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디터. 박경섭 글 & 자료. 온 건축사사무소 On Architects Inc.
고향으로 회귀하는 이를 위한 주택
인생을 열심히 살아온 이들에게도 은퇴 후 노후 준비는 큰 고민일 것이다. 은퇴 후에 고향으로 돌아가 남은 인생을 보내는 것을 꿈꾸는 이들이 많아지고 있다. 닫힌집, 열린집은 울산에서 살던 건축주 부부가 남편의 고향 마을인 은편리로 돌아가 주택을 지어 살면서 의미 있는 일을 해보기로 마음먹으면서 시작된 프로젝트이다.
집 그리고 문학관
건축주 부부는 도심에서의 삶에 익숙해진 터라 시골에서의 일상을 낯설어했다. 부부가 시골에서 사는 것을 걱정하게 된 가장 큰 부분은 안전이었다. 설계 의뢰 당시 부부는 타인이 집안을 쉽게 보거나 들어 올 수 없는 구조를 원한다고 하였다. 아이러니할 수 있지만, 건축주 부부는 집에 사람을 초대하는 것과 음식을 해서 사람들과 나누어 먹는 일을 좋아하는 이들이었다.
남편은 본업 외에도 시집을 출판한 적이 있는 시인이었다. 그는 나이가 들면 조용한 곳에서 시를 쓰며 문학인들과 교류하는 삶을 살고자 하는 소망을 간직하고 있었다. 부부는 수십 년 후 나이가 들어 남편의 고향에 지은 집에서 살 수 없게 될 때에는 집을 문학관으로 전환해 사람들을 위한 문화공간으로 만들고자 하는 계획을 얘기했다. 부부의 여러 바람과 특성에 맞춰 휴식과 교류, 집과 문학관이라는 관계를 모두 수용하는 집을 짓고자 했다. 닫혀 있으면서도 열려 있는 공간을 가진 주택, 닫힌집 열린집은 그렇게 탄생했다.
닫힌집
건축주는 설계 당시에도 안전에 대한 불안감으로 몇 번이나 집을 짓는 것을 포기할까 고민했다. 우리는 이를 해결하기 위해 공간적으로 외부 시선이 철저히 차단된 닫힌 집을 제안했다. 다만 대지의 방향이 좋지 않은 상황이었다. 동쪽과 남쪽으로 높은 산이 있고 서쪽으로는 널따란 논이 자리한 탓에 주택의 조망은 자연스럽게 서향을 향할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서쪽으로 긴 대지의 특성을 반영한 18미터 길이의 긴 벽을 만들었다. 이를 통해 외부의 간섭을 최소화하는 동시에, 서향에서 내리쬐는 강한 햇빛을 어느 정도 가리는 가림막 역할도 했다. 그뿐 아니라 건축주 부부가 손님을 초대했을 때 파티 공간으로도 활용이 가능하리라 생각했다. 또한 추후 주택이 문학관으로 바뀌게 되면 다양한 문화 행사를 열 수 있는 기능을 할 수 있으리라 예상하였다.
열린집
집 안에 들어오면 집 밖에서 예상했던 것과는 완전히 다른 열린 공간을 느낄 수 있다. 건축주 부부에게 안방 하나를 제외하고 모든 내부 공간의 구획을 없앤 열린 집을 제안했다. 주택 내부 공간들은 외부 공간을 통해 구역이 나누어진다.
현관에 들어서면 안방(황토방)에 불을 지피는 아궁이가 있는 닫힌 외부공간이 있다. 방문객은 외부 공간의 치핑 된 벽면에 형성된 빛과 그림자의 모습을 보면서 집안으로 진입하게 된다. 왼쪽으로 고개를 돌리면 중첩된 내외부 공간이 하나로 연결된 광경과 마주하게 된다. 외부공간과 내부공간을 중첩되게 함으로써 하늘에서 떨어지는 빛이 내부공간에서 교차하도록 만들었다. 그 결과, 내부 어느 공간에 있더라도 빛의 변화와 마주하게 된다.
열린 내부 공간에 긴 형상의 대지 특성이 반영된 닫힌 외부공간을 삽입함으로써 집은 지속해 한 방향으로 확장되고 자연스레 열린 집으로 거듭난다. 열린 공간을 만들기 위하여 역보를 구성하였으며 내부 공간에 어떠한 벽체와 기둥도 배치하지 않았다. 건축주 남편이 시를 쓰고자 할 때, 혹은 손님이 왔을 때 등에 대비해 가변형 벽체를 이용하여 열린 내부공간을 나눌 수 있도록 했다. 이렇게 구획된 내부 공간 또한 닫힌 외부 중정으로는 열려 있다. 안방, 주방, 거실 등의 열린 내부공간이 외부와 만나는 지점에서 층고를 높게 하거나 고창을 두어 공간감의 확장을 꾀했다. 그 덕분에 내부 공간에서 앉거나 누워 있어도 산과 나무, 하늘의 온전한 풍광과 만날 수 있게 되었다.
콘크리트
대지 주변이 산과 논이 많아, 주택 외부의 콘크리트 표면에 짚이나 나무껍질이 붙어 있는 느낌을 만들고자 하였다. 그래서 착안한 방법이 OSB합판을 이용한 공법이다. OSB합판은 여러 겹의 나무 칩을 붙여 만든 특성상 물을 흡수하면 부풀어 올라 칩이 분리되는 성질이 있다. 거푸집에 OSB합판을 부착하고 비를 맞게 한 뒤 오랫동안 방치했다가 콘크리트를 타설하였다. 생각했던대로 나무 칩들이 콘크리트 일부에 묻어나왔다. 이를 제거하지 않고 질감을 그대로 살렸다.
닫힌 외부공간을 만드는 벽은 안과 밖에서 빛의 변화와 질감을 느낄 수 있도록 가급적 거칠게 만들고 싶었다. 그래서 콘크리트를 치핑했다. 치핑은 작업자의 손길이 그대로 드러난다. 작업자가 조금만 비스듬히 작업하면 사선의 흔적이 남는다. 그래서 장비를 90도로 해서 정확하게 작업해 거친 자연 속의 흙과 같은 표면의 질감을 만들고자 하였다. 아궁이가 있는 외부공간은 음각으로 치핑 된 콘크리트와 대비를 이루는 빛의 변화를 바닥에 담고 싶었다. 자갈의 표면이 양각으로 튀어나오도록 미장하고자 하였으나 아쉽게도 작은 자갈을 찾을 수 없었다. 고민 끝에 화분 분갈이를 할 때 사용하는 다양한 종류의 자갈을 사용해 작업했는데, 의도한 느낌을 잘 살릴 수 있었다.
고향에 집을 지어 회귀하는 이들이 늘어나는 만큼, 되돌아간 고향에서 얼마 살지 못하고 다시 도심으로 돌아가는 이들도 증가하고 있다. 무엇이 그들을 다시 도심으로 돌아가게 하는지, 어떤 공간이 고향에서의 삶을 윤택하게 만들 것인지를 고민해보아야 한다. 닫힌 집, 열린 집이 고향으로 회귀하는 이들에게 지속가능한 삶을 만들어가는 하나의 대안 사례가 되었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