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경 변화 앞에선 건축의 실천

‘건축가의 관점들: 건축과 환경적 실험’ 전시 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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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디터. 김태진  사진. 김태진  자료. OA-Lab, 소프트아키텍쳐랩, 유블로

 

건축과 환경의 관계

건축은 도시를 이루는 거대한 스케일부터 신체의 작은 스케일까지, 인간에게 큰 영향을 끼치는 환경을 디자인하는 일이다. 달리 말해, 건축은 주어진 환경 위에 존재하고 자리한 곳에서 주변 환경에 영향을 끼친다. 즉, 건축과 환경은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라 할 수 있다.

인류 앞에 놓인 여러 과제 중, 우선 순위가 ‘기후 위기 해결’로 좁혀지는 가운데, 건축은 어떤 방식으로 과제 해결에 참여할 수 있을까. 그동안 건축은 본질적으로 인류의 생존을 위협하는 문제를 직면하며 물리적인 디자인으로 해법을 내놓지 않았는가.

행위 자체만으로도 막대한 에너지 소비를 수반하는 건축은 당면한 과제 해결을 위해 기존의 방식에서 탈피한 새로운 변화의 흐름을 일으킬 필요가 있다. 이 분야는 하나의 프로젝트를 완성시킬 때에도 전 세계적인 물자 이동을 필요로 하고, 이에 따른 에너지 소모가 다른 분야에 비해 월등히 높기 때문에 남다른 책임감을 갖고 있는 점도 사실이다.

건축은 전 지구적인 방식으로 자원을 끌어 쓰고 건축물을 만들고 유지하는 과정에서 전 세계 탄소 배출량의 38%*를 사용한다. 그래서 환경의 변화 앞에서 건축에 조금 더 적극적인 변화가 요구되고 있는 지도 모른다.

*2020년 유엔환경계획(UNEP)는 ‘글로벌 현황 보고서(Global Status Report)’를 통해, 건설·건축 분야의 연간 탄소배출량은 9.95GtCO2e로 전체 배출량의 약 38%를 차지한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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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경을 위한 다양한 모색

이 같은 변화 가운데 건축과 환경에 대한 동시대 건축가 3인의 실천을 조명하는 전시가 서울도시건축전시관에서 열려 관심을 모으고 있다. 전시는 서울도시건축전시관 갤러리 2에서 진행 중인데, 이곳은 서울도시건축전시관의 여섯 개 실내 공간 중, 가장 큰 공간인 비움홀에 비해서는 상대적으로 작은 공간이다. 사람들은 큰 공간에 머무르다 집중력을 잃고 전시관을 떠나기 마련이지만, 공간의 크기가 작다고 해서 전시 공간에 담긴 이야기의 무게가 떨어지는 것은 아닐 것이라는 기대를 품고 전시를 살펴봤다.

이번 전시는 세 가지 소주제 ‘예술’, ‘가구’, ‘환경’을 통해 건축의 새로운 방향을 모색하려 한다. 자재, 시공, 도시와 관련된 빅데이터 등 건축과 연관된 다른 영역과의 융합 지점도 살펴본다. 전시에 참가한 김나리, 한은주, 남정민은 각자의 자리에서 담론이 아닌 실질적인 도전과 실천을 담은 작업을 선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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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저 남정민(고려대학교 교수, OA-Lab 건축연구소 소장)은 건축물의 얼굴인 파사드의 가능성에 대해 주목한다. 그는 ‘Living Project, 일상의 건축화’를 통해 일상의 풍경에 자연을 끌어들이고자 한다. 건설 과정에서 벽체와 화분의 기능을 동시에 가진 블록을 건축물의 파사드에 둘러 자연을 입힌다. 이로써 도시의 얼굴인 파사드는 그의 의도대로 자연을 입는다.

