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디터. 이영은 학생인턴 글 & 자료. 조한준건축사사무소 JoHanjun Architects
비우고 나누고 채우다
새로운 주택을 지으면서 건축을 통해 진정한 시월드(?)를 구축하려는 의뢰인이 찾아왔다. 시아버지와 어린 아들을 둔 건축주 부부 그리고 시누이 가족들이 함께 살 집을 지어야 했다. 대지는 남편이 나고 자란, 남편의 추억이 담겨 있는 곳이자 시부모님이 오랜 시간 거주한 동네가 산업단지조성으로 기존 주민을 위해 마련된 택지였다.
‘비나채’의 뜻은 ‘비우고 나누고 채운다’의 줄임말이다. 일반적인 다세대 주택은 가구수와 임대소득을 법 허용치의 최대로 잡아 집의 형태나 주거 환경이 제약을 가지는데 비나채는 이름을 방향 삼아 프로젝트를 진행하여 차별점을 둘 수 있었다.


편견에 맞서다
한국 여성에게 ‘시댁’은 좁혀지지 않는 간극이다. 가족이라는 한 울타리에 있지만 보이지 않는 위계와 형식이 서로를 밀어내기 때문이다. 건축주 부부는 이러한 사회의 편견을 깰 수 있는 작업을 의뢰했다. 건축주는 며느리에게 부담 주는 것을 극도로 싫어한 시아버지를 설득했고 ‘불편하고 힘들다’며 고민하던 시누이의 손을 잡았다. 단순히 책임감이 아닌 가족이 모여 복작복작한 삶을 원했기에 적극적으로 추진했다. 이에 1층에는 시아버지가 2층에는 건축주 가족 그리고 3층에는 시누이 가족이 사는 보기 드문 ‘시월드’ 집이 탄생했다.



세 채 같은 한 채
건축주는 꿈꾸는 집의 모습을 눈앞에 그려지는 듯한 문장으로 적어냈다.
∙ 이웃에 위세 부리지 않고 주변을 비웃지 않는 집
∙ 아이가 햇빛에 달궈진 마당의 돌을 맨발로 밟으면서 뛰노는 집
∙ 아버님이 일군 밭에서 딴 오이와 고추를 다듬을 작은 수돗가
∙ 동네 아이들이 놀다 가는 집
∙ 명절, 모임 등을 위한 주방
∙ 아버님과 앉아 멸치를 다듬으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눌 툇마루



건축주는 각 세대가 집에서 단독주택의 정취를 경험하길 바랬다. 이에 물리적인 덩어리를 비워내고 거기에 다양한 삶의 방식을 채워넣는 것이 화두였다. 주변에 집들이 채워지더라도 채광에 방해되지 않게 배치하고 층마다 마당을 두었다. 한 출입구를 통해 각 집으로 연결되는 다가구주택은 사생활 보호를 받기 어렵기 때문에 각 층의 동선을 분리하여 3개의 출입구를 만들었다. 또 작은 카페를 운영할 수 있는 상가 공간도 원했기 때문에 1층은 도로변에 인접하게 했다. 결과적으로 일반적인 다가구주택의 네모반듯한 집과는 달리 택지에 숨통을 틔우듯 군데군데 비운 비정형의 집을 계획했다.




달라진 공간, 풍성해진 삶
내부 구조와 규모도 각 구성원의 생활 방식과 채광 등에 따라 층마다 달리했다. 1층 목재로 된 긴 슬라이딩 담장문을 열면 주차장 겸 마당이 나온다. 팔순인 시아버지가 지내는 집으로 작지만 알차다. 거실과 주방, 방을 일렬로 배치해 동선은 단순하게 만들었다. 거실에는 툇마루를 내 마당과 연결했다. 활동적인 건축주 가족이 생활하는 2층은 온가족이 모이는 비나채의 중심 공간이다. 마당에는 잔디를 심어 아이들은 텐트를 치거나 공놀이를 한다. 가끔 온가족이 모여 식사 또는 모임을 원했기에 주방은 거실보다 더 넓게 만들었다.




배치가 만들어낸 모양
서남향인 집에서 2층은 동쪽으로, 3층은 서쪽으로 배치했다. 살짝 틀어진 덕에 넓은 외부공간도 만들 수가 있었고 각 집에서 밖을 보는 풍경도 완전히 다르다. 공간이 달라지면서 삶도 바뀌었다. 이전에 짧게 만나고 헤어졌던 세 가족은 한집에 살면서 시간을 함께 공유하게 됐다. 집 이름의 뜻을 물었을 때 건축주는 “집을 지으면서 욕심도 많았지만 가족을 위해 비웠고 집을 통해 주변과 나누고 싶었어요. 이로써 얻어지는 행복과 감사함으로 집을 채운다는 의미를 담았어요.”고 말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