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떻게 지었을까?

[QnA] 서가건축의 '구기동 三代가 사는 집' ① How to build
ⓒSeoga Architects
글. 전종현  자료. 건축사사무소 서가

 

성인 3세대가 오롯이 한 집에 모여 사는 ‘구기동 三代가 사는 집’. 건축사사무소 서가는 어떻게 요리조리 설계하며 건축주 마음에 쏙 드는 집을 만들어냈을까. 궁금한 걸 못 참는 에디터가 저인망처럼 정보를 모아보았다.

 

ⓒSeoga Architects

 

간단간단한 기본 정보

 

건축주 살짝 엿보기

60세를 앞둔 50대 건축주. 중소기업을 경영하고 부인과 함께 80대 후반의 노모를 모시고 있었다. 고등학교, 대학교 시절을 포함해 15년 동안 같이 살았던 외아들이 집에 대한 애정이 남달라서 결혼하며 새 가정을 꾸릴 때 본가로 들어오려던 상황이었다.

 

“이곳에 계속 살고 싶어서…”

건축주가 사업체를 운영해서 그런지 땅의 터와 기에 민감하다. 북한산을 바라보는 전망이 무척 좋은데 북한산을 볼 때마다 산의 정기를 받는다고 믿는다. 북한산 덕분에 지금까지 무탈하게 안착해 살았다고 생각해 같은 터에서 남은 삶을 계속 영위하길 원했다.

원래 대지에 있던 단독 주택을 매입해서 지금까지 15년 정도 산 경우라 리노베이션을 먼저 생각해봤는데 기존에 있는 집의 구조가 아무리 바꾼다고 해도 결코 편하게 쉴 수 있는 공간이 나오지 않는 형태였다. 지금까지 원래 있던 주택을 매입해서 들어온 터라 집에 맞춰 살았던 거다.

게다가 아들 내외가 집에 들어오면 성인 2명으로 구성된 1세대가 새롭게 입주하는 모양이라 독립적인 공간이 필요했다. 집이 노후화되고 가족의 라이프스타일 변화와 맞지 않아서 신축으로 결론을 내렸다. 집을 잘 만들면 가정이 화목해진다.(웃음)

 

원래 있던 네모진 집을 리노베이션 하지 않고 ‘ㄱ’ 자 형식의 얇은 집으로 신축하기로 했다. ⓒSeoga Architects

 

대지 상태와 법규 파헤치기

총 대지 면적은 약 236㎡(71평) 정도. 자연경관지구라서 건폐율은 40%, 용적률은 150% 이하, 층수는 3층 이하였고, 만일 경사지붕일 경우 총 높이가 12m까지 가능했다. 게다가 구기동이 자연과 가깝다 보니 생태면적률이 적용되어 조경 면적을 대지의 30% 이상 확보해야 했다.

거기에다 주차 대수도 최소 두 대가 들어가는데 현실적으로는 세 대까지 가능하도록 만들어야 했고, 정북일조사선제한도 피해야 했다. 겉으로 드러나는 건물 외형은 굉장히 단순하고 자연스러워 보이지만 적용된 법규가 엄청나게 치밀했다는 말이다.(웃음) 하지만 법규의 한계가 곧 건축의 한계는 아니다. 건축가가 끌고 가야 하는 건축 요소의 일부라고 생각한다.

건물 면적은 약 86㎡(26평). 다락에 대한 특별한 요구는 없었다. 대지의 남향은 도로를 면한 쪽이었다. 그래서 볕을 잘 받으려면 도로 쪽에 창을 내야 하는 데 북한산을 보기 위해서 안마당을 북한산 쪽으로 배치했다. 뒷집과 레벨 차이가 높아서 남쪽에 마당을 만들면 뭐하고 사는지 다 보이는 문제도 있었고. 주택들이 산 중턱에 있다 보니까 뒷집으로 가면 갈수록 땅의 레벨이 급격히 올라간다.

