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디터. 김현경 글 & 자료. 오드 건축사사무소 ODE Architects
보통 천년이라는 말은 사람들에게 현실처럼 와닿지 않는다. 판타지 소설에서 상상력을 자극할 때나, 뭔가 믿거나 말거나 과장되게 표현하고 싶을 때 가끔 던지며 쓰는 말이다.
하지만 경주는 한 국가의 문화적 에너지를 천년동안 축적한 도시라 천년이라는 말은 상상이 아닌 바로 눈앞에 직관이 가능한 살아있는 현실로 나타난다. 그만큼 경주는 문화적 뿌리가 깊은 도시다. 이렇게 조심스러운 환경 속에서 이전에 없던 것을 새로 만드는 것은 사실 무척 긴장되고 부담스러운 일이다. 그런 부담감 때문인지 철근콘크리트 부재를 한옥 형태로 조립한 콘크리트 한옥을 경주에서 쉽게 볼 수 있다. 콘크리트 한옥은 여러 현실적 상황에 의해 만들어진 건물이지만 경주라는 특별한 장소에서 콘크리트 한옥을 만나게 되면 부담감으로 회피하거나 분위기에 어쩔 수 없이 억지로 따른 것처럼 느껴져 다른 곳보다 불편한 감정을 더 크게 받게 된다.
천년고도라는 부담감이 콘크리트 한옥을 생산하는 동력으로 작용하여 천년고도의 진정성을 희석하고 있는 역설적인 상황이다.
이런 부담감 주는 경주에서 건축가로서 첫 번째 목표는 회피하거나 종속되지 않고 정중한 예의를 담은 건축을 하는 것이다.
관계는 서로 주고받은 반응이 쌓여 가면서 형성된다. 자연스럽고 솔직한 반응들은 긍정적 관계를 지속시키는 동력이지만, 무성의한 반응은 관계를 지속시킬 수 없게 하는 걸림돌로 작용한다.
도시는 긴 시간 쌓인 반응들에 의해 정체성이 형성된다. 콘크리트 한옥은 아마 천년고도라는 분위기에 대한 건축적 반응이었을 것이다. 이러한 반응은 돌출적인 것은 아니기 때문에 무작정 비난할 수 없지만, 그렇다고 무성의한 반응이 도시에 쌓여가는 것에 동조하기는 어렵다. 그것에 동조할 수 없는 불편함이 ‘W주택’의 시작점이라 할 수 있다.
‘W주택’ 경주의 문화적 환경과 연관된 형태를 직접적으로 표현하는 것을 자제하고 변함없이 문화적 환경의 바탕이 되어왔던 자연의 일부인 빛과 관계를 맺기를 원했고 전통적 형태는 빛에 반응하기 위한 한정된 기능적 수단으로 활용하고 있다.
빛이 충분히 만족 할 수 있는 자연스러운 반응을 즉각적으로 할 수 있도록 한옥의 지붕 재료인 암키와의 옅은 곡선을 암키와와 동일한 크기 간격으로 남쪽 입면에 최대한 길게 배치했다.
빛은 암키와 선에서 그림자로 변화되고 곡선면에 떨어진 그림자는 수묵화의 농담처럼 깊고 옅게 곡선면 위에 그려진다. 긴 입면 위 수많은 그림자들이 각자의 자리를 잡게 되면 빛과 ‘W주택’은 따로 분리될 수 없는 관계가 형성된다. 빛의 움직임, 날씨, 계절의 변화를 짙고 옅은 농담의 변화로 시시각각 끊임없이 반응하는 더블유주택은 하나의 고정된 형태로 상징화되지 않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