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연하지만, 당연하지만은 않은 것들

[Portrait] ② 건축가 김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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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디터. 정경화  사진. 윤현기  자료. 다이아거날 써츠 Diagonal Thoughts

 

지난한 일상을 환기하는 특별한 공간, 그 뒤엔 자기만의 방식으로 묵묵히 공간을 구축하는 이들이 있습니다. 앞으로의 행보가 더욱 기대되는 공간 크리에이터들의 ‘초상portrait’을 기록합니다. 저마다의 크리에이티비티로 도시에 다채로운 표정을 더하는 이들의 솔직담백한 이야기를 만나보세요.

 

건축가라고 하면 우리는 가장 먼저 집을 짓는 사람을 떠올린다. 건축물을 설계하고 구축하는 일. 그러나 이것이 당연하지 않은 이들이 있다. 다이아거날 써츠는 2015년 건축가 김사라와 강소진이 개소한 설계사무소다. 지금은 김사라 소장이 홀로 이끌어 가고 있으며, 전시와 영상 예술 등 건축가에게 일반적으로 주어진 업역을 벗어나 다채롭게 활동한다. 일견 너무도 달라 보이는 일이지만, 모든 일은 하나의 지점을 향한다. 너무 당연해 보이지 않던 것을 인식하고 지각하게 하는 것. ‘공간’이라는 도구를 이용해서. 설계사무소 대표, 건축가, 그리고 한 명의 개인, 이렇게 세 명의 김사라가 그리는 트라이앵글은 결국 다이아거날 써츠라는 이름으로 수렴한다. 비스듬하게, 그러나 꼿꼿하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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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길이 내다 보이는 풍경을 기대했는데, 역시 사무실이 아름다워요. 
여기 오고서 책도 많이 읽고 여유로울 줄 알았는데 실상은 정신없이 일하느라 하루종일 모니터만 보다 가요. 가끔 퇴근길에 ‘맞아 사무실 좋지’ 하고서 잠깐 봐요.

 

최근에는 아르코 미술관 전시로 더 바빴을 것 같아요. 요즘 어떻게 지냈어요? 
파빌리온이랑 작업실, 아르코 미술관 전시까지 전부 비슷한 시기에 끝나서 정신이 없었어요. 그런데 아무것도 안해도 마음은 맨날 바빠요. 병인 것 같아요. (웃음)

 

세 가지 일이 다른 분야라 더 정신이 없었겠어요. 하지만 다양한 업역이 다이아거날 써츠의 정체성이기도 하죠. ‘비스듬한 사고’라는 뜻에서도 그러한 자세가 느껴지고요. 어떤 계기로 이름을 정하게 됐어요? 
외국계 대기업 다니는 친구에게 크로스 슬라이스 워크숍에 대한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어요. 기업에서 직급과 부서가 다른 사람들이 만나 일의 고충을 나누는 시간을 갖는 거예요. 과장님이 영업사원이 되고 영업사원이 마케팅 직원이 되는 식으로 롤플레이를 하기도 하고요. 그렇게 다른 입장이 되어 보면서 서로 이해하게 된다고 이야기 하는데 이거다 싶더라고요. 그때 다이아거날이라는 단어를 떠올렸고, 써츠는 대학원 때 생각했어요. 건축을 매개로 생각하는 법을 배웠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두 단어가 만나 사무실 이름이 되었습니다. 

 

고민했던 다른 이름도 있었나요?
하지 말아야 겠다고 생각한 것은 있었어요. 당시에 랩이라는 단어가 유행이어서 절대 하지 말아야지 했었고요. 또 하나는, 건축사무소라는 단어였어요. 건물을 짓는 것에만 목적이 있지 않은데, 아키텍처라는 단어가 들어가면 제가 할 수 있는 일을 가두는 것처럼 느껴졌거든요. 

저는 어렸을 때부터 가만히 있어도 남들과 굉장히 다른 사람이었어요. 제도나 경계를 벗어나려는 성향이 강하고 어느 집단의 바깥에 있을 때 마음이 더 편해요. 그래서 사무실 이름을 지을 때도 ‘어떻게 하면 그 어디에도 속하지 않고, 어느 한쪽에 편향되지 않고, 그 이름만으로 오롯이 존재할 수 있을까’를 가장 고민했습니다. 무엇을 하겠다는 지향점이 있기 보다는 공간과 사람을 다뤄보고 싶었기 때문에 지금의 이름이 적합하다고 생각했어요. 

