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극히 개인적인 카페 이야기

[정해욱의 건축잡담] ⑦ 어느 건축가가 상상하는 이상적인 카페
©Haewook Jeong
글. 정해욱 미드데이 공동 대표 · 데이비드 치퍼필드 아키텍츠 콜라보레이터

 

한국에는 카페가 무지하게 많다. 그리고 나는 카페에 가는 것을 즐긴다. 카페의 공간과 커피를 즐기는 시간은 나에게 소중한 여가이다. 매달 이렇게 글을 써야 하니 남들보다 더 자주 가는 것도 있다. 그래서인지 카페가 주는 경험에 다소 예민한 편이다. 물론 모든 사람이 카페를 경험하는 시대이니 많은 사람이 좋은 카페에 대한 나름의 기준이 있을 것이다.

나의 기준은 비교적 엄격한 면을 갖고 있다. 아마 건축가로서 혹은 디자이너로서 작동하는 무의식일 것이다. 이는 꽤 종합적이어서 단순히 커피나 디저트 맛 뿐만 아니라 식기와 서비스 그리고 공간 경험까지 포괄한다. 내 마음속 기준을 통과한 카페는 방문할 때마다 기분이 좋아지고 마음이 편해지는 것은 물론이고 확실히 글도 잘 써진다. 그래서 일상의 동선 가까이 좋은 카페를 찾아두는 것은 나의 중요한 관심사 중 하나다.

 

©Haewook Jeong

 

서울에 돌아온 후, 나의 생활 반경 주변에는 운이 좋게도 힙한 카페가 모여 있었다. 인스타그램에서 핫한 카페들이 지척이었다. 날마다 사람들이 달려와 줄을 서는 곳도 많았다. 그런데 그 중엔 평소에 내가 가고 싶은 곳이 별로 없었다. 이상했다. 다 그런 건 아니겠지만, 대다수의 힙한 카페는 이상하게 사람을 불편하게 하는 묘한 점이 있었다. 그 기류는 모든 요소에 다소 힘을 과하게 준 것에서 기인한다.

가장 쉽게 꼬집을 수 있는 것은 그곳의 사람들이다. 카페를 영업하는 사람도 카페에 오는 사람도 모두 보이지 않는 경쟁을 하는 듯한 기류가 느껴질 때가 종종 있다. 이를테면, 그런 곳에서는 ‘내가 이곳에 있음’이 누군가에게 자랑하기 위한 수단으로 작동하는 것이 느껴진다. 그러니 이런 장소의 경험이 편안할 리가 없다. 인스타그램에서 핫할 지는 몰라도 내가 편안히 머무를 수 있는 공간은 아니다.

힙한 카페의 또 다른 문제는 얇은 인테리어다. 얇은 인테리어는 공간을 앙상하게 만들어 방문하는 사람을 얼어붙게 만든다. 이는 대체로 비용 절감에서 오는 문제다. 모양은 만들고 싶은데 진짜 재료를 쓸 수 없어, 금속이나 목공으로 뼈대를 짜 맞춘 뒤 표면만 마감 처리한다. 요즘은 기술이 좋아져 표면의 질감까지는 어떻게든 흉내를 낸다. 하지만 재료에 두께가 없으니, 모서리는 항상 앙상하고 날카롭다. 그리고 금방 닳는다.

이러한 반작용으로 물성에 조금이나마 진정성을 첨가하고자 노출 인테리어를 선택하는 경우도 있다. 하지만 그렇게 노출된 기존 재료는 진짜이긴 한데, 한국에서는 대체로 기존 건물 자체가 가난하여 결과물이 앙상한 것은 매한가지다. 모두 힙한데 빈곤하다. 앙상한 공간은 소리가 많이 울려 대화를 나누기조차 어렵다. 이 와중에 디자인에만 힘쓰고 기본기는 떨어지는 커피잔과 커틀러리가 등장할 때도 많다. 찰나의 멋짐을 뒤로 남는 것은 불편함 뿐이다.

 

©Haewook Jeong

 

하지만 이런 선택지를 포기하면, 팝아트 글씨를 보게 될 것만 같은 어딘가 토속적인 카페를 가야 한다. 이보단 힙한 카페가 차라리 나은 것 같다. 또 다른 대안인 교외의 멋진 카페는 멀어서 포기한다. 그래서 나에게 남는 만만한 선택지는 프랜차이즈 카페다. 여기는 힘을 너무 준 것도 아니지만, 힘이 너무 빠져 있지도 않아서 적어도 거슬리는 것이 가장 적은 편이다. 하지만 이 또한 마음에 쏙 드는 것은 아니다.

프랜차이즈는 매장 관리가 우선순위인 경우가 많아서, 이러한 편의를 위해 선택된 마감재나 집기류가 아쉬운 경우가 많다. 대표적인 예시가 아이스 음료를 담는 잔이다. 안전을 위해 유리 대신 투명 플라스틱 잔에 담기는데 그 잔은 많은 사람들의 손을 타서 대체로 불투명하게 마모돼 있다. 여기에 담긴 커피는 마치 배급품 같다. 인테리어는 수많은 보고를 통해 닳고 닳은 뒤 결재 받은 티가 나는 안전한 스타일의 인위적 짬뽕인 경우가 많다. 이 공간을 담은 파워포인트가 상상되는 순간 장소는 힘을 잃는다.

