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음 역은 도서관입니다

[Story] 중년 부부의 도서관 집 이야기
ⓒBRIQUE Magazine
에디터. 김지아  사진. 신경섭, 윤현기  자료. 아지트스튜디오 건축사사무소

 

① 내일의 내 일을 위한 집 — ‘콘크리트 도서관’ 공간 이야기
② [Interview] 다음 역은 도서관입니다 – 중년 부부의 도서관 집 이야기
③ [Architects] 건축적 집요함의 자리 — 아지트스튜디오 건축사사무소


 

건축주 양진우, 성기연 씨는 생활의 연장이자 노후를 위한 공간, 그리고 동네에 새로운 문화를 제안하는 장소로서의 집을 마련했다. 바깥으로 존재를 과시하기보다 얕고 긴 골목에 유유히 선 집. 집과 도서관의 경계에 놓인 낯설고도 친근한 건물. 이들은 이곳을 ‘사적인 도서관’이라 불렀다. 마침내 지은 자신들만의 주택에 도서관을 들인 이유는 무엇일까. 그 선택을 헤아리는 일 끝엔 여정이라는 단어가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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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학하는 동안 일본에서 거주하셨다고요.

성기연ᅠ일본 문학을 전공했어요. 스물아홉에 유학을 떠나 서른여덟에 한국으로 돌아왔으니 유학 생활이 꽤 길었죠. 남편도 같은 시기에 일본에서 유학했는데, 전공은 환경 쪽이었어요. 한국에 돌아온 후로는 20년째 일본어 교습소를 운영하고 있어요. 남편은 전공 분야의 연구원으로 지내고 있고요.

타국에서 지낸 세월이 긴 탓인지 이 집도 어딘지 이국적인 분위기를 가졌어요.

양진우ᅠ방문하는 분들도 비슷한 말을 해요. 집을 지을 때 일본식으로 만들어 달라는 코멘트나 요구를 하지는 않았거든요. 그런데 일본에서의 생활이 자연스레 영향을 준 것 같아요. 저희도 모르게 자꾸 골목을 찾고, 중정을 찾았던 건 아무래도 그런 풍경이 익숙해서 그랬던 게 아닐까 싶어요.

 

골목 안에 숨은 듯 있는 집이에요. 이 자리를 선택한 이유가 있나요?

양진우ᅠ일단 골목에 있는 집이라 다른 집보다는 상대적으로 저렴했어요. 요즘은 평 단가가 굉장히 비싸잖아요. 골목도 평수에 포함되다 보니 활용도가 떨어진다고 생각하는 분들이 많았던 것 같아요. 또 입구가 좁아 주차가 어렵기도 했고, 여러모로 조건이 좋지만은 않아 쓸모없는 땅 취급을 받았죠. 그런데 골목을 좋아하는 저희에게는 오히려 매력적인 땅이었어요. 교습소와 도서관을 운영하기에도 번잡한 대로에서 한 발 물러선 땅이 더 적합할 것 같았고요. 또 개인적으로는 눈에 띄는 걸 좋아하는 편이 아니기 때문에 지내기에도 편안하지 않을까 싶었죠. (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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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층은 교습소와 도서관, 2층은 주택인 집이에요. 교습소와 도서관을 집으로 들인 계기가 있나요?

성기연ᅠ교습소는 일본어를 가르치는 입장에서 제게 꼭 필요한 공간이었어요. 집을 짓기 전에는 친정어머니가 지내시던 주택, 상가 등 여러 건물에서 공부방처럼 교습소를 운영했죠. 전업주부로 지내본 적이 한 번도 없다 보니 일과 생활을 떨어뜨려 생각하는 일이 오히려 어색했어요. 그러다 노후를 생각하는 나이로 접어들면서 그다음에 대한 고민을 하게 된 거죠. 나이가 들어도 계속 일을 할 테지만, 전처럼 많이 할 수는 없겠죠. 학생 수도 예전에 비해 훨씬 줄었고요. 자연스러운 수순이라고 생각했어요. 하지만 저는 일을 하는 게 익숙한 사람이다 보니 지금까지 해왔던 일을 하면서 그다음 일로 서서히 넘어갔으면 하는 바람이 있었어요. 그래서 생각한 다음이 도서관이죠.

‘사적인 도서관’은 도서관과 카페 사이의 공간인 것 같은데요. 말 그대로 책 읽는 공간을 염두에 둔 곳인가요?

