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머문 일곱 계절

[Interview] 일곱 계절의 정원, 일곱 계절의 건축

에디터. 윤정훈 사진. 윤현기

 

계절에 크게 흔들리는 동시에 계절을 넉넉히 품는 곳. 정원은 계절과 식물, 사람을 잇는 장소다. 30여 년간 흙과 꽃을 다뤄온 원예가 김재용은 미세한 절기를 오롯이 드러내는 정원을 꿈꿨다. 무심하게 구분 지은 사계절이 아닌 일곱 계절을 위한 정원, 꽃 필 때만이 아니라 땅 위 남은 거라곤 마른 가지뿐인 날에도 기꺼이 아름답다 말할 수 있는 그런 정원을 말이다. 그 정원에 걸맞은 건물을 세우는 일은 몇 해 전 홀로서기를 시작한 젊은 건축가 김수영에게 맡겨졌다. 금방이라도 쏟아질 듯한 숲으로 둘러싸인 땅에 홀로 돋보이는 건축물은 맞지 않았다. 일곱 계절의 정원을 생각하며 건물이 지닐 일곱 장면을 상상했다. 서로 다른 두 사람의 같은 바람이 담긴 이곳에서 자연, 인간, 건축의 시간은 좀 더 느직이 흘러간다.

 

©BRIQUE Magazine

 

반갑습니다. 두 분에 대한 소개를 부탁드려요.

김재용 원예를 전공했고, 꽃 농사를 짓다 정원 일을 시작한 지는 올해로 20년째 됐습니다. 정원설계사무소 ‘플로시스flosys’를 운영하며 가드닝 교육을 병행하고 있어요. 한 마디로 정원에 미쳐 있는 사람이죠. (웃음)
김수영 건축 전공 후 공간종합건축사사무소에서 실무 경력을 쌓고 지난해 건축사사무소 ‘디자인버그designbug’를 개소했습니다. 건축 설계와 더불어 용산 한강대로에서 ‘로비’라는 카페를 운영 중입니다.

 

김수영 소장(왼쪽), 김재용 대표

 

‘일곱 계절의 정원’은 어떤 곳인가요? 일곱 계절이라는 개념도 낯설어요. 보통은 계절을 네 가지로 구분하니까요.

김재용 독일의 정원가 칼 푀르스터Karl Foerster(1874~1970)가 창안한 개념이에요. 계절을 초봄, 봄, 초여름, 한여름, 가을, 늦가을, 겨울로 세분화하고 그에 따른 정원을 만들었죠. 제게 멘토나 다름 없는 분이에요. 들판의 잡초로 여겨지던 벼과 식물(그라스류)을 정원에 최초로 도입했을 뿐 아니라 수백 개의 품종을 육종했고, 세계대전으로 황폐화된 인류를 치유할 목적으로 정원 문화를 확산시킨 평화운동가이기도 하죠. 책 <일곱 계절의 정원으로 남은 사람>(칼 푀르스터 저, 고정희 역, 나무도시, 2013)에서 영감을 받았어요. 책에 따르면 일곱 계절의 정원이란 “꽃뿐 아니라 억새나 수크령 같은 벼과식물에서부터 고사리까지, 그리고 당연히 꽃피는 수목들을 조합하여 초봄부터 늦가을, 겨울까지 ‘늘 피어 있으며 늘 변화하는 정원’”이에요. 다양한 계절이 있는 이 땅에 맞는 아름다운 정원을 만들고자 이름을 그대로 빌려와 ‘일곱 계절의 정원seven seasons garden’을 만들었죠.

 

개인 정원이 아니라 방문객들을 염두에 둔 공공 정원이죠. 기획 배경과 목적을 설명해준다면요.

김재용 정원 일을 오래 해온 사람으로서 한국에 정원 문화가 제대로 정착하지 못한 점이 항상 아쉬웠어요. 서구를 무조건 동경하진 않지만 고유의 기후와 풍토, 문화에 맞는 정원을 만드는 점이 부러웠죠. 제대로 된 정원을 가꾸고 저처럼 정원에 관심 있는 사람들을 위한 교육·문화의 장을 만들고자 땅을 매입했어요. 뜻 맞는 다른 두 건축주와 함께 미술관, 카페, 가든센터로 이루어진 공간을 구상했죠. 마침 김수영 소장이 제 아들과 친분이 있어 건축 설계를 의뢰했고요.

