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디터. 박지일 글 & 자료. 씨엘건축사사무소 CL Architects
오래된 동네
대지는 춘천역 부근의 구도심에 위치한다. 오래된 집들이 산재하고 빈집도 더러 있지만 정갈한 삶의 풍경이 있는 동네다. 건축주는 예산에 맞는 작은 땅을 찾기 위해 옛 동네 위주로 땅을 찾았고 운 좋게 이 부지를 만났다. 조용하고 담담한 동네라 책방을 차리기에는 더없이 좋았다. 또한 춘천역 부근이라 여행의 설렘과 함께 잠시 쉬었다 갈 수 있는 위치였다. 고즈넉한 풍경 속에 책방이 부드럽게 스며들어 책을 좋아하는 사람들의 ‘바라타리아Barataria’, 즉 자신만의 유토피아가 되길 바랐다.
우리가 책방에서 기대하는 것
누군가 시간을 내서 책방에 온다는 것은 귀한 일이다. 기대와 설렘, 다른 시간과 속도, 새로운 세계와의 만남, 느긋함, 조용한 환대, 내가 주인공이 되는 시간, 나에게 집중할 수 있는 공간 에 대한 기대가 있을 것이다. 이곳에서 시간을 유영하며 어떤 것을 경험하게 할지가 계획의 처음과 끝이였다. 이에 책과 만나는 시간을 콘셉트로 디자인했다. 책 사이를 어슬렁거리며 햇살과 식물도 누리는, 자기만의 섬에서 보내는 온전한 시간. 설렁설렁 다닐 수 있도록 순환형 동선을 만들고 곳곳에서 섬세하고 기분 좋은 경험을 할 수 있도록 계획했다.
설렘의 시작
유리창 너머로 알록달록 비치된 책과 출입문 쪽으로 둥글게 말려들어간 흰 벽이 호기심을 자아낸다. 문을 열면 커피 향과 종이 냄새가 난다. 경계가 있되 경계가 없는, 카페인 듯 서점인 듯 작고 아담한 공간들이 펼쳐진다. 주문을 하고 커피가 내려지는 동안 책장 사이를 한 바퀴 돌며 자잘한 소품과 그림 엽서, 문화 행사, 알림판을 구경한다. 주문한 음료가 나오면 화사한 패턴의 계단을 오르기 시작한다. 멀리 2층에서 들어오는 빛을 향해 설레는 마음으로 계단을 오른다.
책의 시간
계단을 올라 뒤를 돌아 한 바퀴 둘러본다. 단순한 직사각형 구조이지만 다양한 천장 높이로 풍성한 공간감을 선사한다. 양쪽 벽에 커다란 책장이 시원하게 자리하고 모서리마다 큰 창에서 햇살이 들어온다. 여유롭게 떨어진 테이블에 자리를 잡고 책의 세계를 유영한다. 각각의 모서리는 나의 서재, 나의 테이블 등 이름을 갖는다.
환대의 시간
북향의 담백한 빛이 3층의 높은 창을 통해 유입되어 자작나무 천장을 타고 아래로 흐른다. 부드러운 곡면과 따뜻하고 환한 빛으로 방문객을 환대한다. 천장 양 끝에는 멀리 봉의산과 소양강의 풍경을 담는 큰 창이 있다. 가지고 온 책을 읽고 고즈넉한 창밖 풍경을 멍하니 바라보며 자신만의 시간을 가질 수 있다. 이곳은 작은 문화예술 공간으로서 독서 모임, 저자와의 대화, 소규모 전시가 열리기도 한다. 철제 계단을 오르면 강변 뷰를 즐기며 야외 행사를 할 수 있는 옥상이 나타난다.
노출콘크리트, 책장 그리고 햇살
레이어를 중첩함으로써 흐르듯 이어지는 3개 층의 공간을 구성했다. 원초적 매력의 노출콘크리트로 소박하고 무심하게 매스를 형성하고, 콘크리트 벽면에 기대어 목재 책장을 겹쳐두었다. 가장 높은 곳에서 드는 북향의 빛은 곡면을 타고 3층, 2층을 거쳐 1층에 다다른다. 여기에 의자와 식물을 두는 것으로 공간 구성은 마무리된다. 여백과 여지가 많아 긴장이 풀어지는 공간을 만들고자 했다. 바라타리아가 동네 주민들이 슬렁슬렁 마실 나오기 좋은 책방이 되길, 햇살과 여백이 머물며 책 읽기 좋은 장소가 되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