따뜻한 햇살과 든든한 나무가 되어 주는 곳

[Spot] ⑤ 이태원 경리단길 공유오피스 ‘썬트리하우스Suntree House’
ⓒKwak Shin
에디터. 최성우  사진. 곽신, 최성우  자료. 썬트리하우스

 

운영자의 입장에서 조망하는 공간 이야기를 담는 시리즈 ‘스팟SPOT’입니다. 브랜딩과 공간감 모두 놓치지 않고 방문객을 새로운 경험으로 이끄는 장소가 그 대상입니다. 운영자를 인터뷰해 공간을 기획하고 구현하기까지의 과정을 살피고 그 속에서 나눌 수 있는 지혜를 전합니다.

 

회색벽이 거리를 가득 채우고 있는 서울 이태원동 골목 주택가에 노랑색 어닝과 초록색 벽이 유난히 눈에 띈다. 한번에 오늘의 목적지가 바로 저 곳임을 직감할 수 있었다. 경리단길 조용한 주택가에 자리한 공유오피스 ‘썬트리하우스Suntree House’다. 편지를 넣고 싶은 마음이 솟아나는 노랑색 우편함 옆 문을 두드리자 이곳을 기획, 운영하고 있는 이지현 금종각 그래픽 디자인스튜디오 대표가 반갑게 맞아 주었다.

 

이지현 대표 ⓒKwak Shin

 

혼자서 일하는 것보다 함께 일하는 재미

그래픽 디자이너인 이지현 대표가 어떻게 공유오피스를 운영할 생각을 하게 되었을까? 2019년 워킹홀리데이를 통해 떠나게 된 네덜란드에서의 경험이 시작이었다. 혼자 타국에서 지내게 되자 누군가를 만날 접점을 만들기도 어려웠고, 말 한마디도 안 하게 되는 날들이 이어지기도 하면서 이렇게 보낼 순 없다고 생각했다고 한다. 그래서 단골가게를 만들고 하우스메이트와 대화를 이어가보아도 채워지지 않는 무언가가 있었다. 그 때부터 그는 공유오피스를 찾기 시작했다. 대형 코워킹스페이스도 가보았지만, 회사에 소속되어 있는 사람들이 많아 각자 일에 집중하고 있는 상황에서 대화할 주제도 없고 명분도 없었다. 중소규모의 공유오피스를 물색하다가 만난 곳이 바로 로테르담에 있는 콜렉티브Collective다. 

 

썬트리 하우스에 영감을 준 로테르담의 ‘콜렉티브’ <사진 제공 = 썬트리하우스>

 

콜렉티브는 하나의 오픈 스페이스로 열린 공간에서 30명이 일한다. 대부분 1인 또는 2인이 한 팀으로 일하는 프리랜서들이 입주해 있다. 정말 다양한 분야의 일을 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이지현 대표가 입주했을 당시 6명이 디자이너였다. 기억에 남는 한 사람은 아프리카에 물을 공급하는 일을 하는 멤버였다. 공유오피스이기 때문에 가능한 경험이 바로 이 지점이다. 알지 못했던 다양한 직업을 알게 되고, 각자 프로젝트 결과물을 서로 공유하고 때로는 현장에 보러 가기도 하고, 외국인 멤버가 많아 서로 비자 문제 등의 고민에 대해 이야기할 수 있는 사람들을 자연스레 만나게 된다. 이곳의 멤버를 선정하는 방법도 재미있는데, 멤버 전원이 찬성하지 않으면 입주할 수 없다. 콜렉티브 만의 분위기를 유지하기 위한 노력이다. 콜렉티브에서의 경험이 공간 구성에서부터 커뮤니티 룰 셋업까지 다각적인 면에서 썬트리하우스 구상의 기틀을 마련하는 계기가 되었다. 

