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비스쿰 Nobis Cum

에디터. 정지연  글 & 자료. 톤 건축사사무소 TONN Architects

 

처음 건축주를 만나게 되면 항상 말씀드리는 이야기가 있다. 단독주택을 설계하는 것은 맞춤 옷을 만드는 것과 같다는 점을 강조한다. 팔이 조금 기신 분, 합성섬유에 알러지가 있는 분, 과감한 디자인을 즐기시는 분, 고급스러운 소재를 즐기시는 분, 안감이 있는 디자인, 주머니가 많은 디자인, 투 버튼, 쓰리 버튼 등. 몸의 치수를 세심하게 잘 재고 고객이 원하는 바를 많은 질문과 대화를 통해 파악한 다음, 섬세하고 다양하게 맞춤 옷을 만들어낸다. 옷이 모양을 갖추면 고객은 다시 방문하여 몸에 잘 맞는지 확인한다. 이렇게 여러 수고로운 과정을 통해 나에게 꼭 맞는 하나밖에 없는 옷이 만들어지고, 그 옷은 분명히 기성옷과는 다른 의미로 나에게 다가온다.

단독주택의 설계도 이와 같다. 다만 주택을 신축하는 것은 많은 자금이 필요한 쇼핑이라 더욱 신중할 필요가 있다. 내가 살고 싶은 집에 대한 깊은 고민이 전제되어야 하며, 내가 어떤 사람이고 어떤 삶을 원하는지 세세한 부분을 건축사와 이야기 나누고 고민할 수 있는 관계가 되어야 한다. 내가 사는 집에 내 삶을 온전히 담아야 한다. 그래야 주택이 주는 만족감이 커지며 가치가 높아질 것이다.

 

 

건축주와는 첫 미팅 후 원주와 판교라는 거리를 넘어 자주 만나 이야기를 나누었다. ‘노비스쿰 Nobis Cum’은 건축주가 처음부터 마음에 두고 있었던 주택의 이름이다. 라틴어로 ‘우리와 함께’라는 뜻으로 종교적인 의미를 갖고 있다.
건축주는 외향적인 성격으로 다양한 사교 모임을 리드하고 있었고 다정하고 사려깊은 성품의 소유자였다. 다만 단독주택에서의 거주는 처음이어서 프라이버시에 대한 우려도 많았고, 나이 드신 어머니가 생활하시기 편하기를 바랐다. 그녀 역시 정년을 앞두었기에 주택의 유지 관리에 손이 많이 가지 않는 것도 중요했다.

 

 

건축사인 나 역시 10년째 주택살이를 하고 있기에 시행착오를 바탕으로 한 주택 계획을 제안했다. 바닥의 포장 면적을 늘리고, 포장은 최대한 유지 관리가 쉬운 화강석 등으로 제안했다. 조경은 화살나무 등 건축주의 요청을 반영하되, 4계절을 즐길 수 있도록 설계했다. 택지 지구 지침 내에서 최대한 프라이버시를 확보하기 위해 차도와 인도에는 담장을 배치하고 반대측으로 주택을 배치했다.

또 관리하기 쉬운 단층 주택으로 계획했다. 단독주택은 향이 가장 중요하기에 모든 실들이 남향을 보도록 배치하였으며, 프라이버시 보호를 위해 건축 외벽을 확장해 담장의 역할을 하도록 했다. 마당을 바라보는 창호 외의 창은 높이나 크기 등을 조절해 주변을 지나가는 차나 사람들로부터 시선을 피하도록 했다.

 

평면 계획 및 각 실의 특징

• 평면계획 : 어머님을 모시고 살기에 형제자매가 방문해 며칠씩 머무르는 일도 잦았다. 그래서 사적인 공간인 침실과 공적인 공간인 거실, 주방이 명확히 구분되도록 하였다.
• 티룸 : 관리하기 편하도록 최소 규모의 주택을 계획하되, 손님이 방문하시는 등의 상황을 고려하여 멀티룸 성격의 공간을 제안했다. 거실과 연계된 티룸은 평상처럼 편하게 걸터앉아 창밖을 바라보며 차를 마시며 담소를 나눌 수도 있지만, 친지들이 방문했을 때는 보료를 펴고 침실로 쓸 수 있다. 합창단을 하는 건축주의 지인들이 방문한다면 티룸은 멋진 무대가 될 것이다. 티룸은 확장된 거실의 형태로, 손님들의 영역은 거주자의 영역과는 완전히 분리된다.

   

 

• 화장실 : 건축주와 어머니의 침실은 화장실을 사이에 두고 함께 묶어두어 간살문을 닫으면 하나의 독립된 유닛이 된다. 화장실은 연로하신 어머님의 목욕을 도와드리기 편하도록 목욕탕 형식으로 계획했다. 타일로 제작된 다운 욕조에 누우면 마당의 꽃들을 보며 반신욕을 할 수 있다. 혹시나 어린 조카들이 놀러 온다면 마당으로 통하는 문을 열고 작은 수영장처럼 쓸 수 있을 것이다.
• 주방 : 수납공간을 최대한 늘려 모든 물건들이 깔끔하게 수납되도록 제안하고, 주방과 연결된 데크(외부공간)를 계획했다. 김장을 하거나, 큰 솥을 헹궈야할 때 주방의 확장된 공간으로 쓰이는 것은 물론이고, 다이닝룸 및 티룸과도 연결되어 있어 외부 다이닝 공간으로도 제격이다. 해를 적당히 가려주는 실내와 실외의 중간적 성격인 데크는 작지만 다양한 용도로 쓰일 것이다.

 

 

• 실외 공간 : 주차 후 현관에 도착하기까지 비를 맞지 않도록 캐노피를 연결하는 것도 중요하다. 실외와 실내의 중간적 공간이 마당보다는 쓰임새가 많기에 거실, 주방과 연계하여 설계하였고 잔디깎기, 바비큐 그릴 등 외부 물품들을 보관할 창고도 반드시 필요하다.
• 목재 루버 : 집을 들어가고 나올 때의 아름다운 씬을 보도록 하기 위해 천장에 목재 루버를 설치하였다. 남향의 루버는 365일 내내 다양한 변주의 그림자를 만들어 낼 것이다.

 

 

계획기간을 여유 있게 잡고 다양한 디자인을 건축주와 함께 고민하였기에 노비스쿰Nobis Cum은 건축주의 일상을 잘 담아낼 수 있었다. 건축주에 대하여 공부하고, 그의 입장이 되어 집 구석구석 고민하지 않은 곳이 없다. 상상 속에서 그의 하루를 살아보고, 컴퓨터 속 CG를 통해 연출해보기도 했다. 건축주의 삶을 잘 빚어 담은 주택은 그의 일상에 멋들어지게 잘 어울릴 것이다. 건축주의 삶에 또 다른 켜가 되어 앞으로의 삶을 쌓아가게 될 것이며 그것이 건축가의 보람이자 자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