물론 이러한 불만 사항에 해당하지 않는 좋은 카페들도 있다. 인테리어도 얇지 않고 서비스도 좋고 편안하면서도 동시에 멋진 곳들이 있다. 하지만 여기에는 또 다른 문제가 있다. 모든 것이 다 좋으면 가격이 비싸진다. 이를테면, 규모 있는 호텔의 라운지는 퀄리티가 아주 좋지만 그만큼 비싸다. 게다가 접근성이 떨어져 잦은 빈도로 편안하게 드나들기 쉽지 않다. 일상에서 자연스러운 방문이 이루어지기 어렵다. 호텔이 아니라면 플래그십 스토어가 운영하는 카페들도 퀄리티가 매우 좋은 편이다. 하지만 여기도 무척 비싸다. 그래서 주변에 좋은 카페가 가격까지 괜찮은 경우라면 정말 흔하지 않다. 근처에 하나라도 있으면 그 카페는 정말 보물이다. 아직 동네에서 못 찾았다. 이렇게까지 까다로운 것을 보니 내가 찾는 것은 유니콘이 아닐까.

 

©Haewook Jeong

 

내가 꿈꾸던 카페는 품격이 있지만 동시에 일상의 연장이어서 자연스러움이 있는 곳이다. 커피잔에 커피가 나오고, 접시다운 접시에 음식이 담기고, 포크다운 포크로 음식을 먹을 수 있고, 바에는 직접 만든 디저트들이 반짝반짝 전시되어 있는 곳. 공간은 너무 과하지 않지만, 적당한 장식과 함께 정갈하게 정리되어 있고, 테이블과 의자는 뽐내지 않지만 멋스러우며 단단하면서 싸구려가 아니어야 한다.
특히 근처에 사는 사람들이 너무 후줄근하지 않은 차림으로 조금 우아하게 기분을 내러 와서 가볍게 음료나 음식을 나누며 적당히 활기차게 수다를 떠는 분위기가 있는 곳이면 좋겠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적당히 힘을 준 모든 것들이 아주 자연스러워야 한다. 공간도 사람도 음료도 음식도 집기도 다른 모든 것들이. 언제나 늘 그래 왔던 것처럼.

사실 밀라노에 살 적 동네 출근길에 정확히 그런 카페가 있었다. 너무 좋아서 아침마다 출근길에 들리고 주말에 글을 써야 할 때도 갔다. 이 카페는 1969년에 오픈했는데 사소한 것부터 분위기까지 자연스럽게 완벽했다. 특히 에스프레소 잔이 형태, 두께감, 무게감, 질감, 부딪히는 소리까지 완성형이었다. 에스프레소 잔 타이폴로지typology의 가장 완벽한 원형 같았다. 카페의 분위기는 커피의 완성도를 더욱 높였다.
바에는 가볍게 에스프레소를 걸치고 가는 사람들의 활기가 끊이지 않고, 안팎의 앉는 자리에서는 남녀노소가 자연스럽게 시간을 보낸다. 주말엔 삼대가 함께 모여 에프터눈 티 세트를 즐기는 모습을 쉽게 찾을 수 있다. 브런치를 만드는 주방에서는 스텝들의 자부심이 담긴 빠른 손놀림을 볼 수 있다. 음식이 나올 땐 작은 종이 울리고, 화이트 셔츠에 남녀불문하고 포마드 머리로 한 껏 차려 입은 웨이터가 음식을 나른다. 이 카페는 격식을 놓치지 않으려 애를 쓰는데, 그 화룡점정으로 레스토랑이 아님에도 두꺼운 천을 일회용 냅킨 대신 내어준다. 커피만 마셔도 그것으로 입을 닦을 수 있다.

 

©Haewook Jeo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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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그곳에서 매번 작은 감동을 받았다. 오성급 호텔의 라운지이거나, 번화가에 많은 돈을 내고 들어가야 하는 카페라면 내가 이렇게 감동하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그곳에서는 높은 수준의 퀄리티를 보장받으며, 동네 출근길에 매일 2000원 남짓으로 에스프레소를 마실 수 있었다. 즉, 비싸지 않은 가격에 근본을 경험할 수 있다. 이것이 감동이었다. 높은 퀄리티가 일상의 영역에 있고, 우아함이 자연스럽게 배어 있다. 축적된 문화의 산물이다. 사실 이는 카페 문화 자체가 긴 시간 동안 발달해있는 곳이라야 가능하다. 그래서 이탈리아, 혹은 유럽이라서 가능한 것들이다. 내가 예시로 든 곳만 해도 동네에서 50년 넘게 이어져 온 카페다. 즉, 감동의 바탕이 스탠더드가 총체적으로 향상된 한 사회의 문화인 것이다.

그렇게 따지고 보니 내가 찾는 좋은 카페는 한국에서 유니콘이 맞다. 우리의 짧은 현대사를 생각해 보면 이런 장소를 서울에서 찾기 어려운 것이 당연하다. 커피숍, 다방을 제외하면 지금의 카페 문화가 일상에 녹아내린 지 고작 얼마나 되었나. 내가 찾는 카페는 커피가 아무리 맛있어 본들, 건축가 혹은 디자이너가 공간을 아무리 멋들어지게 만들어 본들 그것만으로 절대 만들어낼 수 없는 것이다. 카페를 운영하는 사람의 문화적 수준은 물론이고, 심지어 손님까지 자연스럽게 멋져야 만들어질 수 있다. 즉, 좋은 공간, 장소를 완성하는 것은 그 사회의 발전된 문화다. 그렇기에 높은 퀄리티가 여러 방면에서 자연스럽게 배어나는 것은 정말로 귀하고 비싼 것이다. 한국에도 이런 카페가 동네마다 있는 날들이 올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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