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께 떠나는 일터

발길 닿는 대로 떠난 여행지에서, 지역의 골목에서 일하고 누리는 법
오-피스제주 사계점 전경 ©︎Haneol KIM
에디터. 정지연  자료. 로컬스티치, 오-피스제주, 유휴

 

일과 쉼, 머묾과 여행이라는 단어를 한 그릇에 담을 수 있을까? 가보고 싶은 도시, 살고 싶은 지역을 돌아다니며 일하고, 살고, 누릴 수는 없을까?
상충할 것 같은 이런 욕망은 인간이 물과 먹거리를 찾아 이동하며 살던 유목(遊牧) 생활을 마무리하고, 일정한 곳에 터를 잡고 모여 사는 정주(定住)를 시작하면서부터 이미 DNA에 내재한 것일지도 모르겠다. 머물러 있지만 떠나고 싶고, 떠돌면서도 어느새 정착지를 찾는 그런 마음 말이다.

 

많은 이들이 산과 바다를 찾아 떠나는 여름이다. 누군가는 해외로, 누군가는 지방의 명소로 짧은 기간이지만 잊지 못할 추억을 만들 것을 기대하며 여행을 떠난다. 단지 일을 하기 위해 산과 바다, 휴양지로 떠나는 이들도 있다. 혼자 일하는 프리랜서일 수도 있고, 회사에서 요청한 원격근무일 수도 있고, 일과 쉼을 동시에 누리는 워케이션(work+vacation)을 위한 것일 수도 있다. 휴가지에서 일하는 것이 좋을 수도, 좋지 않을 수도 있다.

 

제주시 탑동 일대 ©︎BRIQUE Magazine
코워킹 라운지가 마련된 ABC에이팩토리 베이커리 카페 ©︎BRIQUE Magazine

 

지난주 제주시 탑동 일대에서는 전국에서 모인 50여 명의 창작자가 함께 일하고 제주 일대를 돌아보는 ‘노마드 위크’ 행사가 열렸다. 창작자 커뮤니티 공간을 운영하는 ‘로컬스티치’가 주관한 이 행사는 1주일간 다른 도시에서 일하고 살아보는 ‘팝업 마을 프로젝트’로, 참가자들이 본인의 업무를 이어가면서도 지역의 문화를 누릴 수 있는 공간과 프로그램을 제공한다. 

행사 기간 제주 탑동 일대에는 임시 작업 공간을 비롯해 카페와 식당, 서점 등이 운영됐다. 코워킹 라운지는 ABC에이팩토리 베이커리 카페와 제주시소통협력센터, 끄티탑동에 나누어 마련됐고, 탑동 인근의 디앤디파트먼트 제주, 대동호텔, 스타즈호텔 제주 로베로 등이 숙소로 제공됐다. 코워킹 라운지에는 무선네트워크 환경과 작업대가 갖춰져 있고 참가자들이 직접 만든 작업물들로 꾸며진 전시 홍보 공간도 한켠에 마련됐다. 바리스타가 직접 내려주는 스페셜티 커피뿐 아니라 셰프가 직접 제철 산물로 요리한 음식을 제공하는 팝업 키친도 열렸다.

이 밖에도 지역주민들이 자연스레 이용할 수 있는 팝업 스토어와 카페를 비롯, 지역 건축 상담을 해주는 삼일사무소와 제주의 자연을 한껏 느낄 수 있는 부영농장 산책 프로그램 등 다양한 프로그램이 마련됐다. 

 

ABC베이커리 3층에 마련된 참가자 작품 전시 공간 ©︎Gaeun Kim
참가자들의 밍글링 파티 ‘스티치 나잇’ ©︎Gaeun Kim
지역 주민들을 대상으로 진행한 건축상담 프로그램 ‘삼일사무소’ ©︎Gaeun Kim

 

행사의 주최자인 로컬스티치 김수민 대표는 “단순히 여행지에서 일하거나 숙박하는 공간을 제공하려는 것이 아니라, 여러 도시와 지역의 문화를 체득하면서 일할 수 있는 환경과 업무 형태를 지원하기 위한 것”이라며 “추후 일본이나 동남아 등 해외에서도 지역 업체들과 유사한 기회를 발굴해 멤버들에게 제공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업무인지, 휴가인지를 먼저 규정지을 필요 없이 일하는 새로운 방법론을 찾아가는 과정이라고 설명한다.

