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언제나 과정 속에 있다

[Interview] 푸하하하프렌즈의 집에 관한 이야기
ⓒBRIQUE Magazine
글 & 사진.  김윤선  자료. 푸하하하건축사사무소 FHHH friends

 

푸하하하건축사사무소(이하 푸하하하프렌즈)는 한승재, 한양규, 윤한진이 이끄는 건축설계사무소다. 2013년 활동을 시작해 성수연방, 어라운드 사옥, ㅁㅁㄷ작은집 등 다양한 형태의 건축 작업을 계속해온 그들은 얼마전 문화체육관광부가 주최하는 ‘2019 젊은 건축가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푸하하하!”
월요일 아침 합정동에 위치한 사무실에서 진행된 자못 진지한 인터뷰 내내, 일하는 한편에선 딱딱한 키보드 소리 대신 호탕한 대화와 웃음들이 넘쳤다. 엉뚱하지만 유쾌한 사무소 이름답게, 집을 짓는 지난한 과정 속에서도 소중한 웃음을 잃지 않는 사람들. 푸하하하프렌즈 한양규 소장과 집에 관한 이야기를 나눠봤다.

 

한승재 소장(위)과 한양규 소장(아래). 한양규 소장이 휴직 중인 윤한진 소장의 사진을 들고 있다. ⓒBRIQUE Magazine

 

집을 설계할 때마다 건축주에게 요청하는 설문조사가 있다면서요?

‘푸하하하프렌즈 건축학개론’인데요. 주택 프로젝트를 진행할 때 건축주에게 이걸 꼭 작성해달라고 요청해요. 건축주 스스로가 나는 어떤 사람인지를 이해하고, 그를 바탕으로 살고 싶은 집을 깨닫도록 하는 게 목적이에요. 건축주들이 처음에 집을 지으려고 할 때 막연하게 로망에 대해서만 생각하는 경향이 있어요. 그게 정말 적절한 생각인지를 판단해보고 어떤 집을 원하는지 서로가 알 수 있도록 하는 기회가 될 수 있죠.

 

건축주가 직접 작성한 설문조사지 ⒸFHHH friends

 

‘제주도 세거리집’은 제주도 토박이의 집이었죠. 어떠셨어요?

건축주 가족이 가지고 있는 생활 방식에 불편함이 없는, 제주도 사람이 쓰기에 편한 집을 짓고자 한 게 설계의 시작이었죠. 예를 들어 할머니 방 옆에는 물부엌과 텃밭이 있는데, 원래 살던 방식을 그대로 살린 거예요. 저는 전라북도 군산 출신인데 서울에 있다 보면 가끔 답답함을 느껴요. 바람이 없으면 답답하다는 느낌이 몸으로 느껴지거든요. 그래서 집에 바람이 잘 통하는 것 하나만으로도 사람의 몸에 맞는 집이라는 생각을 해요. 그런 생각이 이 집에도 자연스럽게 반영되었어요.

 

설계기간이 다른 프로젝트에 비해 꽤 길었다고 들었어요.

보통 기본설계 확정까지 한 달에서 한 달 반 정도 걸려요. 근데 이 집은 설계를 한 네 번 정도는 엎은 거 같아요. 8월 초에 현장조사하고 11월 초에 기본설계를 확정했으니 꼬박 세 달이 걸렸네요. 건축주와 미팅할 때마다 가벼운 도면과 3D 이미지를 보여 줘요. 건축주는 제가 보여드릴 때마다 좋아해 주셨는데, 제 스스로 마음에 들 때까지 몇 번이고 다시 작업했어요. 그러다 기본설계를 확정하기로 한 날 건축주가 저한테 그러더라고요. “이번이 진짜 마지막”이라고. (웃음)

 

현장이 제주도에 있어서 힘든 점은 없었나요?

설계할 때 건축주와 미팅은 서울에서 진행했어요. 건축주가 직업상 서울에 올 일이 종종 있어서 그때마다 올라와 1박 하고 내려가곤 했죠. 감리할 때는 1주 내지 2주에 한 번 제가 내려갔어요. 첫 비행기 타고 내려가서 오후 비행기 타고 올라오고 그랬어요. 지금 생각해보니 좀 말이 안 되는 것 같은데, 건축주와 의견 마찰이 거의 없었어요.
시공하는 7개월간은 현장소장님, 그리고 건축주와 거의 매일 통화했어요. 건축주가 토목시공을 하시는 분이라 설계를 잘 몰라도 현장을 좀 볼 줄 아셨거든요. 건축주가 현장을 보고 제게 전화를 하면 제가 다시 현장에 전화하는 식이었죠. 시공사와도 수월하게 작업했어요. 잘못된 게 있으면 끝까지 다시 해주셨어요. 사실 현장에서 그렇게 하는 게 어렵거든요. 최대한 저희가 설계한 대로 맞춰 주셨죠.

 

어떤 과정을 거쳐 현재 집의 모습이 나왔는지 궁금해요.

건축주 부부, 그리고 자녀들, 부모님을 위한 세 채의 집을 만든다는 목표로, 이 땅 안에 그 세 채를 어떻게 엮을까 하는 게 설계의 시작이었어요. 처음에는 세 채의 집을 짓는다는 의도의 다이어그램을 그려봤죠. 그리고 중앙에 공유 공간을 뒀어요. 문이 어떻게 열리는지에 따라 ‘따로 또 같이 쓰는’ 뭐 그런 거 있잖아요. (웃음)

 

ⒸFHHH friends
ⒸFHHH friends

 

그다음은 마당에서 들어왔을 때 영역이 있고, 단면에서 공간이 엮이는 집이에요. 지금이랑 비슷한 분위기가 있지만 명확하게 정리되지는 않았죠. 

