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디터. 정경화 글 & 자료. 아키리에
거대한 벽 사이로 가족의 생활이 흐르는
건물은 경상남도 진주시의 동쪽 끝에 자리한 경남진주혁신도시 내의 택지지구에 위치한다. 말끔한 모습으로 정돈된 지역은 여타 신도시의 택지지구와 마찬가지로 지구단위계획과 여러 규제가 존재한다.
대지의 북측으로는 풍부한 녹음이 펼쳐지고 녹음을 따라 밑으로 내려가면 갈전천이 흐르며, 그 옆으로는 시민을 위한 산책로가 이어진다. 남측으로 10m 폭의 도로를 사이에 두고 띄엄띄엄 자리한 집들 사이로는 군데군데 빈터와 공사 중인 현장이 보여 이곳이 신도시임을 짐작게 한다. 아직 비어 있는 양쪽 대지와 주변의 공터는 곧 건물로 가득 채워질 것이고 그만큼 주거지의 밀도도 높아질 예정이다.
건축주는 이곳이 앞으로 전개될 주변 환경으로부터 4인 가족이 안락하게 머물 수 있도록 충분한 프라이버시를 확보하는 동시에 밝고 개방감 있는 집이 되기를 바랐다. 덧붙여 외부와 내부에서 모두 출입이 가능한 독립적인 음악실을 원했다.
우선 사생활을 보호하기 위해 대지 양쪽에 경계를 따라 길고 높은 벽을 설치했다. 집에서의 생활이 외부로 새어 나가지 않도록 개구부는 최소한으로 냈다. 2개의 벽체는 주변 환경으로부터 사생활을 보호하겠다는 건축주의 의지를 단적으로 드러내는 요소다. 동시에 보는 이로 하여금 그 안에 자리한 공간을 궁금하게 만든다.
양 옆이 거대한 벽으로 둘러싸인 내부 공간은 남북으로 이어지는 벽의 방향에 맞춰 세 개의 영역으로 나누었다. 가운데 영역에는 주거 공간의 인프라 시설에 해당하는 계단실과 주방, 욕실을, 양쪽에는 거주 공간과 음악실을 나누어 배치하였다.
요리를 하거나 계단을 오르내리는 등 움직임이 많은 공간을 가운데에 두어 접근성을 높였고, 서로 연결은 되어있지만 간섭이 적도록 했다. 음악실은 바닥을 지반보다 낮추어 충분한 천장높이를 확보해 음향의 효과를 높였으며, 외부로부터의 출입 통로로 역할 하는 중정을 함께 배치해 건축주가 원했던 독립성을 확보했다.
공간은 남쪽으로는 중정을, 북쪽으로는 녹음을 향해 열려 있다. 중정과 녹음은 실내 공간을 바깥과 연결하는 동시에 개방감과 깊이감을 더하는 요소다. 곳곳에 자리한 중정과 테라스는 외부의 밀도 높은 주거환경과 반대로 집의 밀도를 낮추고 집에서의 경험을 다채롭게 만든다.
벽체는 외부에서 보이는 부분은 가볍게 느껴지도록 백색 스터코로 마감하고, 내부에 접한 부분은 노출콘크리트의 물성을 그대로 살렸다. 1층과 옥상의 입면에는 스테인리스 타공판과 루버를 사용했다. 노출콘크리트와 스터코로 마감한 입면이 단조로운 바탕이라면, 스테인리스 타공판과 루버는 시간의 흐름과 빛에 따라 모습을 달리하며 파사드에 변화를 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