 

이건 절대 놓칠 수 없어!

 

ⓒSeoga Architects

 

① 성인 3대가 사는 집

성인 3대가 산다는 사실이 가장 중요했다. 노인, 장년, 청년까지 가구를 이룬 3세대가 한 집에 온전히 사는 경우다. 아들 내외가 아이를 가지면 장차 4대까지 갈 수도 있다. 이런 경우는 두 번째인데 전에 지었던 김포 3대 집은 유대관계가 굉장히 끈끈했다.

이번 구기동 집도 끈끈한 건 마찬가지지만 사적인 공간 또한 굉장히 중시했다. 아들 내외가 아버지 회사에서 일하는 전형적인 가족 기업이라 같이 출근하고 같이 퇴근하는 삶이었다. 그래서 집에서만큼은 신혼부부로서 사적이고 독립된 공간을 원했다. 신혼부부의 거처인 3층 계단의 진입부에는 잠금장치가 있는 문을 설치할 정도.

사실 며느리 입장에서는 굉장히 힘들 수도 있는 상황인데 집에 들어온 게 큰 용기였을지 모른다. 시부모도 계시고, 연로하신 할머니도 계시니까. 건축주 부부와 아들 내외의 관계가 굉장히 끈끈해서 가능한 일이었다.

건축주 미팅을 할 때도 매번 함께 참여한지라 아들 내외도 광의적으로 건축주에 포함된다. 의견이 다를 때는 자신의 의견을 말할 때도 있었고. 무엇보다 건축주가 건축 과정을 아들과 공유하고 싶어 했다.

아버지 세대는 집 짓기가 일생일대의 대사건이지만 아들이 젊은 나이에 결혼을 한 터라 앞으로 수명이 늘어나면서 아들 세대는 2번 이상의 내 집 짓기가 이루어질 수도 있기에 현명한 판단이라고 생각한다.

 

② 집에서 노는 사람들

건축주 내외는 아들 내외와 매우 끈끈한 관계를 유지한다. 심지어 공사할 때 다른 곳에서 임차해 살 때도 안방에서 같이 TV를 볼 정도였다. 월드컵 시즌에는 다 같이 침대에 누워서 경기 관람을 한다고. 건축주는 밖을 노니는 것보단 집에서 휴식하는 걸 좋아한다. 집에 찾아온 지인을 대접하는 걸 좋아하고 성격도 쾌활하다.

새로 지은 집 지하 1층에는 탁구대와 체력단련실이 있다. 건축주는 헬스 기구로 운동을 하고, 며느리는 요가를 한다. 와인을 비롯해 온갖 술을 모으는 게 취미라서 지하 1층에는 홈바가 있다. 드럼과 노래방 기기까지 완비한 터라 가족끼리 자주 지하 1층에서 술 마시고 노래하며 논다.

주택의 연면적은 90평 정도 되는데 알뜰하다는 말이 절로 나올 정도로 공간을 치밀하고 효율적으로 사용한다. 집에서 머무는 시간이 길고 활동도 다양하기 때문에 이런 건축주의 라이프스타일을 잘 받쳐주며 기능할 수 있도록 신경을 많이 썼다.

아들 내외도 지인들을 집에 자주 초대하는데 이런 경우를 대비해 현관에서 지하공간으로 바로 진입 가능한 동선을 마련했다. 대문을 열고 신발을 벗는 현관에 들어가면 지하로 내려가는 계단이 있다. 타인이 가족의 사적 공간에 들어오지 않고 지하공간으로 이동할 수 있는 장치다.

 

③ 북한산 마니아

건축주를 비롯해 모든 가족들이 해당 대지를 떠나기 싫어했다. 오래오래 계속 여기서 살고 싶어 했다. 이유는 북한산을 볼 수 있는 상황이 너무 좋아서. 거의 유일하지만, 강하게 요구했던 사항도 북한산을 최대한 볼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해달라는 것이었다.