 

ⓒKwak Shin

 

함께 일하는 공간을 만들기까지

한국으로 돌아온 이지현 대표는 디자인 스튜디오를 운영하면서 한동안 집에서 일을 했다. 정말 하루종일 집 안에만 틀어박혀 일하다보니 피로가 쌓여갔다. 사무실이 필요했다. 잠깐 동안이지만 각자 디자인 스튜디오를 운영하는 지인들과 사무실을 공유해 보기도 했다. 사무실을 공유해 본 경험들이 쌓이면서 더욱 관심사가 비슷한 사람들 간의 대화를 통해 마감에 쫓겨 가지 못했던 전시나 트렌드, 세상 돌아가는 상황을 사무실에만 있어도 업데이트가 가능한 점, 그리고 고객과 사무실에서 미팅을 하게 될 때, 사무실 크기나 무드가 의사결정에 중요하게 작용했다는 점 등 공유오피스의 필요성은 더욱 그 스스로에게서 불타 올랐다.  네덜란드에서 보낸 공유오피스의 값진 기억과 잠깐 동안의 사무실을 공유해서 썼던 경험을 바탕으로 가능한 선에서 가장 큰 공간을 직접 찾기 시작했다. 

 

“무엇을 하든지 끝까지 올인하고 거기에 따라 오는 리스크는 책임지고, 리워드도 모두 누리자는 생각으로 최선을 다해 임하는 편이에요.”

 

그동안 많은 가게와 공간들이 짧은 시간 안에 사라지는 것을 목격하고, 임대차로 운영하기에는 어렵겠다고 판단했다. 그래서 공간을 만들기로 다짐하면서부터 매입해서 운영하기로 마음을 굳혔다. 시세를 파악하고 현실적으로 가능한 예산을 잡아 적정한 공간을 찾기 시작했다. 본업인 디자인을 병행해야 했기 때문에 일정을 급하게 잡진 않고, 최적의 장소를 찾는 것이 더 중요했다. 직주근접, 서울 중심이라는 점에서 용산구, 문화를 누릴 수 있는 지역 등의 조건을 가지고 생각했다. 그렇게 용산구, 마포구, 동대문구, 성동구 등 8개월에 걸쳐 셀 수 없이 많은 공간을 살펴 보았다. 심지어 부동산 사장님이 주소만 이야기하면, 어느 위치의 어떤 집인지 바로 연상이 될 정도. 

건물을 만나는 것도 인연이라고 했던가? 부동산 감정평가, 대출 상황 등 조달가능했던 예산 범위, 적당히 한적하고 문화지역과 인접한 위치적 만족감 등 썬트리하우스가 이곳에 세워졌다. 

 

ⓒSungwoo Choi
ⓒSungwoo Choi

 

예상치 못한 복병, 누수

본격적으로 공사를 시작하고부터 가장 어려웠던 점은 누수를 잡는 것이었다. 오래된 건물은 곳곳에 균열이 가서 구멍이 생겨 있기도 하고, 배관의 노후가 문제가 되기도 한다. 누수를 잡기란 불가능에 가깝다고 볼 수 있어 운영하고 있는 지금까지도 문제는 완벽히 해결되지 않았고, 현재 진행형이라고 한다. 
여담으로 이 건물은 특이하게 3개 층이 각각 다른 위치에 화장실이 배치되어 있었다. 계단실이 한 곳에 수직으로 있는 것처럼 배관 역시 길이가 짧을수록 상하수 처리의 측면에서도 효율적이다. 인테리어 공사를 하면서 누수 예방을 위해 여러 조치를 취했다. 예상치 못했던 부분이었고, 누수 이외에도 공사를 해보는 경험을 하면서 생각하지 못했던 다양한 이슈가 있었다며 이지현 대표를 잠시 먼산을 바라보았다. 