성기연ᅠ도서관이라는 공간을 워낙 좋아했고, 책과 함께하는 생활을 꿈꿔 시작된 곳이 맞아요. 다만 이를 구체화하게 된 계기가 있는데, 한참 노후의 일과 꿈꾸는 공간에 대해 고민하던 때 일본의 어느 다큐멘터리 프로그램을 보다가 교토에 위치한 ‘사설 도서관’이라는 곳을 알게 되었어요. 남편의 연구 일로 삿포로에 잠시 머물던 때라 TV에서 보고 바로 찾아갔죠. ‘이거다’ 싶은 곳이었어요. 직접 가 보니 48년 된 동네의 작은 도서관이더라고요. 들어가서 “어떻게 사용하면 됩니까?” 물었더니 조용히 하라고 하는 거예요. (웃음) 메모를 보여주며 이렇게 하라고 말없이 가리키더군요. 소리를 내서는 안 되는 곳이었어요. 한국으로 치면 정독실이나 독서실 같은 곳인가 싶었는데, 그때 본 장면은 독서실로 연상되는 곳과는 사뭇 달랐어요. 여느 독서실처럼 투명한 칸막이로 공간이 구분되어 있었는데, 사용자가 남녀노소로 무척 다양했죠. 앞치마를 입고 장바구니를 옆에 둔 채 뜨개질을 하는 주부, 건축 일을 하다 잠시 들어와 신문을 읽는 인부, 소리 없이 게임을 열심히 하는 초등학생까지. 적어도 제게는 그 풍경이 도서관이라는 단어만으로 떠올릴 수 있는 종류의 것이 아니었어요. 시험을 준비하는 학생들, 책을 읽는 사람들뿐 아니라 침묵 속에서 혼자만의 시간을 갖는 사람들이 머무는 장소였던 거예요. 신선한 충격이었죠. 한국으로 돌아와서 그런 곳을 만들고 싶다고 건축가에게 이야기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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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곳이 한국에는 많지 않죠. 카페가 비슷하려나 싶지만, 항상 조용하진 않으니까요.

성기연ᅠ집을 짓는 과정에서 ‘이런 곳을 만들어보려고 한다’ 지인들에게 이야기하니 열에 열 명이 하지 말라 하더라고요. (웃음) 한국 사람들은 말을 안 하면 안 된다고요. 일리가 있죠. 그래도 분위기를 만들어 주면 어떨까 싶었어요. 현재 이름은 도서관이지만, 허가는 카페로 되어 있어요. 전적으로 도서관으로 운영하려니 절차가 복잡하더군요.

도서관을 찾는 사람들은 어떤 시간을 보내다 가나요?

성기연ᅠ아직 2년이 채 안 되어 많이 알려지지는 않았어요. 골목에 있고 간판도 눈에 띄지 않다 보니 길을 지나다 우연히 들르는 분들이 다수죠. (웃음) 아무래도 부산대학교 근처라 대학생들이 많이 와요. 저학년보다는 고학년 내지는 복학생, 대학원생이 더 많이 찾는 것 같아요. 40대 직장인들도 가끔 와서 개인 작업을 하고, 주부들이 간간이 혼자 올 때도 있고요. 간혹 두 명이 방문했다가 “여기는 안 되겠다 가자” 이렇게 말하고 갈 때도 있어요. 이야기하지 말라는 표시는 그 어디에도 없는데, 분위기상 그렇게 느껴지나 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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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층을 도서관으로 개방하면서 주택으로 사용할 수 있는 면적이 줄었을 것 같은데요. 아쉬움은 없나요?

성기연ᅠ2층에는 방 두 개와 테라스가 있어요. 그 위로는 다락이 작게 있고요. 2층 실내 면적은 82㎡(25평) 정도인데, 아파트로 치면 92㎡(28평) 정도 된다고 하더라고요. 아이들은 일본에서 유학 중이라 이따금 같이 살고, 주로 남편과 저 둘이 지내는 공간이라 좁다는 느낌은 못 받았어요. 이전에도 큰 집에 살았던 경험이 많진 않았고요.

그전에는 계속 아파트에 살았나요?

성기연ᅠ주로 빌라에 살았죠. 아파트보다 단독주택이 많은 일본에서는 약 10년간 주택을 임대해 지냈고, 한국에 와서 20년 정도 계속 빌라에 살았어요. 신혼 생활을 일본에서 지내서인지 큰 공간에 대한 욕심은 없었어요. 오히려 더 줄였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을만큼요. 공간을 줄여야 버릴 게 버려지는 것 같더라고요. 생활에 쓸데없는 것들이 너무 많거든요.

집을 짓기 전 두 분에게 집이란 어떤 곳이었어요?

