빌라 로톤다에서 떠오른 질문

[정해욱의 건축잡담] ⑤ 건축의 두 가지 방향 : 폼과 인터페이스
©Haewook Jeong
글. 정해욱 미드데이 공동 대표 · 데이비드 치퍼필드 아키텍츠 콜라보레이터

 

이탈리아 동북부에는 비첸차라는 작은 도시가 있다. 베니스에서 제법 가깝다. 이 도시는 건축가에게 아주 의미 있는 도시다. 왜냐하면 르네상스 대표 건축가 안드레아 팔라디오Andrea Palladio의 건축물로 가득 차 있기 때문이다. 비첸차 시내에 가면 빼어난 조형미를 지닌 팔라디오의 건축물을 곳곳에서 볼 수 있다. 그뿐만 아니라 그의 건축적 성취를 아카이빙하는 박물관도 있다.

하지만 비첸차에서 팔라디오와 관련하여 가장 유명한 것을 꼽으라면, 단연 ‘빌라 로톤다’이다. 16세기 말에 완공된 주택이다. 빌라 로톤다는 비첸차 시내에서 조금 외곽으로 나가면 나트막한 언덕 위에 우뚝 서 있다. 건축을 공부했다면 대다수가 들어봤을만한 건축물이다.

 

빌라 로톤다의 전경 ©Haewook Jeong

 

이 건물은 빼어난 조형미뿐 아니라 독특한 생김으로 유명하다. 앞뒤 좌우 파사드가 모두 똑같이 생겼다. 정면이랄 것이 따로 없고 네 개의 면이 모두 같은 모양이다. 똑같은 포르티코가 네 번 반복된다.

이러한 특징은 평면에서 더욱 적극적으로 드러난다. 좌우가 대칭이고 위아래도 대칭이다. 어릴 적 해 보았던 데칼코마니를 두 번 반복한 모양이다. 대칭을 이루는 것은 복잡한 모양이 아니라 아주 단순한 기초도형, 원과 네모 등이다. 그래서 이 건물의 조형 원리는 평면상에서 아주 명료하게 드러난다. 대칭에 대한 추구가 너무 직설적이어서 오히려 신기할 디자인이다. 당대부터 이 건물은 그 참신함으로 제법 화제가 되었다고 한다.

그런데 질문이 있다. 건물이 이렇게 생기면 무엇이 좋을까. 이 건물은 어느 은퇴한 성직자를 위해 지어진 주택이다. 집이라 하니 따져보게 되는 질문들이 있다. 상하좌우 대칭으로 생기면 살기에 더 좋을까. 내부에서 동선은 과연 편리할까. 모든 방향으로 깊이감이 똑같으니 공간적인 경험이 너무 단순하지는 않을까. 집에 있는 각 공간들은 저마다 기능에 따라 필요한 크기가 다 다를 텐데, 건물의 외형이 이렇게 되어버리면 실내를 계획함에 있어 너무 제약으로 다가오지는 않을까. 모든 면이 앞면이면 모든 것이 너무 정면이라 집이 포근하지 않을 것만 같은데…곰곰이 따져보니 장점보다는 걱정부터 쏟아진다. 이 모양으로 인해서 집이 더 좋아질 거란 생각은 별로 들지 않는다.

 

빌라 로톤다의 모서리 부분 ©Haewook Jeong

 

이런 고민들은 물론 현대인 입장에서의 걱정이다. 당대에는 집에 대한 기준이 조금 다를 것이다. 그럼에도 이 걱정들은 하나의 분명한 사실을 말해준다. 이 건축의 형태는 집의 기능을 위해 고안된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이 집은 아무리 보아도, 살기 좋은 집과는 무관하게 디자인되었다. 실제로 내부 공간보다도 밖에서 보이는 부분, 즉 계단과 포르티코 등에 더 많은 공간과 노력을 할애했다. 거주의 기능과 상관없는 디자인이다. 팔라디오에게 있어 내가 떠올린 걱정들은 주된 고민거리가 아니었던 것 같다. 형태가 기능을 따라야 한다고 믿게 된 것은 모더니즘 이후의 일이니, 르네상스의 건축가라면 충분히 그럴 수 있겠다.

그렇다면 팔라디오의 고민은 무엇이었을까. 팔라디오는 건물이 갖는 형태의 질서와 멋짐을 가장 우선적으로 고려한 것 같다. 겉에서 바라보면 조형과 비율 그리고 깊이감에 상당한 공을 들였다. 이 건물은 입면으로도 훌륭하지만, 팔라디오가 포착하려던 형태적 질서의 정수는 평면에서 드러난다. 평면상에서 드러나는 4방향 대칭은 흡사 우주의 질서를 축약하여 담아내려는 듯한 인상을 준다. 하지만 평면도가 담는 조형적 질서는 현실 공간에서 인간이 한눈에 인지할 수 있는 부분이 아니다. 과장해서 말하면 팔라디오가 고안한 질서는 우리의 현실 경험에서는 직접적으로 드러나는 것이 아니다.

즉, 그가 건축가로서 했던 일은 인간을 위한 일이라기보다는 근본적으로는 건축물 자체를 위하는 일이라고 볼 수 있다. 건물이라는 존재 형식이 기능과 상관없이 독자적으로 획득할 수 있는 질서와 조형미를 획득한 것이다.

