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계동을 빛내는 색다른 시도

[Near my home] ⑫ 서울을 품은 마을카페 ‘청파언덕집’
ⓒKyung Roh
에디터. 김현경  자료. 김이홍 아키텍츠
 

서울역 뒤편의 대로를 건너가면 서계동이 나온다. 가파른 계단을 따라 올라가면 언덕 위의 투명한 ‘청파언덕집’을 만날 수 있다. 좁은 골목길을 향해 나온 뾰족한 형태의 입구는 지나가는 사람들의 발을 멈추게 한다. 오래된 동네에 생긴 새로운 형태만큼 다른 방식으로 동네에 활기를 불어넣는다. KBS 다큐멘터리 ‘요리인류’를 제작한 이욱정 PD가 맡아 운영을 하게 된 청파동에 새로 생긴 도시재생 거점시설, 청파언덕집을 설계한 김이홍 건축가로부터 공간의 재탄생 과정을 들어보았다.

 

김이홍 건축가 ⓒBRIQUE Magazine

 

청파언덕집이라는 이름은 어떻게 나오게 되었나요? 직접 붙이신 이름인가요?

아니에요. 초반부터 다들 그렇게 부르기 시작했던 것 같아요. 은행나무집도 그랬고, 중림창고도 그렇고. 은행나무집은 그 앞에 진짜 엄청난 은행나무가 있어요. 동네의 수호신 같은 거라고 하더라고요. 장소가 가지고 있던 원래의 성격이 이름으로 붙게 되었어요. 청파언덕집은 서울역 플랫폼에서 나와 서계동 언덕을 보면 청파언덕이라고 영어로 쓰여 있어요. 건물에 가려져서 잘 보이지는 않지만 아는 분들은 찾아볼 수 있죠.

 

ⓒKyung Roh

 

얼마 전에 청파언덕집에 다녀왔는데 뾰족한 입구가 강렬했어요.

이 집이 도로보다 2미터 이상 높거든요. 밑에서 올려다봐서 그 각이 더 뾰족해 보이는 것 같아요. 매스가 디자인된 거라고 생각하기가 쉬운데 일부러 의도했던 건 아니었어요. 대지 경계가 복잡했어요. 옛날 동네여서 경계가 모호하기도 했고, 옆집들이 경계를 넘어서 들어와 있어서 꽤 큰 손실을 봐야 했어요. 뒤의 돌담은 건드릴 수 없었고, 주어진 것 안에서 최대한 이용을 했죠. 삐죽빼죽한 대지 경계에서 평행한 선들의 형태가 된 거예요. 약간 의도한 부분도 있긴 해요. 돌출된 부분이 길에서 처음 보일 텐데, 그 부분이 전망대 역할로 뱃머리 같은 그런 형상이 되고 포토존도 될 수 있겠단 생각도 들었어요. 이런 복합적인 이유로 유기적으로 만들어졌어요. 정형화된 곳이 아니다보니 더 재미있게 나온 것 같아요. 현장에서도 많이 고생하셨을 거예요.

 

사실 뾰족한 입구도 그렇지만 반투명한 재료(폴리카보네이트)를 사용하신 것도 동네의 분위기와는 좀 다르더라고요.

투명한 느낌이 좀 다르지, 색으로 튀는 건 아닌 것 같아요. 사실 재료보다는 형태적으로 더 튀는 것 같아요. 거기에 재료도 한몫하는 것 같고. 폴리카보네이트가 그런 재료라고 생각은 안 했었는데. (웃음) 그 재료를 썼던 이유는 언덕집이 높은 곳에 있기도 하고, 안에 경관 조명을 해서 야간에는 외부에서 보일 수 있게끔 하고 싶었어요. 그런데 주민분들도 받아들이기 힘든 부분이 좀 있었던 것 같아요. 아무래도 투명하다 보니 시멘트벽이랑 틀이 좀 보이잖아요. 따뜻한 느낌은 아니죠. 그렇지만 너무 눈에 익은 것으로만 하는 것보다는 좀 더 새로운 것들을 시도하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다고 생각했어요. 서로 새로운 것들도 볼 수 있기도 하니까요.

 

ⓒKyung Roh
ⓒKyung Roh

 

도시재생 거점 시설들은 주로 리모델링으로 만들어진 것 같은데 이 건물은 신축 같아 보였어요.