집 안의 모든 공간, 모든 방에서 북한산을 관망하길 원했다. 건축주가 봉우리 이름까지 외울 정도로 북한산 마니아인데 화장실 변기에 앉아 일을 볼 때도 창을 통해 산을 봐야 하는 사람이다. 그 정도로 북한산 전망은 굉장히 중요했다. 얼마나 중요했냐면 설사 사생활이 침해되는 한이 있더라도 창을 뚫어야 하는 집이었다. 그래서 화장실 창은 옆집과 1:1로 시선이 맞닿는다.

사업하는 분이다 보니 동쪽에서 떠오르는 태양을 보며 하루 일과를 시작하는 게 정신적으로 도움이 된다는 믿음이 있었다. 근데 창이 무조건 크다고 좋은 게 아니다. 집에서 향유하는 풍경은 선택적으로 골라 봐야 한다. 거실에서 북한산을 엄청 크게 볼 수 있다면 방에서까지 그만큼 크게 볼 필요는 없다. 뷰가 똑같으면 재미가 없으니까 다양한 방식으로 봐야 한다.

안방에서는 어떤 봉우리를 보고, 거실에서는 어떤 봉우리를 보는 식으로. 창이 작더라도 볼 수 있는 뷰의 방향을 다양하게 배치해 풍광을 다채롭게 즐길 수 있다는 사실을 인지시키고 이런 방향으로 창을 배치하도록 유도하는 게 처음에는 큰 고민거리였다.

 

ⓒSeoga Architects
ⓒSeoga Architects

 

설계에 도움이 되는 각종 정보들

 

창창창: 방의 분위기는 창이 만든다

창은 외부나 내부 한쪽에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외부에서 바라보는 창의 위치와 크기는 건물의 비례에 영향을 주고, 내부의 창은 벽의 일부로서 그 크기와 위치가 침실 공간의 안정감을 조성하는 데 커다란 영향을 끼친다.

곧 내부에 창이 어떻게 있나에 따라 침대와의 관계가 설정되고, 이후 침실 공간을 구획하는 것이다. 예전에 우리가 설계한 게스트하우스가 하나 있었는데 거기에서 하룻밤 묵은 사람이 사무실을 찾아왔다. 내부에서 경험한 창의 느낌이 너무 좋아서 집을 의뢰하러 온 거다.

창이란 참 무서운 건축 요소라, 그 형태와 크기, 위치에 따라 내부 공간의 성격이 완전히 돌변한다. 외국 건축물에서 안도감이나 평안한 느낌이 든다면 그건 창이 만들어내는 효과일 가능성이 높다.

벽에 비해 창의 크기를 어떻게 정할 건지, 가로 세로의 비례는 어떻게 설정할 건지, 가로를 길게 할지 세로를 길게 할지의 문제, 방을 벽 깊숙이 몰아놓을지 여부가 모두 커다란 변수로 작용한다. 그래서 창을 만들려면 그전에 내부 공간의 구성이 끝나야 한다.

방의 가로 세로 길이를 설정하면 큰 공간감이 정해진다. 여기에 층고를 어떻게 설정할 것인가-평균보다 더 높게 할까 아니면 아예 밑으로 무겁게 눌러버릴까-를 정해서 전체 공간을 확정하면 그곳에 어떤 창이 어울릴지 고민하는 거다. 경험적으로 침실 공간의 창이 크면 방의 분위기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 그래서 우리는 개인의 사적 공간에 창을 과도하게 내지 않는 걸 원칙으로 삼는다.

 

적벽돌이 싫다고요?

건축주가 원하는 집은 명확하고 소박했다. ‘튼튼하고 따듯한 집’이었다. 풍부한 상상력으로 만드는 화려하거나 멋진 외형의 집이 아니었다는 말이다. 건축주에겐 어떻게 생긴 집을 꼭 지어야겠다는 청사진이 없었기 때문에 형태나 스타일에서 특별히 요구하는 바는 없었다.