  

ⓒKwak Shin

 

일하고 먹고 쉬고 또 일하고, 썬트리하우스에서 보내는 시간  

썬트리하우스 공간은 단순하다. 사무실과 회의실, 그리고 탕비실. 회의실만 벽을 설치하고 그외의 공간은 다 오픈되어 있다. 사용 가능한 자리는 1층 7석, 2층 5석, 4인 회의실 1개, 3층 3석, 4인 회의실 1개, 총 15명이 사용할 수 있다. 2, 3층은 자작나무로 벽 마감을 하고, 책장 등 가구는 철 소재를 사용했다. 나중에 공사한 1층은 식물에 물을 주거나 컵을 씻을 때 물이 튀면 나무 소재는 변형되기 쉽기 때문에 관리 측면을 고려해 나무 무늬 필름 마감했다.
테이블 배치는 처음부터 창밖, 벽을 바라보고 있지 않았다. 마주 보고 놓아보기도 했다가 계속 사용하면서 조정해보고 있다. 운영의 묘미 중 하나가 아닐까. 공간의 완성은 결국 사람. 사용자들의 편의성이 제일 중요하다는 철학으로 멤버가 더 좋은 아이디어를 내면 직접 함께 수정해 보며 더 나은 환경을 만들기 위해 노력한다. 

 

ⓒKwak Shin
ⓒKwak Shin
ⓒKwak Shin
ⓒKwak Shin

 

2층 외벽까지 칠해진 깨끗한 초록색과 노란색 어닝이 썬트리하우스의 아이덴티티를 잘 드러내며 골목길을 밝히고 있다. 옥상에 오르면, 고층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서울시내가 훤히 내려다보인다. 캠핑 의자에 앉아 멍때리기 좋은 멤버들이 사랑하는 장소이다. 햇살이 강렬한 날에 태닝 이벤트를 진행하기도 했다고.  

 

<사진 제공 = 썬트리하우스>
 
<사진 제공 = 썬트리하우스>

 

멤버들 대부분 프리랜서이기 때문에 정시 출근, 퇴근의 개념과는 조금 다른 시간대로 일한다. 썬트리하우스의 루틴이 있다면, 점심을 다같이 함께 먹는 것이다. 물론 강제성이 있는 것은 아니다. 마감이 임박한 경우나 각자의 사정이 있기 때문에 자유롭게 참여한다. 점심시간이 귀중한 이유는 일하는 도중에는 가급적 스몰토크를 하지 않고 일에 집중하고, 함께 식사하는 동안 편하게 이야기 나눌 수 있기 때문이다.  

여러 사람들이 함께 사용하기 때문에 질서를 위해 규칙은 필수. 멤버들이 지켜야 할 규칙은 총 6가지다. 서로 인사하기, 구애하지 않기, 종교 권하지 않기, 정치 이야기 하지 않기, 보험 등 각종 판매 활동하지 않기, 한숨 쉬지 않기. 여기서 몇 가지 더 추가한다면, 길고양이 등 동물을 괴롭히지 않는다, 사용한 식기, 테이블은 직접 치우는 등 기본적인 에티켓을 준수하도록 하고 있다. 썬트리하우스는 서비스를 제공하는 시스템이 아니라, 함께 만들어 가는 공간으로 채워 나가고자 하기 때문이다. 

 

웰콤 보드 ⓒKwak Shin

 

“혹시 경험해 보신 적 있으세요? 일하다가 자정 가까운 시간이 되면 주변은 어둡고 환하게 불켜고 일하고 있던 제 모습이 그제서야 보여요. 그 때 현타가 오더라고요. 그치만 썬트리하우스에서 밤을 새면 달라요. 결이 다르다고 할까요? 우리 멋진 30대를 보내고 있구나. 잘 하고 있구나. 의지가 돼요.” 