새로 지은 거죠. 기존의 건물이 무허가 건물이었어요. 그러다 보니 리모델링으로 진행하기 어려웠어요. 그래도 도시재생이니 땅을 다 파내고 새로 지으면 의미가 없으니 최대한 도로 면에서 인지되는 입면에 있는 벽들만 남겼어요. 주요한 벽들만 상징적으로 남겨두자고 한 건데, 그 벽들도 보강 차원에서 살리지는 못했어요. 도로에 면한 기초 부분이랑 이런 벽돌들을 살리고 싶었는데 미장을 다시 해야 했죠. 그런 것들이 아쉬웠죠. 폴리카보네이트를 사용한 것도 불투명한 새 옷이 오버랩 돼 투과될 수 있길 바랐어요. 불이 새어 나오는 것도 있지만 옛것과의 중첩, 그런 의도도 있었어요.

 

앵커시설이라는 게 이용자가 정해진게 아니고 모든 주민을 위한 것이라 공간 설계하는게 어려웠을 것 같아요.

맞아요. 힘들긴 했어요. 처음엔 누구를 대상으로 설계해야 할지 몰랐어요. 주민 공동시설이라는 것만 있었고, 구체적인 내용이 없었어요. 언덕 위에 위치하다 보니 전망대라는 요소가 있었으면 좋겠다는 의견이 있었고, 마을 방송국처럼 서울 시내를 내려다보며 1인 방송할 수 있는 장소에 대한 의견도 있었어요. 조그만 부스에서 일반인도 가서 서울 야경을 보면서 그런 얘기도 있었는데, 돌이켜보니까 지금은 많이 바뀌었어요. 요리인류가 합류하고서는 상의하면서 레이아웃을 잡았는데 이미 공사는 진행 중이었어요. 공사 중에 설비가 바뀌어야 하는 이슈들이 좀 있기는 했어요.

다이어그램 ⓒLeehong Kim Architects
ⓒKyung Roh

 

이욱정PD의 요리인류가 들어오면서 어떤 부분이 바뀌었나요?

프로그램이 정해지기 전부터 형태는 고정돼 있었어요. 계단이나 화장실 계획이 바뀌진 않았고, 최대한 큰 공간을 만들어주면서 향을 조망할 수 있는 곳은 열어주려고 했어요. 그러다 요리인류가 들어오게 되었는데, 사실 PD님이 전체 시설을 사용하고자 하는 방향이 달랐어요. 이미 어느정도 진행된 상태에 요리인류가 들어오면서 많은 걸 바꾸지는 못했지만 인테리어 배치 계획정도는 같이 했어요. 정형화된 평면이 아닌데다가 생각보다 공간이 넓지 않아서 배치가 쉽지는 않았어요. 그렇지만 요리인류가 들어오면서 즐겁게 했어요. 공간만 있다고 성공적인 주민 시설은 아니잖아요. PD님이 아무래도 인지도도 있고, 좋은 콘텐츠도 가지고 있었고, 더 탄탄한 콘텐츠를 채워야겠다는 생각으로 접촉이 됐던 것 같아요. 확실히 공간보다 소프트웨어가 더 중요하지 않나 건축가지만 그런 생각이 들더라고요.

 

서울역 앵커시설은 콘텐츠에 많이 집중하고 있는 것 같다고 느꼈어요. 성공적인 도시재생이 되려면 어떤 부분이 더 발전해야 할까요?

역시 콘텐츠가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한번 가고 나서, 두 번 찾아오게 하려면 흥미로운 면이 있어야 할 것 같아요. 청파언덕집도 찾아오게끔 유도를 하긴 했지만 접근하기 쉬운 위치는 아니잖아요. 언덕도 높고, 주차할 공간도 마땅치 않아요. 그렇기 때문에 콘텐츠가 좋아야 사람들이 계속 방문할 수 있는 장소가 될 것 같아요.
보완해야 할 부분은 사업 시작할 때 기획 단계 기간이 조금 더 길었으면 좋지 않았을까 싶어요. 저희가 넉 달 정도 기획하고 설계를 들어갔거든요. 근데 그 전 단계에 어떻게 사용될지, 주민들의 의견도 좀 더 듣고. 적합한 공간인지 아닌지를 볼 수 있는 단계가 있었어야 할 것 같아요. 또 설계를 시작할 때 어떤 프로그램이 운영될지 정해져 있어야 딱 맞는 공간이 만들어질 수 있을 것 같아요. 사실 청파언덕집에 화덕도 놓고 싶어 하셨는데, 이미 많이 진행된 상태다 보니 못하셨죠.