그런데 재료 선택에 있어서는 취향이 있었다. 외장재로 붉은 벽돌을 쓰는 걸 싫어했다. 적벽돌이 너무 옛날 느낌이 난다는 이유 때문이었다. 더구나 해당 대지가 단독주택단지라서 외장이 적벽돌로 된 옛집이 대부분이라 시각적인 지루함과 피로감을 호소했다.

하지만 이름이 적벽돌이라 해도 채도가 다르고, 종류가 다르고, 사용 방법에 따라 느낌이 달라진다. 구기동 집은 굉장히 채도가 높은 적벽돌을 사용하면서 줄눈도 적밤색으로 처리했다.

 

PM 해본 건축주

예전에 건축주가 사옥을 지을 때 전문가에게 일임하지 않고 스스로 모든 과정에 참여한 경험 때문에, 이번에도 설계, 시공, 감리 등 건축 과정 전반에 걸쳐 관리 감독을 해야만 한다는 선입견을 가지고 있었다.

물론 우리는 “이렇게 모든 일에 계속 신경 쓰면 좋지 않다. 비용을 내고 정당하게 전문가를 고용하는 건이니 설계는 건축가에게 일임하고, 관련 상황을 체크하면서 결정이 필요한 순간이 오면 판단력을 보여주면 된다”라고 계속 설득했다.

다행히 모든 과정에 참여하겠다는 마음이 뒤로 갈수록 약해졌다. 예를 들어 주방 계획만 해도 굉장히 여러 번을 다시 했다. 건축주가 직접 구조를 그려서 전달할 정도였는데, 자신의 아이디어보다 건축가의 아이디어가 더 괜찮다고 생각이 드는 순간부터 점점 건축가의 조언을 받아들이게 되었다.

 

이제 설계를 시작하도록 하지

 

ⓒSeoga Architects

 

초기 콘셉트가 궁금해

솔직히 말하면 법규에 최대한 맞춰 공간을 확보한 후 필수적으로 갖춰야 할 프로그램을 짜니 특정 콘셉트가 들어갈 틈이 없었다. 우리가 콘셉트에 맞춰 집을 짓는 걸 선호하지 않는 경향이 있기도 하고. 일단 1층 가족들이 모두 모이는 공간에 대해 논의를 많이 했다. 그리고 거실과 주방이 적절하게 분리되는 것에도 신경 썼다. 대가족이 사는 집에서는 무시하지 못하는 요소이기 때문이다.

 

첫 번째 아이디어 방출

처음 아이디어를 낼 때 간단한 다이어그램을 그려서 보여줬다. 성인으로 이루어진 3세대가 사는 집이라 각 세대 별 공간을 하나의 집으로 상정했다. 그래서 3개의 집을 어떻게 내부에 배치할 것인지, 공용 공간은 3개의 집과 어떻게 연관될 것인지 고민했다.

1층은 마당을 마련해 놓고 풍광을 즐길 수 있는 방향에 맞춰 거실이 배치된다. 2층은 노모와 건축주 내외의 공간, 3층은 아들 내외의 공간이다. 거실에 계단을 어떻게 놓느냐에 따라 공간이 달라지는데 사실 계단은 층과 층을 물리적으로 연결해 오르락내리락하는 기능에만 초점을 맞췄다.

그리고 지하 공간이 있는데 여기가 잘 작동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고민하고. 그래서 마당의 면적이 줄어들더라도 지하에 선큰을 만들어서 채광 효과를 높여야겠다 정도. 참고로 선큰은 침상형 공지로 하늘이 뚫린 지하를 말한다. 보통 지하 공간의 환기와 채광을 위해 만들어놓는다.

