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렌체에서 찾은 질문들

[정해욱의 건축잡담] ③ 건축가라는 직업의 기원
ⓒHaewook Jeong
글. 정해욱 미드데이 공동 대표 · 데이비드 치퍼필드 아키텍츠 콜라보레이터

 

피렌체에 가면 산 로렌초 성당이 있다. 이 유명한 성당은 독특하게도 파사드가 없다. 대신 파사드를 덧붙이기 위한 기초작업만 덩그러니 놓여있다. 파사드는 건물의 정면 외관, 즉 얼굴을 뜻한다. 다시 말해 건물은 얼굴이 완성되지 못한 것이고 이는 건축주인 메디치 가문의 부끄러움이었다고 전해진다. 웅장하고 화려한 건축물을 통해 가문의 위세를 떨쳐야 하는데 얼굴값부터 못하니 그 심정이 충분히 이해가 간다.

이 성당의 설계는 피렌체 두오모(산타 마리아 델 피오레 대성당)의 돔으로 유명한 필리포 브루넬레스키가 맡아서 시작했었다. 그러나 수십 년간 지지부진하게 이어진 공사 중간에 그는 세상을 떠났다. 그렇게 100년이 흘러 미완의 파사드는 더 유명한 사람에게 의뢰가 간다. 바로 미켈란젤로 부오나로티다. 미켈란젤로는 자신의 디자인을 나무 모형을 통해 건축주에게 제출했다. 하지만 그도 이를 현실에서 완공하지는 못했다.

 

산 로렌초 성당의 비어있는 파사드 ⓒHaewook Jeong

 

여기에는 오늘날의 관점에서 두 가지 흥미로운 대목이 있다. 바로 ‘파사드’의 존재, 그리고 ‘파사드 디자인’를 위한 별도 용역 의뢰의 존재다. 개념적으로 파사드는 아주 특이한 장치다. 건물에 정면이 존재하는 것까지는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건물이 생긴다면 당연히 일어날 수 있는 일이다. 그런데 그 정면을 건물에서 따로 분리하여 별도의 디자인 대상으로 본다는 것은 독특한 문화적 현상이다.

유럽의 오래된 도시들을 여행하다 보면, 정면만 화려하고 측면과 뒷면은 밋밋하게 아무 디자인 없이 회벽으로 마감된 건물들을 쉽게 만날 수 있다. ‘파사드’의 독립적 존재가 만들어 내는 풍경이다. 어딘가 웃프다. 어린아이가 숨바꼭질할 때 머리만 숨기고서는 자기가 숨었다고 착각하는 것과 비슷하게 느껴진달까. 사실 이것은 경제적 문제다. 그들도 돈과 시간이 충분했다면 당연히 모든 면을 정면처럼 멋지게 만들고 싶었겠지. (참고로 산 로렌초 성당은 이와는 반대의 사례다. 완벽한 건물 내외부에 파사드만 없다.)

모든 것을 다 가질 수 있을 때는 중요한 것이 잘 드러나지 않는다. 하지만 허리띠를 졸라매야 하는 순간, 선택의 순간이 다가오고 우리는 꼭 필요한 것만 남긴다. 결핍이란 때로는 핵심을 드러내 주는 유익한 장치다. 서양의 건축에서 그것은 파사드였다. 돈이 모자라지만 랜드마크가 필요하면 그들은 이렇게 생각하는 것이다. 

‘일단 정면이라도 좀…’ 달리 말해, 다른 부분은 대충 할 수밖에 없더라도 정면만큼은 건축가의 정성스러운 손길을 청한다. 마지막까지 포기할 수 없는 것을 우리는 핵심이라고 부른다. 그래서 파사드는 건축이라는 분야의 탄생에 있어 그 개념적 근간을 이해하기에 좋은 장치다. 물론 파사드가 건축의 전부가 아니다. 그러나 건물 외형의 아름다움을 고안하고 이것을 작도하는 것이 이 분야의 출발점이었던 것은 틀림없다.

 

산타 마리아 노벨라 대성당의 파사드 ⓒHaewook Jeong

 

그런데 잠깐. 미켈란젤로는 조각가 아닌가? 왜 파사드를 건축가가 아닌(?) 조각가에게 의뢰했던 것일까. 오늘날의 직업 구분 개념으로 보면 사뭇 특이한 현상으로 읽힐 수 있다. 하지만 당대에 건축물의 외형은 석공에 의한 공예적 성격이 강했기 때문에 오늘날과 같은 구분이 작동하지 않았다. 오히려 건축물은 회화와 조각을 한 공간 안에서 모두 담아내야 하는 총체적인 시각예술의 마스터피스에 가까웠다.

그래서 회화와 조각을 넘나들며 완벽한 아름다움을 고안하고 통제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진 자는 자연스럽게 건축가가 될 수 있었다. 미켈란젤로는 자타공인 여기에 완벽하게 부합하는 인물이었다. 미켈란젤로는 조각가이자 화가이자 건축가다. 즉, 르네상스인들에게 건축이란 무엇이었는지가 궁금하다면 우리는 다음의 생각 회로에 주의를 기울이면 된다. ‘당신이 조각을 잘하는 것을 보니, 틀림없이 건축도 잘하겠구만!’