휴양지에서 일한다는 개념을 정립하고, 관련 서비스와 시스템을 가장 먼저 체계화한 곳은  ‘오-피스’라는 기업이다. 평화로운(peace) 휴양지에서의 업무공간(office)이라는 중의적 의미를 담은 이름이다.

 

최근 오픈한 오-피스제주 사계점 ©︎Haneol KIM
오-피스제주의 WORK & STAY 개념도 ©︎O-PEACE

 

2019년 제주시 조천읍을 중심으로 코워킹 스페이스와 독채 민박 서비스를 제공해 온 오-피스는 최근 서귀포시 사계리에 20여 객실을 갖춘 코워킹 스페이스 2호점을 개관했다.
1호점은 제주에 머물며 특정 프로젝트를 진행하는 원격근무자나 프리랜서, 작가 등이 주로 이용했다면, 2호점의 경우 장기간 원격근무를 희망하는 기업 고객을 유치할 수 있도록 회의실과 체력단련실, 강당 등의 인프라까지 갖췄다.
박성은 오-피스 대표는 “휴양지뿐 아니라 언제 어디서나 일할 수 있는 환경을 제공하는 것이 목표”라며 “조천점과 사계점의 운영 경험을 바탕으로 더 나아가 해외에도 불편함 없이 일할 수 있는 공간을 만드는 것이 목표”라고 말했다.

 

오-피스제주 사계점의 코워킹 스페이스 ©︎Haneol KIM
오-피스제주 사계점의 숙박 공간 ©︎Haneol KIM

 

하지만 이처럼 휴양지에서 일하는 것이 현지의 일자리로 연결되지 않는다면 잠깐의 유행에 머물 수도 있다. 일이라는 것이 결국 경제활동을 위한 것인데, 지역에서 도시의 일을 대신하는 데에는 한계가 있을 수 밖에 없다. 전주 원도심을 기반으로 지역활성화 사업을 펼치고 있는 정수경 즐거운도시연구소 대표는 일본 위성오피스 마을 가미야마정의 사례를 들며 “지역에 사람이 모이고 머무를 수 있으려면 결국 공간이 아니라 일자리”라면서 “지역에서 경제활동을 이어나갈 수 있는 기업 유치와 로컬 창업이 필수”라고 말한다. 

제주뿐 아니라 여수와 남해, 속초 등지의 노후주택을 고쳐 한달살이, 반년살이 등으로 임대하는 ‘유휴yoohuu’ 하우스는 이같은 관점에서 또다른 접근 방향을 찾을 수 있다.
유휴하우스는 휴양지 인근의 오래된 노후주택이나 방 한두 칸을 빌려 개조해 장단기로 임대를 하는데, 지역의 주택가 안에서 대상지를 골라 동네 주민과 이웃처럼 지낼 수 있도록 정주에 초점을 맞춰 개발한다. 덕분에 자연스레 현지 생활을 누리게 되고 간단한 업무는 집 안에서 해결할 수 있다.
유휴하우스를 운영 중인 문승규 블랭크 대표는 “지역에서 직접 살아보면서 현지 문화도 체험하고 이웃들과도 교류하는 등 시간이 필요하다”면서 “단순히 거주지를 제공하는 것이 아니라 지역 속으로 파고들어 사는 경험을 주는데 신경을 쓴다”고 말했다.

떠남과 머묾이 낯설지 않고, 도시와 지역의 일터와 삶터가 이어지는 것이야말로, 진정한 노마드 라이프스타일이 구현되는 지점이 아닐까 싶다.

 

유휴하우스 제주조천2호점 ©︎yoohuu
유휴하우스 여수남산점 ©︎yoohuu
유휴하우스 속초청학점 ©︎yoohu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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