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토록 멋진 농촌

[In your Area] ② 진천 뤁스퀘어
©Donggyu Kim
에디터. 윤정훈  사진. 김동규, 윤현기 자료. 만나CEA 설계. 착착건축사무소

 

오늘날 서울 외 지역을 향한 시선은 크게 두 가지로 나뉜다. 하나는 수도권의 하위 개념(지방)으로 보는 시각이고, 다른 하나는 수도권 집중의 대안이자 매력적인 지역 문화의 기반(로컬)으로 여기는 시각이다. 지역에 대한 역설적 시선이 공존하는 이때, ‹브리크› 11호 특집 ‘인 유어 에리어In Your Area’는 지역을 누군가의 일과 삶이 전개되는 터전이자 고유한 정체성을 지닌 공간을 창출하는 근거지로 바라보고자 한다.
서울의 작은 동네 또한 하나의 지역이라 할 수 있을 테지만 그보다는 좀 더 먼 곳으로 시선을 돌렸다. 지역의 전통과 문화, 자연, 심지어 결핍된 무언가를 토대로 조금은 다른 공간, 조금은 다른 문화를 일구는 크리에이터들을 조명했다. 미래 농업인들을 위한 도시를 꿈꾸는 기업인부터 문화 불모지 개척에 앞장선 건축가, 일상을 영위하는 장소로서의 도시를 문화적 유토피아로 만들고자 하는 기획자까지. 각 지역에 자리하게 된 저마다의 이유와 순탄치만은 않았던 과정, 그로 인한 변화를 가감 없이 전달한다. 

 

In your Area
① 헤테로토피아적 남해 – 헤테로토피아 최승용
② 이토록 멋진 농촌 – 진천 뤁스퀘어
③ 문화예술 불모지를 개척하다 – SOAP 권순엽, 장동선
④ 우리들의 오아시스 – 대구 미래농원
⑤ 공주, 작당을 위한 베이스캠프 – 마을호텔 박우린 
⑥ 가장 제주다운 – 재주상회 고선영
⑦ 탄화 동판에 표현한 과거와 현재, 미래 – 울산 동네가게녹슨
⑧ 지역 특색을 반영한 로컬 스폿


 

‘뤁스퀘어Root Square’는 농업 솔루션 기업 만나CEA가 충북 진천에 마련한 복합문화공간이다. 전국 곳곳 다채로운 형태의 대형 복합문화공간이 들어서는 가운데 뤁스퀘어는 단순히 용도가 혼합된 상공간에 그치지 않는다. 이곳엔 미래 산업으로서의 농업, 정주 환경으로서의 농촌에 대한 밀도 높은 고민이 깃들어 있다. 서울이 아니라서 어딘가 촌스럽고 엉성할 거라는 편견은 잠시 내려두길 권한다. 오히려 도심에서 누리지 못하는 경험과 공간으로 가득 차 있으니 말이다. 농업과 도시, 지속가능한 미래 먹거리, 새로운 로컬 라이프스타일에 대한 물음과 대답이 여기에 있다.

 

뤁스퀘어 전경 ©Donggyu Kim

 

지금, 농촌의 자리
만나CEA는 첨단 기술을 통해 지속가능하고 생산성 높은 농산물 재배 시스템을 개발하는 기업이다. 물고기 양식과 수경 재배를 결합한 아쿠아포닉스aquaponic 농법이 대표적 기술로 알려져 있다. 물고기 양식에서 발생한 암모니아에 박테리아를 더해 질산염으로 변환시켜 식물 배양액으로 사용하는 기술로, 작물에 의해 질산염이 제거된 물은 다시 물고기 양식에 사용된다. 기존의 아쿠아포닉스와 달리 화학 비료를 사용하지 않아 친환경적이고 영구 순환이 가능하며, 단위 면적당 생산량이 일반 재배의 20배에 달하나 사용하는 물의 양은 10분의 1에 불과하다. 이처럼 만나CEA가 제시하는 농업은 기존의 농업과는 완전히 다른 선상에 놓여 있다.
그러나 기술 발전 속도에 비해 농업에 대한 인식은 여전히 밭일 정도에 머무르는 수준이다. 안정적 식량 공급과 먹거리를 향한 관심은꾸준히 높아지고 있지만 이를 전제하는 산업과 환경엔 여전히 무관심하다. 근래 들어 세계 테크 기업이 스마트 팜, 로봇 농업 등에 대거 진출했으나 진일보한 기술을 실질적으로 수행할 농업 인구는 계속해서 줄어드는 실정이다. 산업 인구가 줄어들면 결국 해당 산업은 쇠퇴하기 마련. 만나CEA가 농촌을 생산지 너머 삶의 터전으로 바라보고자 하는 까닭이다. 이 같은 맥락에서 만나CEA는 재배실, 공유 오피스, 카페 및 식당 등의 생활 인프라를 갖춘 농촌 커뮤니티 ‘만나 시티’를 구상해 왔다. 이 개념은 세밀한 건축 계획으로 구체화되어 진천 주민에겐 다양한 문화 혜택을, 외부 방문객에겐 도시 생활의 대안을 제안하는 공간으로 거듭났다.

