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 읽어주는 여자

[Life in greenery] ⑥쎄종 플레리 임지숙 대표가 꽃과 풀로 기획하는 온·오프라인 콘텐츠 이야기
글. 이현준 에디터  자료. 쎄종 플레리  Saison Fleurie

 

꽃으로 이야기를 짓는 사람이 있다. 꽃다발을 만들어 파는데 머물지 않고 꽃에 관해, 꽃 만들기에 관해, 꽃 만드는 사람에 관해 이야기를 만든다. 해외 유수의 플라워 아티스트를 초청해 워크숍을 주최하고, 플로리스트 간 교류할 수 있는 커뮤니티도 마련한다. 최근에는 쎄종 플레리 유튜브 채널을 개설해 꽃을 주제로 대중들에게 재미있고 유익한 정보를 전달하고 있다.

꽃 이야기꾼, 임지숙 쎄종 플레리Saison Fleurie 대표. 전혀 다른 시각과 방법으로 꽃과 초록을 전파해 온 그의 이야기를 들었다. 

 

임지숙 대표(왼쪽)가 기획하고 파주 출판단지에서 최근 진행한 에르콜레 모로니Ercole Moroni와의 플라워 콘서트 현장 ⓒSaison Fleurie
쎄종플레리 유튜브 채널

 

꽃과 풀을 다루는 사람들을 한 자리에 불러 모으다

 

영국에서 일할 땐 다른 꽃집에 들르면 “아, 저도 플로리스트예요” 하면서 자연스럽게 얘기 나누고 질문도 하곤 했다. 근데 한국에 오니 모두가 라이벌 같았다. 서로 견제하고 경쟁자로 여긴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그러다 보니 어쩔 수 없이 왕래가 줄고 피하는 일이 잦아지더라. 꽃을 하는 친구들도 신라호텔에서 함께 있던 친구들이 전부였다. 그 친구들마저도 하나둘씩 그만두더니, 급기야 꽃 이야기를 할 수 있는 사람은 손에 꼽을 정도의 사람들과 내 직원들 정도가 됐다. 주변에 친구들이 많은 편이지만 그들에게 꽃과 관련한 시시콜콜한 이야기를 모두 털어놓을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그래서 늘 이런 이야기를 할 수 있는 사람들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임지숙 쎄종 플레리Saison Fleurie 대표 ⓒBRIQUE Magazine

 

어느 날 TV를 보는데, 셰프끼리 요리 대결도 하고, 삼삼오오 모여 여행도 가고 그러더라. 그걸 보면서 ‘플로리스트도 저렇게 뭉치면 참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같은 일을 하는 사람들끼리 서로 적대적이면 멀리 봤을 때 결코 좋지 않다. 우리가 우리의 목소리를 내야 할 때가 분명히 있을 텐데 다들 외따로 떨어져 있으면 아무것도 할 수 없다. 그래서 런던에서 두터운 친분을 쌓았던 폴라 프라이크Paula Pryke 선생님에게 메일을 썼다. ‘내가 기획을 맡고 사람들을 모아 이런 행사를 열고 싶다’, ‘폴라를 포함해 친구들 세 분 정도가 함께 서로의 꽃과 우정을 보여주는 자리가 있다면 우리에게도 분명 좋은 영향을 미칠 것 같다’며 말이다. 다행히도 폴라 선생님이 흔쾌히 승낙해 주셨다. 얼굴을 보고 이야기를 진척시켜야 할 것 같았는데 마침 그때 당시 폴라 프라이크와 일본의 꽃 프렌차이즈 ‘히비야 카단’의 협업 건으로 선생님이 오사카에 와 계셨다. 둘째 아이를 낳은 직후였지만 그 길로 비행기를 탔다.(웃음) 

 

네 명의 아티스트, 하나의 웨딩

 

