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디터. 윤현기 글 & 자료. 건축사사무소 서가 Seoga Architects
도선동의 동 이름은 도선 대사와 관련한 이야기에서 유래한다. 그래서인지 동네에는 유독 크고 작은 도심형 사찰들이 모여 있다. 동네 골목을 걷다 보면 불경 외는 소리를 쉽게 들을 수 있다. 또한 동대문 의류상가와 가까운 이유로 골목에 접한 근린생활시설들에는 소규모 봉제 공장의 재봉틀이 분주히 돌아가고 있으며, 만들어진 제품들을 분주히 나르는 퀵서비스 오토바이들의 소리도 경쾌하다. 대로변에서는 보이지 않았는데, 한 블록만 안으로 들어오면 주거와 생산이 함께 어우러져 거주 풍경을 만들어 내는 곳이 도선동이다.
그런데 이 동네의 성격과는 다소 다른 부류의 업종인 진단 의료기기 유통업을 하며 도선동에서 성장해온 기업이 있다. 이곳에서 약 30년 전에 신축했던 건물도 어느덧 나이가 들고, 직원들의 수가 늘어가게 됨에 따라 새로운 건축물을 짓기로 했다.
한 건물은 건축주 기업의 사옥으로, 또 한 건물은 임대가 가능한 사무공간과 주거공간이 결합한 다가구주택으로 계획했다. 대지는 북측 도로에 면해 있어 일조에 의한 높이 제한에서 다소 자유로울 수 있으나, 다른 방향과 인접한 대지에 다세대 및 다가구주택들이 밀집해 있어, 채광이나 프라이버시의 제약을 받는 조건이다.
주거 공간과 사무 공간이 복합된 건축물을 계획하며 먼저 고려한 것은 이 둘의 상호 독립적 공존이다. 채광이나 조망에 있어 주거 부분을 먼저 고려했으며, 지하 1층~지상 3층까지의 저층부에는 사무 공간을, 지상 4층~지상 6층까지의 상층부에는 주거 공간을 배치했다. 주된 두 가지 프로그램의 독립적 공존을 위해 주거로 사용하는 세입자들의 일상과 직원들의 업무가 서로 간섭되지 않도록 했다.
사무 공간은 지하 1층 물류창고, 지상 1층 현관, 지상 2층 관리 및 기술팀, 지상 3층 영업팀 및 회의실, 대표실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기존 사무 공간의 경직된 분위기를 완화하기 위해 실내의 마감재를 달리 적용했다. 사무 공간의 전용 계단실은 노출 콘크리트와 미송 목재를 이용하여 차분한 진입 공간으로 계획했다. 사무실의 전용 공간은 벽과 천장을 밝은 색상의 도장 마감을 적용하여 사방이 막힌 저층부의 불리한 조건 속에서 적은 양의 자연 채광까지도 최대한 실내 깊숙이 끌어들여 은은하게 퍼지도록 했다.
주거 공간은 일반적인 다세대 혹은 다가구주택에서 계획하듯이 층별로 반복되는 평면 방식을 지양하고자 했다. 주어진 용적률로 인해 세대수에는 한계가 있었으나, 층별로 평면의 크기와 구성, 배치, 층고, 복층 여부 등을 서로 다르게 구성하여 계획했다. 이는 추후 입주민들이 집을 선택하는 과정에서 본인의 일상과 주거 방식에 대하여 고민하고 그에 알맞은 선택의 가능성을 열어주고자 했다.
건물은 어느새 입주민과 사무실 직원들로 채워지고, 주거 기능과 사무 기능이 본래의 기능을 하며 작동하고 있다. 젊은 사장들이 운영하는 카페와 옷가게가 들어섰고, 젊은 나이대의 소비자들이 찾아오기 시작했다. 도로에 면한 건축물의 그림자로 인해 다소 어둡고 적막했던 거리의 풍경은 붉은빛 벽돌의 건물이 들어서며 다시 활기를 찾기 시작했다.
오랫동안 이곳에서 삶을 이어온 건축주 형제처럼, 두 건물도 어깨를 나란히 하고 지역 주민들의 일상과 함께 어우러져 나이 들어가기를 기대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