 

뤁스퀘어에 마련된 아쿠아포닉스 양식장 ©Donggyu Kim
전태병 만나CEA 대표 ©BRIQUE Magazine

 

쇼룸에서 도시로
새로운 라이프스타일을 보여주는 데 있어 공간만큼 직접적이고 설득력 있는 수단이 있을까. 그저 기술을 전시하는 쇼룸 형태에서 나아가 삶의 형태를 제시하는 데 목표가 있었기에, 공간은 단일 건물에 그치지 않았다. 진천 지역과 농촌 생활에 대한 리서치와 더불어 당장 이곳에서 머물게 될 직원들의 니즈가 공간 계획의 밑거름이 됐다. 마스터플랜은 착착건축사무소의 김대균 소장이, 공간 활용에 대한 컨설팅은 프로젝트 디자인 그룹PDG의 나훈영 디자이너에게 의뢰했다. 계획을 발전시키는 가운데 ‘하우스비전 2022 코리아 전람회’(이하 하우스비전)의 개최 파트너를 맡아 뤁스퀘어의 규모와 기능은 한층 확장됐다. 만나CEA의 제안은 집을 산업의 교차점으로서 바라보며 도심 주거 문제에 관심을 둔 하우스비전의 목적에도 부합하는 것이었다.

 

스템 가든 내부 ©BRIQUE Magazine

 

문화가 재배되는 공간
뤁스퀘어는 만나CEA의 기술이 녹아든 재배실과 양식장을 비롯해 여러 즐길 거리가 있는 다목적 공간, 농촌 주거의 새로운 가능성을 제시하는 주택들로 이루어진다. 각각의 건축물은 농촌에서 펼쳐질 다양한 라이프스타일을 보여주는 데 목적이 있는데, 설립 취지에 비춰볼 때 특히 역점을 둔 곳은 김대균 건축가가 설계한 ‘스템 가든’이다. 물리적 환경 이외에 도농 격차를 벌리는 요인은 다름 아닌 복지 및 문화 혜택이다. 뤁스퀘어 조성에 있어 만나CEA가 강조한 점은 바로 진천 지역에 필요한 문화 시설의 확충이었다. 교육, 커뮤니티, 외식, 문화 생활에 대한 욕구를 충족하는 것이야말로 농촌 인구 유입에 있어 필수적이기 때문이다. 농업을 한층 매력적인 산업으로 만들 문화의 힘 또한 간과하지 않았다.

 

©Donggyu Kim

 

입구에 위치한 두 동의 온실을 지나 안으로 들어서면 대규모 온실을 연상케 하는 스템 가든을 만나게 된다. 계획 단계에서 컬티베이션 하우스cultivation house, 풀어 말하면 ‘문화를 재배하는 온실’로 불렸던 이곳은 다양한 문화의 융합을 꾀한다. 스템 가든은 크게 4개 존으로 나뉜다. 농업, 가드닝, 음식 관련 팝업 스토어나 원데이 클래스가 열리는 전시 존, 다양한 읽을거리를 제공하는 라이브러리 존, 모니터와 책상이 있어 회의나 영상 관람이 가능한 체험 존, 평소엔 카페 좌석이지만 특별한 날엔 무대로 변모하는 행사 존이 그것. 각 공간은 벽으로 분할되기보다 데크와 단차를 통해 보이지 않는 경계를 두고 있다. 비정형적 형태로 넓게 펼쳐진 데크는 활용도 높은 건축 요소다. 공간을 찬찬히 둘러볼 수 있는 산책로이자 가볍게 걸터앉아 담소를 나누는 자리, 버진 로드나 요가 수련장 등으로도 활용된다. 곳곳에 조명 및 음향 장치를 마련해 편의를 높인 데서 세심한 설계의 흔적을 엿볼 수 있다. 이렇듯 다양한 기능이 교차하는 구성을 통해 공간 활용의 지속가능성을 높였다.
또 하나 눈여겨볼 요소는 데크와 콘크리트 바닥만큼 넓은 면적을 차지하는 조경. 가지, 고사리, 토마토, 케일, 생강 등의 식용 식물 위주로 식재했는데, 쾌적하고 편안한 분위기를 만들 뿐만 아니라 시선을 구석구석으로 유도해 다채로운 공간 경험을 제공한다. 실내 개방감을 높이는 통유리 외벽 너머로는 도시에서 보기 힘든 풍경을 감상할 수 있다. 천장의 개구부로 인해 옥상은 연못이 있는 수공간으로 조성됐다. 이는 시시각각 바뀌는 하늘의 표정을 그대로 담아내며 색다른 볼거리를 선사한다.