이 집에는 선큰이 두 곳 존재하는데 하나는 주차장에서 바로 내려갈 수 있는 선큰으로 실제 발로 밟고 나갈 수 있는 형태로, 하나는 홈바를 위한 선큰으로 대나무를 심어놓았다. 도로 쪽에 위치한 터라 사생활 보호를 겸하고 그윽한 대나무 그림자 덕분에 운치가 있다. 기존의 둔한 사각형 집을 ‘ㄱ’ 자로 얇게 펴면서 여러 방향으로 주변 풍광을 조망할 수 있게 계획했다.

 

한 지붕 세 집을 표현한 다이어그램. 박공지붕 vs. 옥상정원에 대한 논의는 박공지붕으로 결론났다. ⓒSeoga Architects

 

완벽해!

우리가 내민 첫 제안은 건축주 입장에선 전혀 상상하지 못했던 것 같다. 세대별로 완벽히 사생활을 지키는 방안이라서 보자마자 바로 마음에 들어 했다.

 

간단한 소통은 카톡으로

건축주와의 소통은 카톡을 통해 주로 한다. 의견을 받고 평면에 수정을 반영해 바로 보내주면 또 바로 의견을 준다. 단 이렇게 직문 직답을 할 수 있는 것만 카톡으로 한다. 한 번 만나서 PT를 준비하려면 꽤 많은 시간이 필요하다. 그래서 만나지 않고 의견을 결정하면 상당한 시간을 아낄 수 있다. 카톡을 좋아하지 않지만 효율성 측면에서 도움이 된다는 판단이 들면 카톡을 활용한다.

또한 사소한 문제들을 정식 미팅 때까지 끌고 가는 건 좋지 않다. 나중에 한꺼번에 말하면 전체 스케줄에 지장이 생긴다. 카톡으로 소통하는 건 ‘가지치기’라고 생각하면 될 것 같다. 크게 잡아놓은 계획안의 대세를 지키기 위해 방해되는 식물 넝쿨을 제거하는 과정이랄까.(웃음)

특히 카톡이 요긴할 때가 있다. 바로 가족 간의 단톡방이다. 아들 내외가 “북유럽 스타일이 좋은 것 같아요”라고 메시지를 날리면 시아버지가 대놓고 반대하기가 힘들다. 이런 스타일의 제품이 괜찮다고 사진이나 링크를 올리면 시아버지가 바로 안된다며 거절하기에도 면이 서지 않고. 이렇게 아들 내외의 의견과 젊은 감각이 묻히지 않고 단톡방에서 표출되는 게 실제 건축주를 설득하는 데에도 큰 도움이 되었을 것이다.

 

신은 디테일에 있다

 

ⓒSeoga Architects

 

① 시퀀스로 공간 짜기

기본적으로 우리는 집을 지을 때 공유 공간과 사적 공간을 분리하고 이 두 공간이 어떻게 엮이는지 유심히 살펴본다. 가족이라고 모든 구성원이 집 안의 모든 공간을 공유하는 건 바람직하지 않다. 어떻게 분리하고 어떻게 엮을 건지 굉장히 중요한 문제다.

게다가 이번 경우는 3세대가 사는 집 아닌가. 큰 공간을 분리하고 개인 공간을 분리해야만 한다. 평면을 짤 땐 시퀀스를 꼭 머릿속으로 염두에 두며 설계한다. 현관으로 들어오는 장면부터 생각하며 공간을 짜는 거다.

현관에 들어오면 바로 주방이 보인다. 3대가 사는 집은 구성원이 많다. 주부도 많다. 곧 먹는 일이 많고 주방이 중요하다는 뜻이다. 이렇게 살림 많은 집일수록 현관에서 동선이 짧아야 편하다. 현관에서 다이닝 공간이 바로 보여야 안심한다.