 

빌라 로톤다의 도면 ©Andrea Palladio

 

하지만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집을 짓는데 어떻게 그게 우선일 수가 있을까. 우리는 현대인이니 이런 의심을 당연하게 떠올린다. 사실, 이 두 가지 다른 갈래의 고민은 건축에서 중요하게 다뤄지는 서로 다른 가치관을 드러낸다. 하나는 폼form이고 다른 하나는 사용자 인터페이스user interface, 줄여서 인터페이스다.

폼은 건물 자체의 형식미로 이어지는 것이고, 인터페이스는 인간의 입장에서 공간과 인간 사이에 일어나는 상호작용이다. 팔라디오가 집중했던 것은 전자이고, 내가 그의 건물을 보며 걱정했던 내용들은 후자의 입장에 해당한다. 이 두 갈래는 건축의 개념과 역할에 대한 시대적인 변화를 담고 있다. 전자는 전통적으로 건축이 집중해 왔던 부분이고, 후자는 상대적으로 근대에 와서 건축에서 생겨난 주제 의식이다.

 

빌라 로톤타의 모형 ©Haewook Jeong

 

건물에서 인터페이스를 덜어내고 형태만 생각하는 일은 오늘날 우리에겐 낯선 과정이다. 이러한 사고가 성립하려면 건물이라는 존재 형식을 하나의 오브젝트로, 특히 그 모양을 기능(혹은 내부)과 분리해서 독자적으로 존재하는 대상으로 여겨야 한다. 건물의 기능이 어떻든 그 모양이 별도로 가질 수 있는 자체적인 이상향이 있다고 믿는 것이다. 이를 추구하는 건축가는 건축물을 구성하는 각 요소들, 이를테면 기둥, 벽, 바닥, 천장, 지붕, 계단, 창문 등이 각각 가져야 하는 모양의 이상향, 그리고 어떤 스케일과 모양으로 서로 관계를 맺어야 하는지를 고민한다.

이는 모든 요소를 기능으로 환원하기 이전에 각자의 이상적인 모습이 어딘가 있을 거라 믿기에 가능하다. 기능으로 환원하게 되면, 기둥은 구조 계산을 통해 개 수와 두께 값을 결정하고, 계단은 인체공학적으로 그 폭과 높이를 결정할 것이며, 창문은 채광과 단열 등을 고려하여 모양을 결정할 것이다. 팔라디오의 건축 요소들은 이런 이유만으로 결정된 것이 아니다. 이러한 행위는 오늘날 관념으로 보면 (기능적) 설계보다는 (예술적) 조각에 가깝다.

 

빌라 로톤다 내부 돔 천장 ©Haewook Jeong

 

하지만 인터페이스적 관점은 이 모든 것을 반대로 본다. 이 패러다임은 근대에 들어서 주체라는 개념이 성립한 이후에 기능주의를 겪고 나서 가능한 생각들이다. 건축물 안에는 그것을 사용하고 경험하는 주체가 있고, 그 주체에게 무엇이 필요할지, 무엇이 편안할지, 무엇이 펼쳐질지를 고민하는 것이다. 이 주체를 사용자로 인지하는 순간 인터페이스는 작동한다.

인터페이스의 관점에서는 사용자, 즉 내가 공간에서 무엇을 하는지가 가장 중요하다. 그리고 해당 상호 작용을 통해 공간을 구성해 나가다 보면 전체가 이루어질 거라 믿는다. 또는 건축물의 전체가 이러한 인터페이스로 채워져야 한다고 믿기도 한다. 모든 건축 요소에는 사용자의 행위를 위한 목적이 깃든다. 이것은 서비스를 제공한다는 관점으로 공간을 풀어내는 것으로 이어지기에 오늘날의 소비 문화에서 극단적으로 강화된다.

 

©Haewook Jeong

 

폼과 인터페이스, 이 두 가지 방향은 다다르는 곳이 정반대다. 왜냐하면 하나는 건물 자체가 목표인데, 다른 하나는 경험하는 사용자가 중심이기 때문이다. 각각은 모두 서로를 잘 고려하지 않는다는 단점이 있다. 그래서 균형이 필요하다. 서비스와 소비의 대상으로 여겨져 경험으로만 통제된 공간은, 실용의 이면이 없어서 언제나 납작하다. 그리고 용도가 폐기되면 쓸모를 잃어버릴 것이다.

하지만 빌라 로톤다는 기능이 무엇이 되었던, 자신만의 질서를 바탕으로 감동을 주고 시대를 초월하여 수백 년을 존속하고 있다. 오래 지속되는 건축물을 만드는 일은 역설적으로 건축물 자체에 집중하는 것이 될 수 있다고 말하는 것 같다. 오늘날 인터페이스로만 이루어진 도시에 폼을 다시 불어넣는 상상을 하게 한다. 모두가 팔라디오가 될 수는 없겠지만, 그럼에도 건축가의 역할을 고민해 보게 만드는 지점이다.

부수기에 아까운 건물을 만드는 것이야말로 기후위기 속 지속가능성에도 도움이 될지도 모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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