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석정화 자료. 롯칸빌더즈 Rokkan Builders
건축은 초기의 설계 계획만으로 완성되지 않는다. 설계는 도면을 그리고 시공을 통해 그것을 구현하는 방식이다. 하지만 실제 설계 과정은 그렇게 단순하지 않다. 대지의 조건과 재료의 상태, 현장에서의 판단이 겹치며 형태는 끊임없이 수정된다. 건축가는 주어진 조건을 조율하며 하나의 경로를 만들어간다. 즉, 설계는 고정된 계획이라기보다 상황 속에서 형성되는 과정에 가깝다.
이때 설계는 두 가지 방식으로 나뉜다. 미리 정해진 형태를 구현하는 ‘계획 중심의 설계(planning)’와 조건 속에서 경로를 따라 형성되는 ‘경로 의존적 설계(path dependency)’다. 우리는 전자를 익숙하게 받아들이지만 실제 건축은 후자에 더 가깝다.
이 글에서 다루는 ‘목로암’은 그 사실을 그대로 드러내는 건축이다. 방치된 인공림을 정비하는 과정에서 재료와 현장이 스스로 형태를 이룬 구조물이다. 설계가 먼저 있었던 것이 아니라 과정 속에서 건축이 등장했다.


보호와 방치, 그 사이
숲을 보호하는 일과 방치하는 일은 때로 한 끗 차이다. 손을 대지 않는 것이 자연을 지키는 일처럼 여겨지기도 하지만, 관리되지 않은 숲은 오히려 생태계를 약하게 만들기도 한다. 특히 단일 수종으로 이루어진 인공림은 적절한 간벌間伐*이 이루어지지 않으면 빛이 차단되고 하층 식생이 사라지며 토양 역시 점차 힘을 잃는다.
일본 지바현 카마누마의 숲도 비슷한 상황이었다. 약 50년간 방치된 인공림은 2019년 태풍 피해로 쓰러진 나무들이 뒤엉켜 접근조차 불가능했다. 유실된 토사는 인근 마을을 위협하기에 이르렀다. 한때 마을 사람들에게 자원을 내어주던 삶의 터전이었으나, 점차 생활권에서 분리되어 소외된 결과다.
문제는 여기서 비롯된다. 숲은 단순히 보호구역으로 묶어둔다고 유지되지 않는다. 사람의 손길이 끊기고 관리 대상에서 멀어지자 나무 밀도가 비정상적으로 높아졌다. 이내 이 숲은 아무도 사용하지 않는 상태에 놓이게 되었다.
프로젝트는 이 흐름을 되돌리는 시도에서 출발한다. 숲을 다시 사용할 수 있는 상태로 만들고 사람이 개입할 수 있는 환경으로 복원하는 것. 이러한 상황 속에서 숲을 다시 다루려는 움직임이 나타난다. 카마누마 지역에서 활동해 온 NPO ‘작은 지구공동체’는 마을 주민들과 함께 숲을 관리하고 활용하는 재생 활동을 이어오고 있었다. 이 지점에 도쿄공업대 건축공학계 연구실이 참여하면서 프로젝트는 구체적인 형태를 갖추기 시작한다. 이것이 바로 ‘목로암 프로젝트’의 시작이다.
*간벌間伐: 숲을 건강하게 유지하기 위해 빽빽하게 자란 나무 중 일부를 골라 베어내고, 남은 나무들이 더 잘 자랄 수 있도록 빛과 공간을 확보하는 작업.



숲에서 얻고, 숲에서 쓰는 방식
작업은 숲 정비부터 시작했다. 쓰러진 나무를 정리하고 길과 계단을 만들며 사람이 다시 드나들 수 있는 기반을 형성했다. 쓰러진 나무들은 산 아래로 옮기기에는 크기와 무게가 부담스러웠다. 중장비가 들어올 수 없는 지형에는 이를 외부로 반출하는 것 자체가 쉽지 않았다.
결국 선택한 방식은 현장에서 처리하고 현장에서 사용하는 것이었다. 이 판단은 효율적이면서도 숲을 유지하고 순환시키기 위한 방식이었다. 그래야 정비 활동이 역시 지속될 수 있기 때문이다.

