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디터. 윤정훈 글 & 자료. 스노우에이드 건축사사무소 Snow AIDe Architecture
異(E)-scape House, 다른 풍경의 집
대지는 경북 중소도시 외곽 지역, 지역 기업의 임직원 거주를 위해 2000년 초반에 형성된 마을에 자리한다. 마을에는 단기간에 건설된 다량의 철골 구조 주택들이 모여 있는데, 철골 구조이기는 하나 그 형태는 미국의 외곽 지역에서 볼 법한 전형적인 목조 주택의 형상을 띠고 있다. 균일하게 분할된 필지와 엇비슷하게 지어진 집들의 모습이 근래 형성되는 신도시의 주택단지와 흡사하나 시간의 흔적이 좀 더 쌓인 모습이다. 마을이 생긴 지 20여 년이 지나 주택 대부분은 노후하고 소유주도 바뀌었지만, 마을에 대한 높은 자부심이 만든 보수적 분위기로 인해 신축은 거의 일어나지 않는 분위기였다.
의뢰인은 노후하고 불편한 집에 대한 고민이 많았다. 마을의 분위기상 신축이 부담됐지만 기존 주택이 가진 한계로 인해 새로 집을 짓기로 했다. 인위적으로 조성된 주택단지의 특성상 다른 집들과 연접하는 경우가 많아 민원이 발생하기도 하는데, 다행히 대지는 공원과 인접하고 공원으로 가는 오솔길로 인해 옆집과도 조금 거리를 두고 있었다. 다른 신도시 주택단지에 비하면 도로 폭도 넓은 편이어서 한쪽을 접하고 있는 옆집을 제외하면 3면이 어느 정도 개방되어 있는 좋은 조건의 대지였다.
오랜 시간 살던 주택을 허물고 새로 집을 짓는 경우였기에, 의뢰인은 그동안 살면서 겪었던 불편함을 토대로 원하는 공간에 대한 생각을 분명히 전달했다. 여러 명의 자녀를 둔 40대 부부였기에, 아이들 양육에 필요한 실용적 공간부터 부부의 로망을 실현할 공간이 필요했다. 무엇보다 해결해야 할 불편함은 주말에 공원으로 향하는 산책길을 오가는 사람들로 인해 1층 공간으로 외부 시선이 드는 문제였다.
산책길과 접하는 면에 반지하 공간을 만들어 길에서의 시선을 차단하고, 1층과 2층에서 보는 시선 방향을 북쪽 숲으로 돌려 놓았다. 반지하 공간을 만들며 공간은 자연스럽게 스킵플로어skip floor식으로 구성했다. 넓지 않은 대지에 필요한 프로그램을 배치하다 보니 높은 층고의 공간을 만들기 어려웠지만 각각의 공간을 연결하는 계단으로 인해 밀도 높은 실내에 수직으로 개방된 드라마틱한 공간이 만들어졌다. 계단실의 중앙에 천창을 두고 위에서 떨어지는 빛을 받으며 계단을 오르내리는 경험은 이 집만의 특별함이 되었다.
공간 구성에 있어 특이한 점은 1층 전체를 주방 및 식사 공간으로 구성한 것이다. 요리를 좋아하고 지인들과 집에서 식사하며 담소 나누기를 좋아하는 의뢰인의 취향이 반영됐다. 주방과 식사 공간은 집에서 가장 공적인 공간이기에 현관에서 바로 접근할 수 있는 곳에 배치했다. 1층 주방에서 반층을 내려가면 서재를 겸한 다용도 공간이 있어, 아이들의 친구나 방문 선생님이 올 때 놀이 및 교육 공간으로 활용할 수 있다.
1층에서 반층 올라가면 가족을 위한 사적 영역이 시작된다. 아이들의 방과 계단참을 확장해 작은 가족실을 만들었다. 다시 반층을 올라 2층에 다다르면 거대한 곡선 창을 통해 파노라마 뷰가 보이는 거실이 등장한다. 아일랜드 바에서 간단한 스낵 및 와인을 즐길 수 있고, 실링팬과 에탄올 벽난로로 실용적이면서 안락한 분위기를 만들고자 했다.
밝은 분위기의 거실에서 2.5층으로 오르면 고급스러운 느낌의 검정색이 주를 이루는 마스터 존이 등장한다. 샤워부스와 화장실을 중심으로 옷장, 세면대, 욕조가 둘러싸고 있는 마스터 욕실은 드레스룸과 욕실을 결합해 순환형으로 구성했다. 지붕층으로 올라가면 공원의 전망이 한눈에 들어오고 그 속에서 바베큐를 즐길 수 있는 루프탑 정원이 펼쳐진다.
두 개의 매스가 대지의 형태를 따라 배치되어 커다란 박스처럼 보일 수 있었으나, 마당쪽으로 크게 굽어지며 돌출되는 입면과 이와 반대로 안쪽으로 오목하게 들어간 호(arc)를 구성해 두 매스를 연결하는 동시에 분절함으로써 육중한 형태에 역동성을 더했다. 남쪽 도로를 향한 입면에는 최소한의 창을 계획하고, 북쪽의 마당과 공원으로는 큰 창을 내 개방감을 극대화했다. 상반된 두 입면이 집 안팎으로 다양한 풍경을 연출하게끔 한 의도다.
전형적인 주택과는 다른 낯선 외관으로 인해 공사를 하는 중에도 길을 지나는 많은 사람이 기웃거리며 궁금해했다. ‘이스케이프異-scape’라는 이름처럼 서로 다른 풍경을 만들어내는 이 집을 통해 이곳에 거주하는 가족들이 새롭고 낮선 공간의 경험을 즐기며 많은 이야기를 만들어나가기를 기대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