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속 가능한 건축이란 무엇일까?

[정해욱의 건축잡담] ⑧ 기후위기 시대에 필요한 건축
ⓒYongjoon Choi
글. 정해욱 미드데이 공동 대표 · 데이비드 치퍼필드 아키텍츠 콜라보레이터

 

이 시대의 화두는 누가 뭐래도 환경적 차원에서의 지속가능성이다. 기후위기는 당장 모든 지구인이 체감하는 문제다. UN이 앞장서서 어떻게 실천해 나갈지 어젠다를 제시하는 주제이기도 하다. 그렇기에 건축도 이로부터 자유롭지 못하다. 지난해 프리츠커상을 수상한 건축가 데이비드 치퍼필드도 수상소감에서 지속가능성을 강조했다. 최근 많은 회사들은 지속가능성에 초점을 두고 이를 바탕으로 디자인을 발전시키고 있다. 구체적으로는 건물의 배치와 모양이 어떻게 에너지 효율을 높일 수 있는지, 어떤 재료와 공법이 탄소발자국을 줄일 수 있는지를 전문 컨설턴트와 함께 리서치한다. 정부도 여러 가지 정책적 지원을 통해 제로에너지 건축물과 저탄소 건물 등을 유도하고 있다.

그런데 그것이 최선일까. 근본적으로 의심 가득한 질문이 머릿속을 맴돈다. 따지고 보면 애초부터 짓지 않는 것이 최고의 친환경이지 않는가! 건물을 짓는 행위 자체가 환경 파괴이기 때문이다. 조선시대처럼 자연 재료로 인간의 힘만 써서 건물을 짓는 게 아니라면 말이다. 즉, 현대사회에서 건축과 지속가능성은 애초에 모순이다. 따라서 근본적으로 문제를 해결하려면 우리는 오늘부터 아무런 건물을 짓지 않아야 한다. 물론 이렇게 극단적으로 따지면 인간의 존재 자체부터 환경 파괴이니 인간부터 사라져야 하겠다. 하지만 모든 인간이 지구를 위해 사라질 수 없듯이, 모든 건축 행위가 하루아침에 조선시대로 돌아갈 수 없다. 결국 최적화 문제로 귀결되는 것은 이해가 가는 부분이다. 건물을 짓는 일을 피할 수 없다면 가능한 친환경적으로 지어보자는 것이다.

 

건축물 철거 현장 ©Haewook Jeong

 

건축에서 지속가능성은 건물을 덜 짓는 세상을 향해가는 일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 건물을 덜 지으려면 이미 지어진 건물을 애지중지 오래 써야 하고, 새로 짓는 건물을 오래가도록 지어야 한다. 오래 가는 것은 중요한 문제다. 아무리 친환경적으로 건물을 지어본들 재개발을 내세워 수십 년이 채 되지 않아 부수고 새로 짓는다면 결국 무용지물이 되기 때문이다. 지속 가능하려면 기본적으로 사람들이 오래 지속시키는 건축물이 돼야 한다. 건물의 에너지 효율 등은 그다음 이야기다. 건축물이 오래 지속되도록 할 수 있을지 고민하는 것이야말로 진짜 중요한 건축적 과제일지도 모른다.

튼튼한 건물을 짓자고 말하려는 것은 아니다. 우리는 충분히 오래 갈 수 있는 건물도 쉽게 부수는 세상에 살고 있다. 대부분의 재개발이 그렇다. 기능상 멀쩡한 건물도 수틀리면 파괴한다. 반대로 버리기에 아까운 건물은 무너져가더라도 기어이 살려내어 쓰기도 한다. 중요한 것은 사람들이 계속 곁에 두고 함께하고 싶은 건축물인지 여부다. 그저 무너지지 않아서 오래 서있는 건축물과 부수기가 아까워서 오랫동안 지속되는 건축물은 다르다. 따라서 지속 가능한 건축물의 시작은 버리기에 아까운 건축물을 만드는 일이다. 그 건물은 튼튼하면서도 탄소발자국이 적어야 하겠지만, 그에 앞서 일단 버리기에 아까울 만큼의 애착이 형성되어야 하는 것이다. 이는 질기고 튼튼해도 옷장에서 선택받지 못하다가 버려지는 옷들과, 긴 시간 보관하며 소중히 관리하며 입는 옷의 차이와 비슷할 수 있다.

 

을지로 골목의 낡은 건물을 재생한 쉼터 ‘을지다락’ ⓒYongjoon Choi (*이 사진은 브리크에 게재된 리모델링 프로젝트 사례로 칼럼과 직접적인 연관은 없습니다.)
을지다락 내부 ⓒYongjoon Choi (*이 사진은 브리크에 게재된 리모델링 프로젝트 사례로 칼럼과 직접적인 연관은 없습니다.)