 

가든센터 ©BRIQUE Magazi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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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원을 위한 건축을 제안 받았을 때 느낌이 어땠나요?

김수영 땅을 보자마자 가슴이 뛰었어요. 독립 후 첫 프로젝트여서 그랬던 것도 있지만 그런 풍경이라면 뭘 얹어도 작품이 되겠다 싶었거든요. (웃음) 대개 건축이 주가 되고 정원은 나중에 계획하는데 이 프로젝트는 정원에 건물을 맞춰야 해서 더 흥미로웠죠. 저는 가장 안쪽에 있는 미술관을 설계했고, 가든센터 외관 디자인에 대한 자문과 인테리어를 진행했어요. 설계에 앞서 김재용 대표님과 건축주 앞에서 프레젠테이션을 했는데, 건물이 일곱 계절에 따라 바뀌는 모습을 보여드렸어요. 건물의 형태나 재료를 화려하게 쓰기보다 정원과 계절에 대한 감상을 배가하는 건축물, 정원의 매력을 한층 부각하는 건물을 짓고 싶다고 했죠. 건축주들도 그 계획을 마음에 들어 했고요. 이곳은 정원사가 매일매일 손으로 가꾸며 바꿔가는 곳이에요. 김 대표님이 당장 내년에 어떤 풀을 심을지, 아마 대표님 본인도 아직 모를 거예요. (웃음) 그에 따라 언제 어디 새로운 길이 날지도요. 이렇듯 다양한 변화가 예정돼 있어 더더욱 건축물이 단독으로 돋보여선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절제된 형태와 재료 덕분인지, 정원과 건축 어느 하나 우선되는 것 없이 공간 전체가 한눈에 들어오네요.

김수영 텍스처가 지나치게 인위적인 재료는 배제하고, 백색 화강석 타일을 마감재로 사용해 돌 두 덩어리가 서 있는 듯한 모습을 연출했어요. 간격을 두고 두 매스를 떨어뜨려 사이에 길을 내고 시각적 프레임을 형성했죠. 건물을 기준으로 정원은 두 개로 나뉘어요. 전정은 식물을 마음껏 탐색하며 자유롭게 널브러지는 곳이라면, 후정은 편안하게 쉼을 누리며 재충전하는 곳이죠.

 

언뜻 봐도 정원엔 무척 다양한 식물이 자라고 있어요.

김재용 약 250종의 식물이 있어요. 이 정원엔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예쁜 장면은 없어요. 식물의 가장 화려한 순간은 사실 이미지로만 존재할 뿐 영구적이지 않죠. 정원은 일 단위로 변화를 거듭해요. 때문에 다양한 식물이 계절마다 보이는 고유한 모습을 염두에 두었어요. 봄의 새순, 자라서 꽃을 피울 때, 씨를 맺을 때, 겨울철 눈이 쌓인 모습을 모두 만나볼 수 있죠. 초본식물도 겨우내 그대로 두는 편이에요. 그래서 대개 마른 상태로 형태를 유지하는 것들을 심었죠. 일곱 계절을 오롯이 즐기는 것이 목적이기에 꽃 중심이 아닌 식물의 질감과 형태 중심의 식재 계획을 했어요. 물론 계절별 꽃이 필 때의 모습과 색감, 잎에 단풍이 들 때도 고려했죠. 풀이 단풍이 든다고 하니 어색하죠? 여기선 그런 것들을 즐길 수 있어요. 마침 정원에 단풍이 들기 시작했네요. 꽃이 가장 많이 피는 6~8월이 지나면 저렇게 갈색의 스펙트럼이 펼쳐져요. 노란색과 붉은색 사이 다양한 색으로 가득 물들죠. 제 생각에 이 정원이 가장 아름다운 계절은 가을과 늦가을이에요.

 

정원 내 미술관 ©BRIQUE Magazine
후정 ©BRIQUE Magazine

 

정원과 마찬가지로 건축에도 일곱 계절을 적극적으로 담아냈다고요.

