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축적 집요함의 자리

[Story] 아지트스튜디오 건축사사무소가 전하는 콘크리트 도서관
ⓒAGIT STUDIO
에디터. 김지아  사진. 신경섭, 윤현기  자료. 아지트스튜디오 건축사사무소

 

① 내일의 내 일을 위한 집 — ‘콘크리트 도서관’ 공간 이야기
② [Interview] 다음 역은 도서관입니다 – 중년 부부의 도서관 집 이야기
③ [Architects] 건축적 집요함의 자리 — 아지트스튜디오 건축사사무소


 

아지트스튜디오는 10여 년 전 더 좋은 건축가가 되어보겠다는 세 친구의 호기로운 뜻으로 만든 방에서 출발했다. 각자 회사 일을 마치고 건축 이야기도 하고, 작업도 했다. 모형, 스케치, 이미지, 책으로 가득했던 작업실은 몇 개의 작은 프로젝트를 시작으로 본격적인 설계 사무소가 됐다. ‘무언가를 이루려고 모의하는 공간’ 혹은 ‘선동’의 뜻을 지닌 아지트AGIT의 중의적 표현이 아지트스튜디오의 시작과 현재를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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콘크리트 도서관 설계는 어떤 계기로 시작하게 됐나요?

허근일ᅠ이전까지는 아무래도 작업실 성격의 스튜디오였기 때문에 아지트에서 진행한 기존 작업을 직·간접적으로 보고 의뢰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어요. 콘크리트 도서관도 이전에 주택을 의뢰한 클라이언트의 소개로 시작됐죠. 

 

건축주가 주택을 의뢰하며 특별히 요구한 사항이 있었나요?

서자민ᅠ일본에서 오래 생활했던 건축주 부부는 처음 미팅 때 눈 덮인 일본 홋카이도 주택과 고즈넉한 동네 풍경, 오래된 도서관 사진을 보여줬어요. 그러한 경험으로부터 집을 지을 동기가 생겼다고 이야기해 주었죠. 그리고 여생을 보낼 평생의 마지막 집을 짓고 싶다고 했는데, 그 말이 특히 와닿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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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지가 위치한 장전동 일대는 어떤 곳인가요?

서자민ᅠ장전동은 전형적인 도심 주거지역이에요. 1980년대 전후 동일한 모습으로 지어진 2층 주택들로 빽빽한 곳이죠. 지도에서 보면 필지 블록이 복사 붙여넣기를 한 것처럼 같은 패턴으로 반복되는데, 도로를 면하고 있는 필지와 그 사이 골목으로 들어가 있는 필지가 세트로 엮여 배치된 형태예요. 또 부산대학교 인근 동네이기 때문에 학생들의 거주지이고도 하고요. 현재의 장전동 역시 아파트 단지로 개발된 지역과 옛 주거지의 모습을 간직한 동네가 공존하고 있어요.

 

30m 길이의 좁은 골목길 끝에 앉은 땅, 30년 연식의 벽돌조 건물이나 침하가 진행 중인 지반, 신축이 불가한 사실상 맹지로, 대지가 상당히 특징적인데요. 리노베이션 전 건물은 어떤 모습이었나요?

허근일ᅠ기존 건물은 1980년대 후반에 지어진, 당시 한국에서 가장 흔하고 보편적인 주택 양식, 즉 지붕에 장식 기와가 달린 붉은 벽돌 타일 마감의 2층 연와조 주택이었죠. 여러 세대가 이 주택을 나누어 살고 있는 상태였는데요. 외관상 언뜻 보았을 때는 문제가 없어 보였으나 벽면의 균열을 보면 지반 침하를 의심할 수 있는 상황이었어요. 소유자가 불분명한 좁은 골목에 담배꽁초 등이 버려져 있기도 했죠. 건축가의 입장에서는 익숙하고 정겹기보다 대하기 조심스럽고 어려움이 예상되는 대지였어요.

 

ⓒBRIQUE Magazine

 

건축주와의 대화를 통해 건물의 중심 장소이자 공간인 ‘사적인 도서관’이 탄생했다고요. 도서관이라는 프로그램이 없었다면, 건물이 상당히 다른 맥락으로 존재했을 것 같습니다.

서자민ᅠ건축주의 오랜 꿈이 구체적으로 어떤 것인지 이해하기 위해 많은 대화를 했어요. ‘책과 사색하는 공간’은 주택에 속해 사적인 영역이 되거나 교습소에 부속되어 독서실처럼 활용될 수도 있지만, 좀 더 적극적으로 공적 역할을 하며 중심 장소이자 공간으로 발전할 수 있다고 생각했죠. 그러한 방향이야말로 건축적으로, 프로그램적으로 좋은 힘을 가지는 방향이라 생각했어요. 그 연장선에서 도서관이 이 프로젝트의 중심 장소로 자리매김할 수 있도록 제안했습니다. 다행히 계획이 거듭될수록 건축주의 오랜 생각과 동행하는 방향으로 자연스레 나아갈 수 있었습니다. 도서관과 관련해 한 가지 인상 깊은 기억은 어색함 때문인지 처음에는 프로그램이 ‘독서실’ ‘북카페’ 등 여러 다른 명칭으로 불렸는데, 골조가 정리되고 장소의 스케일과 감각이 피부로 느껴지기 시작할 때였어요. 그때 공간을 ‘도서관’으로 부르기 시작했더니 그 후로 모두가 ‘도서관’을 이야기하더라고요. (웃음)

 

콘크리트 도서관 작업에 대해 ‘집요하게 비워낸 덩어리’라는 에필로그를 남겼죠. 집요하게 비워낸다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요?