 

8년이 지난 지금은 이 이름이 어때요?
몇 년 지나면 촌스러워질까봐 걱정이에요. 저도 조금씩 변하니까 그때만큼 전투적인 자세인지 고민될 때도 있고요. 사람들이 자기 이름으로 사무실 이름을 짓는 이유를 알겠어요. 시간이 지나도 나일 수 있으니까.

 

어릴 때 건축가가 될거라 생각했나요?
전혀요. 가족들 대부분이 공무원이었고 건축가를 떠올릴 만한 환경이 아니었습니다. 어렸을 때부터 그림을 잘 그렸는데, 부모님은 미술을 하는 것도 반대하셨어요. 그때는 자동차 디자인을 하고 싶었어요. 제가 생각할 수 있는 가장 큰 공간이었거든요. 

 

그래서 대학교에서 디자인을 전공했고요.
일주일 만에 잘못 왔다는 걸 깨달았죠. 건축은 특정한 상황이 주어지는 일이라 매번 작업이 다릅니다. 결과물은 건물이지만, 그 안에 사람이 담기기 때문에 인간의 본질적인 모습을 고민해야 하고요. 그런 부분이 좋았던 건데, 자동차는 많이 만들어서 팔아야 하잖아요. 표준화된 제품이어야 하고 불특정 다수를 만족시켜야 해요. 목적 자체가 너무 달랐어요. 저 자체가 남들과 항상 다른 지점에 있는 사람인데, 다수를 만족시키는 무언가를 만든다는 것이 너무 방향이 맞지 않았던 거죠. 이해받지 못하는 사람이 남을 이해하는 작업을 하는 것에 흥미를 가지기가 쉽지 않으니까요.

 

보통 예술가들이 그렇잖아요. 나만의 것을 행함으로써 남을 이해시키는 사람이요. 예술가가 될 생각은 없었어요?
대학 내내 뭘 해야 할지 잘 몰랐습니다. 미국에 가기 전까지는 ‘나는 누구지?’라는 생각으로 20대를 보냈던 것 같아요. 

 

건축을 하기로 뚜렷하게 결정한 건 언제였어요?
막연히 공간과 관련된 전공을 찾아 프로비던스의 로드아일랜드 스쿨 오브 디자인RhodeIsland School of Design으로 유학을 갔고, 3학기 때 파블로 카스트로Pablo Castro 교수님을 만나면서 확실히 마음을 먹었습니다. 당시 교수님의 건축 스튜디오 수업이 ‘디스리멤버 투 언포겟Disremember to Unforget’이었는데, 그 수업을 들으며 사유하는 방법을 배웠고, ‘나같이 고민하는 사람이 있고 이렇게 생각해도 괜찮은 거구나’를 깨달았어요. 교수님이 저에게 ‘넌 건축가다’라고 말씀해주신 적이 있었는데 그 말이 굉장히 용기가 되더라고요. ‘맞아. 나 할 수 있겠다. 건축을 해야겠다’ 싶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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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욕의 오브라 아키텍츠Obra Architects와 BCHO 파트너스(조병수건축연구소)에서 5년간 실무를 하고 독립했어요. 그때와 지금, 사무실을 운영하는 자세에서 달라진 점이 있다면요.
처음에는 저의 세계관으로 건축을 해내는 것에 목적이 있었는데, 지금은 그렇게 하고 있으니 어떻게 지속 가능하게 유지할 수 있을지, 현실적인 부분을 고민합니다. 1년차, 3년차에는 ‘아직 안망했다’ 하면서 일하지만, 10년이 되어서까지 그 마음가짐이면 어렵잖아요. 그러면서도 한편으로는 외부에 시선을 맞추다가 나를 잃어버리지는 않을지 걱정도 하고요.

 

사무실을 유지하는 것, 나를 유지하는 것 사이에서 끝없는 줄다리기를 하는 삶이네요.
굉장히 여러 인격이 있는 삶을 살아요. 초반에는 훨씬 심했습니다. 클라이언트에게 화냈다가, 엄청 잘했다가. (웃음) 이상한 성격이 드러나는 과정을 거쳤죠. 그렇게 작업하는 동안 너무 몰입하다 보니 끝나고 나면 힘이 남아 있지 않아요. 어느 자기계발서에서 프로는 중요한 순간에 쓸 수 있도록 자기의 힘을 남겨둬야 한다는 문장을 봤는데, 맞는 말 같아요. 정작 기회가 왔을 때 내가 다 소진된 상태이면 안되니까요. 연습하고 있습니다.

