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디터. 박경섭 글 & 자료. 임태희 디자인스튜디오 Lim Taehee design studio
서울은 빠르게 변화하는 모습이 큰 매력이지만, 기존의 것이 너무도 쉽게 없어지곤 한다. 이런 광경과 마주하면 직업 윤리에 관한 고민이 든다. 새로운 것이 등장하는 일도 중요하지만, 지키는 일 또한 무척이나 막중한 책임감이 따르는 일이다. 그래서 보존이라는 이름 아래 진행되는 프로젝트와 만나게 되면, 자연스레 무거운 사명감을 갖고 일에 임하게 된다.
계단집은 사연이 많은 집이었다. 이 집을 지키는데 있어 개인적인 고민도 컸지만, 지난 2년여 간 스튜디오의 모든 이들이 함께 고민에 동참했다. 적산가옥인 계단집은 오늘날 서울의 현실을 비추는 하나의 단면이다. 솔직히 말해 계단집과 처음 마주했을 때, 계단집이 지켜나가야 할 건축적인 가치가 무엇일지 의구심이 들었다. 그래서 무엇을 만들것인지가 아니라, 무엇을 남길지부터 고민하며 해결의 실마리를 찾아나갔다. 먼저 무분별하게 방의 구조를 허물지 않는다는 원칙을 정하였다.
방의 배치는 곧 그 집이 간직한 기억이며, 그것을 지키는 일이 보존의 가치와 맞닿아 있다고 생각한다. 계단집은 주택으로 쓰이던 곳이라, 카페로 바꾸기에 여러모로 어려운 지점이 있었다. 그럼에도 구조를 무리하게 확장하거나 변경하는 일은 하지 않기로 했다.
방의 배치뿐 아니라 높이에 대한 기억도 보존했다. 계단집은 방과 문 등의 개구부가 매우 낮게 구성되어 있는데, 이 집이 적산가옥이라는 것을 드러내는 가장 큰 단서이자 증명이었다. 다만 리노베이션 이전의 층고가 현재 한국인들의 평균 신장을 기준으로 해도, 자칫 머리를 부딪힐 수 있는 높이라 세심한 조정을 바탕으로 작업해야 했다. 마지막으로 계단집의 원형을 유추해 당시의 분위기를 만들어갈 수 있도록 레플리카 보존법을 적용해 리노베이션 작업을 진행하였다.
계단집에 관한 자료가 극히 부족했기에 과거 계단집은 마치 이러했을 것이라는 상상력을 최대한으로 발휘해야 했다. 다다미 치수에 딱 맞는 방에 다다미를 깔기도 했다. 비록 계단집 리노베이션은 상상의 원형을 바탕으로 진행된 작업이지만, 일식 주택에 대한 많은 탐구와 연구를 바탕으로 진행했음을 밝힌다.
어느날 계단집을 방문한 한 손님이 이런 집이 아직도 남아 있느냐며 신기해하는 모습을 본 적이 있다. 계단집 프로젝트를 진행하며 화려하고 강렬한 것이 디자인의 본질이 아니라는 사실을 다시 한번 깨달았다. 다음 세대에게 무엇을 남길지, 또 서울이 지켜야 할 가치가 무엇인지를 고민할 수 있었던 프로젝트를 진행할 수 있어 큰 보람을 느꼈다.
‘계단집’ 전체 스토리 담은 <브리크brique> 종이잡지 vol.4
*책 자세히 보기 https://brique.co/book/brique-vol-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