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디터. 윤현기 글 & 자료. 드로잉웍스 DRAWING WORKS
아파트 단지와 면한 모서리 땅에 하얀 날개를 연상시키는 파빌리온을 선보였다. 모서리를 중심으로 양쪽 날개를 펼친 듯한 형상을 띄는 파빌리온은 금속 커브월 모듈을 입면에 부착했고 40m 길이의 단지 담장과 이어지며 규모는 가로 12m, 높이 9m에 이른다.
처음 이 프로젝트는 아파트 단지의 문주(주출입 게이트) 제작으로 시작됐다. 단지는 6차선 도로에 인접해 있지만, 배치상 대로에 주출입구를 내지 못하고 마을 길을 돌아들어 가야 했다. 한동안 상징성을 갖는 분수대로 운영하다가 연간 가동률이 낮아 폐쇄하고, 이후에는 모서리를 지키는 구조물로 바꿨지만 인지성이 낮아 아파트 입주민 대표들이 여느 아파트들처럼 돋보이는 문주를 설계해 달라고 요청해왔다.
여러 차례 아파트 입주민 대표단과 미팅을 하면서 주민들이 원하는 상징성을 담아내는 동시에, 주변의 마을 경관을 고려하면서도 다중이 이용할 수 있는 대안을 찾고자 했다. 모서리 땅의 소유주는 아파트 입주민이지만, 이웃하는 마을 주민에게도 열린 공간이 되고 행인에게는 사적 소유물로 비치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이었다.
주요 파사드는 북동 측 도로변에 있어 오전에만 빛과 그림자가 내부 마당으로 들어온다. 표면에 깊이를 더하기 위하여 제작된 곡면의 루버는 빛에 따라 음영이 달라지고, 풍성하게 자라난 소나무의 그림자들이 담기며 만들어지는 자연스러운 풍경은 사람들의 일상과 함께한다. 내부 마당에서는 구조물 사이로 하늘을 바라보며 그늘을 편안하게 감싸 안고 내려오는 빛을 감상할 수 있다. 하얀 날개는 뚜렷한 존재감을 가지는 동시에 이곳에 새로운 공공의 풍경이 될 것이다.
‘00 아파트 문주 디자인 설계용역’을 가칭 ‘산본 파빌리온-White Wing’으로 재정의하면서 파빌리온 형식을 내세웠다. 파빌리온pavilion의 어원은 ‘나비’를 뜻하는 라틴어 ‘papilio’다. 우리말로는 ‘임시 구조물’의 의미도 지닌다. 거주, 소비, 여가를 위해 빈틈없이 채워지고 규정되는 도시공간에서 아파트 모퉁이의 유휴지에 무목적으로 세워진 파빌리온은 사람들의 숨통을 틔우는 여백의 공간으로 작용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