 

ⓒKwak Shin
ⓒKwak Shin

 

자연스럽게 이어지는 인연들, 썬트리하우스 멤버 

디자인, 영상, 해외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는 멤버 특성상 밤 늦은 시간까지 불이 켜져 있는 날이 많은 썬트리하우스. 대부분 프리랜서로 일하는 멤버들에게 서로의 존재가 큰 힘과 위로가 된다. 그리고 실질적인 도움을 서로 주고 받기도 한다. 포토샵이나 영상 편집의 자잘한 기능을 물어본다거나, 명함을 처음 만드는 멤버에게 명함 사이즈, 인쇄소 컨택시 요령 등을 알려주는 등 전화해서 묻거나 시간 내서 만나야 하는 수고를 덜 수 있다. 새로운 프로젝트를 하다보면,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할지 모르겠는 경우도 생기게 되는데, 멤버들을 통해 경험 공유도 가능한 것. 각자가 하는 일에 대해 설명하는 시간으로 썬트리하우스 내부 워크숍을 열기도 한다. 

중소규모이기 때문에 멤버 한 사람 한 사람이 매우 중요했다. 첫 번째 멤버로 오신 분이 신기한 인연이었다. 인스타그램 알고리즘을 통해서 썬트리하우스를 알게 되었다는 것. ‘회원님을 위한 추천(You May Like)’, 즉 “네가 좋아할 거 같아서 추천해”라는 기능이다. 그렇게 인연이 되어 2년 이상 썬트리하우스 멤버로 사무실을 쓰고 있다. 결이 맞는 사람들이 멤버로 들어오게 된다. 사실 맞는지 안 맞는지는 겪어 봐야 아는 부분도 있고 설명하기 어렵다.

운영 초기에는 약간 운에 기대었다면, 1층까지 사무실로 확장하고 3년차를 맞이하면서 로테르담 콜렉티브의 방법을 벤치마킹해 적용해 보고 있다고 한다. 멤버가 되고자 하는 사람이 이메일로 자기소개를 보낸다. 이것을 멤버들이 확인하고, 전원이 동의하지 않으면 멤버로 받지 않는다. 자기소개에는 신분을 확실하게 보장할 수 있도록 어느 나라에서 살았고, 어떤 일을 어디서 했는지 구체적으로 작성해야 한다.

 

ⓒKwak Shin
ⓒKwak Shin
썬트리하우스 공간을 설명하고 있는 이지현 대표 ⓒKwak Shin
워크숍을 통해 3D 프린터로 직접 만든 간판 ⓒKwak Shin
ⓒKwak Shin

 

반의 반 발자국, 내 보폭이 넓히는 삶

일터는 태생적으로 즐겁기만 할 수 없는 곳일지 모른다. 하지만 만나면 반갑게 인사해 주고, 밤새 열심히 일하는 사람이 곁에 있어 주기만 한다는 것, 서로에게 배움을 주고 시야를 넓힐 수 있게 도와 주는 사람이 있는 장소. 그것이 썬트리하우스가 꿈꾸는 모습이자 이 공간을 찾는 사람들이 이곳에 머무르고자 하는 이유라고 생각한다. 일의 영역 뿐만 아니라 삶의 영역까지 반의 반 발자국 보폭을 조금 더 넓히고자 한다면, 다양한 분야에서 자신의 일과 삶을 조각해 내고 있는 사람들이 있는 썬트리하우스에 문을 두드려보길 바란다. 

 

“저는 다양한 분야의 사람들과 한 공간에서 일하면서 인생의 반의 반 발자국의 보폭이 넓어지고 있다는 걸 체감할 때 썬트리하우스 잘 만들었구나 생각해요.”

 

ⓒKwak Shin

 

이지현
금종각 그래픽 디자인 스튜디오 대표. 썬트리하우스를 기획하고 만들고 운영하고 있다. 책을 좋아해 디자인 분야 중에서도 편집디자인을 많이 하는 편이고, ‘서울 퍼블리셔스 테이블Seoul Publishers Table’이라는 독립 출판 북페어도 운영하고 있다.

 


썬트리하우스 Suntree House 
서울 용산구 이태원동 320
방문 및 멤버 문의 [email protected]
Homepage. http://suntree-house.com/
instagram
@suntree.hous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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