이는 모두 ‘건축’이 건물에 미적 질서를 부여하는 일로 인식되었기 때문에 생겨난 현상 아닐까. 이 무렵 건물의 ‘미’를 독립적으로 인지하고 전문적으로 다루려는 경향은 더욱 짙어져갔다.

이러한 징후에 방점을 찍은 사람은 레온 바티스타 알베르티다. 그는 건축가를 짓는 일로부터 구분 지어 도안을 그리는 사람으로 정의하며 사실상 이 직업을 발명했다. 그는 도안을 통해 도안을 통해서만 포착될 수 있는 완벽한 조형과 비례를 찾아 나섰다. 그가 탐색하는 아름다움은 시각적 화두였으며, 기능과도 구조와도 상관없었다. 피렌체에는 그런 그의 이상향이 담긴 파사드가 있다. 바로 ‘산타 마리아 노벨라 성당’의 정면이다. 이 건물은 실제로 보는 것도 아름답지만, 그가 담은 아이디어는 입면도에서 더욱 선명히 드러난다. 거기엔 완벽한 기하학적 비율을 향한 그의 탐구열이 가득하다.

 

피렌체 두오모(산타 마리아 델 피오레) 성당. 원근감을 구분하기 어렵다. ⓒHaewook Jeong

 

문화가 발전하면 분야는 분화한다. 우리가 ‘건축’이라고 부르는 분야는 르네상스 시기에 이르러 그렇게 분화되었다. 오늘날 우리는 아파트에 철근이 빠지면 어떡하냐며 건물 자체를 고민하는 수준에 머물러 있지만, 미켈란젤로와 알베르티가 찾아 나섰던 건축은 그런 고민들을 초월하여 아름다움이라는 대상을 정면으로 마주하려고 했던 것 같다. 피렌체를 거닐면 분화된 분야가 극단적으로 발전한 결과를 느낄 수 있다. 거대한 돔으로 유명한 산타 마리아 델 피오레 대성당의 파사드에 이르면 또 다른 정점을 느낄 수 있다. 3차원으로 구축된 2차원적 표현은 원근을 교란하며, 여기에 고유의 스케일과 장식이 더해져 독특하고도 초월적인 아름다움을 드러낸다. 현대를 살아가는 디자이너로서 혹은 건축인으로서 단 한 번도 배워보거나 다가서지 못했던 수준의 직관적인 숭고미다. 이는 우리가 오늘날 건축에 있어서 잃어버린 감각을 자꾸 상기시킨다.

이 성당은 거대한 돔으로 더 유명하다. 이 또한 건축이긴 하나, 숭고미로서의 건축과는 다른 방향으로 또 하나의 전문 분야를 분화시킨다. 바로 건설 기술, 즉 엔지니어링이다.

브루넬레스키는 너무나 거대하여 누구도 덮을 수 없던 뚜껑을 자신이 고안한 방법으로 완성시켰다. 기술적인 면에서 분명 역사적인 진일보였다. 그 목적은 거대한 구조물의 구현이다. 이 성취는 앞서 언급한 미적 감각과는 달리 망각되지 않은 것 같다. 왜냐하면 오늘날 우리는 인류 역사상 공학적으로 가장 발전된 구조물을 구축해 낼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여기서 구분되어야 하는 것이 있다. 산타 마리아 델 필오레 성당의 돔이 갖는 지나친 거대함이 과연 건물을 더 아름답게 하였는가? 아름다움은 취향의 문제이니 정답은 없다. 확실한 것은 이 질문은 브루넬레스키의 성취와는 별개의 문제라는 사실이다.

 

두오모 파사드의 디테일 ⓒHaewook Jeong

 

하지만 사람들은 이러한 질문을 잘 하지 않는다. 더군다나 건축가를 건물에 관한 미적 요소에 순수하게 집중하는 사람으로도 인지하지 않는다. 시대가 달라졌기 때문이다. 모더니즘은 건물의 장식을 의도적으로 잊어버렸고, 발전하는 기술은 그것을 건물에 반영하는 것만으로도 벅차다. 그리고 귀족 사회에서 대중 사회로의 이행은 수요 측면에서 건축을 더욱 실질적인 것으로 인식하도록 만들었다. 건축물은 대체로 상업적 자본의 도구가 되었고, 때로는 그 반작용으로 지적 저항의 장치로 소환되어 직관적인 아름다움을 의도적으로 거부하기도 했다.

그렇게 한 세기가 흘러 그 결과로 지금 우리 주변의 현대 도시가 생겨났다. 이 풍경은 피렌체와 달리 그다지 보존하고 계승하고 싶은 마음이 들지 않는 것은 왜일까. 건축적으로 우리는 정말 발전한 것일까. 당대 피렌체 시민이 이 풍경을 본다면 이런 질문을 할 것만 같다. 도대체 건축가들은 어디로 사라졌냐고.

 

두오모 외벽의 디테일. 3차원으로 구축된 2차원 ⓒHaewook Jeo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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