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디터. 김태진 글 & 자료. 아이디알 건축사사무소 IDR Architects
신도시의 가로 풍경: 패턴과 변주, 그리고 혼란
경기도 동탄은 1기, 2기 할 것 없이 전형적인 신도시다. 사실 우리나라에서 전형적이지 않은 신도시를 찾는 것은 쉽지 않은데, 이는 도시조직의 분할 방식에서부터 용도 지정, 수익 회수 구조까지 만들어지는 방식이 서로 흡사하기 때문이다. 그 가운데 지구단위계획에 맞춘 상업지역의 개별 건축물은 대부분 임대수익이 목적이라 가능한 저렴하게 짓게 된다. 공사비를 절감하기 위한 가장 좋은 방식은 단순한 디테일을 반복하는 것이라 이런 건축물은 만들어 내는 입면 또한 패턴의 반복을 기본으로 한다. 여기에 작은 변주가 더해지지만, 큰 의미는 없다. 더욱이 시간이 지남에 따라 간판으로 뒤덮여져 개별 건축물로서의 변별력도 잃게 될 공산이 크다.
이러한 맥락 가운데 들어서는 ‘사옥’은 어떠해야 할까? 패턴이라는 기존 도시 조직의 큰 규칙을 따르되, 완공 후 꽤 오랫동안 간판이 붙지 않는다는 조건을 고려하면 어떤 방식으로 존재감을 드러내야 할까? 이런 고민과 함께 이 프로젝트를 시작했다.
도시 끝에 단단한 마침표를 세우다
빠니깔레 동탄의 대지는 동탄 2기 신도시 남쪽 끄트머리 모퉁이 땅에 위치하고 있다. 개발계획에 의하면 도시의 확장이 마무리되고 자연으로 전이가 시작되는 경계부라는 조건을 가지고 있는 셈이다. 이러한 맥락이라면 도시의 끝자락을 정의하고 남쪽으로 열린 시원한 전망에 대한 앵커anchor로 작용할 단단한 마침표와 같은 건축이 잘 어울릴 것이라 생각했다.
두 개의 직통계단 중 하나는 외부에 위치한다. 이 외부 계단이 단일 용도로 쓰이는 사옥의 폐쇄적 성격을 중화시키고 외부와 소통할 수 있는 장치로 작동하기를 바랐다. 계단실의 벽은 익스펜디드 메탈을 사용해 투과성 높은 스킨을 완성했다. 동쪽 도로에서 진입하면 레벨 변화 없이 지상에서 외부 계단으로 올라갈 수 있다. 외부 계단과 내부 계단 모두 노출 콘크리트와 철판으로 마감해 통일감을 주었다. 층고가 높고 시원한 공간감이 장점인 1층에는 브랜드의 플래그십 스토어가 들어선다.
빠니깔레 동탄의 2층에서 4층까지는 샘플 제작실, QC실, 물류 등 브랜드 지원 공간으로 사용되며, 남쪽을 향한 시원한 전망이 돋보이는 5층에는 대표실과 직원들을 위한 사무공간이 마련되어 있다. 주차는 레벨이 낮은 서쪽에서 진입할 수 있도록 계획했다.
분절의 미학, 연속성의 디테일
유리 매스와 벽돌 매스의 연결부는 내수 합판 위 메탈 시트와 스틸 플레이트로 이뤄진 디테일을 통해 강조된다. 두 매스의 비틀어진 관계로 인해 다양한 조건이 만들어지며, 이를 관통하는 키 디테일로서 분절을 강조하는 리세스recess의 표현은 건물 전체를 돌아가며 일관적으로 유지된다.
기울어진 면에 의해 만들어지는 그림자는 시간에 따라 변화무쌍한 모습을 보여준다. 저녁이 되어 경관 조명이 켜지면 빠니깔레 동탄사옥은 또 다른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한다. 개구부 옆 프레임과 벽돌 사이 틈에 숨어있는 LED 조명은 꺾인 벽돌 면에 빛을 던져 고유의 텍스쳐에 표정을 더한다.
도시적 패턴: 동질성과 차별성
건축주는 단순하면서도 개구부의 존재감이 강한 벽돌 건물을 요청했다. 먼저 벽체가 사선으로 꺾여 깊이감을 가지면서도 그림자에 의해 시시각각 인상이 변하는 입면을 상상했다. 또한 크기가 다른 두 개의 개구부 모듈을 이용해 단순한 원칙에서 출발했지만, 빨리 읽히지 않으면서도 일관성 있는 강한 인상을 전달하는 패턴을 찾기 위해 노력했다. 말하자면 신도시 상업지역의 흔한 건축물의 규칙을 따르면서도 다시 한번 더 보면 주변과 구분되는 존재감이 느껴지는 패턴을 의도한 것이다.
브랜드의 정체성, 그리고 건축 재료
빠니깔레는 중견 남성복 브랜드로 어반 인더스트리얼의 이미지를 통해 브랜드의 정체성을 다지고 있다. 특히 각 매장의 인테리어와 화보의 배경에서 감성의 일관성이 엿보여 건축 재료를 선택할 때 시간을 단축할 수 있었다. 철과 콘크리트, 무채색의 벽돌과 같은 재료가 다소 투박하면서도 솔직하게 매칭되면서 브랜드의 정체성을 연상시킬 수 있도록 의도했다.
파라펫이나 난간에 의해 시선이 가로막히지 않은 옥상은 남쪽의 개발되지 않은 풍경을 향해 시원한 전망을 선사한다. 난간은 상부에 수평 바가 생기지 않도록 아랫부분에서만 수직 부재끼리 스틸 로드로 연결하는 디테일을 적용했다. 건축주는 상담 초기, 빠니깔레 동탄의 옥상에서 지인들 또는 직원들과의 가든 파티를 꿈꾼다는 이야기를 종종 들려주었다. 파라펫보다 높게 들어 올려진 데크 위에 커다란 사각 플랜터가 툭툭 놓인 시원한 옥상정원에서 건축주의 꿈이 실현되는 현실을 맞는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