그는 서울과 같은 고밀도 도시일수록 건축 표면이 가진 공공의 가치가 커질 것으로 내다봤다. 이를 근거로 도시인이 자연과 만나기 위해 일상과 거리가 먼 산이나 바다로 향하는 것이 대신, 도시를 걷는 것만으로도 자연과 충분히 만날 수 있기를 바랐다. 만약 그의 말처럼 파사드를 통해 도시인이 일상에서 자주 자연을 접할 수 있다면, 자연스레 환경의 입장을 생각하는 사람들도 늘어날 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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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과 물리적 환경, 사람과 공간과 시간, 사람과 환경의 인터렉션을 어떻게 건축에 담을 것인가’. 한은주 (소프트아키텍쳐랩 대표)의 이러한 고민은 그의 프로젝트의 출발점이다. 그는 데이터 지형학을 연구해 사람과 도시의 상호 작용을 시각화한다. 소위 말해 ‘감(feeling)’으로 이용자의 행태를 예측하는 것이 아닌, 실질적인 데이터를 활용해 보다 정교한 디자인을 계획하는 것이다.

이는 그가 명명한 프로젝트 ‘앰비언스 월Ambience Wall’을 살펴보면 이해할 수 있다. 이 기술은 가구나 가전에 한정되어 있던 IoT 기술을 건축물에 접목한 것으로, 건축물의 외벽이 환경의 변화에 따라 즉각적으로 반응한다. 이는 건축물의 온도 유지나 실내 밝기를 유지하기 위해 사용되던 에너지 소모를 효과적으로 줄일 수 있는 대안이 될 것이다.

 

‘앰비언스 월’이 적용된 옥수동 공공복합청사. 건물의 외부 환경에 따라 변화하는 ‘앰비언스 월’은 도시의 새로운 표정이 될 수 있다.  ©softarchitecturelab
Data visualization Project, Rhythmical Topography, 2009 ©softarchitecturelab

 

김나리(파사드 컨설턴트, 창호 회사 ‘유블로’ 대표)는 창틀 없이 타공된 단열 유리창을 여닫을 수 있는 마개를 디자인하는 창호 회사 ‘유블로’를 운영 중이다. 창을 여닫기 위한 개폐부를 감싼 프레임은 실내 이용자들의 조망을 해칠뿐더러 창틀 시공에 더 많은 재료를 투입하게 되며, 때에 따라 창의 단열 성능마저 저하시킨다.

유블로는 개폐 프레임 없이 유리에 구멍을 내어 개폐창을 자유롭게 만들 수 있다. 달리 말해 와인의 향이 빠져나가지 않도록 고안된 와인 스토퍼처럼 창문의 구멍을 마개로 여닫을 수 있도록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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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유블로는 한국전력공사 서울본부 별관, 교육기관, 사무와 주거 공간 등에 적용돼 사용 중이다. 김나리 대표는 “추후 목재와 같은 저탄소 자재 적극 사용할 예정이며, 인테리어 취향을 반영해 공예가와 협업도 준비 중”이라고 설명 한다.

환기를 위해 개폐부에서 분리한 마개를 어딘가에 두어야 한다는 점과 열린 구멍 사이를 통한 방충 여부와 지름 148mm의 단일규격은 제품이 가지고 있는 한계처럼 보이지만, 통창에 전망을 가리지 않는다는 점과 기존 창호의 프레임보다 나은 마개의 미감은 제품을 충분히 매력적으로 보이게 한다. 게다가 안전한 구멍에 손을 넣어 자연의 대기와 닿을 수 있다는 점도 큰 매력 포인트로 다가온다.

 

한국전력공사 서울본부 별관 ⓒublo
용인 타운하우스 ⓒublo

 

지속 가능한 도시를 위하여

혼합된 화학물질 사용을 줄이는 방식으로 실내 공간을 구성하고, 자연을 존중하는 건축 방식을 추구하려는 움직임이 늘고 있다. 하지만 이는 여전히 선구자의 영역에 머물러 있다.

그럼에도 창의 크기와 밀도, 사물과 물질을 어떻게 다루고 디자인하는 작은 변화에도 도시는 달라지고 그곳에 사는 사람들에게 큰 영향을 끼친다. 지속 가능한 디자인 연구의 필요성을 실감하는 부분이다. 인간이 어떤 관점으로 접근하고 시도하느냐에 따라 도시 환경이 더 나아지거나 악화할 수 있기 때문에, 그 디자인 방법에 대한 고민을 멈추지 말아야 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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