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옥마을에서 만난 덴마크 미니멀 디자인

[Focus] 프리미엄 수전 브랜드 볼라VOLA 서울 가회동 쇼룸
©SPOA & Jongyoun Jung
에디터. 최성우  사진. SPOA, 정종윤, 윤현기, 최성우  자료. 볼라코리아 VOLA Korea

 

북촌 붐비는 거리에서 골목 안으로 몇 걸음만 걸어 들어가면 서울 도심이라고 믿기지 않게 조용한 동네가 펼쳐진다. 한적한 골목에 55년 동안 ‘수전Tap’이라는 한 우물만 고집스럽게 연구하고 있는 덴마크 브랜드 볼라VOLA의 서울 쇼룸이 지난 9월 1일 오픈했다. ‘쇼룸’을 상상하면, 팬시한 거리에 유동인구가 많은 지역에 있어야 한다고 정석이라고 생각할 텐데, 가회동 한적한 골목에 있을 뿐만 아니라 심지어 간판도 크게 드러나지 않는다. 볼라에게는 자신들만의 길을 지키며 한 방향만을 바라보고 걸어가는 어떤 힘이 있는 것 같았다. 어떤 철학의 토대 위에 쇼룸이 만들어졌는지 대문을 열고 들어갔다. 

 

©SPOA & Jongyoun Jung

 

볼라 포 라이프VOLA. For Life 

쇼룸에 앞서 볼라의 철학을 먼저 살펴본다. ‘수전’이라는 한 분야를 깊이 오래도록 파고 있는 그들의 행보만 보더라도 특별함이 이미 느껴진다. 시즌마다 캠페인을 전개해 그들의 철학을 공유하고 실천하고 있는데, 이번 캐치프레이즈는 ‘볼라 포 라이프VOLA. For Life’다. 한 평생을 함께 할 수 있는 좋은 디자인을 추구한다는 볼라의 생각을 담았다.

집Home
가장 소중한 사람과 함께 하는 공간이 바로 ‘집Home’이다. 가족과 이웃, 친구들과 시간을 보내며 추억이 쌓이고 시간이 지나면 추억은 역사가 되는 의미있는 공간이라는 콘셉트를 중심으로 캠페인을 전개해 나간다.

타임리스 디자인Timeless Design
아름다운 형태의 디자인이라는 것은 당연하고, 어떤 시대에서도 설득 가능한 아름다움, 즉 시대를 초월하는 디자인을 추구한다. 이것은 아르네 야콥센Arne Jacobsen의 오리지널 디자인으로 1969년 디자인 어워드(ID Prisen Award)에서 최초 수상한 이후, 2019년에 다시 한번 동일한 디자인으로 상(German Design Award)을 받게 되면서 타임리스 디자인이 증명되었다.

오래도록 쓸 수 있는 제품Longevity
수전을 비롯한 욕실 제품은 기본적으로 소모품이다. 오래 사용하면 새로 구입해야 하는 경우가 많다. 볼라는 첫 수전을 디자인할 때부터 오래 쓸 수 있는 제품으로 고안했다. 모든 부속을 모듈화하여 노후한 개별 부품만 교체하면 새 것처럼 사용할 수 있다. 1960년대 초기에 제작된 부품에서부터 개량된 부품까지 모두 호환이 가능하도록 설계돼 있다. 여러 세대에 걸쳐 사용할 수 있는 수명이 긴 제품을 만든다. 

 

©SPOA & Jongyoun Jung

 

브랜드를 가장 잘 설명하는 방법

쇼룸은 볼라의 브랜드 철학을 설명하기 위해 꼭 필요하다. 유럽 7개의 지사(영국, 독일, 벨기에, 스위스, 오스트리아, 네덜란드, 스웨덴) 모두 쇼룸을 갖추고 있다. 2016년 아시아태평양지역에 처음 진출한 호주 맬번에도 쇼룸이 있다. 이곳에서 제품을 직접 보고 만져 보고 수압을 느껴보는 체험을 하게 된다. 또한 아르네 야콥센의 오리지널 디자인에서 적용된 기술력과 활용에 따라 다양하게 구현할 수 있는 모듈 시스템에 대해 자세히 설명을 들을 수 있다. 볼라 쇼룸의 궁극적인 목표는 볼라와 방문객이 서로 아이디어를 공유하고, 영감을 주고받고, 관계성을 쌓아나가는 것이다. 그래서 어떤 지역에 위치해 있는지, 공간의 분위기는 어떠한지가 매우 중요한 요소가 된다. 운영 방식 역시 누구나 방문은 가능하지만 사전 예약을 통해서만 방문객을 맞이하는 것 또한 같은 이유다.

