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디터. 김태진 글 & 자료. 아키후드 건축사사무소 Archihood WxY
보리Voree는 전라남도 영광군의 서해 해안절벽을 감상할 수 있는 백수해안도로 한편에 자리하고 있는 작은 카페이다. 이곳에 설계를 위해 처음 방문했을 때 도로 밑에 야트막한 경사지는 하얀 눈이 덮여 있었고, 새봄에 있을 보리 파종을 기다리고 있었다. 해안도로 변에 서서 바라본 바다의 모습은 흔히 알던 서해안 해수욕장들의 모습과는 사뭇 다른 매력을 보여주고 있었다.
건축주와 함께 주변에서 가장 인파가 많은 카페에 방문했는데, 그곳은 3개 층의 높이에 바다가 훤히 내려다보이는 곳에 자리하고 있었다. 건축주는 높은 그 건물에 매우 부러움을 느꼈는데, 이유인 즉슨 그 건물이 허가받은 이후로 바다의 조망을 가리는 건물은 해안도로에 허가하지 않는 규정이 생겨 단층 건물밖에 지을 수 없다는 것이었다.
건축가는 속으로 쾌재를 불렀다. 건물을 나지막하게 지을 수 있는 최고의 명분을 얻은 기분이었기 때문이다. 그렇지 않아도 건축가는 현장에서 대지를 바라보았을 때, 저 아름다운 바다를 가리면 안 되겠다고 속엣말을 하고 있던 터였다.
덕분에 건물은 도로에 최대한 가까우면서 낮은 위치에 자리 잡게 되었고, 대지의 전면에는 매우 넓은 여유 공간이 생기게 되었다. 건축주는 이곳을 넓은 정원으로 꾸밀 예정이라고 했는데, 건축가는 이를 말리고 싶었다. 이 정도 면적의 조경이라면 비용도 엄청날 테고 관리도 쉽지 않을 터라, 우리는 현재 이곳에서 짓고 있는 보리농사를 계속하는 것을 제안했다.
보리는 영광군의 특산품 중 하나였고, 봄의 청보리밭은 그 어떤 정원과 견주어도 손색없는 아름다움을 가졌기에 최대한 자연스럽고 지속 가능한 대안이 될 것이 분명했다. 대신 보리밭 주변으로 시골길 같은 분위기의 산책길과 최소한의 조경만 추가하기로 하였다.
건물의 초입에 서면 양쪽에 콘크리트 벽이 서있는 기다란 복도 같은 공간을 마주하게 되는데, 이는 건물이 두 개로 나누어져 있는 사이 공간이다. 공교롭게도 대지에는 두 가지 용도 지역의 경계선이 가로지르고 있었고, 미래 사업계획의 유연성을 위해 용도 경계선을 따라 건축물을 자연스레 둘로 나누게 되었다. 우리는 이 점을 이곳의 특이점으로 삼고자 이 길을 통해 건물로 진입하게 하였고, 코너를 도는 순간 보리밭 넘어 서해를 맞이하는 경험을 선사하고자 하였다.
이곳은 단순히 카페라기보다는 보리밭과 바다를 배경으로 서해의 아름다운 자연을 즐기고 감상할 수 있는 장소가 되었으면 했기에, 자연스레 전면으로는 긴 창을 배치했고, 대지의 경사를 실내로 끌어들여 와 두 개의 바닥 레벨로 나뉘게 되었다. 그리고 특이한 각도로 각이 진 공간에 어울리는 가구를 찾기보다는 이 공간에 딱 맞는 가구들을 디자인해 설치함으로써 공간의 완성도를 높일 수 있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