 

요즘에는 나아졌어요?
예전보다는요. 2021년은 강소진 소장과 분리되어 처음 혼자 운영한 해였는데, 거의 잠을 자지 않았어요. 프로젝트에 집착도 심했습니다. 그러니까 다 같이 괴롭고 건강하지 않더라고요. 결과물을 내는 데에도 오히려 더 시간이 오래 걸리고요. 지금은 더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도 타협을 많이 해요. 그런데 주변에서는 전혀 그렇지 않다고 하죠. (웃음)

 

그럼 일이 삶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100%인가요?
400%죠. (웃음) 잘 때도 생각하니까.

 

그런 모습을 의도하나요 아니면 어쩔 수 없는 건가요?
생각할 틈도 없이 몰입해요. 슬프게도 취미가 없어요. 좋아하는 일을 하게 되어서 그런 것 같긴 한데, 건강하지 않더라고요. 분리해 보려고 하면서도 동시에 집중하지 않는 사람을 보면 ‘그만큼 열정이 없는 거 아니야? 관심 없어서 딴 생각이 나는 거 아니야? 난 계속 생각나는데.’ 그런 마음이 기저에 있죠.

 

그런 마음이라면 오히려 혼자 자유롭게 일하는 것이 좋을지도 모르겠어요.
혼자 있는 걸 굉장히 좋아하지만, 함께 했을 때 흥미로운 지점이 더 많이 생겨요. 그것이 충돌이든, 조화이든요. 사무실에서도 지시하는 업무만 하는 직원과 일하는 건 재미가 없어요. 저에게 배움을 주는 사람과 파트너처럼 일하고 싶습니다. 그래야 일이 흥미롭고 살아있는 것 같아요. 주체적인 사람이 모인 집단이 회사가 되면 좋겠어요.

 

과정도 더 즐겁고요.
제 사고의 외연을 넓혀주는 사람을 만나면 너무 흥분되고 재밌어요. 머릿 속이 마구 휘저어지는 느낌? 조직에서 제 생각만 계속 맞는 상황이면 저만 고민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거든요. 지루하고 정체되는 것 같고, 그럴 수 있다고 믿지도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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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무실에서 더 성장시키고 싶은 부분은 뭐예요?
조직력을 키우고 싶어요. 지금은 저까지 세 명이서 일하고 있는데, 규모가 작으니 각자가 많은 것을 해내야 해요. 너무 많은 순발력을 발휘하면서 일하는 상황이 계속되면 사람이 지치잖아요. 조직력을 좀더 갖춰서 더 건강하게 일하고 싶습니다.

 

지금의 건축 일에서 순발력을 많이 발휘하게 만드는 요인은 무엇 때문일까요?
일단 시간이 충분하지 않아요. 물론 주어진 정답이 없고 항상 새로운 것을 만드는 일이라 시간이 부족할 수밖에 없지만, 그렇다고 하더라도 절대적 시간이 적습니다. 두번째는 늘 완전히 다른 작업을 하기 때문에 생각지 못한 상황을 쉼없이 마주해요. 대지도, 건축주도 달라지고, 사용하는 재료도 바뀌고 하다못해 날씨도 계속 변하죠. 어느 것 하나도 통제할 수 없는 상황인데, 저희는 계속해서 이걸 컨트롤해나가야 해요. 그 부분이 상당히 고통스럽지만, 그렇기 때문에 즐겁기도 해요. 이 작업의 아름다운 부분이 아닐까 합니다.

 

그 사이에서 균형을 찾는 것이 모든 사무소의 숙제일 테죠.
이우환 선생님이 하신 말씀 중에 정말 좋아하는 문장이 ‘인간은 필사적으로 세계를 만들어 세우려 하고, 자연은 어디까지나 그것을 대지로 되돌리려고 한다. 있게 하려는 힘과 없애려는 힘의 치열한 맞섬은 아름다운 겨룸이다’ 인데요. 이게 정확히 건축이구나 싶었어요. 굉장히 와닿았습니다.

 

홈페이지를 보면, 공간에서 인식과 지각의 변화를 탐구한다는 문장으로 다이아거날 써츠를 소개해요. 인식과 지각이라는 건 어떻게 달라요?
지각은 지식이 없어도 감각으로 알 수 있고, 신체의 학습을 통해 쌓여요. 지각의 경험이 지식처럼 축적되어서 분별하고 의견을 나눌 수 있는 상태에 이르면 그 지점부터는 인식이 됩니다. 저희의 작업에는 계몽의 의지가 조금 있어요. 어린아이는 세상의 모든 것을 흡수하지만 성인이 될수록 많은 것을 관습적으로 대해요. 그래서 보고도 못보는 것들이 생기는데, 이걸 경험하고 볼 수 있도록 하는 장치를 만드는 것이 우리가 추구하는 일입니다. 그 지점을 만들어 인식의 전환을 일으키고 싶어요.

