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명 건축가가 지으면 고급일까?

[정해욱의 건축잡담] ⑥ 좋은 집에 관한 또 다른 질문
©Haewook Jeong
글. 정해욱 미드데이 공동 대표 · 데이비드 치퍼필드 아키텍츠 콜라보레이터

 

몇 해 전 뉴욕을 여행하고 있을 때였다. 여행한 지 일주일이 넘어갈 무렵 궁금했던 곳들은 웬만하면 다 가보게 되었고, 뭔가 더 재밌는 것은 없을까 고민이 들었다. 그때 누군가가 나에게 집을 사려는 사람인 척하고 부동산을 둘러보라고 추천했다. 뉴욕은 편견이 없기에, 내가 누구인지 개의치 않고 잘 보여줄 것이라고 했다. 이거다 싶었다. 이것보다 더 사실적으로 뉴욕다운 구경거리가 어디 있을까. 그리고 건축가에게 이보다 더 좋은 경험은 또 어디 있을까. 그렇게 평소라면 엄두도 못 냈을 몇십억, 몇백억짜리 집들을 보러 다니기 시작했다. 센트럴파크가 내려다보이는, 맨해튼이 펼쳐지는 그런 집들을 골라서, 걸친 옷은 화려하진 않지만 부자인 척 연기하느라 애썼다.

집들은 하나같이 멋졌다. 개중엔 유명한 건축가가 디자인한 아파트도 있었다. 그런데 돌아본 아파트 중 내 마음속 원픽은 정작 유명 건축가와는 상관없는 어느 무명의 디벨로퍼가 개발한 아파트였다. 가격은 둘러본 집 중에서 비싼 축에 속하지도 않았다. 그런데 이상하리만치 그 집은 살아보고 싶다는 마음이 들었다. 빛이 예쁘게 들어왔고 온기가 가득 차 있었으며 적당히 안락하면서도 고급스러웠다. 거실의 비율과 스케일이 무척 좋았다. 마감과 하드웨어도 모두 나쁘지 않았다. 맨해튼이 펼쳐지는 거대한 화장실은 적당히 사치스럽기도 했다. 내가 뉴욕에서 살아야 한다면 이런 집을 꿈꿀 것만 같았다. 

 

맨하탄이 보이는 어느 아파트 화장실 ©Haewook Jeong

 

둘러본 집 중 가장 비싼 아파트는 프리츠커 수상자의 설계작이었다. 외관이 확실히 독특한 아파트였다. 외부에서 볼 때 건물의 존재감만큼은 확실했다. 역시나 가격은 크기 대비 훨씬 비쌌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이 집을 둘러볼 때, 그닥 살고 싶은 느낌은 들지 않았다. 집은 확실히 크고 넓고 과감했다. 그런데 어딘가 맹하고 차가웠다. 화장실이나 주방처럼 친밀한 부분에서 디테일이 우아하거나 정성스럽지 않았다. 더 비싼 집인 것 같지 않았달까. 더 저렴했던 (그럼에도 수십억짜리이지만) 아파트에서 더 나은 화장실을 본 것 같기도 했다. 프리츠커 수상자가 설계한 더 비싼 집의 인상이 상대적으로 별로라니! 혹시 내가 수퍼리치의 감성을 너무 모르는 것은 아닐까. 

아무튼 이 아파트는 해당 건축가의 참여가 굉장히 중요한 사실인 것처럼 홍보하고 있었다. 홍보 내용에 따르면 해당 건축가의 참여로 인해 이 아파트의 예술적 가치가 무척이나 상승한 듯했다. 꼭 이러한 이유로 이 집이 더 비싼 것은 아니겠지만, (입지부터 땅값이 다를 수 있겠지만) 모든 판촉은 비싼 가격이 건축가의 개입과 무관하지 않음을 일관되게 암시했다. 건축가가 유명하니 이 건물이 이름 모를 아무 건물에 지나지 않게 될 가능성이 낮은 것은 사실이다. 달리 말해, 건축가의 유명세는 건축물의 특별함을 담보해 줄 수 있다. 일종의 브랜드 가치다. 고가의 집을 구매하려는 사람에게 대상의 특별함은 상품의 매력으로 다가올 것이다. 

 

뉴욕에서 둘러본 아파트 ©Haewook Jeong

 

하지만 고급스러움은 별개다. 건축가가 담보하는 특별함이 고급스러움의 일부가 될 수는 있겠지만 핵심은 될 수 없다. 물론 고급이란 (하이엔드 혹은 럭셔리란) 그 정의부터 단순하지 않다. 상대적 취향의 문제이기도 하다. 그러나 건축가가 럭셔리를 정의하고 이끌어가는 사람이 아닌 것 또한 사실이다. 고급스러움은 건축의 주된 업역이 아니다. 이름이 잘 알려진 유명 건축가의 대다수는 건물의 특별함을 고민하는 사람이다. 그것은 고급스러움과는 다른 가치다. 예를 들어, 근대 건축 역사상 가장 유명한 주택인 르코르뷔지에Le Corbusier의 ‘빌라 사보아’가 럭셔리의 상징은 아니지 않는가. 안도 타다오Ando Tadao의 ‘스미요시 주택’ 또한 마찬가지다. 오히려 반대로 가는 경우가 많을 수 있다.

