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디터. 박지일 글 & 자료. 쿠오타 건축사사무소 KUOTAA
이곳은 과거 무성하지 않은 수목들이 가득한 나지막한 산이었고, 남쪽으로는 완만한 경사지였다. 건축주가 선택한 필지의 번호는 O-1이었고 그러한 연유로 프로젝트는 설계 기간 내내 ‘오 원’으로 불렸다.
해당 획지는 단지에서 가장 높고 코너에 위치한 까닭에 전면으로 수려한 자연과 막힘없는 경치가 파노라믹 하게 펼쳐진다. 이것만으로도 이 획지는 매력적이지만 대지가 남북으로 길었고, 북쪽으로 뾰족한 땅의 형상은 단점이었다. 또한 동서로 나 있는 단지 내 도로의 끝단에 위치하여 통행하는 차와 사람의 기운을 직각으로 받는 위치였던 터라 그 부분을 어떻게 보완하며 배치할 것인가가 설계의 시작점이 되었다. 대지 안에서 생하고 보해야 할 부분을 찾는 과정에서 결국 주택은 사용자, 즉 사람이고 또 그 사람과 사람의 관계이기에 두 부부의 관계와 삶에 귀를 기울이며 그 모습을 공간에 투영시키는 작업에 매진했던 프로젝트이다.
첫 번째 접근은 대지와 충돌하는 서측 도로의 기운을 막아내는 것이었고, 그와 동시에 반대쪽의 파노라믹한 경관을 담아내는 것이었다. 건폐율 25%의 자연녹지지역이라 건축주 부부가 원하는 프로그램의 배치를 위해서는 지하 1층부터 3층까지 수직적인 조닝이 필요했고, 그 수직적인 모습을 이용해 도로 방향인 서측에서부터 단단하게 겹쳐서 있는 여러 개의 벽으로 이루어진 집을 제안했다.
도로에서 봤을 때는 벽이 겹쳐 보이는 매우 폐쇄적인 건물 같지만 내부에서는 개방적인 반전의 공간을 만들고 싶었다. 그러기 위해 벽과 벽의 사이를 최대한 투명하고 밝게 하여 집안 깊이 빛을 전개하면서도, 벽을 동쪽으로 밀어내어 파노라믹한 경관을 그대로 담아낼 수 있도록 하였다.
진입도로보다 대지의 높이가 3.5m 높기에 주택의 주출입이 지하1층이 될 수밖에 없는 단점이 있었다. 이를 보완하고 주차장을 지하에 만들기위해 대문을 열고 들어왔을때, 아담한 선큰을 만나도록 하고 지하에 면한 부분을 모두 투명하게 처리함으로서 내부의 빛으로 언제나 밝고, 또 하늘로도 열려있는 작지만 아담한 완충공간을 만들었다. 물론 대지의 높이 차로 인해 지상의 마당은 매우 독립적이면서 아늑한 마당을 조성할 수 있었다.
주택의 중앙에 위치한 계단은 지하 1층부터 지상 3층까지 연속되어 있으면서 벽과 벽 사이에 위치시켜, 그 사이 공간을 천창과 커튼월로 하늘이 끊어지지 않게 개방시킴으로써 계단실이 집의 구석구석 밝게 만들 수 있는 ‘광 덕트’ 역할을 할 수 있도록 하였다. 실내의 조명은 캐노피 라인과 동일하게 배치한 라인 조명 외에는 최대한 광원을 숨겨 시각적인 스트레스를 최소화하면서 창문과 연결된 천창을 통해 자연광이 실내의 깊은 곳까지 비칠 수 있도록 하였다.
외장에 쓰인 주요 재료는 화강석(고흥석)과 박판세라믹타일(목재무늬)이다. 자연석과 세라믹타일의 두 재료는 같은 질료이지만 하나는 어둡고 묵직하게, 또 하나는 밝고 경쾌한 색을 낸다. 두꺼운 자연석의 벽 사이사이로 드러나 있는 경쾌한 목재무늬타일 부위는 경관을 담아내고 빛을 끌어들이며 반사하는 역할을 하게 된다. 전면의 원기둥과 광 선반을 닮은 금속 캐노피는 다소 무거워 보일 수 있는 두 외장재의 접합 관계에서 오는 무거움을 덜어내면서 동시에 태양의 입사각을 고려하여 고안한 장치이다.
주택의 설계는 언제나 그렇듯 땅에서 시작해 사람으로 마무리가 된다. 가족 구성원들 간의 살짝 긴장된 미팅과 담소가 반복되면서 많은 이야기가 오가고, 그 이야기 속에서 그 사람의 질료가 느껴지고 그 질료들의 조합과 반응을 떠올리며 계획을 하다 보면 언제나 그렇듯 그 결과물은 그 인연의 모습을 따라간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