 

여기서 가장 안타까운 전개는 사람들에게 오래 쓰는 태도만 강요하는 것이다. 바람직한 전개는 오래도록 곁에 두고 쓰고 싶은 만큼의 대상을 먼저 주는 것이다. 그러면 자연스럽게 그러한 마음이 일어난다. 아름다운 건물과 도시가 주어지면 사람들은 누구보다 자발적으로 나서서 그것을 보전할 것이다. 우리나라 아파트 재건축이 유난히 잦은 건 수익률의 문제도 있겠지만 건물이 기본적으로 못생긴 것이 문제일지도 모른다. 상상해 보자. 한강 변의 아파트들이 마치 파리 센 강변의 공동 주택들처럼 아름다웠다면 과연 시민들이 그 풍경이 파괴되는 일을 허락했을까. 결국 보기 싫으니 철거되는 것이다. 건물을 대충 지어서 벌어진 자원 낭비와 환경 파괴다. 그런데 최근 들어선 재건축 아파트 역시 우악스럽게 못생긴 것을 보면, 건설사들이 또 자신들의 30년 뒤 먹거리를 대비한 결과물인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든다.

정성스럽게 공들여 정교하고 아름답게 만든 사물은 심리적 수명이 길다. 함부로 대할 수 없는 아우라를 두르기 때문이다. 여기에 쉽게 말하자면 사연이, 어렵게 말하자면 서사가 더해지면 귀중한 보물이 된다. 저마다 특별한 결심으로 구매한 명품 가방이나 옷을 쉽게 버리지 못하는 것과 비슷하다. 여기에 내구성이 더해지면 대대로 물려주는 물건이 된다. 반대로 낮은 기준치로 쉽고 엉성하게 만들어진 사물은 심리적 수명이 짧다. 잠깐 예쁠지 몰라도 아름다움이 지속되지 않을 확률이 높다. 쏟아지는 SPA브랜드의 옷들이 대표적이다. 손쉽게 많이 사지만 그만큼 쉽게 많이 버린다. 저렴한 옷을 열 번 사는 것보다 같은 가격으로 잘 만들어진 비싼 한 벌의 옷을 사는 것이 소모되는 자원이 적어 환경에 좋다. 건축물도 마찬가지다. 연결 지어 생각해 보면 가장 친환경적인 건물은 공들여서 잘 만들어진 아름다운 건축물이라는 명제가 성립할 수 있다.

 

100년된 여관을 리모델링한 해남 ‘유선관’ ⓒDonggyu Kim (*이 사진은 브리크에 게재된 리모델링 프로젝트 사례로 칼럼과 직접적인 연관은 없습니다.)

 

건물이 오래 지속되려면 기능보다는 건축물 자체에 애착과 가치를 두는 문화가 필요하다. 건물이 그저 사회에 필요한 공간을 제공해 주는 기능적 도구로 여기면 쓸모와 수명을 동일시하게 될 수밖에 없다. 아직은 우리 사회가 그렇게 작동해 본 적은 없지만, 건축물이 도시를 함께 구성해 나가는 문화적 오브젝트로 여겨진다면 어떨까. 비슷한 사례로 신발 리셀resell 문화를 떠올려 볼 수 있다. 신발 리셀의 흥미로운 지점은 똑같은 기능임에도 오브젝트서의 가치에 따라 특정 신발이 귀한 대접을 받게 된다는 것이다. 덕분에 그 신발은 대접도 받고 오래 보전된다. 건축물도 그런 이유로 가치가 형성된다면 당장의 쓸모를 떠나 더 오래 사랑을 받으며 다뤄지지 않을까. 덕분에 부동산 자본 논리를 조금이라도 더 버텨낼 수 있을지도 모른다. 필요한 기능은 그때마다 주어진 건물에 맞추면 된다.

지속가능성을 위해 건축가가 해야 하는 일은 건축물을 버릴 수 없도록 이유를 자꾸 만들어주는 것이다. 이것은 건축가에게 큰 숙제로 남겨진다. 기능을 넘어 오브젝트 자체의 가치로서 설득력을 가질 수 있도록 건축물을 디자인하고 그 가치를 사람들에게 설득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런데 그것이 과연 가능할까. 그렇다면 그 가치는 무슨 내용이어야 할까. 어떠한 내재적 가치가 그 건축물이 용도가 바뀌고 강산이 뒤바뀌어도 남도록 도와줄까. 아마도 기능과 쓰임에 앞서 그 자체로 오랫동안 실존할 수 있도록 건축물에 서사와 질서, 그리고 아름다움을 부여하는 일일 것이다. 사실 이것은 원래부터 건축의 핵심이었다. 다만 보통 실무에서의 설계, 즉 요구되는 프로그램에 맞춤식으로 설계 서비스를 제공하는 일과 다를 뿐이다.

지속가능성에 대한 고민이 건축가의 업역에 대한 근본적인 변화를 불러일으킨다면, 어쩌면 건축가가 제대로 된 건축을 할 기회가 더 많아질지도 모른다. 과연 그런 일이 지금의 대한민국에서 일어날 수 있을까. 우리는 정말 지속 가능한 건축을 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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