삭제된 건축물 흔적 쫓아 기록한 ‘사라진 근대건축’ 출간

에디터. 윤정훈  자료. 에이치비 프레스

 

달빛이 환한 밤, 한 남녀가 산에 올라서 서울 시내를 내려다보고 있다. 저 멀리 보름달 아래 거대한 건축물이 눈에 띈다. 바로 구舊 조선총독부 청사다. 1950년대 서울의 시내 풍경을 담은 영화 ‘서울의 풍경’(1956)의 마지막 장면이다.

그래픽 디자이너이자 연구자인 박고은은 고전 영화 속 낯선 서울의 모습에 눈이 갔다. 이를 계기로 오늘날 한국에서 근대 건축물을 찾아보기 힘들다는 사실에 주목, ‘서울 내 근대건축의 부재’에 관한 연구를 시작했다. 이러한 경험을 바탕으로 펴낸 ‘사라진 근대건축’은 귀하게 보존되는 조선 시대 전통 건축물과 현대 건축물 사이에 발생한 공백, 그 속에 담긴 건축물과 역사를 바라보는 우리의 인식을 탐구하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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쓰임을 다한 낡은 건축물이 사라지는 것은 이상한 일이 아니다. 하지만 비슷한 시기에 지어진 옛 건축물 중 원형이 보존되어 여전히 기능하는 것이 있고 그렇지 않은 것이 있다. 1900년대 식민정부가 건설한 건축물이 (일본을 제외한) 외국 정부나 선교사, 또는 한국인이 지은 것들에 비해 상대적으로 쉽게 우선 철거 대상이 된 것처럼 말이다. 저자가 주목하는 것은 근대 건축물 중 주로 과거 청산을 목적으로 철거된 네거티브 헤리티지negative heritage다. 그러한 건축물들이 어떤 경위로 사라지게 되었으며, 현재 남은 흔적은 어떠한지를 보여준다.

 

영화 ‘자유결혼'(1958) 중 서울역 ⓒhbpress
영화 ‘여사장'(1959) 중 미츠코시 백화점 ⓒhbpress

 

조선 궁궐보다 더 호화스럽게 지어 질타의 대상이 된 친일파의 별장, 남산 최정상에 건설된 조선신궁, 한국 전쟁 중 폭격으로 파괴된 근대 건축물, 폭력적 국가 권력의 상징이던 중앙정보부 건물까지. 식민지, 내전, 독재 정권 등 수치스럽고 비극적인 역사를 드러내는 건축물의 이야기를 듣고 있노라면 복잡미묘한 감정이 든다.

하지만 홀로코스트 관련 건축물이 참혹한 역사를 증언하기 위해 온전히 보존되고 있듯, 한국의 근대 건축물 또한 아픈 역사를 담고 있기에 제대로 보존하고 기록해 다음 세대로 넘겨야 한다는 게 저자의 메시지다. “억압과 통치를 위해 지은 건축”을 “저항과 인내의 역사로 접근한다면 교훈과 치유의 공간으로 되살릴 수 있다”는, 책 마지막 장에 덧붙인 김소연 건축가의 주장도 일리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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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치의 역사를 상징하는 건축물의 보존과 철거. 구 조선총독부가 수년간 찬반논쟁을 일으켰듯 명확한 답을 내리기엔 어려운 문제다. 다만 각종 문헌 자료를 통해 한때 존재감이 상당했지만 지금은 그 흔적을 거의 찾기 힘든 건축물의 존재, 완전히 다른 용도로 사용되는 건물이 품은 내밀한 사연을 알아가는 과정이 흥미롭다. 현 지도에 표시된 사라진 건축물들의 위치를 보고 있으면 머릿속에서 익숙한 풍경이 낯선 건축물과 중첩되는 경험을 할 수 있다. 책 첫머리의 말처럼 “납작하게 평면화된 건축물에 대한 우리의 관점을 다각화하고 그 시대를 보다 입체적으로 바라볼 수 있도록 하는 데” 도움을 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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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명.
사라진 근대건축

저자.
박고은

출판사.
에이치비 프레스

발행일.
2022년 1월 31일

판형 및 분량.

138 x 210mm, 296쪽

가격.
18,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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