김수영 자연의 입장에서 건축은 그저 일부에 지나지 않을 거예요. 이곳에선 자연과 정원, 건축이 구분되기보다 어우러져 하나의 풍경을 이루기를 바랐어요. 정원을 위한 건축, 건축을 위한 정원이 아닌 공간과 정원이 하나가 되어야 했죠. 따라서 건물의 일곱 가지 장면을 떠올리며 디자인했어요. 시간에 따라 빛 또는 그림자가 들거나, 낙엽이나 눈이 쌓이는 등의 변화가 만드는 장면이죠. 빗방울이 떨어지는 울림과 젖은 재료의 질감, 안개가 가져오는 깊은 공간감, 맑은 햇살이 만드는 그림자와 그늘, 눈 쌓인 지붕, 밤하늘과 고요함, 노을이 만드는 분위기, 가을 낙엽이 만드는 어수선함. 알고 보면 시간에 따라 건축이 보이는 변화가 무척 다양해요. 일곱 계절의 정원과 일곱 가지 모습의 건축물이 중첩되면 방문객들이 공간을 더 풍요롭게 경험하리라 생각했어요.

 

돌출된 뒤쪽 처마가 후정에 더욱 깊은 그림자를 들인다. ©BRIQUE Magazine
미술관 내부 ©BRIQUE Magazine

 

그런 의도가 건물의 형태에는 구체적으로 어떤 영향을 주었나요?

김수영 처마가 그 예죠. 겨울철 눈 쌓인 모습을 보이고 싶었거든요. 마찬가지로 가을엔 낙엽, 여름엔 빗소리를 강조하고 싶었고요. 처마를 통해 적극적으로 연출이 가능한 것들이죠. 준공 후 얼마 되지 않아 기둥과 처마에 거미들이 거미줄을 쳤는데, 이곳에선 흠결 없는 것보다 그런 모습이 더 좋아 보여요. 빗물이 자연스럽게 낙하하길 바라며 처마에 선홈통(빗물을 내리기 위해 지붕에서 바닥까지 수직으로 댄 홈통)을 두지 않았고, 뒤쪽 처마는 좀더 길게 빼서 해 질 녘 드는 빛이 후정에 더욱 깊게 들게 했어요. 외벽에 철판을 덧대 시간에 따라 부식되는 모습도 연출하고자 했죠.
지붕의 단면을 스테인리스로 마감해 ‘수평의 띠’를 만든 이유는 주변 환경을 반영하기 위함이에요. 수평의 띠는 맑은 날에는 아주 밝은 흰색 또는 파란색이지만 노을이 질 때는 붉게 물들죠. 건물이 자연의 일부로 자리 잡도록 하나의 장치를 마련한 셈이에요. 제각기 솟은 정원의 풀들을 적당히 눌러주는 듯한 모습을 통해 정돈된 느낌을 주고 싶었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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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하늘 흔들리는 풀들이 정말 운치 있네요. 화려하진 않지만 전체적으로 조화롭고 편안한 분위기예요.

김재용 벼과 식물의 매력이에요. 꽃이 피면 마치 안개가 낀듯 몽환적인 분위기를 자아내죠. 주변에서 흔히 보이는 억새나 수크령, 강아지풀, 잔디 모두 벼과 식물에 해당해요. 저 붉은 색 풀은 홍띠라는 식물인데, 장난기 많던 어린 시절 풀을 엇갈리게 묶어 친구들을 걸려 넘어지게 한 용도에서 이젠 당당히 정원의 주인공이 됐네요. 꽃이 너무 크거나 화려한 식물을 일부러 심지 않았어요. 시선을 빼앗고 전체를 보지 못하게 하거든요. 식물별 형태와 질감을 중심으로 식재를 하면 전체적인 경관을 볼 수 있어요. 군데군데 빈 곳도 있지만 전체적으로는 꽉 찬 느낌이죠.
비어 보이는 땅 속에서도 식물이 자라고 있어요. 일부러 여백을 둔 것이기도 해요. 풀 한 포기를 심어도 나중에 성장했을 때의 형태를 생각해야 해요. 심을 때부터 너무 붙여 놓으면 제 형태를 충분히 드러내지 못하고, 장마 때 통풍이 안 되서 썩을 수 있어요. 그보다 더 아래엔 미생물과 지렁이, 두더지들이 있어요. 지난 여름 두더지들이 활발히 다니며 땅을 다 일궈준 덕분에 제 수고를 조금 덜게 됐죠. 작은 연못도 있는데, 본래 작은 웅덩이가 있던 곳을 정돈한 거예요. 그 작은 데에 개구리와 도룡뇽이 살면서 정원의 해충을 다 잡아먹어요. 꽃 농사만 짓던 시절에는 농약을 안 쓰면 안 되는 줄 알았거든요. 지금은 이런 일들을 보며 더더욱 이곳을 살아있는 땅으로 만들어야겠다고 생각하게 됐어요.

