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축가의 서재에 머무르다

[Spot] ① 서재와 사무실이 어우러진 카페 ‘마하 한남’
©Kwak Shin
에디터. 최성우 객원  사진. 곽신  자료. 마하 한남

 

운영자의 입장에서 조망하는 공간 이야기를 담는 새 연재  ‘스팟SPOT’을 시작합니다. 브랜딩과 공간감 모두 놓치지 않고 방문객을 새로운 경험으로 이끄는 장소가 그 대상입니다. 운영자를 인터뷰해 공간을 기획하고 구현하기까지의 과정을 살피고 그 속에서 나눌 수 있는 지혜를 전합니다.

 

나만의 서재를 갖는 로망, 누구나 한 번쯤 꿈꾼 적 있을 것이다. 마을버스를 타고 오르막길을 부지런히 걸어 잔잔히 일렁이는 한강 위로 햇살이 내리쬐는 4층 창밖의 풍경을 마주하자, 그 꿈은 현실이 되어 있었다. 건축가 김동현은 자신의 서재를 짓는 것에서 한걸음 더 나아가 카페로 운영하며, 이곳을 찾는 이들과 공간의 경험을 나눈다. 서울 용산 동빙고동 언덕 위에 세워진 등대, 건축가의 서재 ‘마하 한남’을 찾았다.

 

마하 한남 테라스에서 보이는 풍경 ©Kwak Shin

 

카페와 사무실이 공존하는 곳

마하 한남은 건축사사무소와 카페가 공존하는 공간이다. 마하 건축사사무소 김동현 소장은 머무르는 사람들에게 온전한 쉼을 주는 장소를 상상하며 이곳을 디자인했다. 카페를 찾은 손님은 서적, 건축재료, 아트피스가 자리한 ‘건축가의 서재’에서 건축가가 직접 고른 가구에 앉아, 커피와 위스키를 마시는 경험을 할 수 있다.

그는 도시 속 무심코 지나치는 공간에서 아직 발현되지 않은 가능성을 찾는 것에 진심이었다. 우연히 지나친 한적한 마을 어귀, 기와 지붕이 씌워진 옛 목욕탕 건물에서 가능성을 발견하고 한강이 펼쳐지는 테라스와 큰 창을 세워 만든 곳이 바로 이곳, 마하 한남이다.

 

마하 한남 내부에서 변전소의 전신주와 한강이 보인다. ©Kwak Shin

 

그가 설계부터 운영까지 참여한 공간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신용산역 인근에 위치한 카페, 3F/Lobby(3층 로비)가 그 첫 번째 장소. 당시 그는 비교적 저렴한 가격에 임대할 수 있는 20~30평의 공간을 찾고 있었고, 마침 다른 건축사사무소와 뜻이 맞아 함께 사무실을 사용하기로 했다. 사무실은 각자의 책상을 놓는 것으로 충분했기에, 남는 공간을 어떻게 활용할지 고민하다 탕비실을 조금 넓게 만들어보자고 아이디어를 모았다. ‘건축가의 탕비실’, 3F/Lobby가 탄생한 순간이다. 오픈 초기에는 세 명의 건축가가 직접 바에서 커피를 내리며 손님을 맞이하기도 했다.

 

“카페 수익을 월 임대료에 보태기도 하고, 손님들의 대화 소리가 백색소음으로 느껴져 집중도 잘 되었어요. 건축가로서 제가 설계한 공간에 머물면서 사용자의 반응을 실시간으로 확인할 수 있다는 것도 장점이었죠. 무엇보다 재미있었습니다. 때로 커피를 내리고 손님을 응대하며 재충전을 하기도 하고요.” 

 

마하 한남이 있는 귀빈탕 건물 전경 ©Kwak Shin

 

3F/Lobby가 여러 건축가의 뜻이 모여 탄생한 곳이라면, 마하 한남은 온전히 ‘김동현’ 개인의 정체성으로 쌓아 올린 장소다. 그는 카페를 찾은 방문객이 마치 ‘건축가의 집’에 초대 받은 듯한 기분을 경험하고 건축을 보다 가깝게 느끼기를 바랐다. 그래서 건축 서적은 물론 모형과 건축재료를 함께 전시해 두었다. 때로는 ‘보이는 라디오’의 스튜디오처럼 건축가가 사무실에서 작업하는 모습을 볼 수도 있다. 카페 운영은 매니저가 전담한다. 건축가라는 본업에 집중하고, 카페를 안정적으로 운영하기 위함이다. 그러나 때때로 바에 직접 서기도 하니, 운이 좋으면 직접 손님을 응대하는 그의 모습을 만날 수 있을 것이다.

