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디터. 최성우 객원 글 & 자료. 에이아이엠 건축사사무소
주택이 세워진 대지는 매우 어려운 건축조건을 가지고 있었다. 평창동 일대 대부분의 땅이 그러하듯 30도 이상의 급한 경사와 오랜 세월 자리를 지켜온 소나무들, 그리고 무엇보다 토심 1m 이하는 모두 암반으로 이뤄져 있었다. 심지어 건축행위가 한번도 이루어진 적이 없는 대지를 ‘원형필지’라 부르는데, 이곳이 바로 여기에 해당했다. 지구단위계획 지침에 따라 지형의 최소개발을 위한 개발행위허가를 얻는 절차까지 필요했다.
건축주는 무엇보다 기존 지형이 가지고 있는 공간적 가치를 중요하게 생각했다. 대지 한 가운데 위치한 거대한 바위를 유지할 것, 기존 대지에 서식하는 수려한 소나무들을 살려줄 것, 그리고 건물 내외부에서 평창동의 풍경을 최대한 조망할 수 있을 것이 그의 조건이었다. 건축주는 험난한 대지 조건에 건축설계와 인허가 과정 등의 어려움을 매우 잘 이해하고 있었다. 집의 규모와 스타일 등 설계 전반에 대해서는 건축가의 제안과 판단을 존중하며 진행됐다.
설계의 개념은 기존 자연 지형이 가진 형상에 따라 계단식으로 구성했다. 급경사 암반 경사지에 기존 환경의 훼손을 최소화하며 건물을 자리 잡기 위한 자연스러운 선택이었다. 거실, 주방, 안방 등 공간 또한 지형에 따라 반 층씩 엇갈리게 구성했다. 저층의 거실과 주방을 거쳐 최상층으로 올라가는 내부 동선을 따라가다보면 마치 등산하는 것과 같다. 오르면서 다채로운 풍경을 마주하게 된다. 또한 각 층은 외부공간으로 오가는 출입구도 갖췄다. 내부 동선의 끝에는 평창동 일대의 풍경을 즐길 수 있는 옥상마당을 설치했다. 외부 입면은 내부의 엇갈린 층을 그대로 반영하고, 대지 내 남겨진 암반과 어울리는 색상의 치장벽돌로 구성했다.
계단식 구성의 최대장점은 공간 그 자체에 있다. 지형을 따라 등산하듯 경험하는 실내 공간과 위아래로 교차하는 시선, 높이에 따라 차이가 있는 햇빛의 양과 공간별로 다르게 보이는 외부 풍경 등의 장점을 극대화하기 위해 내부 인테리어는 최대한 단순하게 계획했다. 반 층씩 엇갈린 계단식 구성은 층의 구분이 모호하지만, 시선이 사선으로 교차하고 공간이 연속되어 실제 공간의 규모보다 더 넓어 보이는 장점이 있다.
벽체는 모두 흰색도장과 벽지로 구성하고, 바닥은 따뜻한 색감의 원목마루를 사용했다. 창호는 가벼운 시스템창호를 사용해 외부풍경을 담아내는 액자처럼 구성해 마무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