 

ⒸFHHH friends
ⒸFHHH friends

 

여기에서도 아직까진 제주도 집 같은 느낌이 없죠. 하부는 무겁고 상부는 가볍게 하자는 의도는 있었지만요. 

 

ⒸFHHH friends

 

최종적으로 이런 집이 탄생했어요.

 

ⒸFHHH friends
ⒸFHHH friends
ⒸFHHH friends

 

초기 계획 도면을 보면 ‘같이 자라고 늙어가는 집’이라는 이름이 붙어 있어요. 어떤 의미인가요?

삼남매가 자라 학교에 들어가고, 그리고 더 자라서 나중에 건축주 부부가 조부모의 공간으로 집을 바꾸고… 오랜 시간이 지난 이후 가족들의 삶을 생각해봤어요. 시간이 흐르면서 생활이 변화하는 것에 대한 고민이 있었죠. 특히 건축주 자녀들이 평생 이 집에서 살 거라는 걸 전제로 설계했거든요. 나중에 어떻게 쓸지는 잘 모르겠네요. (웃음)

 

ⒸYoon, Joonhwan

 

건축가로서 좋은 집이란 무엇이라고 생각하세요?

어려워요. “햇빛이 잘 드는 집이요” , “큰 집이요”. 이렇게 말하는 건 너무 단편적이고요. 사실 대부분의 집은 기본적으로 좋은 집인데, 사는 사람에게 맞지 않을 때 좋지 않은 집이 되는 것 같아요. 모두가 다 마음에 드는 집을 짓거나 살 수 없죠. 모두가 아파트에 살 수도 단독주택에 살 수도 없고요. 그러니까, 살아가는 사람이 그 집에 적응하면서 집과 함께 자라고 늙어가면서, 자연스럽게 맞아가는 집이 좋은 집이라고 생각해요. ‘제주도 세거리집’ 역시 그 생각이 녹아있는 집이에요.

 

다양한 아이디어들이 모이고 걸러져 비로소 집이 완성되었네요. 주로 어디에서 아이디어를 얻으세요?

그냥 생각을 계속해서 하는 편이에요. ‘이래야 되나, 저래야 되나, 이게 맞나, 저게 맞나.’ 그러지 않으려고 해도 계속 생각이 나요. 오늘 날 잡아서 이걸 뚝딱 끝내야겠다거나, 몇 시부터 몇 시까지 해야겠다, 그런 게 잘 안돼요. 계속 생각하다가 트레싱지 펴서 선을 그려볼 때가 제일 편해요. 그때 가장 많은 아이디어가 나오는 것 같아요.

 

손을 움직일 때인가요?

머리보다 손이 빠르다잖아요. 한번 그린 거하고 백번 그린 거하고 당연히 다를 수밖에 없어요. 한 번 더 그려보면 또 다르겠지, 하면서 계속 그려봐요. 이미지보다는 도면화해서 보는 걸 좋아해요. 평면, 입면, 단면을 한 번에 싹 다 그려보는 거죠. 사실 이건 되게 옛날 방식이에요. 아마 한 3~40년 전 방식? (웃음) 옛날에 건축가들이 그렇게 했대요. 이젠 시대가 바뀌었으니까요. 저한테는 컴퓨터가 너무 직관적으로 느껴지는데, 직관적으로 나온 것에 대해 별로 신뢰를 하지 않는 편이에요. 물론 최종 결과물은 캐드CAD와 3D 프로그램을 사용하지만, 초기에 설계할 땐 손으로 그려보는 게 우선이에요.

 

한양규 소장의 스케치 ⒸFHHH friends

 

3~40년 방식으로 설계한다고 했지만, 최근 ‘젊은 건축가상’을 수상했어요. (웃음)

감사하죠. 상 받아서 좋아요. 하지만 자만하지 않고 건축을 하는 마음과 생각이 변하지 않아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어요. 저는 다른 관심사가 별로 없어요. 그냥 설계만 관심사예요. 그렇다고 해서 설계 잘하고 건축 잘한다는 건 아니지만요. (웃음)
그냥 건축이 재밌어요. 요즘은 시공사에서도 도면을 잘 봐주시고, 현장에서도 소통이 잘 돼요. 건축주도 예전보다 건축가에 대한 신뢰도가 높아졌고요. 그래서인지 매일 현장 가서 더 좋은 방법 찾아보고 싶고. 꽤 의욕적이에요 지금의 저는. 그런 토대를 기반으로 계속해서 좋은 건축을 더 많이 하고 싶어요.

 

ⓒBRIQUE Magazine
웃음 소리가 끊이지 않았던 사무실 한편, 일하고 있는 팀원들 ⓒBRIQUE Magazine

 

‘우리는 언제나 과정 속에 있다’는, 저 표어가 지금 푸하하하의 마음가짐을 나타내는 것 같네요. (웃음)

네, 초심을 잃지 않고 계속해서 열심히 건축해야죠. 우리는 언제나 과정 속에 있으니까.

 

우리는 언제나 과정 속에 있다. ⓒBRIQUE Magazine
한승재 소장이 직접 커스텀한 티셔츠. REAL FHHH POWER ⓒBRIQUE Magazine
ⓒBRIQUE Magazi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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