 

©SPOA & Jongyoun Jung

 

최적의 장소를 발견하기 위한 여정

2019년 지사 설립 이후, 3년만에 쇼룸이 완성되었다. 오래 걸린 이유는 적합한 공간을 찾는 데에 많은 시간을 할애했기 때문이라고 한다. 볼라 쇼룸의 후보는 반짝거리는 새 건물보다 오래된 건물, 그곳의 역사를 최대한 보존해서 잘 이어갈 수 있는 건물이었다. 공간의 역사까지 볼라의 철학과 결이 잘 맞아야 했다.
2022년 본사 임원진이 다시 한번 한국을 방문해 서울 곳곳을 둘러 보았다. 가보지 않은 동네와 확인해 보지 않은 매물이 없을 만큼 꼼꼼하게 살펴보다가 만나게 된 지역이 북촌이다. 경복궁과 창덕궁 등이 옛 궁궐이 있고, 갤러리나 미술관 등 문화공간이 다양하게 있어 문화적, 역사적으로 중요한 위치라는 점이 결정하는 데에 크게 작용했다. 볼라 본사 마케팅 디렉터 비르테 토프팅Birthe Tofting은 이곳으로 결정한 이유에 대해 “가회동은 덴마크의 환경과 매우 비슷해요. 전혀 낯설지 않았어요. 고향에 온 것(Feel at Home)처럼 편안해서 좋았어요”라고 설명했다.

 

ⓒSungwoo Choi

 

볼라 서울 쇼룸은 60년 이상된 한옥과 근대식 양옥이 하나의 담장 안에 공존하고 있는 특이한 형태를 취하고 있다. 전통과 현대가 공존한 모습이 마치 한국과 덴마크 문화가 만나 조화를 이루고자 하는 것과 겹쳐지면서 적합한 공간임이 분명했다. 하지만 시작 단계에서부터 난관이 많았다. 완성된 현재 모습을 보아서는 믿기지 않겠지만, 30년 넘게 누구도 사용하지 않고 방치되어 있었던 곳이어서 사실상 폐가였다. 당시 현장을 방문했을 때, 과연 이 건물을 소생시킬 수 있을지 근본적인 의문이 들어 고민이 많았다고 한다. 하지만 이곳이야 말로 현대와 전통의 조화를 통해 볼라가 추구하는 철학을 구현하기에 적합한 장소라고 판단해 뚝심있게 고치는 방향으로 진행했다.

서울 쇼룸의 특별한 점은 한국 건축가(Local Architect)와 함께 작업한 것이다. 이것은 상당히 이례적인 경우인데, 그동안 유럽을 포함한 모든 지사의 쇼룸은 덴마크 건축가가 담당해 왔다. 그 이유는 볼라의 철학을 가장 잘 이해하고 구현해 낼 수 있기 때문이다. 이번 쇼룸은 한국의 독특한 건축 양식인 ‘한옥’ 공간을 다루어야 하는 상황이었기 때문에 로컬 건축가가 프로젝트를 진행하게 되었다. “볼라가 덴마크와 한국의 문화를 연결하는 가교 역할을 했으면 한다”는 그들의 생각을 쇼룸을 통해 실현한 것이다.

