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디터. 김지아 글 & 자료. 조호 건축사사무소
장소적 컨텍스트와 디자인의 원형
‘EL 16.52’는 부산 송도 앞바다에 위치한 카페다. 카페 이름은 건물이 들어선 지하의 해발고도를 가리킨다. 대지가 속한 국가지질공원의 콘텍스트를 건축적으로 함축하고 지층의 시간성을 표현하고자 했다. 대지는 배들이 쉬어가는 곳이라는 의미의 ‘묘박지’에 해당하는 송도 앞바다에 면해 13.5m의 높이차를 두고 형성됐다. 이곳의 건축은 지질공원과 바다, 그리고 대지의 단차를 건축적 원형으로 해석하고 궁극적으로 상업성을 극대화하는 것을 목표로 했다.
레벨을 활용한 주차 동선
대지는 두 도로에 인접한다. 하나는 지하 2층 높이의 하부 공영주차장 방향의 도로이고, 다른 하나는 송도 도심을 향한 지상 2층 높이의 도로다. 두 도로가 13.5m의 높이차를 갖는 만큼 토지형질변경에 따르는 제약이 상당했다. 대지에서 건축 행위가 허용되는 경사 범위 내 면적을 산정하고, 이 값에 건축법의 세부 요건을 적용해 건축 가능한 면적을 도출했다. 제한적인 건축 면적을 효율적으로 활용하기 위해 주차 영역을 두 구역으로 나눴다. 경사로로 상하부를 연결하는 대신 상부와 하부의 주차를 구분하고, 그 사이 공간에 기계실과 각종 피트를 배치하는 방안이 효율적이라고 판단했다. 이처럼 13.5m의 단차를 공간을 구분 짓는 단서로 활용하고, 두 개의 주차 영역을 기능적으로 해석하는 일이 대지를 이해하고 건축의 기본 틀을 잡아가는 중요한 시작점이었다.
사업성을 보장하는 용적률
전체 대지는 963㎡지만 건축 행위를 할 수 있는 면적은 최대 561㎡ 정도였다. 그런 까닭에 법적으로 정해진 층수 제한(4층 이하)을 지키면서도 경사지의 특성을 최대한 활용해 사업성을 높일 용적률을 찾는 것이 다음 과제였다. 즉 적절한 규모의 카페 면적과 법정 기준보다 많은 주차대수, 대지와 접한 두 도로를 연계하는 동선 체계 및 추후 확장 가능성을 고려해야 했다. 전체 연면적 2900㎡ 중 카페 규모는 1000㎡ 정도로 설정했고 테라스를 확장해 실제 가용 면적을 극대화했다. 형질변경 가능한 대지 중 법정 건폐율을 고려할 때 건축물의 최대 폭은 15m 정도였다. 이는 차량 회전반경을 위한 법정 최소 기준을 고려한 값으로부터 프로젝트의 사업성을 보장하는 최소 치수이기도 하다. 건물은 전체 6층 규모로 지하 2층부터 지상 2층은 주차장, 3층과 4층은 카페로 구성하되 바다를 극적으로 조망할 수 있는 통창을 내어 외부 풍경을 끌어들였다. 방문객은 도심과 연결되는 메인도로에서 2층으로 진입해 상부 카페로 접근 가능하며 하부도로 쪽에는 VIP를 위한 별도 주차장을 마련했다.
모티브와 유닛 체계
‘원형’이란 본능적으로 우리 마음속에 떠오르는 보편적인 상징이다. 가령 바다의 원형을 상상한다면 뾰족한 삼각형보다는 수평선처럼 좌우로 길게 뻗은 선을 먼저 떠올릴 것이다. 즉 원형은 형태가 지닌 심미적 감성에 건축이 다가설 수 있는 길이다. 바다는 고요하지 않다. 한없이 고요한 수평선이 눈앞에 펼쳐진다고 해도 그 아래에 감춰진 거대한 에너지가 있다. 생계를 위해 매일 어둠을 뚫고 나서야 했던 어부들의 눈에도 바다는 경외의 대상이었을 것이다. 묘박지라 불리우는 이곳의 풍광은 바다의 잔잔함보다 삶의 역동적인 장으로 읽혀 마땅하다. 해운대와 송도해수욕장이 지닌 서정적인 감성과는 다른 삶의 에너지를 응축하고 발산하는 역동적인 파동에 가깝다.
물결을 닮은 아치 형태는 잔잔한 수평선이 아닌 역동적인 파도를 상징하는 모티브이자 구축을 위한 유닛 체계로 존재한다. 지하 주차장의 입면 또한 구축 체계로서의 아치를 반복하며 일관된 디자인을 이룬다. 웨이브 형태의 입면은 3~4층의 높이 10m 기둥과 엮인다. 하층부 주차장 입면에 드러난 웨이브의 피크점에 솟은 기둥이 상층부 평면 웨이브 피크점과 만나는 식이다. 이처럼 외부의 구조적 형상을 실내의 공간 패턴과 연결해 형태적으로 일원화된 체계를 만드는 것이 중요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