 

그런 부분을 많이 강조하는 것 같아요. 이미 있던 것을 새롭게 보게 하는 것이요.
관습화되고 제도에 익숙해지면서 생각 없이 지나치던 것을 작업을 통해 다시 한번 상기하게 되면 그 작은 것을 인식하면서 삶을 더 소중히 받아들이게 될 것 같아요. 제가 그런 사람이어서요. 

 

나누고 싶어 하시네요.
그 지점이 모순이에요. 나라는 사람은 타인을 배려하는 성향이 아니고 개인주의가 강한데 말이죠. 왜일까 이유를 고민해봤는데, 제가 다른 사람과 달랐기 때문에 내가 생각하는 게 다르지 않다는 걸 이야기하고 싶은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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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부분의 건축가가 공모전이나 공공건축 프로젝트로 기반을 다지는 것과 달리 초반부터 전시나 영상, 설치 작업으로 자리를 잡았어요. 지금은 전시와 건축 프로젝트가 어느 정도 비중을 차지하나요? 
반반 정도 되는 것 같아요. 국립현대미술관의 예술버스쉼터 ‘쓸모없는 건축과 유용한 조각에 대하여’를 작업한 후로 미술관에서 부쩍 연락이 많아졌습니다. 

 

결이 다른 작업을 오가면서 간극을 느끼지는 않나요? 
크게 다르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두 개의 다른 건축 프로젝트를 하는 정도? 전시는 사진이나 영상으로 결과물이 나와야 하니 작가님과 협의를 하고, 건축은 팀원들이랑 무슨 도면을 어떤 순서로 그릴지 정하는 식으로 세세한 과정은 다르지만 사고의 단계는 크게 다르지 않아요. 

 

경계 없이 작업하는 것의 가장 큰 기쁨, 그리고 가장 큰 어려움은 무엇인가요?
이 질문, 비슷하게 많이 받아 봤는데 이런 표현으로 들으니 굉장히 철학적으로 느껴지네요. 기쁨은 일하면서 지루할 틈이 없어요. 매번 다르고, 늘 새로운 일이니까요. 어려움은 다양한 일을 하다 보니 참조점이 없는 것이요. 동전의 양면이에요, 그래서 어려운데 동시에 남들이 갔던 길을 똑바로 밟지 않기 때문에 신난다. 산만하죠. 

 

2023 서울도시건축비엔날레의 큐레이터를 맡았어요. 플레이어가 아닌 기획자로 서는 자리는 처음일텐데, 어떤 계기로 참여하게 됐어요?
몇 차례 파빌리온 작업을 했으니 기획자로 참여하면 새롭게 정리해보는 기회가 되겠다 싶었어요. 지금까지는 DDP에서 비엔날레가 열렸는데, 이번에는 송현동에서 열리는 것도 흥미로웠고요. 100년 만에 시민에게 공개하는 역사적인 땅에 파빌리온이 첫 건축물로 선다는 것이 의미있게 다가왔습니다. 지금도 공원으로 쓰이고는 있지만 파빌리온이 들어왔을 때 사람들의 행위나 땅을 대하는 태도나 인식이 달라질 테니까요. 파빌리온 자체가 영구적인 설치물이 아니라는 점도 재밌어요. 기대되는 동시에 아주 어려운 일입니다.

 

구체적으로 어떤 일을 맡고 있어요?
송현동에 여러 파빌리온과 그외에 쉼터 같은 공간을 조성하는데, 그 마스터플랜을 담당합니다. 어떤 작가를 초청해서 무슨 작업을 할지 기획하는 일인데, 사실상 서울시에서 거의 결정해 놓은 것을 조율하는 과정이라고 보면 돼요. 그외에도 조병수 총감독님께서 기획하시는 주제관인 하늘소, 땅소를 비롯해 여러 프로그램을 수행합니다.

