하달까. 마침 올해 비슷한 기간에 전시 중인 두 개의 건축 관련 전시를 모두 흥미롭게 보았다. 하나는 베니스 비엔날레 국제건축전이고, 다른 하나는 과천 국립현대미술관에서 열린 ‘젊은 모색’이다. 사실 이 두 전시는 서로 아무 상관이 없다. 하지만 겹쳐보면 곱씹어 볼 거리가 없는 것도 아니다.

 

2023 베니스 건축전: 네덜란드 파빌리온. 물을 은유로 하여 도시의 자본 순환 시스템을 나타낸 드로잉 ⓒHaewook Jeong

 

베니스 건축전부터 살펴보자. 아시는 분들은 다 아시겠지만, 베니스 비엔날레는 같은 공간에서 미술전과 건축전이 해마다 번갈아 가며 열린다. 원래는 미술전만 있었다. 건축전은 1968년부터 미술전의 일부로 존재하다가, 1980년부터 독립적으로 시행되었다. 생각해 보면 참 특이한 구성이다. 건축이 독자적인 정기전을 여는 것도 그렇고, 미술의 일부에서 출발해 독립 후 대등한 규모가 된 것도 그렇다. 어찌 되었든 이 행사는 점점 커져가고 있다. 공식 전시는 주제전과 개별 국가관의 전시들로 구성되는데, 참여하는 국가관의 개수는 점점 늘어나는 중이다. 뿐만 아니라 비엔날레 기간에는 베니스 도시 곳곳에서도 관련된 여러 작은 전시들이 열린다. 사실상 도시가 비엔날레에 의해 잠식되는 것이다.

 

2023 베니스 건축전: 오스트리아 파빌리온. 비엔날레가 베니스를 잠식해나가는 것에 대한 리서치가 흥미로웠다. ⓒHaewook Jeong
2023 베니스 건축전: 노르웨이 파빌리온 ⓒHaewook Jeong

 

음, 그런데 이렇게 큰 건축 전시가 왜 필요한 걸까. 미술은 그렇다 치고, 건축이 굳이 왜 정기적으로 큰 전시를 열어야 할까. 이 정도의 스케일이라면 그에 걸맞은 주제와 내용이 모두 필요할 텐데. 건축이 2년마다 그렇게까지 거창하게 전 지구적으로 던져야 할 새로운 메시지가 있을까. 만약 있다면 그 메시지를 채울만한 신선한 건축적 내용이 매번 전시를 통해 생산될 수 있을까. 그리고 거대한 용광로처럼 이렇게 대규모로 불러 모으는 것이 언제까지 유효한 전시 형식일 수 있을까. 비엔날레를 떠올리면 내 머릿속엔 이런 의심들이 가득 찬다. 규모가 크다 보니 당연히 생겨나는 질문들이다. 내가 나서서 할 일은 아니지만 걱정이 꼬리에 꼬리를 문다. 딱히 전시할 만한 내용이 없어져 가는데 비엔날레가 지속되면 어떻게 될까. 어찌 되었든 이 전시는 2년마다 계속 주어진다. 건축이라는 이름 하에 큰 전시가 강제적으로 발생한다. 참여자에겐 탐색이라는 숙제가 주어진다. 이 숙제 덕분에 비엔날레는 오랫동안 경계의 확장을 담당해 왔다. 경계선에서 일어나는 줄타기는 언제나 재미있다. 하지만 동시에 아슬아슬하기도 하다.

 

2023 베니스 건축전: 브라질 파빌리온. 이번에 황금 사자상을 수상한 국가관이다. ⓒHaewook Jeong
2023 베니스 건축전: 베네수엘라 파빌리온에서 바라본 스위스 파빌리온. 담장이 의도적으로 철거되었다. ⓒHaewook Jeong

 

비엔날레를 볼 때면 늘 하는 질문이 있다. 도대체 어디까지가 건축에 포함될 수 있는 것일까. 이번 베니스의 주제 전시도 건축이라는 일반적 의미 범위를 의도적으로 크게 이탈한다. ‘미래의 실험실’이라는 주제어를 걸고, 문명이 미래의 동력을 만들어 온 그 바닥을 뒤집는다. 아프리카 지역과 전 세계로 뿔뿔이 흩어진 아프리칸 디아스포라에 집중 조명하며 다음과 같은 메시지를 던졌다.
‘이 사람들의 노동이 그간 인류의 에너지원이었음은 분명한 사실이다. 따라서 현재 우리가 미래를 위해 짊어진 숙제인 탈脫 탄소화는 결국 탈脫 식민지화와 결코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건축의 주요 과제인 미래를 그리는 일은 그저 달달한 낭만적 상상 놀이가 될 수 없음을 역설하는 전시였다.