다른 디자인 분야에서도 스타 디자이너와 럭셔리 디자인은 늘 같은 선상에 있지 않다. 예를 들어 자동차 디자인의 거장 조르제토 주지아로Giorgetto Giugiaro의 경우에는 특유의 쐐기형 디자인이 대중적인 차에서 빛을 발했다. 애플의 디자인을 상징하는 조너선 아이브의 결과물이 아무나 범접할 수 없는 고급 제품은 아니다. 디자이너의 유명세가 럭셔리와 비례한다면 버질 아블로Virgil Abloh는 에르메스로 갔어야 했다. 물론 디자이너가 유명해지다 보면 하이엔드 오브젝트를 디자인하게 되는 경우가 많다. 그렇다고 디자이너가 유명하다고 해서 제품의 가격이 오르는 경우도 잘 없다. 참고로 주지아로가 디자인한 1세대 마티즈는 당시 우리나라에서 가장 저렴한 경차였다. 

 

뉴욕에서 둘러본 아파트 ©Haewook Jeong

 

그런데 건축가가 건축물의 고급스러움을 담보하는 것이 아님에도, 누군가는 특정 건축가의 참여로 건물이 비싸질 수 있다고 믿는다. 이 편견은 건축을 디자인보다는 예술에 가까운 무언가로 인식하기에 생겨나는 것은 아닐까. 순수미술의 경우는 작가가 유명해지면 작품의 가격이 기하급수적으로 상승한다. 한번 상승한 가격은 재료비가 얼마나 들었든 작품이 얼마나 크든 작든, 작품의 원가 따위는 상관하지 않는다. 예술 작품이기에 가능한 일이다. 예술품의 가치는 예술성으로 판단된다. 작품이 고급스러운 분위기를 풍긴다고해서 가격이 올라가지 않고, 어딘가 싼 티 난다는 이유로 가격이 내려가지도 않는다. 그러므로 프리츠커 수상 이력이 건축물의 가격을 올릴 수 있다고 믿는 것은 예술 작품의 가격을 흥정하는 논리와 비슷하다.

건축물에서, 특히 주거 건물에서 진짜 고급스러움을 구현하는 것은 그 자체로 모호한 일이다. 누구도 뭐라고 콕 짚어서 이것이 핵심이라고 말할 수 없기 때문이다. 단순히 크고 화려하면 고급일까. 하드웨어나 집기가 비싸면 고급이 되는 것일까. 디자인이 유려하면 고급이 되는 것일까. 멋진 풍경을 바라보거나 부자 동네에 자리하면 되는 것일까. 모두 필요조건일지는 모르나 충분조건은 아니다. 게다가 이 조건들은 너무 얄팍하다.

다음과 같은 조건이라면 좀 더 나을 것이다. 장인정신을 담아 꼼꼼하게 만들어진다거나, 형태와 물성에 깊은 맥락이 닿아 있거나, 만들어지는 과정과 사용하는 모든 과정이 우아함을 경험한다거나. 그럼에도 이 또한 충분조건은 아닐 수 있다. 모든 것이 사실 정의하기 나름이기 때문이다. 기준이 절대적이지 않다. 어째 사기꾼이 등장하기 딱 좋은 환경이다. 여기서 건축가를 호명하는 일은 그만큼 교묘함 위에 서 있다.

 

뉴욕에서 둘러본 아파트 ©Haewook Jeong

 

고급스러움에 대한 기준은 그 사회의 교양 수준을 반영한다. 따라서 사회가 발전하면 그 잣대도 발전한다. 그 발전은 결핍에 의한 환상의 경험을 통해 지워나가는 과정이기도 하다.

예를 들면, 높은 건물이 없을 땐 높은 건물을 지으면 고급이 될 수 있다고 생각했었다가, 막상 높은 건물을 지어보니 그제야 별거 없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옳은 건물 하나 제대로 짓지 못하는 나라에서는 집이 튼튼하게 지어지기만 해도 고급이라고 생각해서 건설사의 이름으로 자신의 집을 자랑스레 포장한다.

모두 극복하고 돌아보면 허무한 환상이다. 이러한 환상의 다음 단계에 건축이 있는 것 같다. 정확히는 유명 건축가의 이름이다. 세계화시대 스타 아키텍트 신드롬의 마지막 종착지는 아닐까. 이 또한 언젠가 허무할 텐데. 일단 나부터 다른 집이 더 마음에 들었으니 말이다. 

 

You might also like

건축에도 올드머니룩Old Money Look이 있을까?

[정해욱의 건축잡담] ⑩ 정통과 퓨전의 변증법에 관하여

스테이 창업 전, 반드시 두드려보아야 할 돌다리 ‘스테이 스쿨’

스테이 스쿨 강사진으로부터 미리 들어보는 생존 전략

일상의 웰니스 라이프 큐레이터에게 묻다

[Wellness Lifestyle] ⑧ Life Curators

패러다임 전환의 시대

[Portrait] 호텔을 만드는 사람 한이경

‘왜 홀리스틱 웰니스인가’, 그는 이렇게 말한다

[Interview] 상하 리트릿 CCO & 총괄 건축가 — 캘빈 싸오Calvin Tsao

짓기 전에 꼭 넘어야 할 스무고개가 있습니다

[다시 만난 브리크의 공간] ① 서교동 카페 ‘콤파일Compile’ 황지원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