이 작업은 한 번의 정비로 끝나는 일이 아니었다. 숲의 변화를 관찰하고 다시 손을 대는 과정을 반복하는 장기적인 활동이었다.
정비가 이어지면서 숲을 찾는 사람들이 점차 늘어나기 시작했다. 이 과정에서 산림 환경정비 활동을 지속하기 위한 거점의 필요가 생겨난다. 확보된 삼나무 원목과 현장에서 요구되는 공간이 맞물리며 숲속에 작은 건물을 짓는 구상이 자연스럽게 이어졌다.
그렇게 만들어진 건축이 ‘목로암(丸太炉庵)’이다. 약 9㎡ 규모의 이 작은 구조물은 쉼터이자 작업 거점으로 기능한다. 그러나 이 건축의 중요성은 규모나 프로그램보다 만들어지는 방식에 있다.


과정이 설계를 대신할 때
목로암의 시공은 현장의 조건에서 출발한다. 중장비가 들어올 수 없는 산속이라는 환경은 재료의 운반과 가공 방식을 제한했다. 목재는 사람이 직접 다룰 수 있는 길이인 3m로 재단하였다. 이 기준은 곧 건축의 형태를 결정짓는 조건이 된다.
평면은 직사각형이 아닌 육각형으로 형성한다. 통나무를 서로 걸어 쌓는 방식에서는 접합을 위해 일정한 겹침 길이가 필요하고 이를 고려하면 단순한 직교 구조로는 내부 공간이 지나치게 협소해지기 때문이다. 이러한 현장의 작업 조건을 바탕으로 평면은 정육각형으로 확장되었고 같은 길이의 목재로 보다 효율적인 공간을 확보할 수 있었다.
구조는 통나무를 수평으로 쌓아 올리는 로그하우스Log House** 방식을 따른다. 현장에서 간벌한 원목을 가공해 쌓아 올리고 중앙 기둥 없이 지붕을 지지하기 위해 목재를 방사형으로 조합하는 방식을 적용했다. 그렇게 목재의 굴곡과 상태에 따라 시공 과정에서 건축은 점진적으로 형태를 갖춰나갔다.
** 로그하우스Log House: 가공된 목재가 아닌 통나무를 쌓아 벽체와 구조를 형성하는 목조 건축 방식. 재료 자체가 구조와 마감을 담당하는 특징을 지닌다.



시공 과정 역시 닫힌 상태가 아니었다. 별도의 가설 구조물이나 울타리 없이 작업이 이루어졌다. 공사 중에도 주변 주민들이 자유롭게 현장을 드나들 수 있었다. 그 결과 이곳은 공사 현장이면서 동시에 하나의 장소가 되었다. 마을 아이들은 이 공간을 놀이터처럼 사용하기 시작했다. 이러한 경험은 이후 숲 유치원과 같은 프로그램으로 이어졌다.


건축 이후, 그리고 질문
완공 이후 목로암은 숲을 찾는 사람들을 위한 작은 거점으로 사용하고 있다. 방문객이 머무르고 다양한 프로그램이 이루어지는 공간이며 운영은 작은 지구공동체를 중심으로 이어진다.
이 프로젝트는 하나의 질문을 남긴다. 우리는 숲을 어떻게 다루고 있는가. 한국 역시 산지가 많은 나라지만, 숲은 보호의 대상이거나 개발의 대상으로만 인식되는 경우가 많다. 그 사이에서 숲을 이용하고 관리하는 방식에 대한 논의는 상대적으로 부족하다.
목로암은 그 사이에서 하나의 가능성을 보여준다. 숲을 정비하는 과정에서 재료를 얻고, 그 재료로 공간을 만들며 그 공간이 다시 사람을 숲으로 불러들이는 구조. 이 건축은 완성된 건축이라기보다 과정을 통해 관계를 만들어내는 방식에 가깝다.



설계 및 시공.
롯칸빌더즈
위치.
일본 지바현 카모가와시 카마누마
건축면적.
9.37㎡
숲 정비 기간.
2024년 10월 ~ 2025년 8월
공사 기간.
2025월 3월 ~ 2025년 8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