대신 거실은 정주하는 공간이니까 현관에서 멀리 떨어질수록 좋다. 건축주가 자신의 공간이 있는 2층으로 올라갔을 때 처음으로 마주치는 공간은 어디고 어떤 경험을 줘야 하나 늘 생각한다. 경로를 마음에 두며 시뮬레이션을 하는 습관이 건축 계획에서는 굉장히 중요하다고 느낀다.

 

1층 주방 모델링 이미지 ⓒSeoga Architects
1층 거실 모델링 이미지 ⓒSeoga Architects

 

② 평면이 먼저다

서가건축은 평면을 어떻게 풀 건지 고민을 굉장히 많이 한다. 평면에 투자하는 시간의 비율이 상대적으로 높은 편이다. 평면이 먼저냐, 외형이 먼저냐는 마치 알이 먼저냐 닭이 먼저냐의 문제처럼 정답이 없지만 우리는 평면을 먼저 구성한 후 이를 기반으로 집의 외형을 만들어가는 편이다.

평면으로 실사용자에게 필요한 기능과 그들의 요구 사항을 채워놓고 이후에 형태가 나온다는 뜻이다. 건물의 형상 또한 길에서 인지하는 건물의 크기, 길과 건물의 관계, 건물 매스와 창의 관계에 관심을 갖지 외형 자체의 독특함이나 개성에 방점을 두진 않는다.

‘三代가 사는 집’ 같은 경우에는 드레스룸이 엄청 크다. 가로 길이가 6m에 달한다. 건축주가 해당 공간에서 어떻게 생활하는지, 어떤 삶을 원하는지 구체적으로 상상해서 의견을 달라고 부탁했기에 나올 수 있는 결과다. 그리고 어떤 공간에 들어설 때마다 동선이 한 번씩은 꼭 꺾인다.

계단에서 어디론가 들어가려면 진행 방향을 꺾어야 한다. 침실도 드레스룸을 끼고 꺾어야 나타난다. 화장실도 마찬가지다. 이렇게 경로를 설정하면 방 여러 개가 개별적으로 붙어있는 느낌이 아니라 각각 독립된 집으로 구성된 구조라는 느낌을 준다.

 

2층 드레스룸에서 바라본 건축주 내외의 침실 모델링 이미지 ⓒSeoga Architects
각기 다른 채광을 끌어들이는 건축주 내외의 침실 모델링 이미지 ⓒSeoga Architects

 

③ 디테일이 삶의 질을 좌우한다

거주자의 라이프스타일을 생각하며 평면을 디테일하게 짜면 사람들의 삶이 나아진다. 이 집에 사는 사람들은 집에서 모여서 놀고, 밥 먹고, 수다 떠는 걸 좋아하는 사람들인데 기존 집에서는 그런 욕구를 완벽히 채워주지 못한다. 개인 공간에서는 개인의 삶을 즐길 수 있고, 공유 공간에서는 서로 잘 놀 수 있도록 적합한 계획을 세웠다.

주방을 계획할 때 어떤 요소가 중요할까? 의외로 콘센트가 중요하다. 주방에 있는 주요 기기들은 보통 전기를 사용하기 때문에 콘센트의 위치 설정에 따라 쓰임새와 효율이 극대화된다. 외국산 가전을 많이 쓰는 사람을 위해 작은 배려를 하는 것도 굉장히 큰 효과를 발휘한다. 차를 즐길 수 있는 위치도 지정할 수 있다. 이런 사소한 디테일이 집을 더 잘 쓰게 만드는 요인으로 작용한다.

주부에게는 청소기를 어디 놓을지도 고민거리다. 이때 거실을 지나 화장실로 가는 길목에 있는 작은 수납장에 청소기를 넣을 수 있으면 안성맞춤이다. 적당한 위치에 적당한 기능을 가지면 집의 완성도가 달라진다. 이번 집은 사람이 많아서 신발도 많다. 그래서 신발장을 짜지 않고 신발을 위한 공간을 따로 만들었다. 현관 옆에 있는 이 공간에는 집 안까지 끌고 들어올 필요가 없는 골프 백을 보관할 수도 있어서 유용하다. 만일 아이가 태어난다면 유모차를 놓을 수도 있을 것이다.

