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장의 건축 철학이 담긴 ‘솔올미술관’ 뭐가 다를까?

[ZOOM] 좋았던 점, 아쉬운 점, 우려되는 점
에디터. 김태진  사진. 김태진  자료. 솔올미술관

 

백색의 건축물을 기대하며

예로부터 소나무가 많아 ‘솔올’이라 불렸던 강릉 교동. 소나무 숲이 우거진 교동7공원에 건립된 ‘솔올미술관’을 향해 강릉행 KTX에 올랐다.

되짚어보면 솔올미술관은 개관 전부터 많은 사람들의 기대를 모았다. 설계를 맡은 마이어 파트너스Meier Partners는 건축계의 거장, 리차드 마이어Richard Meier의 건축 철학을 이어받은 곳이기에 좋은 건축과 공간을 경험하고자 하는 사람들에게 있어 솔올미술관 개관은 관심을 가질 만한 소식이었다. 이에 더해 개관 전부터 미술관을 둘러싼 몇 가지 의문점도 이 공간으로 사람들의 시선을 향하도록 만드는 기폭제 역할을 했다.

그럼에도 새롭게 들어서는 미술관은 질 좋은 공간과 문화 콘텐츠를 경험하고자 하는 사람들에게는 충분히 매력적인 공간일 터. 산맥이 끊임 없이 펼쳐지는 창 밖을 바라보며 ‘양지 바른 언덕에 자리했을 백색의 미술관이 흐린 날 축 처진 하늘마저 밝혀 주질 않을까’, ‘미술관을 거닐면 마음이 정화되는 기분이려나’ 등을 생각하며 설레는 마음으로 미술관으로 향했다.

 

©BRIQUE Magazine

 

강릉 여행의 새로운 선택지

2018년 평창올림픽을 계기로 개통된 강릉선 KTX는 강릉 뿐만 아니라 속초, 양양, 고성 등 동해안 일대의 주요 지역에 대한 접근성을 크게 개선했다. 기상 상황과 무관하게 수도권과 2시간 이내로 연결이 가능해지면서 외국인 관광객들도 크게 늘었다.

강원관광재단의 발표에 따르면 2023년 12월 한 달 간 강릉을 다녀간 방문객은 1132만여 명으로 전년 같은 기간 대비 8%가 증가했다. 이 중 외국인 관광객 수는 8만여 명으로 전년 대비 158%나 늘었다. 국가별로는 대만(6478.4%), 태국(5991.8%), 홍콩(1648.5%) 순으로 증가세가 두드러진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강릉의 대표 명소를 들라면 경포대와 오죽헌, 초당두부마을에 머물렀던 시절을 지나, 커피와 감자칩, 브루어리와 워케이션 숙소 등 젊은 세대를 겨냥한 먹거리와 즐길 거리, 가볼만한 공간들이 늘면서 강릉 여행의 선택지가 다양해진 덕분이다. 이같은 상황에서 문화예술의 대표적 인프라인 미술관 개관은 강릉을 한 단계 더 업그레이드 시킬 수 있는 분깃점이 될 것이라는 기대를 모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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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덕호 마이어 파트너스 대표는 개관 기념 기자간담회에 참석해 “솔올미술관은 머지 않아 강릉의 랜드마크가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리차드 마이어의 설계로 이미 유명해진 ‘씨마크 호텔’과 함께 솔올미술관은 그의 바람을 이뤄줄 만큼 충분한 근거를 갖고 있다고 보여진다.

 

넓고 긴 창으로 햇볕이 쏟아지는 1층 전시관 복도 ©BRIQUE Magazine
2층 전시관 복도 ©BRIQUE Magazine

 

걷다보면 알게 되는 미술관 이야기

솔올미술관은 마당을 중심으로 세 개의 건물이 감싸안은 형태로, 교동7공원을 등지고 있다. 해발 62m 높이에 위치한 덕분에 강릉 시내를 향해 뻗은 1층의 슬로프, 마당 공간과 전면을 유리로 마감한 2층의 전시장 통해 강릉 시내 풍경을 한눈에 내려다 볼 수 있다. 온갖 건물로 둘러싸인 서울에서는 쉽게 경험하기 어려운 개방감을 누렸다.