 

목욕탕의 기억을 잇는 동네 커뮤니티 공간

그는 어떻게 이토록 매력적인 장소를 찾아냈을까? 김동현 소장은 인근에서 사무실을 운영하고 있었고, 용산 일대를 다니며 적당한 다른 공간을 물색하던 중이었다. 그러다 우연히 발견한 곳이 바로 ‘귀빈탕’이라는 목욕탕 건물이었다. 아무도 사용하지 않고 꽤 오랜 시간 방치되어 있던 터라 동네 주민들 사이에서 밤에 다니기 무섭다는 이야기가 많았다. 그는 4층에 올라 눈앞에 펼쳐진 풍경을 보고 원하던 곳을 찾았음을 직감했다. 

 

마하 한남을 기획, 설계, 운영하고 있는 김동현 소장 ⓒKwak Shin

 

귀빈탕으로 운영하던 시절, 건물은 1층에 슈퍼마켓이 있었고, 2~3층은 목욕탕, 4층은 주인집으로 쓰였다. 마하 한남은 그중 주인집을 고쳐 만든 것이다. 2018년 기준, 서울에 남아 있던 목욕탕은 967개, 그중에서 30년 이상 된 곳이 132개다. (목욕탕 통계 출처 : ‘서울의 목욕탕’, 6699 프레스, 2018) 지금은 코로나19의 여파가 더해져 더 많은 목욕탕이 사라졌을 것이라 추측된다.

목욕탕은 동네의 사랑방 역할을 했다. 지금으로 따지면, 커뮤니티 공간이다. 주말이면 온 동네 사람들이 목욕탕에 모였다. 빨래를 하며 아이들이 얼마나 자랐는지, 밥은 잘 먹는지 시시콜콜 이야기꽃을 피웠다. 그러고 보니 빨래가 목욕탕 내에서 허용된 시절이 있었다. 

그 위상을 보여주듯 목욕탕은 항상 동네의 중심부에 자리 잡고 있다. 유럽에서 교회를 중심으로 마을이 만들어진 것과 유사하달까. 귀빈탕이 마을의 사랑방으로 자리한 것처럼, 마하 한남 또한 커뮤니티 공간으로서 역할을 이어 가고자 했다. 다만 목욕탕의 구조나 탕의 모습을 직접적으로 표현하기보다는 동네 주민이 방문하기 편한 분위기를 만드는 것에 집중했다. 본업과 병행하며 기획부터 설계, 시공까지 모두 챙기다 보니 카페를 오픈할 즈음에는 꼬박 6개월이 지나 있었다.

 

목욕탕으로 운영하던 시절의 흔적이 남아 있다. ©Kwak Shin
옛 귀빈탕 모습 <사진 제공=마하 건축사사무소>

 

서재와 사무실이 어우러진 카페

마하 한남은 우리에게 익숙한 주택의 평면 구조다. 40평 규모로 주인집이었을 때는 2개의 작은방과 안방, 거실, 주방이 있었다. 그는 안방에는 소파와 침대를, 거실에는 편히 기대어 앉는 해먹체어와 라운지체어를 배치하는 식으로 집이던 시절의 기억을 남겼다. 더 많은 가구를 놓아 자리를 확보할 수도 있었지만, 카페에서 좀더 쾌적하게 시간을 보낼 수 있도록 공간에 여유를 두는 방식을 택했다. 사무실이라 이름 붙여진 작은 방은 실제 김동현 소장이 일하는 장소다. 

 

주택의 무드를 살려 샤워기를 설치한 화장실 ©Kwak Shin
사람들을 환대하기 위해 바를 길게 만들었다. ©Kwak Shin
©Kwak Shin

 

김동현 소장은 직접 재료를 옮기며 시공에 참여했다. 미국 별장 분위기를 만들기 위해 선택했던 석재가 특히 기억에 남는다고. 사다리차를 이용하지 못하는 상황이라 4층 계단을 오르내리며 옮기기도 했다.