 

©BRIQUE Magazi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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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화롭기 그지없어 보이지만 이렇게 되기까지 만만치 않은 노력과 시간이 들었을 테죠.

김재용 하나의 정원이 어느 정도 완성도를 갖추기까지 못해도 2년은 걸려요. 올 4월부터 본격적으로 조성하기 시작했으니 아직 멀었죠. 사실 정원에 있어 완성은 없어요. 끝없이 완성해나갈 뿐이죠. 시대나 트렌드에 따라 변화를 줘야 하고, 무엇보다 식물이 어느 한 자리에 심었다고 해서 거기에만 있지 않으니까요. 사라지기도 하고, 다른 식물이 그 자리를 점령할 때도 있어요. 돌아오지 않는 찰나의 순간으로 가득 차 있다는 게 바로 정원의 큰 특징이에요.
실패의 흔적도 있어요. 저 쓰러진 식물이 그 예인데요, 긴 장마 때문이기도 하지만 적심(곁순을 잘라주면서 전체적인 높이를 낮추고 꽃을 더 많이 피우는 관리법)을 한 번밖에 못 해줬거든요. 내년엔 두세 번 더 해야겠어요. 사실 가드닝에서 실패는 늘 있기 마련인데 일을 한 지 오래 돼도 정원 상태에 따라 그날그날 기분이 달라지는 건 어쩔 수 없네요. 폭우가 쏟아지면 실망하고 낙담하다가 날이 개면 언제 그랬냐는 듯 일어나 방긋 웃는 식물을 보면 금세 신이 나요. (웃음) 이런 일상이 일 년 내내 반복돼요. 가드너의 숙명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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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원과 건축은 무척 다른 분야인데 의견 조율 시 어려움은 없었나요? 서로의 분야에 대한 생각도 바뀌는 계기가 됐을 것 같아요.

김수영 오히려 재밌었어요. 건축과 정원 어느 한 쪽이 일방적인 기준을 제시하기보다 충분한 의견이 오갔으니까요. 미술관 높이가 4m 정도 되니까, 멀리서 지붕이 은근슬쩍 보이도록 정원의 전체적인 높이는 눈높이 정도면 좋겠다고 제가 먼저 제안하기도 했죠. 대개는 땅 어디에 건물을 놓아야 이익이 될지 우선으로 판단하잖아요. 그런데 그렇게 되면 결국 조경이 차지할 땅은 상대적으로 채광 등에서 불리한 곳일 수밖에 없거든요. 그런 접근이 항상 옳지만은 않은 것 같아요. 애당초 조경과 건축을 잘 고려해 배치하면 더 좋은 공간이 만들어질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하게 됐어요.

 

이 정원을 잘 즐길 수 있는 방법을 추천한다면요.

김수영 소박하지만 하나하나 볼 게 많은 곳이에요. 공간이 그리 크진 않으니 오랜 시간 있기보다는 한두 달에 한 번, 시간 날 때마다 와서 변화를 알아차려 보기를 추천해요.
김재용 좋은 정원을 가면 발견하는 것 투성이에요. 해외 유수의 정원들을 여러 차례 방문했는데, 아침에 들어가 저녁 내내 있었어요. 보는 각도에 따라 다르고 눈에 띄는 요소요소가 많았거든요. 꽃이 시들어도 바로 자르지 않고 씨앗이 맺혀도 그대로 두는 이유예요. 또 다른 개체를 만들어내는 과정 과정을 고스란히 남기고 싶어요. 그게 정원의 기록이니까요.
이곳이 정원을 보는 시각을 바꾸는 장이 됐으면 해요. 누군가는 찰나를 포착한 사진을 보고 찾아올 테지만 그 순간은 이미 지나고 없겠죠. 대신 다른 아름다운 모습으로 그 사람을 맞이하는 공간이면 해요. 새로운 관점에서 정원을 바라보고 즐기도록 하는 것. 그게 제 역할이 아닐까 싶습니다. 현재는 가오픈 상태이고, 내년 봄 정식 오픈을 앞두고 있습니다. 다양한 프로그램을 기획하고 있어요. 장단기 가드닝 클래스를 열거나 계절별 수확한 들꽃을 활용한 꽃꽂이 체험, 크리스마스 리스 만들기 등을 준비 중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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