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 자료. 스튜디오 모프 정리 & 편집. 김윤선 에디터
집이 위치한 산외면 정량리 원정마을은 유서 깊은 지역으로서 오래된 농가들이 너른 들과 나지막한 뒷산으로 둘러싸인 전형적인 농촌 마을이다. 마을에서 바라보이는 노령산맥 줄기는 여러 겹의 봉우리로 이어져 산세의 풍경이 아득하고 깊다. 마을은 원래 여산 송씨의 집성촌이었으며 1980년대까지만 해도 꽤 번성했었으나 현재는 50여 가구만 남아있었다. 그 중 설계를 의뢰받은 곳은 5대에 걸쳐 살아온 집이며, 연로하신 부모님 두 분이 살고 계시다. 떨어져 사는 자녀들은 연로하신 부모님을 좀 더 편히 모시고자 고민을 했고 가끔 가족들이 모였을 때 편히 묵고 갈 수 있는 공간이 필요했기에 새 집을 짓기로 했다.
기존 집은 과거 초가집에서부터 몇 차례 지붕이 개량되었고 부엌은 입식 형태였다. 안방은 식사와 생활을 하는 거실같은 공간으로 활용하고 있었으며, 남는 방은 김치냉장고 등 전자제품들과 책들이 좁은 방을 차지하고 있었다. 처마 끝 선에 설치된 샤시는 겨울의 추위를 보완하는 단열 기능과 매개 영역으로서 현관 역할뿐 아니라 각 방으로 이어주는 복도이자 여름에는 방충망, 그리고 긴 툇마루의 공간 확장 기능까지 해내고 있었다. 이것은 대부분의 오래된 농가들이 취하는 형태라 볼 수 있다.
본채는 대지의 비정형적 형태에 순응하면서 남동향으로 노령산맥을 바라보고 있었고, 양 옆으로 붙은 창고와 입구 헛간은 마당을 좁아 보이게 했는데 주차라도 하게 되면 툇마루에서 보는 시야가 좁아져 답답해 보였다.
새로 계획된 배치는 기존 남동향 축에서 남향으로 10도 정도 더 돌려 앉혔고, 기능이 축소된 창고 건물은 크기를 줄여 주차장과 다용도실을 연결하는 부속동으로서 본채에 직각으로 붙여 전면에 반듯한 마당을 갖도록 했다. 신축하는 집은 기존의 오래된 농가를 헐고 같은 자리에 필요한 공간의 재구성과 2층 손님방을 추가하는 것이었고, 가능한 노부모의 불편함이나 관리상의 어려움이 적도록 요구되었으며, 새 집에 쉬이 적응하실 수 있도록 하는 것에 주안점을 두고 계획했다.
따라서 이 집은 기존 주택에서의 삶의 방식, 즉 생활 동선이나 습관, 패턴 등을 최대한 새로운 집에 투사하여 새 집의 낯섦을 완충하고 가급적 적응이 용이해 오래 살아온 집처럼 편안하게 느끼실 수 있도록 고민을 한 집이다.
직각의 ㄱ자 배치로 남북축이 조정되면서 담장과 외부 공간의 관계에 변화가 생겼고, 장독대가 있던 북쪽 마당(뒷마당 텃밭)은 서재가 새로이 들어가면서 그 크기는 줄었으나 뒤돌아 가지 않고서는 볼 수 없었던 뒷마당의 관계를 조망과 접근성으로 회복하였다. 실내로 들어가는 방법은 주현관이 있으나 긴 샤시창으로 드나들던 옛집처럼 전면 대청마루에서 오르거나, 혹은 텃밭에서 돌아오면 수돗가를 통해 다용도실, 주방으로 편하게 다닐 수 있도록 계획했다.
이 집은 골목과 이웃에 열려 있는 태도를 가지며 새로운 소통을 기대하는 집이기도 하다. 대문 앞 좁았던 골목은 기존 대문과 담장, 옆 집의 창고까지 철거되면서 넓고 밝아진 새로운 골목 영역이 생기게 되었다. 이는 시각적 개방감이나 새로운 공간적 체험을 공유하는 것이기에 이웃과 새로운 방식의 소통이 되지 않을까 생각된다. 골목으로 열린 전면 마당은 낮은 벽돌 담장을 두어 두 개의 영역으로 나누었기에 진입 마당으로부터 온전한 안채 마당의 영역을 확보하였고 골목에서 보이는 외부 시선을 차단하여 사적인 영역의 의미를 부여했다.
아버님이 늘 머무시던 긴 툇마루는 좀 더 반듯하고 넓어진 대청마루로 진화되었다. 그 덕에 거실에는 확장감과 깊이감이 부여되었고 대청마루는 겨울에 가장 긴 시간 햇볕을 받아들이는 장소가 되었다. 사랑채의 누마루같은 이 공간은 주로 아버님이 책을 읽으시거나 잠깐씩 낮잠을 즐기실 수도 있고 이웃을 반기는 따뜻한 공간이 되지 않을까 생각된다.
외관은 주변 집들의 지붕 형태나 마감과 자연스럽게 어울릴 수 있도록 적벽돌 마감에 경사 지붕으로 디자인했고, 마을에서 느끼는 새집의 위화감을 최소화하려고 2층집의 높이를 완화하는 일자 경사의 지붕 형태와 낮은 물매의 박공지붕으로 고민하였다.
한 장소에서 한 가족의 삶이 대를 이어 150여 년 동안 이어져 온 것을 생각해 보면 주거라는 것이 한 개인의 삶에 무엇을 의미하는지 곱씹게 된다. 이는 최소한 한 가족의 역사 속에서 개인의 삶을 지속하게 해준 고유의 실존적 준거로 볼 수 있지 않을까.
조용히 열린 자세로 삶의 풍경을 공유하고, 마을의 유서 깊은 집으로서 또한 마을의 어르신 댁으로서, 소박한 품위를 지닌 채 새롭게 마을 분위기의 중심이 되어 자손들의 정신이 또 한 세대를 이어져 내려가는데 이 집이 중요한 역할을 해주기를 기대해 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