그렇게 일본에서 귀국한 뒤 계획을 추진했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속전속결, 뭐든지 한 번에 끝내는 걸 좋아하지 않나. 한자리의 워크숍에서 각기 다른 스타일의 플로리스트에게 배울 기회라면 정말 획기적이지 않을까 생각했다. 단, 네 명의 아티스트가 모두 친분이 있어 쾌활한 분위기에서 진행될 것. 폴라 선생님으로부터 친구들의 명단을 받았고, 그중에서 3명을 추려 총 4명으로 이루어진 팀을 짰다. 나흘 동안 한 사람씩 각자의 수업을 하고, 하루 동안 네 명이 하나의 웨딩 쇼를 연출하는 프로그램을 기획했다. 보통 웨딩 공간 디자인은 한 명의 디자이너가 도맡는데, 이 행사에선 컬러 톤만 통일한 후 네 명이 각자의 스타일을 확연히 드러내며 하나의 웨딩을 연출하게 되니 전에 없이 새로운 공간이 탄생한 것이다. 매우 큰 규모의 공간이 필요했고, 호텔 연회장을 물색하면서 자체 플라워 브랜드를 내세우지 않는 곳을 추려내야 했다. 이렇게 폴라 선생님을 비롯해 런던의 ‘Top 4’ 아티스트를 초청한 게 2015년 10월의 일이다. 처음 기획한 행사가 생각보다 크게 치러졌는데, 그 이후로도 한 분, 두 분 초대해 지속적으로 기획해 온 게 벌써 10회를 넘어서고 있다. 작년엔 2015년과 비슷한 규모로 뉴욕의 Top 4 아티스트를 모아 진행했다. 

 

2015 쎄종플레리 런던 Top 4 플라워 아티스트 워크숍에 참가한 폴라 프라이크 Paula Pryke과 쉐인 코널리Shane Connolly ⓒSaison Fleurie
2018 쎄종플레리 뉴욕 Top 4 플라워 아티스트 워크숍에 참가한 니콜렛 오언Nicolette Owen과 루이스 밀러Lewis Miller ⓒSaison Fleurie

 

뉴욕 플로리스트 듀오 펏남 & 펏남 Putnam & Putnam 워크숍

 

2017년 당시 한국에 정식으로 소개된 적은 없지만 이미 수많은 매체와 인스타그램 등에서 매우 뜨거운 반응을 얻고 있는 플로리스트 듀오, 펏남 & 펏남Putnam &Putnam을 쎄종 플레리 워크숍에 꼭 초청하고 싶었다. 그동안은 항상 지인의 연결고리나 소개를 통했지만, 펏남 듀오에게는 일면식도 없이 무작정 한 통의 긴 메일을 써서 보냈고 의외로 ‘오케이’를 받았다. 해외 아티스트를 초청하는 행사는 생각보다 큰 비용이 소요된다. 초청 인사별로 조금은 차이가 있지만, 참가자가 하루 수업에 부담해야 하는 비용은 60만 원에서 120만 원가량이다.

워크숍을 개최할 때마다 경제적인 리스크를 안고 진행한다. 펏남 듀오를 초청할 때만 해도 그와 같은 부담이 있었고, 그들을 기다리는 한국인들이 많으리라는 예상은 전혀 하지 못했다. 그러나 워크숍 소식이 나가고 예약이 오픈되자마자 마치 점심시간의 중국집처럼 전화가 밀어닥쳤다. 3일 만에 준비된 60자리가 동이 났고, 준비하는 데 쓰인 비용도 거의 회수가 됐다. 추후 펏남 듀오에게 어떻게 생면부지의 내 초청을 받아들일 수 있었는지 물었더니 긴 이메일에서 진정성이 느껴졌다고 했다.(웃음) 더구나 알고 봤더니 펏남 듀오 인스타그램 계정의 국가, 도시별 팔로워 숫자가 뉴욕에 이어 런던과 서울에서 두 번째로 많았다고 한다.

