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디터. 김윤선 글 & 자료. 건축사사무소H2L Architects H2L
건축주 부부는 예쁜 딸과 함께 탈脫 아파트, 단독주택 살기를 실현하고자 남편의 오랜 벗인 건축가를 찾았다. 우리는 필지를 선택하는 시점부터 부부의 새로운 보금자리와 아이의 색다른 삶을 담을 집의 구상을 함께 했다.
대지가 정해진 다음, 우리가 건축주에게 제시한 첫 질문은 ‘어떤 공간을 원하십니까?’라는 구체적이고 실증적인 것이 아니었다. 그저 ‘하루 생활의 루틴을, 그리고 그 순간순간들의 감정을 한 편의 글로 나열해 주세요’라는 다소 추상적이고 현상적인 질문이었다.
단독주택을 꿈꾸지만 아파트에 맞춰져 있던 가족의 시간을 구체적인 ‘공간’으로 풀어내기 위해선, 그들이 단지 ‘평소의 삶’을 어떻게 살아내고 있는지, 그 시간들이 어떻게 이어져가고 그 틈에는 어떤 호흡이 있는지를 알아야 했기 때문이다.
“아침에 일어나면 부부는 제일 먼저 같이, 혹은 따로 커피를 내려 마셔요.
아침 시간 중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시간입니다.”“아이는 아침잠이 많아 깨우기 힘든데,
일어나면 제일 먼저 기지개를 켜고 바깥 날씨가 어떤지 확인하는 아이에요.
그네 타는 것도 정말 좋아한답니다.”“아침볕이 잘 드는 곳, 하늘이 잘 보이는 곳에 아이 방을 만들어 밖이 잘 보이는 창을 내주고 싶어요.
아이가 하루에도 몇 번씩 창밖을 내다보고 이것저것 관찰하는 것을 좋아하거든요.”“주택에서 살게 되면 하늘 예쁜 날, 그늘 있는 야외공간, 프라이빗한 곳에서
책과 간식을 즐기는 것이 로망입니다.”– 건축주 부부의 이야기 중
건축주와의 많은 소통 끝에 한 편의 ‘삶 이야기’가 꾸려졌고, 우리는 그 이야기를 대지 조건과 가족의 삶에 꼭 맞는 공간구조로 풀어가기 시작했다. 이러한 과정은 ‘건축은 삶의 공간적 번역’이며 ‘그 과정에서 건축가는 번역가일 뿐’이라는 우리의 평소 생각에서 비롯됐다.
우리는 우선 대지를 바라보는 마당과 딛고 쓰는 마당, 두 가지로 나누어 활용하기로 결정했다.
첫 번째 마당에서는 아이가 그네를 즐기는 동안 내부의 모든 공간에서 아이의 모습을 바라볼 수 있는 시선의 구조와 이를 가능케 하는 재료를 선택했다. 두 번째 마당에서는 양지바른 곳에 식물을 가꾸고 가끔 야외 식사를 즐기며 집안의 각종 액티브한 활동을 지원할 수 있는 공간이 되도록 했다.
이를 위해 전체 외부공간의 허리를 끊어 두 개의 마당이 아이의 그네를 중심으로 나뉘고 연결되도록 계획했다.
주차를 하고, 얕고 너른 두 개의 단을 딛으며 현관으로 진입하면, 가장 먼저 맞게 되는 풍경은 첫 번째 마당이다. 공간에 진입하는 순간 전이된 시야의 새로운 풍경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건축가의 설계 지론이 반영됐다. 낮은 거실과 코너를 한껏 비운 주방, 아내의 재택근무공간과 아이의 실내 놀이터를 겸하는 작업실 등이 안마당을 둘러싼다. 이 공간들은 항상 밝고 따뜻한 공간일 수 있도록 첫 번째 마당을 둘러싼 ㄷ자 형태의 창호의 크기를 최대화했다.
내부로 들어왔을 때 가장 먼저 만날 수 있는 곳에 손을 씻고 옷을 갈아입을 수 있는 간이 세면대와 드레스룸을 배치했다. 아파트에서는 맞출 수 없었던 가족의 생활과 획일화된 주거공간 사이의 간극을 가장 적극적으로 맞춰 낸 공간구조다.
아트리움을 따라 책장 계단을 오르면, 뒷산과 키 큰 소나무를 배경으로 하는 평상 겸 작은 거실이 반긴다. 단 높은 평상에서 푸름을 조망할 수도, 테라스로 나가 바깥바람을 쐬며 마당을 내려다 보기에도 좋은 공간이다. 2층 역시 작은 거실, 침실, 욕실이 첫 번째 마당을 둘러싸며 놓인다.
아이 방에는 활동적인 아이에게 어울리는 다락, 미끄럼틀, 실내 클라이밍 공간 등을 다채롭게 마련했다. 욕실은 프라이버시는 완벽히 확보하면서 환기와 채광이 가능하도록 외피를 좁게 찢어 내어 작은 테라스를 만들었는데, 마감재의 선택과 연출은 아내의 감각이 더해졌다.
두 마당 집은 삶의 전환점을 맞기 위한 가족의 공간 변화와 그에 대한 의지, 건축가와 건축주의 깊은 배려와 활발한 소통, 그리고 단독주택 밀집 지역에서 대지를 활용하는 방식에 대한 모든 관계자들의 고민이 켜켜이 쌓여 만들어졌다. 이 집이 설계를 맡은 건축가조차 부러워할 만한 멋진 공간으로 탄생했음은, ‘집은 주인을 닮는다’는 우리의 믿음이 들어맞았음을 보여준다.
보편의 장벽을 뛰어넘어 가족만의 특별한 공간을 만들어 낸 부부와, 그리고 그 의지의 원천이자 집의 주인공인 아이의 삶에 이 집이 훌륭한 조연이 되어 주길 기대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