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디터. 정지연, 김지환 학생인턴 글 & 자료. 로디자인 도시환경건축연구소 L’EAU design
21세기의 디아스포라
귀농, 귀촌은 이미 빛바랜 유행처럼 돼버렸다. 역귀농, 역귀촌이라는 단어도 더이상 낯설지 않다.
어떤 갈증과 욕망이 있길래 이처럼 도시인들은 삶의 터전을 옮기려 하는 걸까.
디아스포라DIASPORA는 ‘민족의 분산 또는 이산’이란 뜻을 지닌 단어다. 여러 이유로 고향을 떠났지만 세계 각지에 흩어져 살면서 종교적 규범과 생활 관습을 유지하는 유대인에서 비롯됐다. 이후 그 의미가 확장돼 본토를 떠나 타지에서 자신들의 규범과 관습을 유지하며 살아가는 민족 집단 또는 그 거주지, 공동체 등을 가리키는 용어로도 사용된다.
현대 도시인들의 이주 움직임을 디아스포라라는 단어로 조심스레 제안해 본다. 도시를 떠나 또 다른 삶을 찾아 본거지를 이주하며 공동체를 형성하고자 하는 새로운 형태의 ‘정서적 디아스포라’가 나타나고 있기 때문이다.
연천 디아스포라는 문화공동체를 지향하고 있다. 이같은 공동체는 각자의 삶을 존중하기 위해 자율성과 유연성을 기반으로 공간을 구성해야한다. 다양한 이주자들이 하나의 마을을 형성하면서, 이주한 지역의 보편적 질서 속에 녹아듦과 동시에 공동체만의 특별한 가치를 지녀야하기 때문이다.
이같은 공동체 주거단지의 집들은 도시의 아파트처럼 정답을 지닌 듯 표준화된 주거 유닛을 복제해 나열하는 것이 아니라, 오랫동안 각자의 삶을 살아온 이들의 고유한 생활 패턴이 담길 수 있도록 다양성이 어우러지는 배치가 필수적이다. 또 대지가 가진 특수성을 고려하는 것은 기본이다.
이를 위해 우리는 마스터플랜의 기본 틀을 구성하는 두 가지 조건을 설정했다. 지역의 적설량 등 기후 특성에 적합한 일정한 박공 기울기와 멀리 감악산의 전경과 마주하는 마을공동체가 경관을 다 함께 공유하도록 마련한 배치 축이다.
박공형의 볼륨은 방의 기능에 따라 향을 고려해 배치하되, 꽉 찬 볼륨을 부분적으로 덜어내고 보이드 공간으로 채워 내부로 자연을 삽입시키면서 기본형을 만들고, 추후 필요한 실들이 볼륨으로 부가되어 시간에 따라 변형 가능한 생성적 구조를 만든다.
기존의 형태를 단순히 재조합하는데 그치지 않고 새로운 기능이나 목적에 맞게 변형-조합해, 기존과는 다른 수렴진화 형식을 만들어 새로운 가치를 추구한다. 질베르 시몽동이 말하는 주체와 대상 사이에 ‘관계와 소통’이라는 중립적 태도를 전제로 이주민 각자의 취향에 맞춰 자신에게 맞는 독자적인 장면(scene)들을 만들어 나간다. 내외부의 공간적 연결뿐 아니라 재료 선택에서도 자신의 냄새를 풍기는, 각자의 이야기를 담아 또 다른 문화를 생성해 나아간다.
박공형의 기본 틀을 가진 다양한 주택 볼륨들은 길이 방향의 축선에 따라 유연하게 자연경관을 담아가며, 수년간의 시간차를 갖고 자리잡게 된다. 쌓여가는 시간 속에서 협주곡의 분위기와 형식이 연주자에 의해 다채로워지는 ‘카덴차’처럼, 추출된 구조형식에 이주공동체의 문화를 입혀 그들의 삶을 다색적으로 발현할 장소로서의 가능성을 갖는다. 다이어그래밍을 통해 각자의 색깔을 형태에 나타나도록 해 문화공동체로서의 디아스포라적 관계 맺기를 완결한다.
연천 디아스포라는 수렴진화 형식을 통해 이주민들의 정서적 향유를 안착시켜 피로 사회를 강요하는 도시의 경쟁 체제를 떠나 대안적 삶을 고민하는 이들에게 이상향을 구현하길 바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