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디터. 윤정훈 글 & 자료. 임태희 디자인 스튜디오
최소한의 행위가 주는 충만함에 관하여
충남 아산에 위치한 온양민속박물관에는 50미터 길이의 부속 건물이 있다. ‘일자집’이라고 불리는 이곳은 박물관의 허드레 공간으로 지어졌지만 멋내지 않은 검박한 아름다움을 간직한다. 건물은 시간이 만들어낸 자연스러운 정원을 마주보고 있다. 이곳을 카페로 바꾸는 프로젝트를 맡았다. 설계에 있어 중요한 점은 ‘최소한의 행위가 채우는 충만함’에 관한 것이었다.
멋지고 예쁜 게 많아지는 현대 사회에서 이 장소에 맞는 것, 이 장소만이 만들어 내는 시간과 경험이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멋지려고 애쓰지 말 것. 이 간단한 문장은 설계를 하는 내내 가장 힘든 실천법이 되었다. 다행히도 온양민속박물관에는 자본이나 인위적 조작으로 이룰 수 없는 아름다움이 있었다. 이 아름다움을 방문객과 나누는 것이 중요했다.
개인적인 견해에 비춰볼 때 온양민속박물관이 지닌 아름다움은 크게 두 가지다. 하나는 시간이 만들어낸 아름다움이고, 다른 하나는 계절, 날씨, 바람, 사람, 자연에 따라 시시각각 변하는 아름다움이다. 이러한 상반된 속성은 자연의 그것과 닮았다. 한 순간도 같지 않다는 점에서 그리고 변하지 않는 가치를 지닌다는 점에서 말이다.
생각 끝에 공간의 주인공은 건물이 놓인 땅, 즉 카페에서 보이는 자연과 마당이며 카페는 그저 정원의 일부라고 판단했다. 한옥의 마당이 그러하듯 비워진 곳을 찾는 사람들이 만드는 에너지를 떠올렸다. 비워 있지만 시시각각 다른 채움이 있는 공간. 즉 최소한의 행위가 주는 충만함이란 바로 이런 것이다.
허드레 공간으로 만들어졌기에 층고가 낮았다. 천장을 노출함과 동시에 설치해야 하는 전기나 설비를 고심했다. 처마에 물동이를 만들어 튀어오르는 빗물로 상했던 건물을 보호했다. 창작 센터로 사용되는 나머지 반쪽은 필요 시 분리될 수 있게 해 편의성과 유연성을 높였다.
낮은 창을 통해 보이는 풍경을 실내에서도 공평하게 감상하도록 벽면을 따라 긴 소파 벤치를 두었다. 이는 정원을 보는 다양한 각도를 제공한다. 매우 소박하고 약한 정자도 두었다. 종이로 만든 이 정자는 공중에 떠 있어 사람들이 지나다니가거나, 문을 여닫거나, 행여 바람이라도 불면 그대로 흔들리고 만다. 정자는 내부에 작은 방을 갖춘 작은 건축이기도 하다. 대나무로 만든 창살로 섬세함을 더했다.
작고 연약한 건축은 한쪽으로 열려 있고, 이 열린 공간을 따라 벽면 벤치와도 연결되어 뫼비우스의 띠처럼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다. 천장 구조물 역시 대나무로 만든 것인데, 중력에 의해 축 처진 모습이 무척 약하고 아늑한 분위기를 만든다. 언뜻 평범해 보이나 실은 무척 이형적인 형태를 띄는 가구들은 자세히 보아야만 발견할 수 있는 감각을 선사한다.
카페온양은 최소화된 것들만이 있는 공간이다. 이 최소화된 행위는 억지로 멋을 내려고 한 데서 비롯되지 않아 지극히 기능적이고 심미적인 요소를 만들어 냈다. 비워진 공간을 통해 비로소 발견하게 되는 지극히 평범한 풍경이 지극히 비현실적으로 아름답게 다가오기를. 사계를 느끼며 우리의 일상이 그리고 자연이 얼마나 아름다운지 발견하는 곳이 되기를 바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