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디터. 김지아 글 & 자료. 모어레스 건축사사무소
제주 독채 스테이의 현주소
제주 한경면 청수리에 위치한 대지는 경사지에 도로를 깔고 땅을 분할해 옹벽을 쌓아 만든 개발행위 필지다. 이미 들어선 몇 채의 건축물은 대부분 농어촌 민박 스테이로 사용되고 있으며 주거 용도보다 단기간 거주하는 숙박시설의 모습을 띠고 있다.
단지 형태의 필지이나 다양한 사람들이 단기간 사용하는 숙박 공간과 개인적인 독채 건물이 뒤섞인 상태였다. 이는 제주 필지가 빚어내는 독특한 현상이자 현대 사회의 극단적 욕구의 반영이다. 복잡한 도시 구조 속 수많은 관계에서 벗어나 낯설게 고립되기를 바라는 이들을 위해 외따로 자리한 공간. 오늘날 제주 독채 스테이의 모습을 단편적으로 보여준다.
오브제이자 풍경
단지를 거닐며 마주하는 건축물은 마치 하나의 풍경처럼 보인다. 공간에 머무는 이가 외부와 주요하게 관계 맺지 않는다면 건축물 자체가 주변 환경 속에서 이질적이지 않은 맥락으로 자리하기를 바랐다. 붉은 송이석을 깐 바닥 위로 불그스름하게 솟아오른 매스는 푸른 하늘, 담장, 처마, 초록의 조경과 함께 어우러져 배경이자 오브제로 기능한다. 내부화된 공간의 외부가 주변 환경과 조화를 이루며 관계하기를 의도했다.
자연을 향한 흐름
정방형의 필지에 외부 마당을 중심으로 각 공간이 켜켜이 전개되도록 구성했다. 각 공간은 기능과 비율에 따라 적절한 크기와 관계, 흐름을 만들어낸다. 모든 공간은 개인화된 외부 공간과 연계해 그 쓰임이 언제든 바깥으로 확장될 수 있도록 했다. 내부 공간에 집중되는 도심 속 건축과 달리 자연의 풍요로움을 경험할 수 있는 제주의 땅에서 외부 공간을 통해 환경을 충분히 누리길 바란 의도다. 공간의 흐름이 한 편의 음악과 같이 변화하고 전개될 수 있도록 요소요소를 연결했다. 약 116㎡ 규모의 단층 건물이지만 기능에 따라 공간은 수축하고 팽창하며 빛은 밝고 어두워진다. 그리고 바닥의 오르내림을 통해 새로운 영역의 공간으로 자연스레 흘러들 수 있도록 했다.
풍요로운 사색의 공간
단이 낮아 아늑한 거실, 소리의 울림이 있는 아치 형태의 다이닝, 빛이 쏟아지는 천창의 주방, 마음을 가라앉히는 침실, 이불 덮고 울기 좋은 작은 공간, 외부 수영장에서 이어지는 내부의 따스한 욕조. 물리적 공간의 경험을 풍요롭게 만드는 건축 요소들이다. 그러나 그 모든 의도는 사라진대도 함께 모인 이들의 흥겨운 소리가 아름답게 울리는 공간으로, 풍경과 빛에 시선이 머무는 창으로, 아늑히 그리고 조용히 사색에 빠지는 공간으로, 다만 일상의 기억에 오래 머무는 공간으로 남기를 바란다. 그렇게 공간을 즐기는 이들이 건축의 가능성과 무뎌진 감각을 회복하는 일에 가닿기를 꿈꾼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