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디터. 장경림 글 & 자료. 건축사사무소 오파드건축연구소 OpAD
한 통의 메일을 받았다. 두 개의 대지 중 어떤 대지를 구입하는 것이 신축에 좋을지 건축가의 의견을 묻고 있었다. 두 대지의 규모는 대체로 비슷했다. 골목 안의 반듯한 직사각형의 대지보다 도로에 내어주는 면적은 비교적 크지만, 남측 및 동측으로 접한 도로 덕에 채광조건이 더 좋은 대지를 추천해드렸다. 건축주도 같은 생각이었고, 그 대지를 매입했다.
정릉동 프로젝트의 시작이었다.
설계 전부터 건축주의 계획에는 조그만 주택과 함께 작은 ‘빵집’을 짓겠다는 구상이 있었다. 건축주는 공무원직을 그만두면서까지 본인의 꿈을 찾아 나섰고, 셰프로서의 많은 준비를 오랜 기간 동안 해오셨다고 했다. 또한 남편의 적극적인 지원도 뒤따랐기에 가능했다고 전했다.
그렇게 여러 차례의 메일을 주고 받으며 건축주의 그 간의 노력과 꿈을 알게 되니 오히려 설계 과정은 쉬워졌다. 작지만 동서로 긴 형태의 대지였기에 일조권사선제한을 적용하면 3층위에 4층 자체가 형성될 수가 없는 상황이었다. 별도의 마당을 만들 수도 없는 협소한 부지에서 4층의 테라스마저 누릴 수 없다면 큰 손실이었다.
이에 1층의 레벨을 반지하에 가깝게 땅속으로 내림으로써 최상부에서의 사선제한을 피하고, 최소 규모의 4층 면적을 확보할 수 있게 되었다. 그 작은 4층의 전실을 통해 테라스로 나갈 수 있도록 했다.
낮은 레벨의 1층은 근린생활시설로서 건축주가 직접 빵집을 운영할 곳이며, 2~4층은 건축주 부부의 보금자리인 단독주택이다. 대지 레벨에서 반층의 높이로 오르내리는 계단은 인접대지에 면한 서측에 계획되었고, 남측도로에 면한 곳은 빵집으로 내려가기 위한 계단이, 북측의 통로 쪽에는 주택으로 올라가기 위한 계단이 배치되었다. 지금도 건축주는 주택에서 내려와, 건물을 한바퀴 돌아서 빵집으로 내려가는 ‘출근길’이 즐겁다고 하신다.
주택에 있어 층별면적이 크지 않기 때문에 2층의 화장실, 드레스룸과 3층의 세탁실을 제외하고는 별도의 벽체 구획을 하지 않았다. 채광을 살리되 프라이버시 침해를 최소화하기 위해서 거실과 방의 큰 창은 대지가 접해 있는 두 개의 도로 사이 먼 곳을 바라보도록 계획했다. 또한 남측의 계단에는 환기에 필요한 최소의 창만 설치했고, 북측의 창호는 이삿짐을 들일 수 있는 사이즈로 계획했다.
3층에 있는 주방, 거실과 이어지는 계단 끝 4층 전실 밖의 테라스는 넓은 공간은 아니지만 때로는 가족의 티룸tea room이 되어주고, 때로는 손님들의 바비큐 공간도 될 것이다. 지면보다 아래에 있는 빵집에는 도로를 굽이 돌면서 내부가 훤히 보일 수 있도록 역동적인 창호를 계획했다. 특히 눈높이가 낮은 어린 아이들의 발걸음을 자주 멈추게 한다.
건축주가 어떠한 집을 꿈꾸고, 그 꿈을 건축가와 공유하고, 건축가로서 그 꿈을 현실로 만들어낸다는 것은 참으로 보람되고 행복한 일이 아닐 수가 없다. 설계를 진행하면서 더욱 행복함을 느낀 것은 미팅 때마다 건축주가 직접 만들어서 정성스레 포장해준 빵과 과자들을 집에 돌아와 가족들과 함께 맛보는 순간이었다.
설계초기 건축주가 추천해준 책 ‘건축가, 빵집에서 온 편지를 받다’(나카무라 요시후미 저)는 건축주와 건축가 사이에 이루어지는 일련의 만남과 과정들을 주고 받은 편지를 매개로 너무나도 따뜻하게 풀어내고 있다. 그러한 책을 나에게 선사해준 건축주를 만나게 된 것은 크나큰 행운일 것이다.
집을 설계하고 짓는 과정이 10년이 늙을 정도의 ‘고행’이 아니라, 누군가에게는 ‘행복의 순간’으로만 기억될 수 있기를 꿈꿔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