 

기획자의 일을 해보니 어떻던가요?
나는 짓는 사람이라는 것을 깨달았어요. 사실 건축이라는 일에서 기획이 상당 부분을 차지하고, 현장에서 지어질 때 건축가가 감리를 보기는 하지만 이미 본업은 끝나 있잖아요. 그래서 건축가는 짓는 사람인 것 같지만 사실은 기획하는 사람이라고 늘 생각했어요. 게다가 우리는 다른 건축사무소보다 기획에 집중한다고 봤고요. 그런데 막상 짓지 않고 기획만 하니까 하다 만 것 같아요. ‘남들은 다 짓는데 나는 왜 안짓지? 나도 잘할 수 있는데. 재밌겠다’ 이런 마음이 드는거죠. 지어져야만 그 앞단의 모든 고민이 유효한건가 하는 고민도 하게 되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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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에 지어진 건축 작업도 있죠. ‘열린 결말’은 금속 공예가의 스튜디오라고요. 
본래 주택이 메인인 부지인데, 급하게 작업실을 옮겨야 해서 먼저 짓게 됐어요. ‘열린 결말’이라는 이름은 <실패한 시작과 열린 결말/프란츠 카프카의 시적 인류학>이라는 책에서 따왔습니다. 아직 지어지지 않은 그 집이 올 것을 생각하면서 붙인 제목이에요. 대개는 주인공이 먼저 들어서는데 반대의 상황이라 재미있었죠. 이후에 집이 앉혀질 여러 가능성을 스터디하고 그에 알맞게 작동하도록 설계했습니다. 나중에 열릴 가능성이 높은 공간은 시멘트 벽돌로 벽을 세워 필요하면 허물 수 있게 하는 식으로요. 작업실이 주인공이 아니었기 때문에 최소한의 장치로 공간을 구현했어요. 거푸집 유닛에 맞춰 공간의 비례를 정하고 마감재도 크게 사용하지 않았어요. 금속공예 일을 하고 계셔서 물받이나 조명, 손잡이 같은 금속 요소는 직접 작업하실 수 있게 비워 뒀고요. 그동안의 작업은 선언적인 부분이 많았는데, 이 집은 수렴하는 태도에 가깝습니다. 

 

광주 비엔날레 퍼포먼스 작품 ‘얼론 투게더’의 ‘포터블 시너그라피’는 가변적 공간을 구획하는 장치를 접어서 가방에 넣을 수 있는 형태로 제작했어요. 아르코미술관에서 선보인 의자는 앉는 움직임에 맞추어 작동해요. 이러한 작업을 보면, 공간적 장치에 생각을 담는 것 외에 어떻게 사용하고 작동시킬 것인가에 대해서도 깊이 관심을 기울이는 듯해요.
써츠에도 관심이 많지만 제가 하고 싶은 일은 그 다음이에요. 생각의 덩어리를 물질의 덩어리로 완벽하게 전환하는 것이요. 그 생각을 구현하는 방식, 특히 디테일과 재료를 굉장히 많이 고민합니다. 실제로 봐야 직성이 풀리는 성격이라 모형도 직접 만들어봐요. 이 모형도 우음도의 파빌리온 ‘파러웨이: 맨 메이드, 네이처 메이드 Faraway: man amde, nature made를 2대 1 스케일로 만든 거예요.

 

이건 좀 심하게 정교해 보이는데요. 
파러웨이는 소리를 듣는 청음 장치의 역할을 하는 파빌리온이에요. 1차 세계대전 이전에는 레이더가 발명되기 전이라 적의 비행기가 오는 것을 감지하기 위해 소리를 담는 큰 구조물을 만들었어요. 그걸 사운드 미러라고 해요. 그 개념에서 착안해 설계했는데, 기능이나 형태를 직접 살펴보고 싶어서 모형을 제작했어요. 비오는 날 밖에 가져가서 들어 봤더니 100m 앞에서 걸어오는 발소리가 정말 크게 들리더라고요. 

 

늘 이렇게 모형을 만드나요?
실제 사용할 재료로 만들어요. 모형 만들 때 어려운 부분은 시공할 때도 무조건 힘들어요. 같은 재료를 사용하니까 깨지는 부분은 실제 지을 때도 똑같이 균열이 생기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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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업의 레퍼런스는 어디에서 얻어요? 
시작할 때 책을 이것저것 많이 읽어요. 

 

프로젝트를 소개할 때도 꼭 인용구가 있더라고요.
맞아요. 작업을 시작할 때, 무엇을 고민해야 하는가에 대해 많이 생각해요. 그때 책을 많이 참조하는 편이라 프로젝트마다 중요한 글귀가 있습니다.