 

©SPOA & Jongyoun Jung
©SPOA & Jongyoun Jung

 

영감을 나누는 편안한 장소, 쇼룸Showroom

한옥과 양옥, 극명하게 다른 두 건물이 마당을 사이에 두고 이어져 있다. 한옥은 가장 오랜 시간동안 체류하는 볼라코리아 임직원들을 위한 사무실이다. 한옥은 본래 집으로 사람들이 오랜 시간 머물며 일하기에 더 나은 환경이기 때문에 사무실로 선택됐다. 한국의 기후와 문화에 적응하며 진화해 온 한옥의 정신을 이어 본래 형태에서 최소한의 변형만 하되, 테이블과 의자를 사용하는 현대의 생활방식에 맞게 편의성을 고려했다. 공간은 마당을 바라보며 앉을 수 있는 응접실, 사무 공간과 비품실, 회의실로 구성되어 있다. 한옥에는 아르네 야콥센이 디자인한 의자가 놓여져 있었는데, 전혀 이질감 없이 잘 어울렸다. 

 

정원에서 바라본 사무실(오른쪽 한옥)과 쇼룸(중앙) ⓒSungwoo Choi
응접실, 마주 보이는 안쪽 공간이 사무실이다. ⓒSungwoo Choi
회의실 ⓒSungwoo Choi

 

1960년대 건물을 리노베이션한 쇼룸은 3면이 열려 있어 개방감이 좋다. 마당의 돌바닥이 실내로 이어져 외부와 내부가 자연스럽게 연결되는 듯해 더욱 그러하다. 중앙에 벽을 기준으로 수전 제품 등 모든 라인업과 모듈 시스템을 설명하는 구역, 수전을 직접 사용해 볼 수 있는 체험 구역으로 나뉘어져 있다. 사이사이에 남겨진 벽은 건물의 구조를 지탱하던 당초 역할은 쇠퇴했지만, 역사를 떠올리게 하는 요소가 되었다. 한국 전통 건축에서 사용한 재료를 적극 활용했다. 단청 오색에서 색을 뽑아내 벽을 칠하고, 체험 구역의 욕조와 벽면에 사용한 석재 또한 한옥에서 자주 사용하는 재료다. 볼라 수전 제품에서 사용하는 색상과 재질감과 잘 조화를 이루고자 현대적인 재료 또한 적절히 사용했다.

앞마당과 정원이라는 외부 공간을 통해 쇼룸은 더욱 풍부해졌다. 마당, 쇼룸, 응접실, 사무실을 오고가며 도심 속에서 자연을 누리는 경험을 하게 된다. 여름이 되면 사무실 안에서 새가 지저귀는 소리를 듣고, 창밖으로 시시각각 변하는 계절감을 그대로 느낄 수 있는 환경을 통해서 영감을 나누는 공간으로 완성된다.  

 

©SPOA & Jongyoun Jung
©SPOA & Jongyoun Jung
©SPOA & Jongyoun Jung
©SPOA & Jongyoun Jung

  

“저희는 다른 제품과 재료에 대해서는 알지 못해요. 하지만 수전에 대해서만큼은 제일 잘 알고 잘 할 수 있어요.”

 

다양하게 제품군을 늘리지 않고 수전Tap만을 만들고 있는 이유를 물었을 때, 비르테 토프팅Birthe Tofting 마케팅 디렉터가 한 대답이다. 오랜 시간동안 수전 브랜드로 굳건히 자리잡고 있는 볼라의 힘은 무엇일까? 저 대답에 볼라의 철학이 함축되어 있다. 아르네 야콥센의 아름다운 디자인과 시대를 앞서 체계화시킨 모듈 시스템, 이를 지키면서 한 걸음씩 발전해 나가는 볼라의 의지가 있기에 100년을 넘어 여러 세대에 걸쳐 성장하는 브랜드가 되지 않을까 기대해 본다.

 

볼라코리아 가회동 쇼룸 오픈하우스에 참석한 덴마크 본사 임원들 ©Hyeonki Yoon
©SPOA & Jongyoun Jung

 


볼라 서울 쇼룸 VOLA Showroom in Seoul 

주소.
서울 종로구 북촌로7길 11-3

문의 및 사전 예약. 
+82-70-8833-5200
[email protected]
@vola_korea

 

볼라의 기업철학과 기술력을 소개한 기획기사

[Brand Story] 수전계의 오트 쿠튀르, 볼라VOLA #1 공간의 인상을 좌우하는 최후의 디테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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