 

2017년 쎄종플레리 워크숍에 참가한 펏남 듀오 ⓒSaison Fleurie
펏남 듀오의 쎄종플레리 워크숍을 위한 작품들 ⓒSaison Fleurie

 

돈보다 중요한 것

 

다양한 워크숍이 생겨나고, 때로는 본질이 흐려져 이런저런 오해를 받기도 했다. 워크숍에 초청할 아티스트들을 섭외할 때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것은 꽃과 풀을 다룰 때 그들이 하는 생각, 그들이 지닌 철학이다. 잘 연출된 이미지나 SNS의 팔로워 수는 워크숍에 초청할 사람을 선정하는 기준이 되지 못한다. 아마 나는 트렌디한 사람이 아닌가 보다.(웃음) 그래서 지금 막 꽃을 시작하는 분들에게는 쎄종 플레리의 워크숍이 조금은 어렵게 느껴지는지도 모르겠다. 우리나라에서 꽃과 풀을 하는 사람들에게 진정으로 좋은 사람을 소개해주고 싶다. 귀한 것을 나눈 것, 우리가 같이 발전하고 성장하는 것. 돈을 버는 것보다 훨씬 중요한 일이다. 이 모든 걸 사업적으로만 접근했다면 지금까지의 워크숍은 아마 없었을지 모른다. 

 

ⓒBRIQUE Magazine

 

Youtube, ‘꽃 읽어주는 여자’

 

사람들이 꽃과 풀에 더 많은 관심을 가지게 된 건 ‘스몰 웨딩’ 트렌드와 인스타그램도 한몫을 했다. 큰 돈을 써가며 엄청난 양의 꽃을 장식하고 ‘스드메(스튜디오∙드레스∙메이크업)’를 챙겨가며 획일적으로 식을 올리던 예전과 달리 지금은 간소하고 캐주얼한 디자인의 드레스를 빌려 입는다. 꽃장식에 대한 취향도 세분되어 신부 스스로 디자인하려는 흐름도 생겼다. 예전엔 사람들이 잘 모르니 선호하는 컬러 정도만 일러줬다면, 요즘에는 각자가 좋아하는 꽃의 종류를 특정하기도 하고 인스타그램과 핀터레스트에서 레퍼런스를 찾아오는 등 그 욕구와 취향이 굉장히 다채로워졌다. 

갈수록 사람들의 기호와 목소리는 풍성해진다. 일반 대중들과도 이제는 소통이 필요하다고 생각되어 쎄종 플레리 유튜브를 시작하게 됐다. 꽃과 풀을 다루는 다른 유튜브 영상들을 여럿 찾아봤는데 자극적이기만 한 내용도 많더라. ‘플로리스트들이 얼마 버는지 궁금하세요?’ 라거나 꽃시장에서 꽃들이 한 단에 얼마인지 일러주는 노이즈 성 콘텐츠가 많았다. 그런 영상들을 보며 ‘자기 살 깎아 먹기’가 아닌가 했다. 곧 플로리스트 자신을 ‘디자이너’가 아니라 이목을 끌 수 있는 직업으로만 부각하는 것이다. 대중들에게 제대로 된 정보로 유익하게 다가갈 수 있는 영상을 만들어보고 싶었다. 꽃의 원가가 얼마고, 플로리스트들은 얼마를 벌고, 하는 말초적인 정보로 사람들의 시야를 흐리기보다 소비자와 플로리스트를 잇는 다리 역할을 하고 싶었다.

 

쎄종 플레리 유튜브 채널 (클릭하면 유튜브 채널로 이동)
쎄종 플레리 유튜브 채널 (클릭하면 유튜브 채널로 이동)

 

꽃 피는 계절

 

프랑스어로 ‘꽃피는 계절’을 말하자면 ‘쎄종 플레리Saison Fleurie’다. 모든 꽃은 저마다 피는 계절이 있다. 인터뷰를 마치고 도란도란 남은 이야기들을 나누는 동안 임지숙 대표는 <브리크 brique> 매거진을 위해 그녀만의 감각을 녹여 꽃을 꽂아주었다. 쎄종 플레리는 자연의 한 부분을 오롯이 떠다가 올려놓은 것처럼, 인위적이지 않은 모습의 꽃을 지향한다.  