 

모두 고객들이 이용할 수 있는 카페 공간, 거실 ©Kwak Shin
안방 ©Kwak Shin

 

“서재에는 흔히 책만 있다고 생각하지만, ‘건축가의 서재’는 훨씬 다채롭습니다. 마하 한남 서재에는 건축 재료, 작업했던 건축물의 도면이나 모형이 책장과 벽면에 전시되어 있어요. 과하지 않은 모습으로 장소에 자연스럽게 녹아들면서 건축가가 작업하는 과정에 대한 이야기를 전달하고 싶었습니다. 이곳에 오신 분들이 책을 읽거나 각자의 시간을 보내는 모습을 보면, 의도했던 분위기가 잘 전해진 것 같다는 기분이 듭니다.”

 

‘건축가의 서재’에서는 다양한 건축재료와 건축모형을 만날 수 있다.©Kwak Shin

 

김동현 소장은 설계할 때 장면과 장면을 연속시켜 공간을 만드는 방식으로 작업한다. 하나의 장면은 가구를 어디에 어떤 방향으로 놓을지, 배치했을 때의 눈높이는 어느 정도이고, 시선은 어디로 향할지 하나하나 철저히 계산한 결과다. 

 

“의도한 시선이 담긴 사진을 보게 되면 만족스럽고, 자신도 생각지 못한 구도를 발견해 사진을 보면서 오히려 많이 배워요. 건축물이 완공하는 것에서 끝나는 것이 아님을 다시금 느낍니다.”



건축가가 만든 공간, 건축가가 운영하는 공간

하나의 장소를 만드는 일에서 건축가의 업역은 대개 설계와 시공을 감리하는 영역까지다. 반면, 마하 한남은 건축가가 기획부터 운영까지 모두 맡아 일관된 장소성을 지어냈다. 운영 방식부터 소품, 잔과 컵받침, 테이블 위의 화병과 꽃 한 송이까지 그의 손길이 닿아 있다. 

커피를 주문하고 받아 마시는 과정에도 세심함이 담겼다. 마하 한남에서는 모카포트로 추출한 에스프레소를 얼음물이 든 잔과 따로 제공한다. 손님은 직접 물과 에스프레소를 섞으며 색이 변하는 과정을 지켜보고 커피를 좀더 풍성하게 경험한다. 

 

김동현 소장 ©Kwak Shin
모카포트로 추출한 에스프레소를 직접 컵에 붓는 경험을 담았다. ©Kwak Shin

 

운영 초반 겪은 어려움 중 하나는 주차였다. 건물 뒷편 주차장은 주변 거주자와 상인들이 월 단위로 비용을 지불하고 이용하는데, 마하 한남에 손님이 몰려 들며 한동안 민원이 급증했던 것. 진지하게 안내문을 붙인 이후에는 더이상 민원이 발생하지 않았다. 

 

©Kwak Shin

 

“오픈한 지 1개월도 채 되지 않았던 때였어요. 미관상으로는 조금 아쉽지만, 급한 대로 명조체로 안내문을 남기고 지속적으로 공지했습니다. 지금은 많이 나아진 편입니다.” 

 

다양한 소품 역시 이곳의 분위기를 좌우하는 요소다. ©Kwak Shin
©Kwak Shin

 

건축가의 서재에서 머문 기억

김동현 소장이 다음으로 꿈꾸는 공간은 무엇일까? 그는 마하 한남의 운영이 안정화되고, 건축 경험이 쌓인 후에 스테이에 도전해 볼 계획이라고 한다. 한두 시간 머무르는 카페와 하루를 온전히 보내는 스테이에서의 경험이 굉장히 다를 것이라며 기대감을 담아 말하는 그에게서 어쩐지 ‘Maha’라는 이름에 담긴 에너지와 비슷한 느낌이 풍긴다.

마하 한남은 어두웠던 골목에 다시금 빛을 밝혔다. 동네 사람들이 오가는 길을 비추며 일상에 지친 이들에게는 쉼을, 아이디어가 필요한 사람들에게는 영감을 주며, 지역 주민에게는 익숙한 동네를 새롭게 느껴지도록 한다. 건축가의 감각과 경험이 빚어낸 공간에서 낮밤으로 달라지는 정취를 느껴 보는 것은 어떨까.

 

마하 한남 테라스. 선베드에 누워 책을 읽거나 풍경을 바라만 봐도 좋다. ©Kwak Shin

 


마하 한남 Maha Hannam 
서울 용산구 서빙고로91나길 85 4층
월~목, 일 12:00-22:00 금~토 12:00-24:00
instagram: @maha.hanna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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