 

ⓒKyung Roh
ⓒKyung Roh
ⓒKyung Roh

 

시간이 있었으면 앵커시설 간 관계에 대해서도 더 생각해볼 수 있었을 것 같아요.

우선 8개의 앵커가 서로 다른 프로그램을 갖고 있어야 할 것 같아요. 언덕집에 방문했다가 다른 곳으로 가서 전시도 보고 이런 식으로 하나가 될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그런 차원에서 필요한 단계인 것 같아요. 더 긴 시간 동안 진행하면서 건축가들 간의 유대가 조금 더 깊어졌으면 좋았겠다고 생각했어요. 도시재생협동조합센터에서 지금 도록을 만들고 있거든요. 그래서 라운드 테이블을 몇 번 했었는데 거기서도 그런 의견이 나왔었어요. 한번은 건축가 몇 명이랑 각자 사이트들 한번은 돌아보긴 했어요. 돌아보면서 제가 생각하지 못한 의견을 주시기도 했는데 그런 것들이 한 번 정도로 그친 게 조금 아쉽긴 해요. 시간이 너무 촉박했다 보니까.

 

완공된 시점에서 가장 마음에 드는 공간은 어디였나요?

저는 3층 창 부분이 가장 마음에 들었어요. 조금 각진 부분이랑 둥근 창, 다른 형태가 중첩이 되는 부분이 읽히는 게 좋았어요. 최대한 각진 캐노피 부분은 천장면이랑 같이 내보내려고 노력했는데, 그 프레임을 통해서 보이는 뷰가 좋았어요. 또 뾰족한 형태에 맞춰서 나오는 2층의 난간 모습도 좋았어요.

 

ⓒBRIQUE Magazine
ⓒBRIQUE Magazine
ⓒKyung Roh
ⓒKyung Roh

 

마지막으로 청파언덕집이 앞으로 동네에서 어떤 역할을 하는 공간이 되길 바라시나요?

꾸준히 오래 성공적인 도시재생의 사례로 남았으면 좋겠어요. 그렇게 되면 저도 굉장히 감사할 것 같아요. 요리인류 팀이 늦게 정해지긴 했지만 그래도 안정된 운영자가 있으면 건물에 온기도 생기고, 오래 유지도 되고, 더 예쁘게 가꾸어질 테니까. 그런 기대감에 조금 더 열심히 참여했던 것 같아요. 더 오래 남을 수 있는 주민들과 방문객들을 위한 좋은 공간이 되었으면 해요.

 

김이홍 건축가 ⓒBRIQUE Magazine
ⓒKyung Roh
ⓒKyung Roh
ⓒKyung Roh

 

 

 


[Near my home] 동네가 내 집이 된다면

글 싣는 순서 :

① 집 밖으로 나온 우리집 공간 ‘프로젝트 후암’
② 커피향 흐르는 해방촌 세탁방 – 세탁기와 커피가 함께 있는 카페 ‘론드리 프로젝트’
③ 쌓인 책은 줄이고, 없는 책은 빌리고 – 온라인 공유 도서관 ‘국민도서관 책꽂이’
④ 누구나 창고는 필요하다 – 삶을 담는 그릇, ‘미니창고 다락’
⑤ 짐을 비우고 삶을 채우세요 –  짐에 대한 연구보고서 ‘오호’
⑥ 누구나 주인이 되는 술집 – 매일 주인이 바뀌는 영등포 커뮤니티 바 ‘삼만항’
⑦ 연남·연희 ‘플레이’ 리스트 – 동네의 숨은 콘텐츠를 찾아서, 어반플레이의 ‘쉐어빌리지’
⑧ 슬기로운 동네생활 – 직주근접 동네 생활자, 심영규 주식회사 정음 대표
⑨ 우리 동네에서 살아볼래요? – 블랭크가 만드는 공간, 동네, 지역
⑩ 오래된 동네를 밝히는 여덟 개의 풍경 – 서울역 일대 도시재생 거점시설
회현동 골목 어귀에 숨겨져 있는 동네 사랑방 – 여든다섯살 적산가옥의 새로운 쓰임 ‘회현사랑채’
⑫ 서계동을 밝히는 색다른 시도 – 서울을 품은 마을카페 ‘청파언덕집’

 

‘서울역 일대 도시재생 거점시설’ 전체 스토리 담은 <브리크brique> 종이잡지 vol.3

 

ⓒBRIQUE Magazine

책 자세히 보기    https://brique.co/book/brique-vol-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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