3층 아들 내외 공간에는 작은 주방시설을 따로 마련했다. 젊은 사람들끼리 야식을 먹거나, 혹 아이가 생겼을 때 이유식을 만들고 젖병 등을 씻을 수 있는 여지를 주고 싶었다. 1층에도 주방이 있지만 이건 시어머니의 주방이다. 어린 며느리 입장에서 3층은 집에서 마음 놓고 숨 쉴 수 있는 공간이 되어야 한다. 그래서 밑으로 내려오지 않아도 야식을 해 먹을 수 있는 주방은 요긴하게 쓰일 거다. 식탁도 마련해 놨고.

특히 3층에 있는 손님방은 사실 며느리를 위한 공간이다. 사돈 내외와 관계가 좋은데, 며느리도 외동딸이다 보니 사돈이 찾아오면 여기서 머물다 간다. 친구들도 자주 찾아오고. 아이가 생기면 자연스럽게 아이를 기르는 방이 될 거다. 3층을 더욱 독립적으로 만들기 위해 잠금장치가 있는 여닫이문을 진입부에 배치했다.

 

3층에 거주하는 아들 내외를 위한 미니 주방 모델링 이미지 ⓒSeoga Architects
드레스룸 복도를 통해 바라본 아들 내외의 3층 침실 모델링 이미지 ⓒSeoga Architects
2층보다 넓은 창이 시원시원한 3층 아들 내외의 침실 모델링 이미지 ⓒSeoga Architects

 

‘구기동 三代가 사는 집’ 도면이 궁금하다면…

ⓒSEOGA ARCHITECTS

 

 


건축사사무소 서가  www.designseoga.com

건축사사무소 서가의 공동 대표인 오승현은 한양대학교 건축 전문대학원을 졸업하고 OCA건축사사무소, DIA건축사사무소에서 다양한 실무 경험을 쌓으며 재료와 프로그램 및 공간에 대한 이해와 가능성을 넓혀왔다. DDP 포럼 등에서 강연을 진행했고, 2018 대한민국 신진건축사대상 최우수상 등을 수상했다. 현재 서울시 공공건축가로 활동 중이다.

2010년 건축가사무소 서가를 설립해 오승현과 공동 운영하는 박혜선은 한국예술종합학교 미술원 건축과를 졸업하고 hna 온고당 건축사사무소에서 실무 경험을 쌓았으며 스튜디오 mo.M과 유니트유에이 건축사사무소의 소장을 역임했다. 주요 수상 경력으로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 설계공모 우수작, 서울대학교 신약개발연구센터 우수작, 행복도시 단독주택 특화단지 설계공모 3등, 인천광역시 건축상 주거부문 우수상, 진주시 건축상 우수상, 2018 대한민국 신진건축사대상 최우수상이 있다.

 

You might also like

건축에도 올드머니룩Old Money Look이 있을까?

[정해욱의 건축잡담] ⑩ 정통과 퓨전의 변증법에 관하여

스테이 창업 전, 반드시 두드려보아야 할 돌다리 ‘스테이 스쿨’

스테이 스쿨 강사진으로부터 미리 들어보는 생존 전략

일상의 웰니스 라이프 큐레이터에게 묻다

[Wellness Lifestyle] ⑧ Life Curators

패러다임 전환의 시대

[Portrait] 호텔을 만드는 사람 한이경

‘왜 홀리스틱 웰니스인가’, 그는 이렇게 말한다

[Interview] 상하 리트릿 CCO & 총괄 건축가 — 캘빈 싸오Calvin Tsao

짓기 전에 꼭 넘어야 할 스무고개가 있습니다

[다시 만난 브리크의 공간] ① 서교동 카페 ‘콤파일Compile’ 황지원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