 

2023 베니스 건축전: 주제전에 설치되었던 공예품 ⓒHaewook Jeong

 

많은 사람들이 이번 주제전에 대해 반문을 했다. 이것을 건축 전시라 할 수 있을까? 건축이 불러일으키는 전시는 맞는데, 정작 건축이 자취를 감추어버렸기 때문이다. 주제 자체가 주류에 동원되느라 억압되었던 다른 가능성을 발굴하는 것이기에, 우리가 익숙한 주류적 건축 장치들은 전시에서 최대한 배제되었다. 대신 리서치와 다큐멘터리, 그리고 공예 예술품 등이 그 자리를 차지한다. 흥미로운 것은 많은 사람들이 여기에 익숙하다는 것이다. 이를테면 이런 신기한 반응이 가능하다.
“이게 건축인지는 모르겠지만, 잘 이루어진 건축 비엔날레 같긴 해!”
반복되는 비엔날레는 건축에서 일어나는 일련의 일탈들을 축적해 하나의 전형으로 변모시키는 것 같다. 뭔지는 몰라도 건축이 시작점이 아니었다면 발생할 수 없었던 사유가 쌓이는 것이다. 이쯤되면 이것은 건축 전시가 불러일으킨 새로운 건축이 아닐까.

 

젊은 모색 2023 ⓒHaewook Jeong
젊은 모색 2023 ⓒHaewook Jeong

 

건축이 전시를 불러일으킨다면, 건물도 전시를 불러일으킬 수 있다. 과천 국립현대미술관의 최근 전시 ‘젊은 모색 2023: 미술관을 위한 주석’이 여기에 해당한다. 이 전시는 지정된 건축물을 다방면으로 곱씹어 보는 것이 주된 기획이다. 주제 건축물은 국립현대미술관 과천관이다. 관객들은 과천관에 와서 과천관에 대한 해석을 전시로 보는 의도된 굴레에 빠진다. 누군가는 황당할 수 있다. 미술을 보러 미술관에 왔더니 미술 대신 미술관을 보라니! 심지어 미술관 건물의 건축에 대한 아카이빙 전시도 아니고 그냥 미술관 자체를 고민하라 한다. 이 자기 지시적 굴레는 사실 순환 참조의 고리 안에서 증폭되는 자율성을 겨냥하고 있다. 관객들은 그 순간 자신이 들어가 있는 공간에 대한 경험이 작품을 보기 전과 후에 따라 극명하게 달라지는 과정을 지속적으로 체험하게 된다.

 

젊은 모색 2023 : 백종관의 ‘섬아연광’에 있던 기둥 설치물 ⓒHaewook Jeong

 

이 전시의 흥미로운 복병은 과천관 공간의 보편성이다. 과천관은 역사적으로 그리 오래된 건물도 아니고, 해외 일부 유명한 현대미술관처럼 현란한 건축적 요소를 가득 품고 있는 것도 아니다. 대신 어디서나 볼 수 있는 네모반듯한 평범한 기둥과 드라마틱하지 않은 정직한 구조와 공간들로
구성되어 있다. 보편성은 호환성을 보장한다. 그래서 참여 작가들이 고민하고 발견했던 지점들은 고스란히 우리의 일상 곳곳에서도 활용 가능한 공간 탐색의 도구가 된다. 인식과 경험이 풍성해지는 일은 그 자체로 공간이 풍요로워지는 것과 같다. 그런데 이것이 특이한 공간에서 성립하는 특별한 사색이 아니니 참으로 값지다. 누군가에게 이것은 자꾸만 멀리 나아가는 비엔날레와는 반대의 지점에서 건축적으로 유의미할 수 있다.

 

젊은 모색 2023 : 추미림의 ‘패스파인더’ ⓒHaewook Jeong

 

이렇듯 방향이 전혀 다른 두 전시, ‘베니스 건축전’과 ‘젊은 모색’은 사실 공통점이 있다. 바로 미술이 있던 자리에서 생겨나고 자라난 건축이라는 점이다. 젊은 모색은 국립현대미술관이 수십 년간 이어온 신인 발굴 프로그램이다. 주로 미술이 주인공이던 프로그램에서 처음으로 건축(물)이 스포트라이트를 받았다. 낯익은 구조다. 40여 년 전 베니스 건축전이 그랬다. 우리는 건축 전시라는 것이 한 번 물꼬가 트이면 알아서 자체적인 형식과 내용을 찾아간다는 것을 베니스를 통해 경험했다. 마침 이번 젊은 모색은 이전보다도 특히 ‘모색’에 특히 집중했다고 한다. 아마 그 안에는 건축의 자율적 실천과 확장을 미술관으로 유도하는 첫 단추를 꿰는 일도 있지 않았을까.

여전히 의심은 든다. 건축이 건물이라는 익숙한 결과물 형식을 벗어던지고, 미술의 공간에서 어딘가 미술이 아닌 채로 있어야 하는 상황은 ‘왜 굳이’라는 질문을 지금도 동반한다. 미술 전시가 별로면 그저 전시가 별로인 것으로 몰아갈 수 있지만, 건축 전시가 별로면 건축으로 전시하는 것 자체에 대한 비판이 쉽게 등장 가능하다. 하지만 나는 이 존재론적 불안이 흥미롭다. 끊임없이 답해야 하는 상황에 놓이게 됨은 전시를 단단하게 만드는 자양분이자 원동력이 되어왔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것은 건축가가 원래 해오던 일이기도 하다. 건축가야말로 굳이 여기에 이 건물을 왜 지어야 하는지를 늘상 해명해 오던 알리바이의 장인들 아닌가. 건축 전시를 볼 때면 생각한다. 이번에는 또 무슨 꿍꿍이를 들이대려나. 이러한 이유로 건축이 주도하는 전시는 언제나 흥미로운 볼거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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