“런던의 쉐인 코널리Shane Conolly 선생님은 저에게 정말 많은 영향을 주신 분이에요. 과일도 제철 과일에서 최상의 맛을 느낄 수 있듯이, 꽃과 풀도 딱 그 시기가 아니면 보지 못하는 것들이 있어요. 그때 그걸 소재 삼아 만들어야지 왜 굳이 비싼 항공료에 탄소를 발생시키면서 먼 길 온 수입 꽃을 쓰나, 하는 생각인 거죠. 지금 여기 이 순간 이렇게 예쁜 것들이 많은데 말이죠. ‘공작초’라고 정말 흔하디흔한 꽃이 있어요. 오직 공작초 하나만 가지고 가장 아름다운 모습을 만들어내는 쉐인 선생님을 보고 참 많은 걸 배운 기억이 나요.”

 

2015년 워크숍 현장. 흔하지만 지금 여기 가장 예쁘게 핀 공작초로만 만들어 낸 쉐인 코널리Shane Connolly 의 꽃 ⓒSaison Fleurie

 

“작년엔 뉴욕에서 아리엘라 쉐자Ariella Chezar 선생님이 오셨었죠. 아무리 부피감과 질감이 있는 꽃과 풀도 마법처럼 손질해서 아주 가볍게, 에어리airy하게 연출하는 분이세요. 꽃을 꽂는 시연을 하기 전에 함께 꽃을 고르러 갔는데 정말 누구나 매일 볼 수 있는, 평범하기 그지없는 꽃들만 고르시는 거예요. ‘특별한 퍼포먼스인데 저런 재료들로만 될까?’ 하는 걱정이 있었는데 웬걸요. 그 흔한 꽃들을 가지고 특별한 부케를 만들어 모두를 반하게 만든 그 순간을 잊을 수 없어요. 평범한 것을 비범하게 만드는 재능을 가진 사람이야말로 진짜 고수가 아닐까, 생각했어요.”

 

2018년 워크숍 현장. 평범한 꽃들만 모아 비범하게 연출하는 아리엘라 쉐자Arielle Chezar ⓒSaison Fleurie

 

“인간은 자연을 곁에 두고 싶어 하는 본성이 있다고 해요. 그래서 사람들이 그렇게 집에 꽃을 사다 놓고 나무도 기르고 하는 거죠. 역사를 돌아보면 산업과 기술이 발전하면서 초록에서 조금은 떨어져 있던 사람들이 이제는 다시금 자연으로 회귀하는 느낌이에요. 여유가 생기면서 집에 있는 시간이 늘어나기도 하고, 물질적인 것들을 추구하다가 이제는 자연에 눈을 둘 시간이 생긴 거죠. 앞으로 이 흐름이 점차 강해질 거라고 생각해요. 선물 목적으로만 꽃과 풀을 사던 사람들도 이제는 나 자신을 위해서 사기 시작할 거예요. 유럽 사람들의 일상에는 이미 녹아있죠. 월요일마다 들러서 자기 사무실 책상에 놓고 일주일 동안 두고 볼 꽃을 사 가는 사람들을 보면서 큰 충격을 받았던 게 아직도 생생하니까요. 제가 세컨드 브랜드의 이름을 ‘먼데이 플라워’라고 정한 이유이기도 해요.

돈 만 원 이만 원에 꽃을 살 수 있음에 감사하다는 생각을 해요. 농부들의 피땀이죠. 그 꽃을 피워내는데 정말이지 너무나 힘들어요. 물만 준다고 크나요, 농부들이 어마어마한 시간과 노력을 투자해 발아 시켜 키워내고, 병충해가 들지 않게 밤낮으로 신경 쓰고, 해가 나면 더울까, 해가 지면 추울까 노심초사하며 한 송이를 피워내는 데는 인고의 시간이 필요해요. 그렇게 피워낸 생명이기 때문에 참 귀해요. 그걸 지폐 한 장으로 살 수 있다는데 되려 감사한 마음마저 생기는 이유죠.”

 

ⓒBRIQUE Magazine
임지숙 대표가 <브리크 brique> 와 인터뷰 하며 만든 작품. 덕수궁의 여름 풍경에서 영감을 받아 우리나라에서 여름에 나는 제철 꽃들로만 이뤄져 있다; 배롱나무 꽃, 
여름라일락(부들레아), 클레마티스, 클레마티스 씨방, 헬리옵시스, 과꽃 ⓒBRIQUE Magazi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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