성기연ᅠ둘다 일을 하다 보니 낮에는 집에 있는 시간이 별로 없고, 밤에 들어와서 먹고 자고 하는 곳이었죠. 내가 사는 집에서 잠만 자고 나가는 하숙생 같았달까요. (웃음) 그래서인지 집에 대한 그리움이 항상 있었어요. 어릴 때를 생각해 보면 제 또래는 아파트보다는 주택에 많이 살았거든요. 기와집에 살고 집에 마당과 우물이 있고. 부산 서면에서 그다지 멀지 않은 곳이었는데도 당시에는 그런 집에 많이들 살았어요. 사실 한국 사람들이 내 집 마련에 큰 꿈을 갖고 있잖아요. 저희 부모님 세대부터도 그랬고요. 어릴 때 부모님의 사업 실패로 애써 마련한 집에서 쫓기듯 나오게 된 경험이 있어요. 그러다 보니 집에 대한 절실한 마음이 은연 중에 생겼던 것 같아요. 마루에 누워 있으면 햇살이 가득 들던 그 순간은 오랜 시간이 지나고 나서도 잘 잊히질 않더라고요. 또 일본에서 막 돌아와 주택 2층에 세 들어 살던 시절, 그다지 큰 집도 아니었는데 아이가 세 살쯤 되었을 무렵 남편 구두 신고 마당에서 뛰어놀던 모습이 오랫동안 기억에 남았어요. 그런 것들이 참 좋았어요. 어느 순간부터 집은 먹고 자고 하는 곳이 됐지만, 집에 대한 기억과 지향점은 역설적으로 또렷해져 간 셈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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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중한 기억들 위로 지은 집이네요. 이 집에 살면서 가장 좋았던 순간을 떠올려본다면요?

양진우ᅠ도서관은 주로 평일에 열고, 토요일은 오후 5시까지 운영해요. 일요일에는 문을 안 열다 보니 주말에는 이곳을 아내와 제 서재처럼 쓰고 있어요. 작업도 여기서 하고, 책도 읽고, 멍때리기도 하죠. 어쩌면 2층보다 더 자주 사용하는 공간이에요. 그렇게 주말에 도서관에 내려와 여유롭게 보내는 시간을 좋아라 하죠. 또 건물 뒤편 이웃집 무화과나무가 만드는 풍경이 정말 근사한데요. 봄여름이면 꽃과 열매가 쏟아지듯 만개하거든요. 집 쪽으로 넘어오는 건 먹어도 된다고 해서 손님들 드리곤 해요. (웃음) 화창한 계절에도 좋지만, 특히 비 오는 날 건너편 집 마당에서 이쪽으로 걸쳐 있는 나무들 바라보는 순간은 더할 나위 없이 좋죠.

집을 짓기 전과 지금을 비교하면 어때요? 생활이나 가치관에 있어 달라진 점이 있을까요?

성기연ᅠ고양이랑 친해졌어요. (웃음) 집으로 찾아오는 길고양이들이 많아요. 집 지을 때 덜 마른 시멘트 위로 고양이가 지나가는 바람에 발자국이 남기도 했어요. 저는 고양이, 벌레, 쥐 할 것 없이 동물을 원래 무서워하는 사람이었거든요. 하지만 여기서는 자연스레 고양이와 더불어 살게 됐어요. 오래된 동네라 간혹 쥐가 나타나기도 했는데, 고양이 밥을 두기 시작하니 쥐가 없어지더라고요. 총 여섯 마리의 고양이가 왔다 가요. 요즘 저희 집 최대 화젯거리가 ‘어제 고양이 왔다 갔나?’예요. 둘이서 아침부터 일어나 흔적을 살피죠. 그리고 주택 생활은 조금만 손을 안 보면 확 티가 나요. 사람이 자꾸 움직이게 되죠. 공동주택에서 지낼 때는 관리인이 해결해 주는 경우가 대부분이잖아요. 주택에서는 누구 시켜서 될 일이 아니겠더라고요. (웃음) 그저 내 일이라 생각하는 거예요. 노후를 위해 지은 집인 만큼 우리 손으로 할 수 있는 일을 찾아 나선 여정이기도 하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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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전에 살던 집들과 비교했을 때 이 집은 ‘좋은 집’에 가까운가요?

양진우ᅠ아주 좋은 집이죠. (웃음) 먹고 자는 일에 더해 온전히 쉴 수 있는 집이니까요. 이전의 집들이 왠지 모르게 답답함을 느끼게 만들고, 바깥으로 나가야 된다는 느낌을 지속적으로 주는 곳이었다면, 여긴 그런 생각이 안 드는 집이에요. 여기 있으면 하루가 금방 가요.

도서관이 앞으로 어떤 공간으로 남길 바라나요?

성기연ᅠ혼자이면서 함께인 곳, 함께이면서 혼자인 곳. 사적인 도서관이 지향하는 지점이에요. 다소 낯선 분위기일 수 있지만, 쉽게 접근했으면 해요. 아지트라는 말을 참 좋아해요. 이 집을 설계한 사무소도 공교롭게 같은 이름인데, 그런 면에서 통했나 싶기도 하네요. 일본에 살 때 제 아지트는 집이 아닌 도서관이었어요. 여행을 가도 제일 많이 가는 곳이 도서관이었죠. 그 분위기가 너무 좋았거든요. 책도 많이 안 읽으면서 책 냄새를 무척 좋아라 했기 때문에. (웃음) 거기 앉아 있으면 마음이 그렇게 편했죠. 더도 덜도 말고 그런 공간이 되면 좋겠어요. 들어왔을 때 세상으로부터 잠시 단절된, 그 무엇으로부터도 간섭받지 않는 ‘아지트’ 같은 느낌을 주는 곳으로 남았으면 싶어요.

 

ⓒKyungsub Sh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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