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디터. 안인규 학생 인턴 글 & 자료. 디디스튜디오 DIDI studio
Memory : 추억을 통해 미래를 그려보다.
아파트에 살던 건축주는 기성복과 같이 이미 만들어진 형식의 삶에서 벗어나 스스로 원하는 삶의 양식이 무엇인지 고민하기 시작했다. 아파트의 삶이 충분히 만족스럽고 특별한 불만이 없었기에 특별히 다른 방식의 공간 구조에 대한 바람을 가져온 것도 아니었다. 설계의 출발은 무엇이 필요한가 고민하기보다 무엇을 놓치고 살아왔는지에 대한 회고에서 출발하였다.
자녀 세대가 출가한 이후라서 질문을 할수록 집에는 필요한 것보다 필요 없는 것이 더 많다는 자각이 늘어났다. 결국 집의 기능에 대한 질문은 멈추고, 삶은 무엇이며 생활 속에서 무엇을 느끼고, 보고, 들을 것인가에 대한 근원적 질문을 통해 공간의 구조를 묻기로 했다.
그동안의 삶이 무엇을 위한 여정이었기에 집에 돌아와서는 피곤한 몸에 휴식을 주는 정도였다면, 이제는 집이 삶에 좋은 질문과 답을 제공해 주는 ‘장소’이자 여백을 허락하는 ‘공간’의 정서적 기능을 더 중요하게 생각해 보기로 했다.
비우기 위한 첫 단계는 TV나 컴퓨터 등 인공적인 것들을 최소화하고 숨은 공간에 두지 않기로 했다. 대신, 어느 곳에서나 자연을 볼 수 있는 구성, 떨어지는 빗소리를 들을 수 있는 처마, 바람 부는 것을 느낄 수 있는 그늘진 마당 등 집을 채워나갈 요소를 먼저 선택했다. 마치 아이가 처음으로 무언가를 보고 들으면서 세상을 인지하게 되는 과정처럼 주변의 모든 것이 경험되는 집을 만들어 자연과의 충분한 교감들이 삶을 채워주는 형식을 만들기로 했다.
두 번째는 시간을 중첩시켜 과거와 미래를 연결하는 재미있는 아이디어를 건축주가 제안했다. 어릴적 전라도 시골집에서 심었던 단풍나무를 이곳 새집의 앞마당으로 옮겨놓기로 한 것. 세월을 함께 지내온 시골집 나무와 이번에 새로 심은 나무들이 하나의 풍경이 된다. 과거의 시간과 현재의 시간이 연결되고, 자라난 고향과 현재 살고 있는 남양주를 중첩시켜 장소에 시간이 연결된다. 결과적으로 삶의 여정이 도착한 작은 언덕 위에 추억과 장소가 연결되는 ‘집’을 짓기로 한 것이다.
Place : 한강 위 작은 언덕에 자리하다.
대지는 남양주시 끝자락에 내밀하게 숨겨져 한강과 서울 강동지역을 내려다 보는 작은 언덕에 위치해 있었다. 아파트 단지와 강을 함께 바라보는 장소적 특징 자체가 바쁜 삶을 떠나 느린 삶을 권유하는 것 같았다. 건축주의 풍수에 대한 견해가 활용되었다. 과학이나 철학이라기 보다는 자연과 교감하는 하나의 태도로서 풍수가 원하는 향을 찾아보았다. 땅의 형태가 유도하는 실용적인 향과는 약간의 차이가 있었다. 매스와 프레임을 나누어서 매스는 실용적인 각도를 선택하고 처마나 차양의 역할을 하는 프레임은 풍수가 좋다는 각도를 적용해 두 개의 방향을 중첩시켰다.
Organized Nature : 모든 방은 강을 보다.
더 많은 자연을 접하게 하기 위해서 홑 집으로 구성하였는데, 대지의 경사와 크기를 고려해서 4층으로 구성이 되었다. 지하층은 추억의 물품을 전시하는 갤러리이며, 1층은 커다란 방으로 앞으로의 살아가면서 채워가야 할 미래를 위한 방이다. 2층은 생활공간으로 자연을 바라보는 마당과 거실, 식당 및 사랑방으로 구성하였으며, 3층은 안방과 분리된 욕실, 화장실 및 운동실 등으로 가장 사적인 공간들이다.
홑 집을 만든 것은 모든 방이 분절되는 마디마다 자연이 깊숙하게 침입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함이며 또한 모든 방들이 한강변으로 작은 마당(테라스)을 갖게 하기 위해서 이다. 이렇게 얇고 단순한 구성 사이로 들어오는 작은 사이 공간들은 무거움과 가벼움, 밝음과 어두움, 열림과 닫힘 등의 현상을 만들어내면서 자연을 경험한다.
Hidden panorama : 숨겨진 파노라마
교통의 접근이 편해지고 한강변의 레저활동이 늘어나면서 동네의 정취가 급하게 변했다. 강변 주위와 마을 안쪽에 근생시설들이 늘어나면서 점차적으로 번잡해지고 사적이었던 분위기가 바뀌고 있다. 이 때문에 형태과 물성은 바깥과 안쪽의 대비가 필요했다. 진입도로 쪽으로는 매스의 구성이 매우 무거우며 채광과 경관을 즐기기 위한 최소한의 창호만을 배열하였다. 반대편인 강변 쪽은 매스 구성이 매우 가볍고 창호의 크기가 커서 매우 개방적이고 경관을 파노라마 형식으로 받아들인다. 주변 맥락에서 비롯된 이러한 매스의 구성과 창호 크기의 차이는 내부에서 자연을 경험하는 느낌을 다양하게 제공하고, 마당이나 중정마다 명확한 특징을 만들어냈다.
Nostalgia : 추억의 단풍나무
새 집이지만 익숙한 집을 만들고자 했다. 따뜻한 봄날의 툇마루, 여름에 시원한 대청마루, 달빛이 비치는 창호지문, 겨울 밤의 차가운 바람소리 등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했다. 밝은 라임스톤 위에 올려진 어두운 화강석 매스가 만들어내는 대비의 긴장감, 석재의 차가움과 원색 페인트의 따뜻함, 마당 위에 떨구는 프레임의 그림자 등이 단순한 건물이 아닌 자연과 교감하는 장소를 만들어서 익숙했던 감각을 다시 일깨우고자 했다. 어린 시절에 심었던 단풍나무를 멀리 시골집에서 옮겨와서 이곳에 심었을 때는 추억을 가진 사물이 의인화되어 새 장소에 과거를 데려왔다.
이처럼 집을 설계하고 모든 짓는 과정이 축제가 되었다. 정서적 갈증을 채우고 삶을 다시 돌아보게 되면서 언덕 위의 집은 친구가 되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