 

책을 즐겨 보나요?
쉴 때는 책에 가장 먼저 손이 가요. 온전히 나와 마주할 수 있는 시간이기도 하고 마음의 평화를 줘요. 저는 제 인식에 전환점이 되는 사람을 만나면 너무 즐겁거든요. 그런데 평소에는 그런 사람을 만나기 어렵잖아요. 한국에서는 자기 이야기를 나누는 데에 익숙하지 않기도 하고요. 그러다 보니 책이랑 친해졌어요. 책에는 자기 이야기하는 사람들 투성이니까요.

 

최근 인상깊게 읽은 책은 무엇이었어요?
제가 좋아하는 책 중 하나인데, 박보나 작가의 <태도가 작품이 될 때>를 여러 번 읽었어요. 학생들에게 수업 도서로 추천하기도 했고요. 특히 서문이 재밌어요. 멸종 위기 때문에 국가에서 지리산에 서식지를 만들고 반달곰들을 여기서 살도록 해요. 그런데 KM-53이라는 반달곰 한 마리가 계속 원래 있던 산으로 가는 거에요. 차에 치일 수도 있고 위험하니 다시 잡아다 놓는데 또 가고, 또 가요. KM-53은 이유는 알 수 없지만 본능적으로 거기에 가야만 하는 아이인거에요. 가고자 하는 태도가 분명한 거잖아요. 그런 부분에 공감이 됐습니다. 저 또한 가만히 있어도 남들이랑 다른 사람이다 보니 반달곰의 마음이 이해가 되더라고요. 책이 힘이 돼요. 막 힘든 상황에서 받는 위로라기 보다는 일상에서 나다움을 지키는 위안이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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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새롭게 관심을 두고 있는 것은 무엇이 있나요? 
머리와 마음 비우기요. 원래 엄청 치밀한 사람이거든요. 프레젠테이션할 때도 초 단위까지 계획해요. 요즘엔 안 그러려고 온힘을 다해서 노력하고 있어요.

 

본성을 사회화하려는 노력을 하는 건가요?
그렇죠. 저는 제가 굉장히 많이 변한 것 같거든요. 그런데 사람들이 사람 잘 안 변한다고. (웃음)

 

변하려는 이유가 무엇인가요?
제가 더 나은 사람이 되고 싶어서요. 저의 고민은 외부에 있지 않아요. 

 

건축이라는 업역의 경계가 갈수록 사라져요. 이제는 건축가 외에 인테리어 디자이너나 가구 디자이너, 기획자 등 다양한 직업인이 건축을 해요. 이러한 시대에 오늘날 건축가의 역할은 무엇일까요? 
저는 이 질문 자체가 유효하지 않아 보여요. 궁극적으로는 ‘각자가 자기 작업을 하면 되는 것 아닌가? 건축가가 어떤 단일 개념으로 꼭 규정되어야 하는가’라고 생각했어요. 아주 오래 전 시대에 미켈란젤로는 조각가이고 건축가이면서 시인이었어요. 다양해진 것이 아니라 오히려 산업화 이후에 분업되었다가 통합되면서 다시 회귀하는 것이 아닐까요. 경계를 넘나드는 것이 자유로운 것이 아니라 자연스러운 흐름인 거죠.


건축가로서의 나, 사무실 대표로서의 나, 김사라로서의 나의 비슷한 점은 무엇이고, 다른 점은 무엇인가요? 요즘에는 어떤 버전의 ‘나’가 가장 마음에 드나요?
이 질문을 받고 도표로 그려봤어요. 그리면서 생각해 보니 김사라로서의 나는 김사라보다는 사무실 대표에 가깝게 사는 것 같았고, 사무실 대표는 사무실 대표이기 보다는 김사라로 살고 있더라고요. 그럼 김사라로 사는 사무실 대표는 누군가 생각해 보니 그 사람은 건축가에 가깝더라고요. 결국 결론은 ‘나는 결국 나를 계속 찾고 있구나’였어요. 죄송해요. 이거 어떻게 쓰실지. (웃음) 명쾌하지 않은데 이 답이 마음에 들었어요. 프로젝트 하듯이 생각했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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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사라

다이아거날 써츠Diagonal Thoughts의 설립자이자 대표 건축가이다. 작업의 영역에 경계를 두지 않고 건축, 디자인, 사고를 매개로 공간에 관한 작업을 한다. 아이디어와 그것을 구체화하는 물질 간의 치밀한 관계에 중점을 두고 프로젝트에 따라 국내외 다양한 분야의 전문가와 실험적인 협업을 지향한다.

 

‘Portrait: 건축가 김사라’  전체 이야기를 담은
‹브리크brique› vol.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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