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디터. 김지아 글 & 자료. 수상건축 studio_suspicion
도시의 건물이 차지하는 바깥의 크기는 종종 건물 앞쪽이 면한 도로의 크기와 같다. 20m 도로와 접하면 문 앞도 시원하고 시선도 멀리 보낼 수 있는 한편, 4m 도로는 작고 답답하지만 아담하고 조용해 주거 환경으로 역시 나쁘지 않은 조건이다. 가원집의 앞길은 보차혼용의 8m 도로로, 중간 크기의 바깥이다. 앞길을 따라 나란히 놓인 이웃 땅에는 없는 이 땅만의 장점도 있다. 삼거리의 끝에 위치해 집의 바깥이 앞길 건너편에서 멈추지 않고 길의 길이를 따라 쭉 열린다.
이전 건물은 건축주가 어린 시절부터 지금까지 거의 평생을 보낸 집이었다. 새 집이 필요하다고 판단한 시점에 건축주는 동네를 떠나기보다 그 자리에 새 집을 짓기로 결심한다. 그렇게 건축주의 세 아이는 아버지가 자란 장소를 이어받게 될 것이다. 그리고 그 장소는 아버지의 아버지와도 이어져 있다. 땅이 돈이 아니라 장소의 형태로 대를 잇는 것. 요즘에는 특히 드문 일이다.
첫 검토 시에는 늘 하던 바와 같이 최대치의 면적을 찾았다. 땅 크기가 약 340㎡니 용적률 200%로 건물 크기는 680㎡. 예산 초과가 예상됐다. 시행사가 아닌 개인이 짓기에는 땅이 조금 큰 편이기도 했다. 9세대의 원투쓰리룸 구성을 그대로 유지하면서 예산에 맞게 건물 규모를 조정하는 작업이 이어졌다. 처음에는 이게 가능한 일인지 걱정도 됐으나 어찌어찌 예산에 맞는 560㎡ 건물이 나왔다. 종심형으로 좁고 긴 대지의 깊이 방향을 다 사용하고, 너비 방향으로 건물을 줄였다.
이러한 방식이 첫 검토안의 세대 구성을 유지하는 데 적합하기도 하고 동시에 도심지 저층집합주거, 빌라와 그 주변의 관계를 새롭게 하는 데 도움이 되는 방식이라고 판단했다. 서울시 공지 기준에 따라 다세대 빌라는 옆 땅으로부터 1m를 이격해야 한다. 옆 건물도 빌라면 건물 사이는 2m를 이격하는 것이 조건이다. 빌라 골목의 풍경을 지배하는 숫자다. 결국은 규모를 줄여야 하니 평면에 꼭 필요한 너비만큼 건물을 얇게 만들었다. 구조적인 정합성이나 주차의 효율, 피난 동선의 확보 등 자잘한 이점이 있으나 차치하고, 이로써 왼쪽 건물과 4.6m, 오른쪽 건물과 2.5m 떨어졌다. 오른쪽 건물이 새로 지어진다면 이쪽도 3.5m 이상 떨어지는 셈이었다.
당장 예비 임차인들의 평가가 좋다. 닭장처럼 다닥다닥한 빌라만 봐 왔는데 무엇보다 옆이 시원해 좋다고 한다. 건축주도 건물 사이가 마음에 들어 안쪽 공터에 임차인들과 이웃들을 위한 마당을 꾸미고 있다. 한발 더 나아가 1층 근린생활시설에 자리한 빨래방을 건축주가 직접 운영한다. 주거 공간뿐 아니라 빨래방에 대한 예비 거주자들의 호응도 좋다. 건축가의 입장에서는 나름의 방식으로 대지 앞 열린 골목에 응답하는, 적당히 열린 건물을 지을 수 있어 만족스럽다. 건물 규모를 줄여 손해 본 사람은 없는 듯하다.
건물의 구성은 다음과 같다. 1층 근린생활시설 1호, 2층 원룸, 투룸, 쓰리룸 3세대, 2층과 동일한 구성의 3층, 원룸과 투룸 2세대가 위치한 4층. 마지막으로 4층 일부와 5층, 다락의 3개 층을 사용하는 주인세대가 있다. 5층은 주인세대 거실과 안방 영역이 자리하고 4층과 다락으로 나뉜 세 아이의 방은 거실에서 실내계단으로 연결된다. 임대성의 균형을 위해 도로 쪽에 투룸 세대를, 뒤편에 쓰리룸 세대를 주로 배치했다. 그 사이에 원룸이 끼어 있다. 다양한 시장의 요구에 따른 다양한 세대 구성으로 대응하는 전략을 취한 것인데, 사용 승인과 함께 임대가 순조롭게 진행됐으니 전략 성공이라 할 만하다.
건물의 이름은 세 아이의 돌림자를 따라 건축주가 직접 지었다. 그러니 가원집은 이 집안의 넷째 아이인 셈이다. 옛집이 아버지의 오랜 친구였던 것처럼 막 태어난 가원이가 삼 형제의 평생의 친구가 되기를 바란다. 옛집의 철거 앞에 불편한 마음을 추스르기 어려웠던 아버지처럼 먼 훗날, 이 집의 마지막 순간에도 세 아이가 함께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