 

스템 가든 옥상 수공간 ©Donggyu Kim

 

탄소 배출은 낮추고 미식 경험은 높이고
문화생활에서 빠질 수 없는 것이 바로 식경험이다. 뤁스퀘어는 만나CEA가 직접 재배한 신선한 식재료를 맛볼 수 있는 카페와 레스토랑을 갖추고 있다. 나훈영 디자이너의 손길이 닿은 ‘100% 키친’은 오직 뤁스퀘어에서 생산되는 재료로만 만든 음식을 선보인다. 위아래층 각각 버섯 재배지와 장어 양식장 그리고 스마트팜이 자리하며, 현재 아쿠아포닉스 양식 장어를 활용한 메뉴를 판매 중이다. 100% 키친의 목표는 단순히 신선한 재료를 자급자족하는 데 있지 않다. 지나치게 낭비되는 음식물과 유통 과정에서 발생하는 탄소 배출을 줄이는 데 더 큰 의미가 있다. 지속가능성 추구의 일환으로 불필요한 인테리어는 최소화하는 대신 아쿠아포닉스 플랜트 재배기를 벽과 창가에 두어 디자인 요소로 활용했다. 추후 만나CEA에서 재배하는 다양한 채소를 맛볼 수 있는 이탈리안 레스토랑으로 운영될 예정이다. 이러한 운영 계획의 밑바탕엔 일상을 환기할 만한 외식 공간이 부재한 지역 수요에 부응하려는 의도도 자리한다.

 

100% 키친 ©Donggyu Kim

 

진천에서 엿보는 농촌 주거의 다양성
미래 농촌에 들어서는 집은 어떤 모양일까. 인접 부지를 논밭으로 두고 덩그러니 놓인 농가주택을 떠올렸다면 좀 더 상상력을 끌어올릴 필요가 있다. 자동화 시스템을 갖춰 적정 온습도를 유지하는 온실이 있다면 집은 그 안에도 놓일 수 있다. 사방이 건물로 꽉 막힌 도심 풍경에 그럭저럭 만족해야 했다면, 농촌에서의 집은 드넓은 대지에 놓여 보다 유연하고도 색다르게 구성될 수 있다. 미래 농촌 주거의 모델로서 마련된 4채의 집은 이러한 가능성을 몸소 체험할 수 있는 공간이다.

 

최욱 건축가의 ‘작은 집’ ©Donggyu Kim
민성진 건축가의 ‘메타 팜 유닛’ ©Donggyu Kim
하라 켄야의 ‘양의 집’ ©Donggyu Kim

 

최욱 건축가가 설계한 ‘작은 집’은 한 변이 2.4m인 입방체 모듈을 활용한 주거 공간이다. 도심에 비해 넉넉한 대지 면적을 고려한 것으로, 필요에 따라 세밀한 공간 확장이 가능하다. 마찬가지로 모듈식으로 구성된 민성진 건축가의 ‘메타 팜 유닛Meta-Farm Units’은 스템 가든 맞은편 온실 내부에 자리한다. 실외 작업이 많은 농사일의 특성상 날씨의 영향을 덜 받는 쾌적한 작업이 가능하다는 이점을 갖는다. 아이가 그린 듯 간결한 형태의 ‘양의 집’은 하라 켄야의 작품. 마당으로 기능하는 너른 데크 위에 놓인 집으로, 실내외 단차가 없어 창을 열면 안팎이 하나로 연결된다. 자급자족을 가능케 하는 작은 텃밭과 세심하게 디자인된 가구는 생활의 감도를 한 차원 끌어올리기에 충분하다. 조기상 디자이너는 전통 정자에서 모티브를 얻어 한국적 미감을 담은 새로운 형태의 농막 ‘여가’를 제안했다. 하우스비전의 일환으로 조성된 이 공간들은 추후 방문객 체험 공간으로 다양하게 활용될 예정이다.

 

©Donggyu Ki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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