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디터. 최성우 글 & 자료. 라이프이즈로맨스 LIIR
숲으로의 항해 그리고 정박하는 시간
처음 대지를 방문했을 때 뒤쪽은 나즈막한 산이 대지를 포근히 감싸고 있고, 앞쪽은 드넓은 산능선이 펼쳐져 있는 형상이 인상 깊었다. 건축주가 느낀 감상도 같았다. 등 뒤의 산자락처럼 포근하게 감싸주는 쉼이 있는 공간이면서도 눈 앞에 시원하게 뻗어나가는 산능선처럼 새로운 환기가 가능한 탁 트인 공간이기를 바라며 프로젝트는 시작되었다.
산온잔등은 기존 건물을 고쳐 만든 ‘아래동’과 신축 ’너머동’의 2동이다. 아래동은 최대한 기존 건물의 느낌을 살리기 위해 벽돌 외장재료와 형태감을 유지하고 꼭 필요한 부분만 다시 만들었다. 최소한의 비용으로 최대의 효과를 내기 위해 반복적으로 고민하고, 할머니집에서의 향수를 떠올리며 그 경험을 잘 표현하는 디자인 시도의 현장이기도 했다. 예를 들면, 혼자만 들어갈 수 있는 작은 골방에서 몰래 만화책 보기, 마당에서 가족들과 다같이 고기 구워먹기, 바닥에 드러누워 수박 먹기, 큰 나무 그늘 아래에서 한가로이 시간 보내기 등 누구에게나 있을법한 어릴 적 향수를 불러일으킬 수 있는 행위를 상상하며 디자인을 발전시켰다.
벽구조의 건물 특성상 바꿀 수 없는 벽이나 기둥들이 있었고, 이를 유지 및 보완하는 과정을 거쳐서 완전히 새로운 공간을 만들어야 한다는 부분이 흥미로웠다. 예를 들면, 본래 현관이 있던 위치를 거실로 만들게 되었다. 그 과정에서 구조보강을 위해 기둥을 추가해야 하는 상황이었다. 거실의 한 가운데에 세워진 기둥과 이어진 테이블을 구성하고, 기둥 중간에 선반 요소를 만들어 프래그런스Fragrance 등의 소품을 둘 수 있게 해 아래동의 포인트 공간으로 승화시켰다. 핸디캡으로 작용할 수 있었던 조건을 오히려 더 특별한 요소로 완성시킬 수 있었다.
새로 지은 너머동은 경험해보지 못했던 새로운 자극을 주는 공간이 되길 바랐다. 미니멀하고 단순한 구조 속에서 가장 현대적이고 극적인 공감각적 경험을 할 수 있었으면 했다. 사각형 박스를 기준으로 가운데 주요 코어를 배치하고 다른 공간은 열려 있는 순환형 구조로 평면을 구성했다. 침실 하나와 화장실을 제외한 모든 공간에 벽이 없다. 다만 높낮이 차이를 주어 공간을 분리하고, 공간적 경험을 풍성하게 하고자 했다. 또한 온전히 열린 공간에 욕조를 설치해 일상 속에서 누릴 수 없는 새로운 자극을 주고자 했다.
오래된 건물을 리노베이션한 아래동과 신축한 너머동, 완벽히 다른 두 개의 건물을 하나의 스토리로 풀어내기 위한 브랜드 아이덴티티 작업도 필수적이었다. ‘잔등’은 산능선의 방언이자 ‘깊은 밤의 꺼질락말락 하는 희미한 등불’이라는 두 가지 의미를 갖고 있다. 이 공간에서 머무는 모든 사람들이 자연 속에서 위로와 희망을 얻고 다시 빛날 수 있기를 바라는 의미를 담았다. 대지를 처음 살펴 보며 떠오른 키워드인 포근함과 환기가 잔등이 가진 시적 이미지와 결합해 위로와 희망이라는 의미로 정리됐다. 구옥과 신축 건물의 이름인 아래동과 너머동도 이유가 있다. 위로를 전하는 곳은 산능선 아래의 포근한 공간, 희망을 전하는 것은 산능선 너머의 탁 트인 공간이라는 뜻이다.
두 다른 건물을 하나로 연결하기 위해 사용한 건축적 언어는 믹스앤매치Mix and Match다. 이질적인 재료와 마감방식, 다양한 컬러와 디자인 언어를 적절히 섞어 부담스럽지않고 산온의 방향성에 맞추어 디자인 언어를 통해 표현했다.
아이보리색 도장 마감재와 원목 마루 등 따뜻하고 아늑한 느낌을 줄 수 있는 자재를 주로 사용하되, 서스SUS 가구와 블랙가구로 포인트를 주었다. 차갑게 느껴지는 재질인 서스를 이렇게 따뜻한 무드로 풀어낼 수 있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또한 가구나 공간을 구획하는 조형에 있어서도 불필요한 디테일 요소를 제거하고 최대한 미니멀하게 만들었다. 산온 잔등에 머무르게 될 사용자의 낭만, 행위, 감각 모두를 상상하며 그들의 경험에 중심을 두었다.
너머동 앞마당에는 제법 커다란 수영장이 있다. 수영장 옆에 계단형식의 좌석을 만들어 시각적으로 수영장 영역이 확장되는 듯하다. 이 계단에 앉거나, 기대거나, 눕는 등 사용자가 다양한 행위를 펼칠 수 있길 기대했다. 수영장 옆에는 비치 체어Beach Chair와 파이어 핏Fire Pit을 두었는데, 물놀이 후 바로 따뜻한 불을 쬐며 일렁이는 수영장의 물결과 빨갛게 타오르는 불길을 가만히 바라보는 낭만을 상상했다.
아래동의 마당에는 화덕을 설치했다. 커다란 야외 테이블에 도란도란 둘러앉아 화덕에서 갓 구운 음식을 꺼내 사랑하는 사람과 나눠 먹는 행복한 순간의 중심이 되길 바랐다. 실내에 마치 수영장과 같은 커다란 욕조를 마련해 두었다. 이곳은 복잡하게 만들어 둔 동선을 따라 들어가야 비로소 발견할 수 있다. 둥그런 천장에서 비추는 노란 조명에 물이 반사되어 만들어 내는 일렁거림과 함께 좋아하는 영화를 틀어놓고 찰랑대는 물소리를 들으며 노곤하게 풀리는 몸과 마음을 느낄 수 있다.
너머동에는 옥상 정원이 있다. 기존 설계안에 반영되어 있지 않았다가 공사 도중 눈 앞에 펼쳐진 산 능선을 보고 건축주와 라이프이즈로맨스 모두 옥상 정원이 꼭 있어야한다는 점에 동의했다. 이곳에서 바라보는 풍경이 산온잔등의 아이덴티티 그 자체라고 생각했다. 파노라마처럼 펼쳐진 산세와 시시각각 변하는 풍경을 지켜보면서 행복한 고립감을 느낄 수 있다.
사람은 언제나 다음을 향해 쉼없이 이동하기 마련이다. 그렇기에 우리에겐 정박할 시간이 필요하다. 이동하는 삶과 정박하는 삶 가운데 당신의 머무르는 시간을 위한 공간으로 산온잔등이 기억되기 바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