서자민ᅠ먼저 집요함은 시간에 관련된 표현인데요. 리노베이션 프로젝트였기 때문에 강한 콘셉트나선으로 건축을 재단할 수 없었어요. 법규에 따라 설계를 해가며 혹은 철거를 해가며 나타나는 다양한 요구조건에 끊임없이 대응하는 과정이 중요했죠. 처음부터 손쉬운 방법을 선택하기보다 저희만의 대안을 만드는 것에 목적이 있었기 때문에 생각보다 많은 시간을 들여야 했어요. 그 과정이 집요함으로 표현됐다고 볼 수 있을 것 같아요. ‘비워낸 덩어리’라는 표현은 구축 방식에 가까운데요. 콘크리트 도서관 작업에 있어서는 처음부터 법적 제한과 구조적인 이유에 기반해 최대 볼륨을 가늠하는 일이 가능했어요. 그래서 정리하고 비워내는 방향으로 계획을 진행했습니다. 비워낸다는 것은 본질을 남기거나 중요한 것을 명확하게 만들기 위해 정리해 나가는 과정이었다고 생각해요. 건축이 그런 것처럼 물리적인 것과 개념이 동행하는 과정이었을 테죠.

 

ⓒBRIQUE Magazi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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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비워낸 덩어리를 바라보며 어떤 생각을 했나요?

허근일ᅠ건축물이 거의 완공될 즈음, 도서관에 앉아 두꺼운 벽과 창문을 통해 시멘트 모르타르로 정리한 옛 담장을 바라보던 때가 기억나네요. 공간적으로도 아름답지만 새로운 구조를 만들기 위한 노력이었던 두꺼운 벽 속에서 기존 건축물의 잔향을 지키려는 생각이 보이는 것 같았어요. 그런 점에서 건축물의 의도가 가장 잘 표현된 모습이 아닐까 생각했고요. 또 프로젝트를 정리하는 과정에서 동일한 각도에서 찍힌 기존 건축물과 현재의 콘크리트 도서관을 우연히 대조했을 때, 시간을 공유하고 연속하는 다른 두 건물이 겹쳐 보이면서 건축가의 역할을 다시금 되새길 수 있었습니다.

 

콘크리트 도서관 리노베이션 프로젝트가 갖는 도시적, 사회적 의미는 무엇일까요?

허근일ᅠ건축 작업에서 중요한 의미의 지점이 ‘비례’ 혹은 ‘조형성’에 있을 수도 있고, ‘건축에 대한 질문과 풀어가는 방식’에 있을 수도 있죠. 이 프로젝트는 우리 주변에서 쉽게 마주할 수 있는 문제 —도시의 많은 부분을 점유하고 있는 오래되고 구조적으로 안전하지 않은 주택— 에 대한 아지트스튜디오만의 방법을 제안했다는 것에 의미가 있다고 봅니다. 결국 한국의 특수한 환경 속에서 만들어진 부분의 문제에 대한 해답을 찾아가는 것은 건축가들의 다양한 실험과 제안에 있을 텐데요. 아지트스튜디오도 그러한 해법을 제시했다는 점에서 도시적, 사회적 의미를 이야기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Kyungsub Shin

 

두 건축가가 생각하는 ‘좋은 집’, ‘좋은 공간’이란 무엇인가요?

허근일 ‘좋은’이라는 의미는 다양하게 해석될 수 있지만, 의도와 의지에 의해 만들어진 공간이 좋은 집이고 좋은 공간이라고 생각합니다. 객관적으로 퀄리티가 있는 공간일지라도 의도가 반영되지 않는 공간은 ‘좋은’이라는 단어와는 멀다고 생각해요.
서자민ᅠ덧붙여 좋은 ‘장소’에 대한 개념을 함께 이야기하고 싶어요. 공간에 시간을 더하면 장소가 된다고 생각해 볼게요. 건축가가 일상적으로 생각하는 시간의 단위는 최소 십 년, 백 년의 단위들이에요. 허근일 소장이 말하는 ‘의도’는 그 ‘시간’을 기반으로 하죠. 작은 개인 주택도, 많은 사람이 모이는 공간도 마찬가지예요. 개인에게 혹은 누군가에게 장소로서 의미를 가지는 곳을 ‘좋은 공간, 좋은 곳’으로 여길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아지트스튜디오의 앞으로의 계획이 궁금해집니다. 어떤 건축을 지향하고자 하는지에 대한 질문과도 맞닿아 있을 수 있겠습니다.

서자민ᅠ아지트스튜디오의 소개에서 볼 수 있듯이, 좋은 질문을 던질 수 있고 우리의 해석이 명료하게 녹아있는 건축을 지향합니다. 유행의 변화가 실로 쉼 없이 이루어지는 사회에서 무겁고, 느리고, 영속적인 건축물만이 가지는 특성들에 대해 신중하게 생각하고 발현시키고 싶어요. 질문은 새롭되 실험적이며, 만들어내는 것은 원초적이고 내공 있는 건축이면 좋겠습니다. 건축은 온전히 땅과 함께하는 작업이잖아요. 우리의 건축적 생각과 접근이 조금 더 힘을 발할 수 있도록 조금 더 규모 있는 작업을 하려고 노력하고 있어요. 다가오는 3월에는 스위스에서 서울 종로구 혜화에 위치한 아지트스튜디오로 복귀하는데, 앞으로 함께할 동료도 늘릴 예정입니다. 이제까지의 실험과 방향 위에서 좋은 작업과 스토리를 함께 만들어가는 팀을 꾸리고 싶습니다.

 

ⓒAGIT STUDI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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