솔올미술관은 지상 2층, 지하 1층, 연면적 3221.76㎡ 규모로 조성됐다. 인근의 아르떼뮤지엄이 4975.00㎡ 규모인 점과 비교해보면 상대적으로 아담한 크기로, 전시 관람을 포함 두어 시간이면 미술관의 모든 공간을 경험할만한 규모였다. 오히려 넉넉지 않은 룸은 전시 공간을 촘촘하게 구획을 나누게 했고, 이러한 촘촘함이 작품을 감상하는 데 집중력을 잃지 않게 하는 요소로 귀결된다.

전시 공간은 1층과 2층으로 나뉘어져 있고, 계단을 타고 오르면 다음 전시 공간과 야외 데크로 이동할 수 있는 2층 공간이 펼쳐진다. 2층에서는 보이드void 공간을 통해 1층 로비와 시각적 소통이 가능하다. 

 

2층, 교동 시내로 뻗은 야외 데크 ©BRIQUE Magazine
2층 야외데크에서 바라본 1층 슬로프. 슬로프 끄트머리에는 엘리베이터가 연결되어 있다. ©BRIQUE Magazi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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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올미술관 설계의 주안점을 묻는 질문에 마이어 파트너스 연덕호 대표는 “외부와 내부, 또 건축물과 주변 경관이 조화를 이뤄야 한다는 생각을 담고자 했다”고 말했다. 실제로 미술관을 거닐다 보면 창밖 풍경이 또 다른 작품이 되는 순간을 마주하거나 자신도 모르는 새 숲으로 향하는 길을 발견하게 된다. 이러한 시퀀스는 마이어 파트너스가 구현하고자 의도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내부는 자연의 햇볕을 적극적으로 끌어들이는 리차드 마이어의 철학이 고스란히 담겨있다. 덕분에 미술관은 따뜻한 빛으로 가득하다. 백색 외관의 고요한 형태, 내부를 밝히는 충만한 햇볕의 매끄러운 조화는 건물 그 자체를 하나의 조형적 요소로 보이도록 한다. 

다만 아직 조경이 마무리되지 않아 휑한 흙바닥이 군데군데 보였고, 아직 뿌리내리지 못한 잔디도, 한 겨울의 창백한 나무도 공간에 허전함을 더해 아쉬움이 남았다. 하지만 잎이 자라고 잔디가 뿌리내리는 일은 시간이 해결해 줄 일이니, 여름 지나 가을이 올 즈음에는 기대했던 푸르른 솔올미술관의 모습이 갖춰지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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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층에서 바라본 1층. 기자 간담회에 몰려든 수 많은 인파가 공간에 대한 기대감을 가늠하게 했다. ©BRIQUE Magazine
1층 전시장. 개관전 ‘루치아나 폰타나: 공간, 기다림’이 펼쳐지고 있다. ©BRIQUE Magazine

 

해소되지 않은 두 가지 질문

‘백색 건축’으로 유명한 마이어는 1984년 ‘건축계 노벨상’으로 불리는 프리츠커상을 받았다. 그는 스페인 바르셀로나 현대미술관과 미국 로스앤젤레스 ‘게티 센터’ 등 세계 곳곳에서 미술관을 설계했다. 이번 프로젝트에는 그가 직접 참여하지 않았지만 2018년 ‘미투me too’ 사건으로 불명예스럽게 퇴진한 이야기가 개관을 계기로 다시 회자됐다. 창의성과 도덕성을 고루 갖췄더라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이 남았다.

오는 8월 이후 미술관 운영을 누가 맡을 지도 결론이 나지 않았다. 당초에는 기부채납 방식으로 강릉시로 이관될 예정이었는데, 현재 강릉시는 미술관 운영 예산을 책정하지 않은 상태이다. 개관 기념 ‘루치아나 폰타나: 공간, 기다림’ 전시와 ‘아그네스 마틴’의 개인전까지 마무리하면 이후에는 준비 중인 전시가 없다. 아무리 좋은 건축물이라도 적절한 콘텐츠가 지속적으로 공급되지 않는다면 공간은 금세 빛을 바랜다. 하루빨리 미술관의 운영 주체를 확정하고 권한과 책임을 부여해 랜드마크로서 자리매김할 수 있기를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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